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견문록에는 기록된 마법의 절대적인 수가 그리 많지 않았다. 재창조의 손길과는 반대되는 특징이었다. 재창조의 손길 같은 경우 다양한 방어 수단이나 은신, 언어, 의료 등. 매우 많은 분야에 대한 마법이 기록되어 있었다. 당연히 공격 마법도 몇 개 존재했다. 판타지 게임에 나올 정도의 대단한 마법들은 없지만, 그럼에도 생명을 취하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이를 제외하더라도 연금술이라는 다방면에서 유용한 마법이 있는 이상, 공격이나 방어, 이동은 아무런 제약 없이 해내는 게 가능했다. 반면 심해견문록은? 소환술과 공격 마법 몇 개. 그리고 방어 마법 하나가 기록된 마법의 대부분이다. 그러니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방어 마법의 성능이 뛰어나기는 하지만 연금술에 비할 바는 아니며, 공격 마법이 강하기는 하지만, 방어력 따위 개무시하는 재창조 마법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남는 건 소환술 하나가 전부다. 근데 이것도 대인전에서 사용하기엔 상당히 껄끄러운 힘이었다. 상대의 크기가 작거나, 그 수가 적으면 사용하기가 애매했다. 적어도 지금 상황에서 꺼내 들 마도서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안이 이 검은색 마도서를 꺼내든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이곳이 바다이기 때문이다. 쏴아아아아!! 사방에 가득하던 해수가 이안의 의지를 따라 호응한다. 바닥에 고인 물이 그가 딛고 있는 바닥을 기준으로 밀려나고, 천장과 벽에 가득하던 수분과 소금기가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좌우로 까딱거린다. 그것은 신자들이 신을 찬양하는 율동처럼 보이기도, 힘이 빠진 익사체가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둘 중 뭐가 정확한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틀린 건 없었다. 익사하는 인간은 뭐가 됐든 죽음이 임박한 순간 신을 찾는 법이니까. 바다라고 다를까? [끼기긱.] 천장에서 떨어진 바닷물이 심해견문록의 안쪽에 떨어지자, 표지를 타고 검은색 물방울이 툭툭 떨어졌다. 물방울은 바닥에 고인 바닷물에 닿는 순간, 그것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며 사방을 검은 흑해(黑海)로 물들였다. 침식. 혹은 침략에 준하는 행위. 바다는 본디 모든 생명을 품는 어머니 같은 존재다. 그 속에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생명을 담고 있으며, 모든 위대한 생명체는 태초의 바다에 서식하던 단세포였다. 그러나 이것은 지구에 국한된 이야기다. 우리는 우주를 모르고, 바다를 모르며, 그 이상으로 우주에 있는 바다를 모른다. 마찬가지로 외해의 물방울이 지구의 바닷물에 닿았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모른다. 이제는 알 수 있다. ……! 바다가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꿈틀거리며 익사하던 바닷물들이 통째로 뜯어먹히며 변이한다. 순식간에 환경이 우주의 바다로 변모하고, 칠흑같이 어두운 물속에서 자그마한 둥근 알 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이게 뭔.” 선장이 어깨에서 흐르는 피를 지혈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중얼거린다. 이안도 마도서를 쥔 채, 당황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다랑 만나면 이렇게 되는 거였나?’ 막연히 예상은 하고 있었다. 우주의 바다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바다’라는 카테고리에 포함되어 있는 이상, 지구의 해수와 만났을 때 어떠한 반응이라도 보일 거라 추측은 했었다. 그러나 이건 그 정도가 좀 과했다. 아무런 마법도 사용하지 않고, 단순히 마도서에 바닷물이 닿기만 했는데 이 정도 침식을 보여주는 건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지만 당황하지는 않았다. 타인이 사용한 마법이라면 이안도 경계했겠으나, 지금 이 검은 해수는 그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 상태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위험하지도 않은 대상을 상대로 심력을 소모할 필요는 없었다. 그는 미약하게나마 남아있던 경계심을 버리고, 흥미로운 눈으로 자신의 주변을 맴도는 바닷물을 응시했다. ……만약, 여기서 침식 마법까지 사용하면 과연 어떤 결과물이 나올까. 문득 떠오르는 궁금증. 하지만 해소할 여유는 없었다. 쐐애애액!! 생각하는 이안을 향해 혓바닥이 창처럼 날아들었다. 이안은 뒤로 몸을 날리며 바닥에 고인 물웅덩이 속으로 심해견문록을 담갔다. “위대한 자의 영토 위, 그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이여 방패가 되어라.” 꾸드득. 이안이 주문을 외우는 순간, 잔잔하던 웅덩이가 역류하며 날카로운 방벽이 되었다. 혀는 그의 살에 닿지도 못하고 방벽에 모조리 갈려나갔다. 분쇄된 혓바닥이 바닥을 나뒹굴고, 떠오른 알들이 그것을 양분 삼아 크기를 키운다. 선장은 섬찟 증오와 두려움 가득한 얼굴로 그것을 보며 하나뿐인 눈동자를 파르르 떨어댔다. “너……! 다곤의 사도가 아니었군……!” “……다곤?” 이안이 날카로운 마도서를 꺼내며 반문했다. “크툴루 신화에 나오는 그 다곤 말인가?” “빌어먹을, 바다 냄새가 나길래 그쪽인 줄 알았건만 전혀 아니었잖아……!” 선장은 이안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손을 벌벌 떨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제, 제안을 하나 하지.” 그가 잘못 씹은 혀를 뱉어내며 말을 이었다. “살려다오. 그럼 다신 이곳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겠다.” “……뜬금없군.” 이안의 맥이 탁 풀렸다. 그는 마도서를 수중에서 꺼내며 손가락 사이에 묻은 바닷물을 털어냈다. “방금까지 죽이려 했으면서, 너무 쉽게 태도를 바꾸는 거 아닌가?” “몰랐으니까! 난 네가 다곤의 사도인 줄 알았다! 하지만, 하지만 이 힘은 절대 다곤 따위가 낼 수 있는 힘이 아니야. 놈의 사도는 이런 짓을 하지 못한다……!” “…….” “대체 어떤 위대한 신을 모시고 있는 거냐, 마법사……!” 어떤 신을 모시고 있냐라. 굳이 따지자면 모시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쪽에서 들러붙어 오는 것에 가까웠다. 원하지 않았음에도 얻게 된 마도서들. 일상이 순식간에 비일상으로 물들고, 목숨이 아슬아슬한 상황을 수차례 넘게 겪어왔다. 이번에는 위험하다, 라는 생각이 든 횟수도 제법 많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도서들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좋든 싫든, 앞으로 영원한 동반자로서 살아가야만 하는 것들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면, 굳이 그들을 증오하며 스스로 정신을 흔들 바에야 좋게 생각하는 게 나았다. 물론 그렇다고 외신을 숭배하며 고개를 숙일 생각은 아니다. 그들이 자신을 원하는 만큼, 이안 또한 그들을 동반자로서 이용하고 인정할 뿐이다. 일방적인 숭배로 이루어지는 관계는 안전하지 않으니. “모시는 신은 없다.” 이안이 대답하며 흐트러진 코트의 위치를 고쳤다. “난 너희처럼 비굴하게 고개를 숙이면서까지 살아갈 생각은 없거든.” “…….” “그리고…… 개인적인 질문이다만, 신에게 바짝 엎드리는 짓은 왜 하는 거냐? 신이 매달리게 하는 게 더 낫지 않나?” 외신에게 사랑받은 이안이기에 할 수 있는 말. 힘을 얻기 위해서 외신에게 신체 대부분을 가져다 바친 선장은 그의 발언에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대신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주먹을 꽉 쥐었다. “감히……! 네가 내게 신앙을 논하는가!” 날카로운 손톱이 그의 손아귀를 찢어발기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눈을 부라렸다. 방금까지 살려달라고 애원한 것과 비교하면 너무 급격한 신경 변화였다. 아마 이미 인간이라는 종족을 벗어난 상태인데, 거기에 전투까지 치른 탓에 점점 이성을 잃어가고 있는 거겠지. 예정된 수순이었다. 굳이 상황을 길게 이어갈 필요는 없었다. 이안은 주머니 속에서 눈알 하나를 꺼내고, 그대로 선장을 동공에 담아 으깼다. 콰직! 끔찍한 소리와 함께 선장의 눈이 부서졌다. 투명한 수정액과 핏물이 그의 뺨을 타고 주르륵 흘러나왔다. “아아아아!!” 선장이 소리를 지르며 팔다리를 마구 휘저었다. 길쭉하고 날카로운 촉수들. 그러나 무엇 하나 이안이 주변으로 솟아오른 수벽을 뚫지 못하고 찢어졌다. “아쉽게 됐다.” 이안이 마지막 남은 돛대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며 걸어갔다. 그가 가는 길을 따라 바닷물이 길을 여는 것처럼 옆으로 갈라졌다. 곳곳에 떠 있던 알들이 쩌저적 부서지며 붉은 눈동자들이 튀어나왔다. 눈동자들은 잠깐 하나 같이 이안을 직시하다가, 동공을 세로로 찢어 그 사이로 이빨을 드러냈다. 그러곤 알 수 없는 언어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빠다.] [그분의 유일한 동반자. 정인.] [만물의 어머니에게 선택받은 나약한 생명.] [그렇기에 아름답고 덧없는 인물.] 해석은 자동으로 되었다. 귀로는 이해할 수 없었으나, 머리로 이해했다. 이안은 징그럽게 뻐끔거리는 그들을 응시하다가, 마도서를 펼치며 수압 방벽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촉수를 분쇄하던 방벽은 그의 손을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 “위대한 자의 영토 위, 그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이여 창이 되어라.” 주문을 외우는 순간, 방벽이 압축하여 투명한 창처럼 변모했다. 일렁거리는 수창(水槍). 이안의 시야가 순간 핑 돌았지만, 그는 정신을 붙잡고 마도서를 닫았다. “쏘아라.” 내뱉음과 동시에 창이 드릴처럼 회전하며 선장의 복부를 관통했다. 콰아아아아!! 사방으로 피와 장기가 비산하고, 끊어진 하반신이 검은 외해 속으로 꼬르륵 잠긴다. 그리 깊지 않은 수심이었으나, 하반신은 그대로 깊은 바닷속으로 수장된 것처럼 자취를 감췄다. “……후우.” 이안은 잠깐 호흡을 고르며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바다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특수한 마법. 조건이 붙어서 코스트가 그리 높지 않을 줄 알았건만, 역시 위력이 높은 탓인지 고작 두 번밖에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송곳으로 머리를 찌르는 것 같은 두통이 느껴졌다. 한 번 더 사용하면 그대로 기절할 게 불 보듯 뻔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인가. 전체적으로 그런 마법들이 대부분이군…….’ 이안이 숨을 길게 토해내며 눈가를 문질렀다. 바닥에 떨어진 혓바닥 몇 가닥이 그의 허벅지를 타고 올라왔다. 이안이 마도서를 파리채처럼 휘둘러 그것들을 털어내고, 상반신만 덩그러니 남은 선장의 앞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 연기를 후욱 내뿜었다. 희끄무레한 연기가 허공으로 올라갔다 흩어지고. 이안이 담뱃재를 털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신비의 제공자가 누구냐. 네가 속한 교단의 구성은?” “…….” 선장은 답하지 않았다. 아니, 답하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선장에겐 치명상을 치유할 정도의 재생능력이 없었다. 머리에 난 총알구멍 정도야 치료할 수 있어도, 통째로 뜯어진 하반신까지는 어찌하지 못했다. 너덜너덜하게 찢어진 장기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반쯤 소실된 허파. 이 상태면 호흡은 고사하고 목소리조차 내는 게 불가능하다. 괜히 재생도 못 하는 놈을 붙들고 기다려봤자 나오는 건 없을 것이다. “바티칸 수녀보다 훨씬 못한 재생력이군…….” 이안은 한숨을 푹 내쉬며 늘어진 선장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마도서를 교체하고 주문을 외운다. 익숙한 문장을 내뱉자, 선장의 육체가 자그마한 큐브가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챙길까 싶기도 했지만, 굳이 그러지는 않았다. 아무리 이야기 속에 나온 외신이라고 한들, 그 영향권 안에 있던 놈이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일으킬만한 짓은 할 필요가 없었다. “끄응…….” 생각보다 싱겁게 끝난 전투였으나, 그래도 몸에 누적된 피로는 제법 심했다. 마법을 연사한 탓인지 머리가 심장이 달린 것처럼 두근거리고, 다리엔 힘이 그다지 없다. 그래도 움직일 정도는 되었다. 이안은 후들거리는 허벅지를 두드리고, 손에 들린 마도서를 쓰다듬으며 조타실을 나왔다. “잘했어.” [우웅!] 마도서가 별거 아니라는 듯 진동했다. 이안도 픽 웃음을 터트렸다. 조타실 밖으로 흘러넘쳤던 물은 이제 거의 남지 않은 상태였다. 외해로 변했던 바닷물도 진즉에 사라졌고, 꿈틀거리던 지렁이 또한 보이지 않았다. 아마 선장이 죽을 때 같이 소멸한 모양이다. 재료로 만들지 못한 건 아쉽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충분했다. [핫! 괴물들이 사라졌다! 형제들이여! 이제 이 배는 우리의 것이다! 이 빌어먹을 귀신들을 처리한 후에 완전히 점거하자!] 모퉁이 너머로 슬쩍 고개를 들이민 해적이 피가 덕지덕지 묻은 칼을 들이밀며 소리쳤다. 때마침 놈의 사각지대에 있던 이안이 해적의 뒤통수에 손을 올리고 마법을 사용했다. “새롭게 태어나라.” [오옥!] 해적이 그대로 해적이었던 것이 되었다. 이안은 익숙하게 구체를 가방 속에 넣으며 찌뿌둥한 손목을 풀었다. ‘선장을 죽였는데 상황에 변화가 없군. 아무래도 바다에 있는 걸 죽여야 다 끝나는 모양이야.’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기에 놀라지는 않았다. 대신 좀 피곤했다. 아무래도 일을 끝내면 당분간은 좀 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괜히 무리할 바에야 늘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게 낫다. 이안은 그리 생각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