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해의 주인이 물러난 후에도 피그말리온은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벌벌 떨기만 했다. 20분이라는 안전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음에도 그랬다. 제대로 된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모습. 결국 이안은, 그를 뒤로하고 혼자 격리실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 단말기를 조작하자 지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격리실의 문이 옆으로 열렸다. 그와 동시에 새하얀 손이 사각지대에서 우악스럽게 뻗어와 이안의 손목을 낚아챘다. 김이서였다. 반응할 틈도 없이 이안이 그녀의 손길을 따라 끌려갔다. 알싸한 통증이 손목 끝에서부터 올라오고, 그의 시야에 김이서의 얼굴이 가득 들어온다. “…….” 예상한 것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 이안이 몸을 움찔 떨었다. 하지만 김이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전신을 위에서 아래로 한 차례 훑었다. “……후우.” 그렇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한 후,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잡고 있던 손목을 풀었다. “……괜찮으십니까?” “……손목이 부서질 것 같은 거 말고는 멀쩡한데.” 코트 소매로 가려져 있던 손목 위로 김이서의 자그마한 손자국이 그대로 새겨져 있다. 주홍색보다 훨씬 더 붉은 빛의 자국. 아무래도 이 형태 그대로 멍이 들 것만 같았다. 욱신거리는 통증도 제법 심했다. 그녀가 얼마나 강하게 힘을 줬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아무리 관리국 요원들이 스펙이 기본적으로 높다고 한들, 평범한 성인 여성이 낼 수 있는 악력은 아니었다. 무슨 슈퍼 솔져 혈청이라도 맞은 건지, 아주 그냥 괴물이 따로 없었다. ‘부서진 건 아니겠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물러보았지만, 딱히 그 욱신거림 이상의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관절도 잘 돌아갔다. 다행히 골절은커녕 금이 가지도, 염좌가 생기지도 않은 모양이다. 그나마 다행인 소식이었다. 이안은 한숨을 푹 내쉬며 김이서를 돌아보았다. “갑자기 뭐야?” “……죄송합니다. 안전 시간을 넘겼음에도 밖으로 나오지 않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어가려 한 참이었습니다.” 김이서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갑자기 창문이 검은색으로 뒤덮이며 경고음과 함께 시야가 차단된 터라 내부 상황을 살피는 게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일단 구출이라도 하려고 문을 열려 했는데, 때마침 마법사님께서 나오셨습니다.” “…….” “어떤 위급 상황인지 모르기에 바로 당겼습니다만, 아무래도 제 오판이었던 모양입니다. 죄송합니다.” “…….” 이안은 바로 대답하는 대신, 잠깐 머리를 굴렸다. 아무래도 외신의 파편이 잠깐 등장했다는 건 관리국도 알아차리지 못한 모양이다. 외해의 주인이 곤란한 상황이 나오지 않도록 상황을 조율한 것 같은데. 이런 편의를 봐줄 거면 그냥 나오지 않는 게 더 나았던 것 아닐까 싶다. “……하아.” 이안은 한숨을 푹 내쉬고 김이서를 돌아보았다. 손목이 좀 욱신거리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녀를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원인 제공을 먼저 하기도 했고, 어떠한 해를 끼치기 위함이 아니라 살리기 위해서 힘을 사용한 것이니 뭐라 할 이유도 없었다. 아무리 마법사라고 한들, 자신을 구하려고 한 사람에게 호통을 치거나 짜증을 내는 건 안 될 일이다. 평범한 마법사라면 또 모르겠지만, 이안은 스스로를 제법 훌륭한 인품을 지닌 마법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니 지금 상황에서 굳이 화를 낼 필요는 없었다. 대신 손목을 문지르며 발끝을 돌렸다. “계속 가기나 하자.” “알겠습니다. 의무실은…….” “갈 필요 없어. 나중에 따로 치료할 거다.” “확인했습니다.” 김이서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 이안의 바로 옆에 딱 붙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안이 그녀와 같이 걸으며 피그말리온의 격리실 창문을 응시했다. 검은색 진액 같은 것들이 눌어붙은 듯한 창문. 다행히 특이한 기운 같은 건 느껴지지 않지만, 마냥 쉽게 지울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아무리 파편이라고 한들 외신은 외신. 그 일부분의 소환과 함께 나타난 찌꺼기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자리를 지키는 중이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저절로 소멸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그 시기가 지금은 아닐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걸릴지도 모른다. 뭐가 됐든, 이안이 신경 쓸 사안은 아니었다. 관리국에도 딱히 해가 되지는 않을 테니 크게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시야를 차단한 덕분에 외신의 마도서라는 걸 숨겼으니, 오히려 이득이라고 보는 게 맞는 일이겠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결과는 좋으니 됐다. 이안은 그렇게 생각하며 김이서와 함께 2구역으로 내려갔다. 2구역에는 본격적으로 생물형 괴이가 몇 마리 포진되어 있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산타의 엘프’였다. 자그마한 몸집. 멜빵. 로빈 후드의 모자와 기다린 귀 등. 전형적인 동화 속에 등장하는 산타의 부하들이었다. 일반적인 엘프와 생김새가 다른 이유는 아마 그들의 기원이 동화에 있기 때문일 터. “이건 저쪽에 넣어! 이건 여기. 이브! 포장 도와줘!” “응! 에헤헤, 오늘도 산타 할아버지를 도와서 선물을 만들어야지!” 그들의 대화 자체는 상당히 건전했다. 그들의 손이 핏빛으로 물들어 있고, 포장하는 것들이 인간의 장기나 사지라는 것만 빼면 그러했다. 김이서의 설명에 따르면 그들이 포장하는 신체 기관은 인간의 것과 형태가 유사하지만, 인간과 맞지는 않는다고 한다. 이식하면 그들과 같은 동족으로 변해버린다나. 바이러스와 별반 다르지 않은 놈들이었다. 어디서 어떻게 시체와 장기들을 가져오는지는 관리국 요원들도 모른단다. 두꺼운 격리실에 가두고, 아무것도 주지 않았음에도 그들은 다음날 시체를 주물주물 포장해 댄다고 한다. 말 그대로 신비로운 놈들이었다. 그들의 상위 개체 급인 ‘산타’는 4구역에 격리되어 있다고 하는데, 산타는 워낙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괴담이나 동화가 많아서 바리에이션도 굉장히 많았다. 4구역에 격리되어 있는 산타는 그중 우는 아이들의 뇌를 빨아먹는 산타였다. 기괴하기 짝이 없는 놈이었다. 생긴 것도 모기를 닮았다고 해서,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2구역을 넘어 도달한 3구역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2구역과 정반대로 도구형 신비는 거의 없고. 생물형 신비만 바글거리는 공간. 위험한 놈들이 몇몇 있기는 했지만, 격리실을 부수고 튀어나올 정도로 체급이 강한 신비는 존재하지 않았다. 관리가 까다로운 괴이들이 몇 마리 있다는 설명은 들었다만, 그건 격리팀에게 안 좋은 소식이지 이안이 신경 쓸 사안은 아니었다. 나중에 격리 구역에 대규모 탈출 사건이라도 발생하지 않는 이상 2번 다시 여기 발을 들일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3구역까지 탐사를 끝낸 후, 두 사람은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서 지하 철도로 내려갔다. 이번에는 그리 복잡한 조작 없이 한 번만 눌러서 이동했다. “관리국 지하 철도는 대한민국 전역을 빠르게 돌아다니기 위해 만들어진 길입니다.” 띵. 도착한 엘리베이터 너머로 발을 내밀며 김이서가 말했다. 이안이 그녀의 분홍색 머리카락을 보며 따라 걸었다. “기본적으로 모든 관리국 지부와 연결이 되어 있고, 몇몇 주요 시설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원리는 신비의 추출물입니다.” “……추출물?” “예. 거울을 타고 이동하는 괴이가 한 마리 있는데, 그놈의 머리를 부수면 뇌수와 같이 유리 파편들이 떨어집니다. 그걸 조립해서 투명한 유리막을 만들면, 부수면서 이동할 때 다른 막이 있는 것으로 전이하는 게 가능합니다.” “……그런 걸 어떻게 알아낸 건지가 더 궁금하군.” “피그말리온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가 만드는 조각상은 실제 인간과 별반 차이가 없으니까요. 실험에 사용하기 좋습니다.” “…….” 조각상들을 실험 대상으로 밀어 넣었다는 뜻인가. 신비를 연구하고 활용 및 척살한다는 그들의 의념이 대충 어떤 방향인지 감이 잡힐 것 같았다. 무작정 체급으로 찍어 누르려 하는 바티칸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 결론은 같을지 몰라도, 그 과정은 교집합 따위 없었다. 필요할 때마다 협력하는 걸 보면 사이가 마냥 나쁜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럼에도 동맹이라 부리기엔 애매할 듯싶었다. 당장 체칠리아의 태도만 떠올려 봐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철도 위를 달리는 열차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역에는 거대한 유리막이 하나씩 설치되어 있으며, 부수고 통과하면 다른 역으로 이동합니다. 다만 지금은 운행하는 열차가 없습니다.” “흐음…… 열차는 아무 때나 사용할 수 있는 건가?” “아닙니다. 긴급 상황이거나 지원 요청이 들어올 때만 이용할 수 있습니다. 유리도 소모품이니까요. 제작에 시간이 제법 걸리는 만큼, 남용할 수는 없습니다.” “얼마나 걸리길래.” “하나당 반년 정도입니다.” 개당 반년이라. 제법 긴 시간이었다. 그래도 만들지 못하는 것보다야 나았다. 이안은 김이서와 함께 역을 빠져나오며 물었다. “그 신비는 자기 머리가 부서지도록 가만히 놔두나?” “아닙니다. 매번 발작합니다. 제압하지 않으면 위험하죠. 하지만 가치가 있기에 인력을 계속 투입하는 편입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는 뜻이다. 효과를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가기에,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하 철도 다음에는 관리국의 전체적인 시설을 안내받았다. 업무 환경이 굉장히 까다로워서 그런지, 관리국의 편의 시설은 어지간한 대기업보다 훨씬 뛰어났다. 회사 건물 내부에 있을 건 전부 다 있었다. “이걸로 마지막이군요. 카페입니다.” 모든 시설을 둘러본 뒤, 이안과 김이서는 1층에 마련된 카페에 앉아 각자 주문한 음료를 홀짝였다. 이안은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창밖으로 보이는 도심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해가 저물기 직전인 하늘. 노을빛이 창문을 비스듬히 통과하여 그가 앉아 있는 자리를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풍겨오는 커피 향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관리국 요원들의 목소리가 이곳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이란 생각이 들도록 만든다. “어떠셨습니까.” 가만히 창밖을 응시하고 있자 김이서가 슬쩍 물어왔다. 이안이 가만히 고민하다가, 쓰게 웃으며 눈을 감았다. “좋네. 관리국이 대충 어떤 곳인지 알 것 같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부정적인 인식을 심지 않은 것만으로 만족합니다.” 김이서가 흐릿하게 웃으며 묶었던 머리를 풀었다. 스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머리카락이 아래로 흘러내렸다. “오늘 이후로는 자잘한 일로 호출하는 일이 없을 겁니다. 협력이 필요할 때만 연락하겠습니다.” “네가?” “예. 제가 마법사님의 전담 요원으로 배정받았으니까요. 2인을 필요로 하는 일이 발생하면 아마 저와 같이 움직일 겁니다. 그 이상으로 넘어가도, 제가 임무에서 빠지는 일은 없을 거고요.” 김이서가 조심스레 말했다. 이안은 침음성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정도라면 충분히 믿을 수 있었다. 이미 두 번이나 마주쳤음에도 흐트러진 모습을 본 적 없으니, 최소한 정신력 자체는 뛰어날 것이다. 사격 솜씨도 훌륭했고. 아마 어딜 던져놓든 1인분 이상은 해줄 터. 이안은 시간을 확인하고, 남은 아메리카노를 쭉 들이켠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용무가 끝났으면 이제 돌아가도 괜찮나?” “아, 예. 배웅해 드리겠습니다. 그보다 다른 마법사들에게 딱히 자기소개를 하지 않으셨는데, 그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굳이 할 필요 없으면 넘어갈게.” “그럼 그리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카페를 나와 관리국 정문 앞으로 걸어갔다. 바쁘게 돌아다니는 직원들이 가득한 로비. 이안은 고개를 숙이는 김이서에게 대답해 준 뒤, 손목을 문지르며 밖으로 나왔다. “…….” 건물을 빠져나오자마자 시끄럽던 소음이 싹 사라졌다. 들리는 건 자동차들의 엔진 소리와 희미한 말소리가 전부였다. “……돌아갈까.” 이안은 기지개를 쭉 켜고, 이어폰을 끼며 오토바이를 주차해 두었던 주차장으로 향했다. 머릿속에는 외해의 주인이 했던 말이 계속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