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시작도 전부터 펼쳐진 대규모 마케팅 덕분일까. 김율이 야심 차게 이세계에 풀어놓은 삼국지, 두 작품을 묶어서 공식 명칭 ‘두 영웅’은 연재 초반부터 가파르게 흥행 돌풍이 불기 시작했다. 특히. “어이, 거기 천박한 드워프?” “흠?” “이 몸과 의형제를 맺을 영광을 주겠다.” “좆이나 까잡솨.” 굳이 김율이 작가의 말로 언급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와 세계를 초월한 문학적 유전자가 공유된 탓일까. ‘복숭아 형제들’이라는 별명이 붙어버린 유관장 트리오의 종족 화합적 무브먼트가 소위 박애주의자들의 가슴에 불을 지핀 탓이었다. 물론, 그 어떤 드워프도 깐프와 의형제를 맺어주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위스페라우드 가문의 클로에 영애가 계획한 ‘복숭아 세계수’는 어느덧 도시의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오호호홋! 장사가 아주 잘되는 것이와요!” 기묘하게도 복숭아 세계수와 가까운 곳에 있는, 소유주가 불분명한 카페에는 돈벼락이 쏟아졌다. 신문사에 들어가는 돈은 아빠 돈. 카페로 벌어들이는 돈은 자기 돈이라는 측면에서. 클로에 영애의 깐프적 사업 감각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 . . 깐프들의 반응은 고작해야 그 정도였지만. 정작 연재가 거듭될수록, 인간들 사이에서 점차 ‘두 영웅’이 진지하게 향유되기 시작했다. “부정부패로 망해가는 제국이라…… 확실히, 그 똥물 사건을 미루어보더라도 율리시스라는 작가는 정치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군.” 지금은 탄핵당해 야인으로 돌아간 채. 그 후유증으로 얼굴이 누렇게 뜨는 오렌지 병을 앓고 있는 아스테릭 의원이 폭로를 결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던가. 비록 독재자로 전락해버리긴 했지만, 젊은 카이사르의 영웅적 행보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니었던가. 그렇기에 사람들은, 특히 정치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두 영웅’은 필독 도서로 자리매김했다. 당연하게도 살롱에서는 이와 관련한 진지한 토론이 이어지기 마련. “제국을 좌지우지하는 십상시란 존재들…… 아무리 봐도 고위 귀족 가문들을 겨냥한 것 같단 말이지.” “그렇다고 보기에는 황건적의 존재가 좀 애매하지 않소? 아무리 봐도 흑마법사와 사교도들을 암시하는 것 같은데.” “일리가 있군. 주술을 부리는 신묘한 지도자라…… 그 사교도들이 벌인 행적을 미루어보면 그것도 타당한 해석이군.” “흑마법사들도 결국 제국의 체제를 무너트리기 위해 활동하는 거니까, 흐음, 이건 좀 논란이 있겠어.” 김율이 들었다면 ‘우냐냣! 좌냐냣!’ 외치면서 정치적 탕평을 선언하느라 몹시 고단한 시간을 보냈겠지만. 애석하게도 최근 김율은 글 쓰는 것만 해도 바빠서 제국 수도의 살롱에 발걸음을 들이밀지 못했으니. 의도치 않게 김율, 정확하게는 율리시스라는 필명을 가진 작가는 제국 정치계의 떠오르는 돌풍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물론. 정치와 같은 묵직한 토픽을 다루는 사람들은 실질적으로 살롱에서도 한줌단. 대부분은……. “그래서 관우랑 장비랑 싸우면 누가 이김?” “유비랑 1:2로 싸워도 유비가 다 쓸어버릴 것 같은데.” “솔직히, 뭐, 유비, 그거 출신도 촌놈 아닌가.” “취소해라…… 방금 그 말……!” “근데 조조가 악당이 맞나? 아닌 것 같은데?” “지금까지 보여준 면모로 보면, 흠, 글쎄. 애초에 당장 유비도 혈통을 안 숨기지 않았나.” “근데 15대손? 17대손? 그 정도면 애초에 황실의 피가 섞였다고 불러주기도 민망하지 않나?” 인물을 중심으로 한 갈드컵을 향유하고 있었다. 특히 초반부의 전개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두 인물을 완전히 대비시키는 식으로 풀어나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기도위로서 관군을 이끌고, 탁월한 통솔력과 카리스마를 발휘하여 영천에서 황건적의 잔당을 토벌한 조조. 의형제들과 함께 자신의 가산을 헐어서 의용군을 창설하고 스스로 전장에 뛰어든 유비. 한쪽은 누가 봐도 명백한 엘리트 코스. 한쪽은 밑바닥부터 출발하는 잡초 코스. 군율로써 다스리느냐. 인덕으로써 다스리느냐. 물론……. “상인이 미쳤다고 손해를 보고 말을 다 넘겨줘? 이건 아무리 소설이라도 말이 안 되지!” “어리석군. 자네라면 쌍검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하이엘프가 나타나서 팔아달라고 했을 때, 쫄지 않을 자신이 있나?” “그, 그런 건가……?” 김율이 아무 생각 없이 ‘유비는 연의! 과장 팍팍 쳐서!’라는 마인드로 글쓰기에 임한 나머지. 장세평과 소쌍은 이세계에서도 유비에게 삥 뜯기는, 심지어 한술 더 떠서 하이엘프에게 압도당한 말 상인들로 전락하고야 말았다. 정사에서는 유비 코인의 저점 매수자로 조금 더 개연성 있게 표현되었지만, 소설에서 등장하는 엑스트라에게 서술 비중을 할애할 수 없다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김율이었고. 깐프로 조형된 나머지, 피할 수 없는 억까라는 숙명을 타고난 유비였다. . . . 그렇게 한동안. 인기 투표를 하면 조조가 더블 스코어로 이길 정도로 압도적인 인기를 끌었다. 지금까지 유비가 보여준 건 그저 귀가 큰 착해빠진 하이엘프의 이미지였지만. 조조는 권력의 핵심에서 미묘하게 벗어난 아웃사이더의 위치에서 정치극의 서술자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기 때문. 심지어 동군 태수로 임명되는 것을 마다하고 낙향하여 자신만의 세력을 일구는 모습도. 궁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여러 음모에서 발을 살짝 걸친 채, 관망자이자 모략가의 모습을 보여준 것도 매우 호평받았다. 연의처럼 극적으로 동탁 암살에 실패한 후 빤스런을 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또 다른 폭군의 징조가 보이는 동탁을 피해 달아난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 내가 남을 저버릴지언정 남이 나를 저버리게 하지는 않겠다! “…….” “……어?” “흠…….” “와, 이건 좀.” 드디어 제목값을 시작한 조조의 돌발행동. 여백사 사건으로 인해. 끝도 없이 상한가를 치던 조조 코인의 성장세가 다소 둔화되었다. * * * “후우.” 소재를…… 잘못 잡았나……? 카이사르의 이야기를 쓸 때도 느껴본 적 없었던 중압감이, 최근 어깨를 강하게 짓누르는 기분이 들었다. 막연하게 정사와 연의를 크로스오버해서 적당히 단물 좀 빼먹겠다고 생각했지만. 원래 소설이란 한 편 한 편 도파민이 팡팡 터지게끔 조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대목. 게다가 동시 연재하고 있으니, 시간대에 왜곡이나 서술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생기는 것도 지양해야 했다. 바로 그 지점에서, 황건적의 난과 더불어서 십상시 숙청까지의 흐름은 오히려 서술하기 쉬웠다. 조조는 소용돌이의 한복판에 내던져져 있었고. 유비는 그냥 대충 뽈뽈 돌아다니면서 선행을 베풀면서 때로 뭐 각색 좀 덧대서 황건적 잔당에게 납치당한 아가씨 구해주고 살짝 로맨스 각만 재고. 뭐 그런 식으로 페이크 히로인 넣는 식으로 어그로를 끌면 되었으니까. 그러나. 어찌 보면 삼국지연의의 백미. 모든 군웅이 한 곳에 모여서 역적 동탁을 처벌하고자 의기를 드높이는, 반동탁연합. ……이거, 정사가 너무 좀 애매했다. 연의는 진짜 무슨 삼황오제, 제국 7대 소드마스터와 같은 느낌으로다가 깔쌈하게 18로 제후라는 멋들어진 수식어가 달라붙었으나. 정사에는 그런 거 없다. 호로관 메뚜기가 대륙 최강의 듀얼 소드마스터 유비에게 쫄아서 도망간 것 또한 연의의 삼영전여포에만 나오는 내용이다. ……그거 빼면. 재미가 있나? 아니, 솔직히 재미없을 것 같은데……? 애초에 유비조차 정사 삼국지에서는 참전 여부가 불투명하다. 그나마 왕찬의 영웅기 정도에서나, 그것도 심지어 조조랑 함께 참전했다는 서술이 남아있을 뿐. 그것도 각색을 잘만 하면 정말 매력적으로 풀어낼 수 있겠지만……. 그러면 너무 많은 이야기의 골자가 한 번에 뒤바뀌니, 그럴 수도 없었다. “그러면, 아예 조조 파트를 설명에 다 때려 박고, 유비 파트에서 장면을 묘사하면 안 됩니까?” “각기 다른 소설인데 그건 좀 그렇지 않나?” 히스토리에가 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차피 읽는 사람들은 그거 구분 안 할 텐데요. 에스테아도 2연참씩 해준다고 흡족해하고 있고요.” “……그런가?” 상태창을 열어서 확인해보니. “……그러네?” 조금은 차이가 날 줄 알았는데. 일일 독자 수는 거의 비슷했다. 그렇다면……. * * * “으흥흥, 아냥냥──” 심기편안단에 합류한 에스테아는 오늘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새벽부터 제국 수도를 싸돌아다녔다. 레어에서 손을 까닥하는 것만으로 하수인들이 대령해주는 삶도 물론 좋았지만. “오늘 자 신문! 싹 다 가져와!” “어유, 꼬마 아가씨가 기특하기도 하지.” 히스토리에가 말아주는 고봉밥 세례에 너무 길들여진 나머지. 이제는 그냥 장르 구분조차 없이 모든 사료를 와구와구 퍼먹으면서 아주 행복한 누렁이 라이프를 즐기고 있었다. 물론. 의견을 전개하는 것 또한 인색함이 없었던 터라, 그 사이에 초보 작가 세 명을 절필시키는 사소한 사건도 있었지만. 기나긴 용생에 있어 망생이 셋 정도가 펜을 꺾는 일쯤이야 에스테아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뭐어? 연재 중단? 거짓말!” 심지어 본인에게는 본인이 피력한 독자 의견이, 작가의 가슴을 찌르는 비수가 되었다는 것에 대한 자각조차 없었다. 악질 중의 악질이라 할 수 있었다. “어유, 꼬마 아가씨가 힘이 세기도 하지.” “고맙노라!” 미천한 인간의 칭찬 또한 귀담아듣는, 올바른 드래곤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후. 에스테아는 히히 웃음을 숨기지도 않은 채 뽀짝뽀짝 걸어가 공원 벤치에 앉았다. 그녀가 가장 먼저 펼쳐 든 것은 당연하게도 진리일보였다. 파라랑── 딱히 궁금하지도 않은 미천한 인간들의 정치 이야기는 사뿐히 다 날려버리고, 바로 ‘두 영웅’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다. 먼저, 순서상 앞부분에 배치된 ‘두 영웅: 악당이 야망을 숨김’. 하지만. 오늘따라 사료의 질이 좋지 않았다. 도파민 넘치는 전개는 어디에 갖다버리고, 동탁이라는 나쁜 놈을 때려잡을 계획만 주야장천 세우고 있단 말인가. 이건 사기다! 분량 날먹이다! 우! 우우우! “아르릉.” 불만과 브레스를 입 안에 살짝 휘감은 채, 눈살을 찌푸리며 에스테아는 다음 장으로 넘겨 ‘두 영웅: 황족이 혈통을 숨김’을 읽기 시작했다. “아니, 얘는 다른 집 주인공인데 왜 여기서 자꾸 나와?” 이상하게 ‘악야숨’에는 유비에 관한 서술이 거의 없는 반면, ‘황혈숨’에는 더블 주인공이라도 되는 듯 조조가 자꾸 튀어나와 교통정리를 했다. 뭐, 연참분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할 만했다. 같은 장면을 다른 관점으로 서술하는 것이야말로 분량 늘리기의 극의니까. 그리고. “으와아──!”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 이야기를 완독한 에스테아는, 주변의 시선에도 신경쓰지 않고서 만족스러운 환호성을 터트렸다. - 이 술잔이 식기 전에 돌아오겠소. 그녀의 드래곤 하트에. 관우 뽕이 차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