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안이 자신을 마법사라고 소개한 여자를 들여다보았다. 그녀는 그의 무표정한 시선을 피하지 않고 받아냈다. 전체적으로 음침한 외모의 여성이다. 잘게 흐트러진 머리카락은 관리가 되지 않은 것처럼 푸석했고, 눈 밑에는 지울 수 없는 다크서클이 진하게 내려앉아 있다. 피부는 깨끗했지만, 지나칠 정도로 창백해서 새하얀 도화지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최소한 호감이 가는 외모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추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 그녀의 외형이 객관적으로 미인에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남성은 그녀가 말을 거는 것만으로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을까 싶었다. 이안은 아니었다. 상대가 마법사라는 걸 알아차린 이상, 그의 눈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여성’보다는 ‘마법사’라는 정체성에 더욱 가까운 상태였다. 성별 따위 무의미했다. ‘블러핑일까.’ 마법사와 일반인은 쉽게 구분하는 게 어렵다. 판타지 소설 속 마법사처럼 몸에 마나를 담아두지도, 로브나 고깔모자 같은 눈에 띄는 복장도 착용하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상대가 마법사라는 걸 깨닫기 위해선 마법을 사용하는 모습을 직접 봐야만 한다. 같은 마법사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동족을 알아보는 텔레파시나 육감 같은 건 마법사에게 장착되어 있지 않았다. 믿을 건 눈과 귀가 전부다. 그런 점에서, 그녀의 모습은 마법사보단 일반인에 더욱 가까운 모습이었다. ‘나 마법사요.’하고 꺼드럭거릴 수 있을 법한 특징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반응을 떠보기 위해 마법사를 사칭하고 있을 수도 있다. “…….” 솔직히, 뭐가 됐든 알 바는 아니었다. 중요한 점은 그녀가 마법사라는 단어를 언급했다는 것과, 이곳이 관리국 건물이라는 것. 그리고 그녀가 자신을 알아봤다는 것이다. 정체를 알고 있다면야 굳이 가면을 쓸 필요 없었다. 이안은 슬며시 시선을 돌리고, 관리국 건물을 응시하며 입술을 달싹였다. “안내역인 것 같은데. 다른 곳으로 새지 말고 곧장 들어가지.” “……처음부터 강하게 나오네. 싫어하지는 않아, 그런 모습.” 그녀가 히죽 웃으며 이안을 앞질러 천천히 걸었다. 그러곤 따라오라는 듯 그를 곁눈질했다. 이안은 괜히 코트 주머니에 넣어둔 담뱃갑을 두드리며 그녀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마법사가 안내를 맡은 이유는 뭐냐.” “네 심기에 거슬리지 않기 위해서, 라고 들었어. 관리국 직원이 마중 나가는 것보다 같은 마법사가 맞이하는 게 더 나을 거라는 판단을 한 거겠지.” “마법사의 생태계를 전혀 모르는 판단이군.” “그치? 마법사는 기본적으로 동족 혐오랑 자존심이 강하니까 말이야. 같은 마법사를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말투로, 그녀가 말을 이었다. 이안이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근데 난 아니거든. 난 마법사들 좋아해. 보고 있으면 재밌잖아?” “기괴한 취미군.” “그런 말 많이 들었어.” 김율이 싱긋 미소 지었다. 어색하게 비틀린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고, 이안이 그녀를 내려다보며 슬쩍 말했다. “너, 커뮤니티 하나?” 기시감은 단순한 착각이 아니었다. 직접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지만, 어딘가 익숙한 말투. 목소리조차 처음 들어보는 상대임에도 어째서인지 친숙한 기분. 만약 그녀가 실제 마법사가 맞다면,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커뮤니티 한 곳밖에 없었다. “오?” 정답을 찍었는지, 김율의 얼굴에 짧은 반가움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가 걸음을 멈추고 이안을 돌아보며 입술을 핥았다. “너도 해?”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하기는 하지.”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평범한 커뮤니티를 말하는 건 아니지?” “마법사 커뮤니티 말하는 거 맞다.” 걸음을 옮기던 와중, 이안이 관리국 건물 입구 바로 옆에 세워진 흡연 구역을 발견하고 담뱃갑을 꺼내 들었다. 김율이 뒷짐을 쥐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그를 뒤따랐다. “음음. 역시 맞구나. 좋아, 내가 닉네임 맞춰 볼게.” “……후우.” “일단 얼굴 인증한 사람은 제외. 여자라고 밝혀진 사람들도 제외. 그러면 음…… 대충 10명 남짓인데.” “제법 자세히 알고 있군.” “말했잖아. 마법사들 좋아한다고. 나름 리스트도 뽑았거든. 나중에 만나면 반갑게 인사라도 나누려고.” 말 하나하나가 아주 그냥 별종이 따로 없었다. 이안은 고개를 저으며 담배 연기를 허공에 내뿜었다. 김율이 그와 살짝 떨어진 곳에 서서, 손가락으로 턱을 두드리며 고민했다. “흐으으음…… 누굴까? 아, 혼잣말이니까 대답하지 마. 내가 맞출 거야.” “…….” “풍기는 냄새는…… 신기하게 담배 냄새는 거의 없고 달콤한 체향만 풍기네. 마법을 쓴 걸까? 나름 좋은 냄새야.” “……좀 징그러운데.” 코를 킁킁거리는 그녀를 보며 이안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김율은 그의 말을 신경도 쓰지 않았다. “벌레나 흙냄새가 없는 걸 보면 자연이랑은 관련 없는 쪽. 그렇다고 물 냄새도 없어. 파생이 아니라 의식 혹은 의념 계열 마법사라는 뜻인데…… 체취가 좋은 걸 보면 정령을 다루는 마법사일까? 그 아이들은 냄새에 민감하니까 말이지. 아니면 인형술?” 그녀가 그리 말하며 슬쩍 이안을 돌아보았다. “돌로레스? 너야?”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그런 닉네임이 있나?” “땡이구나. 음, 그럼 누굴까. 으음, 누구지?” 김율은 수수께끼나 추리를 좋아하는 편인지, 제법 즐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좌우로 까딱거리길 반복했다. 담배를 피우는 동안에는 어울려주지 못할 것도 없었기에, 이안은 빈 의자에 앉으며 담뱃재를 툭툭 털어냈다. “알려줄까?” “쉿. 내가 맞추고 있잖아. 재미없게 답안지 공개는 하지 마.” 김율이 양손을 허리에 올리며 짐짓 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곤 허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댔다. “커뮤니티에 가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마법사. 의식 또는 의념 계열. 정령은 아니고, 체향은 좋은 편. 으음…….” “체향은 좀 빼지.” “그러고 보니 가방을 들고 다니네? 평범한 마법사들이 짐을 줄이려고 하는 것과는 반대되는 특징이야.” 그녀가 검은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꽁초를 버리는 이안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짐을 많이 들고 다니는 마법사? 그건 연금술사나 강령술사, 아니면 신비술사인데…… 아.” 그러다가 뭔가 떠오른 게 있는지 손가락을 치켜들고 말을 이었다. “그 칼 하나 만들었다고 자랑하던 뉴비구나!” 이안은 그녀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작게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는 넌 심해아귀고. 맞나?” “응응, 맞아. 용케 알아챘네?” “거기서 쓰는 말투랑 실제 말투가 거의 비슷하니까.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는데, 듣다 보니 알겠더군.”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관리국 건물 내부로 들어가며 대화를 나눴다. 상대가 커뮤니티의 일원이라는 걸 알아챈 탓인지, 그녀를 대하는 이안의 태도가 조금 더 부드러워졌다. 별로 인연이 없는 사이라면 그러려니 했겠지만, ‘심해아귀’라는 마법사는 공방 제작을 포함해 다양한 방면에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고마운 인물이었다. 그러니 그녀를 향한 태도가 부드러워질 수밖에. 관리국과 협력한다는 건 진즉에 알고 있어서, 언젠가 마주칠 수도 있겠다고 생각은 했었다. 다만 그 시기가 예상보다 조금 더 빨랐다. 뭐, 나쁜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마주친다면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것 아니겠는가. 그녀가 먼저 적대적인 행위를 하지 않는다면 이안도 굳이 날 선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었다. 일단은 동업자이기도 하고, 협력하는 이상 좋은 관계는 유지해 두는 게 옳았다. 등에 원한으로 인한 칼을 맞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렇다. “이름이 뭐야? 나는 아까 소개했다시피 김율인데.” “신이안. 편하게 불러.” “이안? 되게 특이한 이름이네. 약간 외국인 같다. 영어 이름인가?” “한자다. 다를 이(異)에 편안할 안(安)을 쓰는 토종 한국인이지.” “다른 것들이 편안하게 느낀다는 뜻이구나. 넌 마법사가 아니더라도 언젠가 신비에 엮였겠다. 이름부터가 주술적 의미를 잔뜩 담고 있네.” 김율이 히죽 웃으며 뒷짐을 지었다. “어떻게 보면 마법사가 된 게 더 이득일지도?” 그 말에는 이안도 내심 동의했다. 신비에 대해 무지하던 시절이라면 또 모를까. 이 도시 어딘가에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 득실거린다는 것을 깨달은 지금은 무지하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사방에 살인귀들이 잔뜩 포진되어 있다는 걸 깨달았는데, 아무런 호신 도구 없이 맨몸으로 돌아다니며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마법사가 된 건 나름 큰 이득이었다. 적어도 제 몸 하나 건사할 수 있는 수단은 마련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그 수단이 우주에 있는 신이 작성한 마도서라는 건 좀 그렇지만.’ 그래도 아직은 별다른 해를 끼치지 않는 상태라 큰 문제는 없었다. 이안은 코트 안주머니에 넣어둔 마도서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김율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도착한 관리국 건물의 1층. 제법 바쁘게 돌아다니는 직원들이 전화를 받거나 출동 준비를 하며 임무 시작 직전 브리핑을 나눈다. 사무직들은 퀭한 얼굴로 커피를 쥐고 다니며 반 시체처럼 돌아다니고 있다. 다행히 두 사람에게 큰 관심을 주고 있는 인원은 하나도 없었다. 잠깐 시선을 던지기는 했지만, 이내 본인 업무로 모두 돌아갔다. “아마 이미 이야기가 다 된 걸 거야.” 김율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으며 말했다. “오늘 마법사 하나가 찾아오니까 괜히 자극하지 말고 보내라, 라고 해둔 거겠지. 나 처음 올 때도 그랬어.” “그래?” “응응. 그때 진짜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바로 죽여버리려고 준비 왕창 했었는데, 결국 하나도 못 쓰고 집으로 돌아갔어. 살짝 서운하더라.” “그럴 수 있지.” 이안은 대충 대답하며 본래 리볼버를 넣어두던 코트 안쪽을 더듬거렸다. 선장과의 싸움에서 던져버렸기에 더 이상 가지고 있는 총기는 없었다. 슬슬 하나 새로 장만할 때가 된 모양이다. 애착이 갔던 물건이었지만, 스스로 버렸기에 큰 미련을 가지지는 않았다. 이젠 경제력도 제법 생겼으니 괜찮은 자동 권총 하나를 구매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기자, 어느덧 3층에 있는 자그마한 회의실 앞에 도착했다. 김율이 회의실의 문고리를 잡으며 이안을 휙 돌아보았다. “전부 여기서 기다리는 중이야. 바로 들어갈 거야?” “내가 해야 할 다른 일이 있나?” “없을걸?” “그럼 바로 가자. 내가 연금술사라는 건 숨길 수 있다면 숨겨주고.” 이안이 가방을 고쳐 매며 말했다. 김율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히죽 웃었다. “마법사 사이의 불문율 3번째. 적대관계가 아니라면 다른 마법사가 어떤 마법을 쓰는지 함부로 떠벌리고 다니지 않는다. 나도 잘 알고 있어. 걱정하지 마.” 그녀는 그리 말하곤 문고리를 내렸다.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굳게 닫혀 있던 철제 문이 열리고, 내부 풍경이 이안의 시야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