아무리 김율이 나관중과 진수의 세계관을 잘 엮어서 동시에 조조와 유비 파트를 연재하는 차력 쇼를 한다고 한들, 항상 타임라인을 동기화시킬 수는 없었다. 당연했다. 정사에서 담지 못할 흉참한 이야기는 유비 파트에게 떠넘기고, 조조 파트는 계속해서 정치공학적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시간대가 묘하게 엇갈리기 시작했으며. 김율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써 내려가자, 그 격차가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유비 파트에서는 이미 여포한테 뒤통수를 세게 후려맞고 잉잉이가 되어 소패에서 원문사극에 의존하는 것까지 진도가 나갔지만. 정작 조조 파트에서 협천자, 즉 희대의 살인 기계 이각과 곽사의 품에서 탈출한 헌제를 주워다가 본격적으로 정통성을 확보한 것은 이제야 에피소드에 등장할 수 있었다. 제국 황제가 김율에 대해 본격적으로 주목하기 시작한 시점이 딱 그무렵이었다. 그야, 어찌 한 나라의 황제를 그저 ‘명분으로 쥐고 흔들기 적합한’ 허수아비 취급할 수 있단 말인가? 그 흉참한 발상에. “폐하! 율리시스는 사문난적이옵니다!” “이건 황실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서술인바!”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이건 명백하게……!” 최근 동향에 대해서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던 친황제파까지 덩달아 화들짝 난리가 나고야 말았다. 그들도 느꼈다. 이전 황제가 뜬금없이 가면무도회를 개최한 날, 수도 곳곳에서 벌어진 괴사건들. 그게 어찌 연관성이 없을 수가 있을까. 알음알음 사교계에 도는 소문들을 취합해 보면, 거기에 모였던 사람 중 태반 이상이 친황제파였으니, 당연한 추론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몹시 불안했다. 안 그래도 제국 내에서 불순한 기류가 움직인다는 소문이 파다한 판국에, 이러한 노골적인 움직임이라니. 물론 그 누구도 베르투스 공작을 정면으로 고발할 수 있을 만한 용기도, 물증도 없었기에. 그들로서는 가장 만만한 먹잇감을 하나 매달아서 화르륵 불태우는 것으로 일벌백계를 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나. “경들은 제국의 귀족인가, 아니면 한낱 소문에 흔들리는 소인배인가? 문학에서 풍자까지 막아버리면, 다음은 신문사를 모두 폐간하기라도 해야 한단 말인가?” 제국의 황제는 근엄하게 꾸짖을 갈을 날렸다. 물론 그의 말은 통치자로서도 몹시 적절했다. 그리고 황제가 판단했을 때, 율리시스라는 작가는 아직은 건드려선 안 될 말벌 통과 가까운 존재였다. 그러나, 친황제파들의 불안감은 고작 황제의 말만으로 잠재워질 수 있을 만큼 옅지 않았으며. 황제 또한 자신이 수집한 정보를 친황제파와 공유할 만큼 율리시스에 대한 확신을 완전히 가지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아무래도 자네가 나서줘야겠네.” “저는 단 한 번도 이 언변을 약자에게 휘둘러본 적이 없지요……. 하지만, 나라의 정상화를 위해서라면, 제가 직접 나서겠습니다.” 친황제파는 그들이 쓸 수 있는 가장 시끄럽고, 가장 새콤하며, 가장 화끈한 인간 병기를 율리시스라는 작가에게 투척하기로 결심했다. 황제의 친필 사인 한 통에 오렌지 병에서 씻은 듯이 완치한, 아스테릭 전 의원 현 백수였다. * * * 오늘도 평화로운 서쪽 광장. 여전히 핑크빛 꽃잎을 마구마구 흩날리는 복숭아 세계수, 그리고 그 아래에서 웃고 떠드는 커플들. 시선을 조금만 돌려보면. “본인이 바로 관우 운장이오!” “아빠, 멋있다!” 가족 단위로 놀러 나온 사람들이, 삼삼오오 흩어져서 코스프레 렌탈 가게에서 옷을 빌려 입은 채 아이들의 추억을 만들어 주는 모습까지. 마치 경복궁 앞에서 한복을 대여해 주는 업체와 같이, 어느새 ‘두 영웅 코스프레 샵’은 서쪽 광장의 명물로 자리하고 있었다. 조악하게 만든 것도 있지만, 일전에 에스테아가 신나게 입고 우다다 달려왔었던 것처럼 나름대로 만듦새가 뛰어난 것도 있었던 지라. 보고 있자니 내 가슴 속에서 거의 메말랐던 삼뽕이 다시 차오르는 기분마저 느껴졌다. 그 무엇보다 나를 흐뭇하게 하는 것은. “으음. 조용하구만.” 종종 신문사 앞에서 소음을 발생시키던 깐프 시위대들이 완전히 박멸당했다는 것. 원래 권력은 휘둘러야 제맛이니, 눈앞에서 차를 쭈왑 빨고 있는 클로에의 귀를 잡고 휘둘렀다. - 클로에 영애님! - 영애님의 말씀이라면, 어쩔 수 없지요……. 과연 클로에가 나서자마자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이. ……배후에 이 깐프년이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엘프의 긍지와…… 자연 사랑이…… 히끅…….” “지금 입고 있는 옷도 인공적인 거 아닌가? 아예 벗고 사시지 그러십니까?” “그 무슨 엘프 혐오적인 발언……!” 벗어도 볼 것도 없겠지만, 이라는 진짜 클로에 혐오적 발언은 속으로 꾹 삼켰다. “그래서, 왜 불러내신 겁니까?” “저는 진리일보의 이사장인것이와요? 재단장으로서, 간판 작가를 치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이와요?” “사장입니까, 재단장입니까, 이사장입니까. 하나만 고르십시오.” “전부 다 본녀를 지칭하는 말이와요!” 얘랑 말을 섞을 때마다 내가 다 능지가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입만 다물면 꽤 이쁘장하게 생기기도 했고, 놀렸을 때의 타격감도 좋고, 금수저고. 조금 번거롭지만, 이렇게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그래서 용건이? 이래봬도 바쁜 사람입니다, 제가.” “으음, 잠시만 기다려 보는 것이와요. 빵이라도 먹고 있는 것이와요.” 뭐지. 왜 불길한 느낌이 드는 것이지? “이쪽인 것이와요!” 클로에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보인 건. “…….” 기억에 있는 얼굴이었다. 매카시시시에 빙의해서 살인 명부를 만들어 의회에서 떵떵거리던 남자. 그걸로도 쇼맨십이 부족했는지, 결국 국민의 비료를 의사당에 전방위적으로 난사하는 대소동을 벌여서 결국 의원직에서 짤린 남자. 분명 아스테릭인가, 하는 그 의원이었다. “아갸갹!” 나는 힘껏 클로에의 귀를 잡아당겼다. . . . “하하! 그러면 잘 부탁드립니다, 작가님!” “……살펴 가십쇼.” 아스테릭 의원은 폭풍처럼 왔다가 질풍처럼 사라졌다. “흐갹! 그만, 그만하는 것이와요!” 그가 사라지자마자 팔을 쭉 뻗어 클로에의 뾰족한 귀 끄트머리를 만지작거리고 쭈욱 잡아당기면서. 그의 말을 곱씹었다. 원체 쾌활한 성격인지 굉장히 이런저런 부연 설명이 가득 붙었지만, 요약하면. - 너 요즘 뒤에서 말 나와? ……라고 할 수 있었다. 아니, 진짜 억울했다. 내가 뭐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서 설쳐댔으면 몰라, 나는 평화를 사랑하는 방구석 글쟁이일 뿐이다. “으이, 으우, 으에으에──” 애초에 소설 보고 급발진한 것도 아스테릭 의원 본인 아닌가. 암살자를 보낸 베르투스 공작도 그렇고, 도대체 이세계인들의 정치판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단 말인가. 거 살롱에 있는 유사 정사갤러 친구들이나 주워다가 쓰지 않고서, 왜 나한테 계속 와서 깔짝거린단 말인가. “으에에──” “반성했습니까?” “반성, 반성한 것이와요오오……!” 그제야 나는 클로에의 귀를 놔주었다. 빨갛게 달아오른 것이 썩 보기 좋았다. “제가 분명히 저런 잡상인들이랑은 따로 만나고 싶지 않다고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 “으음, 그래도 아버님 부탁이었던 것이와요.” “아버님……?” 베르투스 공작에 이어서 이제는 깐프 공작까지? 갑자기 등골에 은퇴를 윤허받지 못한 황희적인 두려움이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 * * 본디 김율은 모험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렇기에 히스토리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조 에피소드에서 최대한 불호의 영역에 가까운 것들은 쳐내려고 했다. 하지만. 오늘 또 아스테릭이라는 괴물이 그에게 꼬여 든 것이 그의 심경을 크게 변화시켰다. 그 결과. ## ====== ## “으읏, 읏…….” 배덕감과 정복감이 조조의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의 품에는 장수의 숙모이자 장제의 미망인인 추 씨가 안긴 채 달뜬 소리를 빚어내고 있었다. 그의 기벽이 있었다면, 평범한 여인보다 유부녀를 훨씬 더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이미 임자가 있는, 혹은 있었던 여인을 취하는 것은 사내로서 그야말로 더할 나위 없을 정도의 만족감을 주는 행위였으니. 패배한 장수의 하찮은 분노 따위는 그에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영웅본색이라, 영웅이 어찌 미인을 보고 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정복 행위에 계속 집중할 새도 없이, 밖이 점차 소란스러워지는 듯한 느낌에 조조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윽고. “적이다! 적의 기습이다!” 고요를 찢는 다급한 외침이, 순간적으로 조조의 술기운을 날려버렸다. “꺅!” 그는 추 씨를 밀쳐내고서, 갑옷을 대충 꿰어 입고서 검을 집어 든 채 장막을 나섰다. 그 앞에 펼쳐진 것은 아비규환의 지옥도. 어느새 사방에는 불길이 치솟고 있었고, 장수의 병사들이 자신의 친위대를 닥치는 대로 베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제야 조조는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다. “주공! 이쪽입니다!” 강철과도 같은 묵직한 목소리에, 조조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채 고개를 돌렸다. “악래!” 전위는 벌써 족히 수십 명의 병사를 홀로 주살한 듯,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채였다. . . . “아버님, 여기에──!” 아들, 조앙이 내민 말고삐를 조조는 차마 바로 잡아채지 못했다. 하지만. “아버님, 달리십시오. 달리셔야 합니다.” 조앙은 그런 조조의 손을 잡아, 고삐를 쥐여준 채. “내가 바로 조조의 아들, 조앙이다!” 용감하게도, 부나방처럼, 그들을 추격하는 자들을 가로막고 섰다. 조조는 차마 그 광경을 끝까지 지켜볼 수 없었다. ## ====== ## 쓰면서도 ‘와, 이게 고증에 맞다고?’ 싶을 정도의 뜨끈한 유부녀 사랑을 담아냈던 김율이었다. 주인공의 인간적인 면모를 최대한 부각함으로써 너무 현재의 정치 상황과 엮이지 않으려는 시도 자체는 좋았다. 하지만, 그가 간과한 것이 있다면. “이거, 아무리 봐도…….” “그렇지?” “귀족 중에서 유부녀 사랑꾼은 아무래도 그 공작밖에 없지.” “허어, 이렇게 노골적으로 담아내도 되는 건가?” 공교롭게도 제국에는 불륜 전문가로 손꼽히는 사람이 있었으니. “……이 씹새끼가?” 불륜 스캔들 5회라는 경이로운 업적을 달성하고도 귀족 작위를 유지하는 희대의 절륜남, 베르투스 공작을 제대로 긁어버렸다는 것이었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흐하하하! 걸작, 걸작이로다! 나중에 공작 앞에서 읽어주고 싶을 정도야!” 황제는 좋아요 추천 리트윗 퍼가요를 눌렀다. “역시 아스테릭 의원!” “하하, 제 진심이 통한 탓입니다.” “이런 식으로 공격하다니, 과연 글밥 먹은 친구들은 달라도 뭐가 다르군.” “이렇게 정면에서 도덕적 흠결을 공격할 줄이야!” 황제의 리트윗에, 친황제파 친구들도 ‘이거 주작 아님 제가 개추 5번 누름’을 외치면서 그 행렬에 동참했다. 그리고. “……하아?” 순애도 하렘도 하렘순애도 중혼도 모두 용납할 수 있었지만, NTR만큼은 용납하지 못하는 성녀께서는. 언해피를 띄우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