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김이서와 박민아는 지부장의 명령을 받고 출동 준비를 시작했다. 두 사람은 각자 숙소에서 나와 장비를 가득 챙기고, 관리국 지급 차량에 탑승하여 시동을 걸었다. 부우웅. 부드럽게 시동 걸린 차량이 관리국의 주차장을 빠져나와 도로 위로 올라왔다. 박민아는 운전대를 잡은 김이서를 잠깐 응시하다가, 안전벨트를 매고 창밖을 응시했다. 서울의 아침은 늘 그렇듯이 부산스러웠다. 출근하는 직장인으로 거리는 붐볐고, 도로에는 차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출근 시간의 도로는 도로라고 부르는 것보다 차라리 느린 컨베이어 벨트라고 부르는 게 나을 정도로 느릿느릿 차들이 바퀴를 굴려댔다. “…….” 대부분의 한국인이 싫어할 만한 속도와 풍경이었다. 하지만 박민아는 이렇게 느린 아침도 그럭저럭 좋아했다. 복잡한 일상 속에서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각박한 관리국 생활이니, 이런 여유는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언제나 있는 법이었다. 박민아는 그런 사람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을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있잖아, 서아야.” “……? 왜.” 막히는 차량에 손가락으로 운전대를 두드리고 있던 그녀가 슬쩍 박민아를 돌아보았다. 민아는 그녀와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그 마법사, 왜 회유하자고 했어?” 벌써 며칠이나 더 지난 이야기. 지부장실에서 이미 한 차례 결론을 내렸고, 지금은 그 결론을 따라 임무를 수행하러 가는 길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못할 질문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 뜬금없기는 했다. “갑자기?” “아니, 그냥…… 난 당연히 네가 암살하자고 할 줄 알았거든. 너, 신비를 별로 안 좋아하잖아.” 김이서의 과거는 관리국 내부에서 그리 유명한 편은 아니었다. 헨젤과 그레텔이라는 이름의 잔혹동화 속에서 홀로 살아남아 관리국 요원이 되었다, 같은 이야기는 이미 관리국에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그녀와 비슷한 사람들은 모두 신비를 싫어했고, 그것들을 처단하고 싶어 했다. 김이서는 남들보다 증오가 조금 더 심했다. 복수심에 활활 불타는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잔혹동화를 개인적으로 찾아다닌다는 이야기는 이미 관리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소문이었다. 괜히 지부장이 직접 나서서 그녀를 나무란 적이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 그녀가, 신비를 직접으로 다루고 휘두르는 마법사를 상대로 회유를 주장할 줄은 정말 몰랐다. 나름 동기로서 그녀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박민아였음에도, 이번 일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 그거.” 하지만 박민아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김이서는 별거 아니라는 듯 나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난 신비를 싫어하는 거지, 그걸 다루는 사람까지 싫어하는 건 아니야. 곤충이 싫다고 해서 곤충학자를 증오하는 사람은 없잖아. 그런 거지.” “……비유가 좀 특이하긴 하네?” “딱히 틀린 말도 아니잖아.” 김이서는 금연용으로 매번 사놓는 사탕을 입에 물고, 담배를 피우는 것처럼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그녀의 혀 위에서 달콤한 레몬 맛이 진하게 퍼졌다. “그리고, 그거 다 짜고 치는 연기였어. 여울 선배가 회유를 말했으면 아마 내가 암살을 주장했을걸.” 언제나 선택지는 많아야 한다. 결정에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붙이기 위해서라도, 독단적으로 혼자 생각한 사실을 고집부려 밀어붙인다는 감상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언제나 서로 상반되는 주장을 꺼내놓는 게 옳은 일이었다. 평범한 회사라면 굳이 필요 없는 작업이지만, 관리국이 어디 평범한 회사인가. “그냥 지부장님 고르기 편하시라고 눈치 좀 본 거지. 거기서 나랑 여울 선배 눈빛 주고받는 거 못 봤어?” “아, 진짜? 난 못 봤는데.” “박희수 그 양반은 본 것 같던데. 신입이야 뭐, 당연히 못 봤을 거고.” 김이서는 사탕을 입에 넣고 굴리며 악셀을 살짝 밟았다. “아무튼, 그래서 우리끼리 미리 합을 맞추고 2가지 주장을 말한 거야. 솔직히 양쪽 모두 충분히 할 만하잖아.” “……회유는 잘 모르겠네. 암살은 할 만하겠지만.” “관리국에 인재가 많기는 하지. 정 안 되면 일회용 즉사 버튼 누르면 되고. 제물이 대충 50명이었나.” 김이서는 격리실에 갇혀있는 붉은 살점 버튼을 떠올리며 혀를 쯧 찼다. “개인적으로는 쓰고 싶지 않아. 그거 기분 더러워.” “그렇긴 해…… 격리팀 얘들도 다 싫어하잖아. 보고 있으면 내장이 뒤틀린다고.”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라 진짜 내장이 뒤틀려서 하는 말이었다. 이미 장기가 미친 듯이 꼬여 죽은 격리팀 인원도 몇몇 있었다. 김이서는 입에서 뽕 소리를 내며 사탕을 뽑고, 길게 이어진 은빛 실선을 핥았다. “됐어. 어차피 이제 암살은 고려할 필요 없잖아.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굳이 따져야 하나.”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다크서클이 내려앉은 눈두덩이를 문질렀다. 무엇을 숨기랴. 관리국에서 선택한 결론은, 김이서의 제안을 따라 회유로 결정되었다. * 같은 시각. 체칠리아의 피자 흡입을 직관하고 며칠 후, 이안은 여전히 찾아오지 않는 관리국 요원에 의아함을 느끼면서도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그쪽에서 못 본 척 넘어가 준다면 이안으로선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어쩌면 방비나 회의를 하느라 조금 늦게 찾아오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당장은 자유로웠다. 컨디션이 돌아올 때까지 의뢰도 나가지 않은 상태라 몸이랑 마음도 제법 상쾌했다. 기분 좋은 아침이 아닐 수 없었다. 이안은 여느 때처럼 아침 루틴을 따라 가볍게 운동하고, 씻고 나와 밥을 먹었다. 그러고 나서 침대에 누워 커뮤니티를 뒤적거렸다. 늘 그렇듯이 똥글 사이에 정보글이 몇 개 있고, 얼마 되지 않은 개념글들이 추천과 댓글이 와바박 박힌 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이안은 하품을 하며 가장 위에 있는 글부터 슥 훑어보았다. [스승님, 이 개시발 호로새끼 만수무강하세요.] [강삭제발] (머리카락을 시원하게 밀어버린 두피 사진) 저번에 고려장 마렵다고 드립쳤더니 스승님한테 머리카락 다 밀렸다. 자기 탈모라고 내 머리까지 밀었는데, 이거 절벽에서 밀어도 합법 아니냐. 시발, 나 남친 만들어야 한다고! [추천 156][비추천 1] [댓글] -딸기요거트스무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강삭제발: 빠개지 마. 쪼개버리기 전에. ㄴ딸기요거트스무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강삭제발: 시발련아. -심해아귀: 왜 이렇게 추천이 많아? 평소보다 더 많네. ㄴ얘들이 유동 분신술 써서 그럼. 존나 호카게들임. ㄴ심해아귀: 너도 아니야? ㄴㅋㅋ ㄴ들 ㄴ켰 ㄴ노 ㄴ심해아귀: 나 지금 무서워서 아가미가 너무 떨려. ㄴ오……. -네귀에벌레: 남친? 너 이 새끼 게이냐? ㄴ강삭제벌: 여자야, 개새끼야. ㄴ네귀에벌레: 번호. 사진. 이름. ㄴ네귀에벌레: 아, 삭발녀 사절. 곤란. ㄴ강삭제발: 개 미친 새낀가 진짜. -스윗한할아버지: 제자야.나허.리가아프.다.마사지좀.해라. ㄴ강삭제발: 아. 진짜 고려장 마렵네. “별거 아닌 글이었네.” 이안은 대충 댓글에 이모티콘 하나만 남겨두고, 잠깐 고민하다가 글 하나를 작성했다. [나 바이크 하나 살 생각인데 혹시 잘 아는 놈 있냐.] [ㅇㅇ] ㅈㄱㄴ 글을 등록하고 잠깐 휴대폰을 덮었다. 이동 수단을 하나 마련할 계획은 예전부터 있었다. 다만 바이크로 할지, 아니면 승용차로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고르지 않고 흐지부지 넘어갔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을 딱 정한 상태였다. ‘역시 바이크가 낫겠어.’ 결정의 계기가 된 것은 병원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탔던 레플리카 형태의 바이크였다. 차를 타는 것보다 훨씬 용이한 시야 확보. 미세한 조종과 운전하면서 전방위 사격이 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차보다 뛰어난 편리함까지. 위험성을 제외하면 생각한 것보다 훨씬 훌륭한 이동 수단이었다. 면허를 따놓고 직접 타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탈출하면서 몰아보니 예상보다 더 괜찮았다. 주요 이동 수단으로 사용하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물론 위험성이 무시할 정도로 우스운 건 아니지만, 그 정도는 마법으로 충분히 무마할 수 있었다. 당장 코트에 걸린 마법만 해도 충격을 물처럼 흡수해 주는 효과를 지니고 있으니, 최소 중상을 입을 걱정은 할 필요 없었다. 그렇다고 방심하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안전은 유의하면서 운전할 생각이다. 그딴 거 없이 운전하면 어차피 차나 바이크나 똑같이 객사하기 딱 좋았다. 이안은 옥상에 올라가서 담배 한 개비를 태우고 돌아와, 다시 침대에 누워 게시글을 확인했다. 다행히 댓글이 다수 달려 있었다. 그는 적당히 답장하며 그들과 소통했다. -바이크 좋지. 무슨 용도로 탈 거임? ㄴㅇㅇ: 그냥 교통수단. 굳이 따지자면 의뢰 해결일 듯? ㄴ면허는 있지? 입문이면 500cc 이하로 골라라. ㄴㅇㅇ: 면허는 있음. 일단 ㅇㅋ -딸기요거트스무디: 바이크 위험하다에요. 차라리 차 타고 다녀라에요. 그리고 나 데리고 드라이브 가라에요. ㄴㅇㅇ: 싫은데. ㄴ딸기요거트스무디: (온화한 마법사도 화가 났어요 콘) “얘는 변함이 없군…….” 이안이 혼잣말로 그리 중얼거리던 순간, 댓글이 하나 새로 달렸다. -★대모: 교통수단이고 의뢰 해결하러 갈 때 쓸 거면 R차가 났겠어요. 레플리카 말하는 거예요. 추천하는 바이크 리스트 쫙 뽑아서 게시글 하나 써놨으니까 한번 봐주세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의 답글이었다. 이안은 살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ㄴㅇㅇ: 님 바이크 탐? ㄴ★대모: 네, ‘절대 사고가 나지 않은 마법’을 배운 뒤부터는 바이크를 타고 가끔 의뢰 해결하러 다니는 중이에요. ㄴㅇㅇ: 의외네. 별로 그런 이미지는 아니었는데. ㄴ★대모: 얼굴도 모르는데 뭘요. 아무튼 확인하시고 쪽지 주세요. 대모는 그리 답장하곤, 잠깐 뜸을 들이다가 덧붙였다. ㄴ★대모: 뭣하면 당신 바이크에 마법도 걸어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