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했어요.” “아, 감사합니다. 여기 카드.” 택시 기사가 카드를 받고 비용을 결제했다. 이안은 그에게 카드를 돌려받고 택시에서 내렸다. “……후우.” 시야에 보이는 것은 울창한 나무다. 경기도 외곽에 있는 이름 없는 산의 한 중턱. 도로가 닦여 있어서 택시가 올 수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험한 길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관리되지 않는 뒷산. 아직 해가 떠 있기는 하나, 음산한 분위기가 사방에 가득했다. 드문드문 산에 머무르는 원혼들의 시선이 느껴지고, 해가 들지 않는 곳에 검은색 형체가 떡하니 서 있다. ‘환영 인사가 너무 화려하네.’ 이안은 쓴웃음을 지으며 담배 하나를 입에 물었다. 뒷산과 관련된 괴담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다. 일반인이 이런 곳에 와도 원한을 지닌 악령에 씌기 쉬운데, 하물며 마법사라면 신비가 얼마나 좋다고 달려들겠는가. 다행히 대부분은 잡귀였고, 형체만 있는 정체불명의 무언가도 그리 강하지는 않아서 처리하는 게 어렵지는 않을 것 같았다. 가장 좋은 일은 그런 상황이 생기지 않는 거지만, 갑자기 달려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뭐, 괴이로 만든 소재가 슬슬 떨어져 가는 중이라 보충할 때가 되기는 했다. 원래는 테마파크 안에서 좀 챙겨갈 생각이었는데, 저쪽에서 먼저 자신을 써달라고 달려오면 마다하지는 않을 것이다. “…….” 시답잖은 생각을 그만두고, 근처 돌에 앉아 티켓을 꺼냈다. 티켓에 적힌 테마파크의 주소는 정확히 이안이 있는 산의 중턱. 끊어진 도로 너머였다. 앞으로 몇 걸음만 옮기면 바로 입구다. 육안으로 보이는 출입구는 아무것도 없지만, 애초에 테마파크 자체도 이 산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거대한 구조물들이 이 거리에서 보이지 않을 리가 없다. 그러니 티켓에 명시된 ‘입구’는, 사실상 통로라고 여기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테마파크와 현실을 잇는 통로. 아마 티켓을 지닌 사람이 입구를 지나가는 순간, 테마파크로 전이되는 구조일 터. ‘들어간 이상, 마음대로 나오는 건 불가능할 거야. 그게 가능했으면 일주일 후에 강제로 끌고 가는 짓도 하지 않았겠지.’ 테마파크가 정확히 무슨 의도를 가지고, 무엇을 위해 사람들을 데려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알아낼 이유도 없었다. 그건 관리국에서 할 일이지, 이안 같은 마법사가 할 일이 아니었다. 그에게 중요한 건 카르텔의 의뢰 목표인 관리자의 심장이다. 생존자들을 구할 수 있다면 구하겠지만, 그러지 못하거나 그랬을 때 상황이 나빠진다면 과감하게 포기할 생각이었다. 어쨌든 이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목숨이었다. 생각하는 사이, 내리막길에서 누군가 헥헥거리며 올라왔다. 이안은 반사적으로 코트 안쪽, 리볼버에 손을 올리며 불청객을 응시했다. “기, 길이…… 헤엑, 왜 이렇게 험한 거야아아…… 흐엑…….” 옅은 갈색 머리카락에 검은색 눈동자가 인상적인 여자였다. 그녀는 숨을 헐떡이고 다리를 후들후들 떨면서 길을 올라오다가, 돌 위에 앉아 있는 이안을 확인하고 움직임을 덜컥 멈췄다. “아, 아앗…….” 그녀의 뺨이 순식간에 달아오르고 눈동자가 애처롭게 떨렸다. 부들부들 진동하는 입꼬리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티가 대놓고 났고, 눈은 똑바로 응시하지도 못했다. 좋게 말해서 부끄러움이 많은 모습이었다. 이안은 리볼버의 해머를 살짝 당기고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히, 히익……!” 그 자그마한 움직임만으로 그녀가 몸을 움찔 떨었다. 겁 많은 햄스터 같은 모습이었지만, 이안은 긴장을 풀지 않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누구십니까?” “아, 안녕하세요오…… 저, 그, 그게, 저기이이…… 여, 여기서 어떤 남자랑 만나기로 했는데요오오…….” 그녀가 말끝을 염소처럼 떨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녀의 등 뒤에 자리 잡은 거대한 기타 케이스가 그녀의 떨림에 맞춰 덜덜 흔들렸다. 이안은 그녀의 말을 곱씹으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입을 열었다. “……딸기요거트스무디?” “아앗!” 그녀의 눈동자가 번쩍 뜨였다. “뉴, 뉴비야아아……?” 살짝 밝아진 그녀의 목소리에 이안이 리볼버를 손에서 풀고 눈을 질끈 감았다. 아니길 바랐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 커뮤니티 닉네임, 딸기요거트스무디. 본명, 한유나. 그녀는 이안과 살짝 거리를 벌리고 앉은 채, 티켓을 손에 쥐고 꼼지락거렸다. 어딜 어떻게 보아도 마법사다운 모습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낯선 사람을 눈앞에 두고 긴장한 것에 더욱 가까웠다. ‘커뮤니티에서 쓰던 말투는 다 컨셉이었군…….’ 뭐 안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이안은 속으로 한숨을 삼키고, 유나를 향해 담배 한 개비를 내밀었다. “피울래?” “아, 아앗. 나 비흡연자라…….” “알고 있어. 그냥 농담한 거야.” “아! 미, 미안! 못 바, 받아줘서어어…….” 미치겠군. 이안은 담배를 도로 품속에 갈무리하고 몸을 일으켰다. 그를 따라 유나도 천천히 일어났다. 오르막길을 직접 다리로 올라온 탓인지 그녀의 허벅지 근육이 달달 떨려왔다. 2km는 거뜬히 뛴다고 하더니. 그것도 개소리였나 보다. 하지만 우스운 겉모습과 달리, 마법사로서의 역량은 뛰어날 가능성이 높았다. 저런 성격, 저런 신체 능력을 지녔음에도 빼지 않고 테마파크 행을 결정했다. 분명 믿을 만한 구석이 있다는 뜻이겠지. 게다가 누가 뭐라고 해도, 유나는 이안보다 훨씬 오래 이쪽 업계에서 지내온 베테랑이다. 그녀가 발목을 잡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업혀 간다는 뜻은 아니었다. 이안도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슬슬 들어가자. 아니면 준비가 더 필요한가?” 이안이 물었다. 유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기타 케이스의 끈을 손으로 잡았다. “아, 아니! 들어가도 돼!” “그럼 가자.” 이안이 한 손에는 티켓을, 다른 한 손에는 마도서를 쥔 채 앞장서서 걸었다. 유나가 케이스의 무게에 잠깐 휘청거렸다가 그를 따라 움직였다. 끊어진 도로를 기점으로 천천히 걸음을 내디딘다. 한 걸음. 아무런 변화도 없다. 두 걸음. 어디선가 폭죽 소리가 들려왔다. 하늘은 멀쩡했다. 세 걸음. 악단의 노랫소리와 악기 소리, 그리고 아이들의 웃는 소리가 희미하게 울려 퍼졌다. 주변에 그런 소리를 낼 만한 생물은 없었다. 이윽고 네 걸음. “……!” 내딛는 순간, 풍경이 순식간에 뒤바꼈다. 푸른 하늘이 붉은색으로 물든다. 구름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거대한 광대 풍선이 날아다니고, 아무것도 없던 전방에 직원들이 서 있는 출입구가 나타났다. “자, 우리 어린 친구! 여기 풍선 받아요!” 출입구의 옆, 팔이 있어야 할 자리에 풍선 묶음을 주렁주렁 매단 광대가 바닥을 기어다니는 사람 머리를 지닌 벌레에게 풍선을 건네준다. “와, 고맙습니다, 아저씨!” 뿌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팔에서 뽑혀 나온 풍선을 벌레가 입에 물고 기어간다. 놈이 움직이는 대로 바닥에 붉은색 핏물이 이어졌다. “……지옥이 따로 없네.” 정상적인 곳이 아닐 거란 예상은 했지만, 설마 입구에서부터 저런 놈들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우, 우와아아……진짜 되게 여, 역겨운 곳이네…….” 이안을 따라 들어온 유나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안도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역겹다니요?” 그 순간, 출입구에 서 있던 직원 세 마리가 동시에 고개를 홱 돌렸다. ‘명’이 아니라 마리가 맞았다. 직원은 인간이 아니었다. 몸뚱이는 인간의 것과 똑같았으나, 머리가 짐승의 것이었다. 가면이 아니라, 진짜 대가리를 강제로 기워 붙인 듯이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실밥이 풀린 곳에서 피가 주르륵 쏟아져 내리고, 살점이 덜렁거린다. 그중 가장 상태가 안 좋은 토끼 머리가 비틀비틀 걸어와 유나의 앞에 섰다. “당신, 역겹다는 게 정말인가요? 정말인가요? 정말인가요?” “……으엑. 못생겼어…….” 유나가 불쾌감에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휘저었다. 하지만 굳이 지금 위치에서 소란을 피울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고, 토끼를 향해 티켓을 내밀었다. “입장할 거야. 손님이나 받아.” “앗, 손님이셨군요! 죄송합니다, 저는 불청객인 줄 알았어요!” 토끼는 티켓을 확인하는 즉시, 허리를 숙이며 우아하게 인사를 건넸다. 놈의 목소리는 남녀의 분간이 되지 않았고, 마치 오래된 녹음 장치를 튼 것처럼 잡음이 잔뜩 끼어 있었다. 듣고 있으면 두통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아니, 착각이 아니군.’ 그런 것 같은 게 아니라, 실제로 두통이 일어났다. 아마 놈의 목소리 그 자체에 특별한 정신 조작 능력이 있는 거겠지. 계속 듣고 있어봤자 이로운 건 없었다. 이안은 유나의 옆에 서서, 자신의 티켓도 내밀었다. “입장하겠다. 문제는 없겠지?” “네! 즐거운 매직 에덴! 꿈과 희망, 피와 살점! 비명이 살아 숨 쉬는 매력적인 테마파크에 오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토끼가 과장된 몸짓으로 두 사람의 주변을 껑충껑충 뛰어다녔다. 이안은 놈을 무시하고, 게이트를 넘어 테마파크 안쪽으로 들어갔다. 유나가 징그럽다는 눈으로 괴이들을 응시하며 그를 따라 움직였다. “테마파크 안내 책자는 꼭 챙겨주세요! 챙기지 않았을 때의 불이익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테마파크에 본격적으로 진입하는 에스컬레이터 옆, 책자들이 꽂힌 선반 위에 꽂힌 사람 머리가 입을 벌리고 소리쳤다. 이안은 놈을 잠깐 응시하다가, 책자를 들고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탔다. 유나도 마찬가지였다. “되, 되게 징그러운 곳이네…… 예상은 했지만…….” “괴이를 대할 때는 말을 더듬거나 떨지 않네?” 이안이 책자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말했다. 유나는 당연하다는 듯,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머, 멍청한 놈들이니까…… 굳이 긴장할 이유가 없어서…….” “사람은 좀 거북한 건가?” “으, 으응…… 내가 낯을 많이 가리기도 하고, 여태까지 친구를 사귄 적도 없거든…… 에, 에헤헤…….” 그녀가 무안하게 웃었다. 이안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인 뒤, 책자를 펼쳐보았다. [매직 에덴의 규칙서!] 책자의 가장 위에는 그런 글자가 적혀 있었다. 내용을 확인했다. [1. 절대 직원들의 명령을 거스르지 마십시오. 통제에는 따라 주시길 바랍니다!] [2. 각 어트랙션에는 고유한 미션과 규칙이 있습니다! 이를 따르지 않았을 경우 발생하는 불이익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3. 진상은 허락하지 않습니다!] [4. 다른 손님과 트러블이 발생할 경우 화해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저희 측 교화팀이 나설 것입니다!] [5. 테마파크를 제작하는 데 소모된 돈과 노력을 기리기 위해, 최소 3가지 어트랙션을 체험하기 전까지는 테마파크를 떠날 수 없습니다!] [6. 부디 매직 에덴을 즐겁게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비판이나 비난은 안 돼요!] “나, 나폴리탄 괴담 같은 내용이네…….” 규칙을 확인한 유나가 침음성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따르는 게 좋겠지?” “으응…… 보통 이런 건 거스르는 순간 귀찮은 일이 생기거든…….” 그녀가 책자를 덮으며 대답했다. 이안도 책자를 접어 주머니에 넣고, 도착한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렸다. 그와 동시에 펼쳐지는 풍경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와아, 난다! 난다!!” 케이블카를 위해 마련된 줄 위를 맨몸으로 달리며 추락하는 인간들. 살아있는 인간을 표적 삼아 이루어지는 다트. 그리고 사격. 사람의 머리를 풍선처럼 쥐고 다니며 해맑게 웃는 어린아이. 그 외의 상식을 초월한 가지각색의 악의적인 어트랙션과 노점까지. “으, 으엑…….” 사방에서 진동하는 피와 역겨운 냄새에 유나가 손가락으로 코를 막았다. 이안은 헛웃음을 치며 하늘을 떠다니는 광대 구름을 응시했다. ……아무래도 쉬운 의뢰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