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새하얀 의사 가운이다. 말라붙은 검붉은색의 피가 사방에 묻어있고, 앞주머니에 들어있는 메스가 전등의 빛을 받아 반짝거린다. 선명한 소독약 냄새와 짙은 피비린내가 놈의 등장과 함께 복도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저게 의사인가?’ 잿빛의 피부. 얼굴에 있는 거라고는 빼곡하게 들어찬 이빨이 전부였다. 눈이나 코, 귀는 찾아볼 수가 없고, 찢어진 입술에선 피가 뚝뚝 떨어진다. 놈의 가슴팍에 달린 은빛 명찰에 적힌 건 이름이 아니라 ‘외과의사’라는 직책이었다. 메스를 보고 대충 짐작은 했지만, 아무래도 진짜 외과를 전담하는 모양. 환자가 발생했기에 놈이 나타난 건지, 아니면 우연히 이 길을 지나가던 중인지는 모르겠으나 당장 그게 중요한 사안은 아니었다. 이안은 여차하면 곧바로 발포하기 위해서 리볼버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의사를 노려보았다. “음.” 의사는 그런 그를 잠깐 응시하다가, 벽에 기대어 기절해 있는 체칠리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폭발로 인한 신체의 영구 손상. 그리고 화상. 심각한 상태로군. 곧바로 외과적인 수술을 진행해야겠어.” “…….” “그쪽은 저 환자의 보호자입니까?” 의사가 이안에게 물었다. 이안은 이 상황에서 해야 할 수십 가지의 말을 고르고 골라 간신히 입을 벌렸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아이의 수술에 동의할 생각이 없습니다.” “음? 그대로 놔두면 죽습니다. 지금 보니까 뇌출혈까지 있는데, 환자를 죽일 생각입니까?” “죽지 않습니다. 제가 따로 치료를 할 테니, 선생님은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어처구니가 없군요. 간호사.” 외과의사가 헛웃음을 치고 간호사를 불렀다. 응급실 문이 지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열리며 온몸이 부패 중인 간호사 한 명이 기어 나왔다. 의사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턱짓했다. “저 보호자 분에게 수술 동의서 건네주고, 환자는 지금 바로 수술대로 올려.” “네에…….” 간호사가 어눌한 발음으로 대답하며 어기적어기적 이안을 향해 다가갔다. 이안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엄지로 리볼버의 해머를 잡아당겼다. 여기서 총을 쏘면 어떻게 되나. 분명 좋은 결과가 나오지는 않겠지만, 여기서 체칠리아를 잃어버리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얄팍한 정 때문에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살펴본바, 이 빌어먹을 병원은 절대 혼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랬다간 개죽음이다. 비상구에는 타오르는 환자가 뛰어다니고, 기괴하게 생긴 간호사가 입가에 피와 살점을 덕지덕지 붙이고 있으며 의사는 수술에 미쳐있다. 이런 곳을 혼자 탐사하며 탈출구를 찾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이 없다. 조금만 삐끗해도 그대로 목이 달아나거나 강제로 입원되어 환자로서 평생을 살아야만 할 터. 최소한 자신을 대신하여 한번 죽어줄 목숨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니 아직 병원에 들어오고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에 체칠리아를 잃을 수는 없었다. 굳이 죽어야만 한다면, 지금보다 더욱 극적인 곳에서 죽어야 한다. 물론 이유가 그것뿐만인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기는 하나, 도와준 빚을 갚아야 한다는 의무감도 느끼는 중이다. 아무리 마법사가 되고, 스스로의 목숨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한들. 자기 몸을 바쳐 폭발을 막아준 체칠리아에게 약간의 부채감은 느끼는 중이다. 일단은 그걸 갚는 게 우선이다, 그러니 최선은 다할 생각이었다. “후우…….” 작열통이 느껴지는 목구멍 너머로 숨을 내뱉는다. “화, 환쟈부. 여기 도으서 사이 좀…….” 점점 가까워지는 간호를 차갑게 응시하며 놈의 머리를 겨냥한다. 그리고 그대로 격발ㅡ “으윽.” “……!” 방아쇠를 당기려는 찰나, 체칠리아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안은 곧장 뒤로 한 걸음 물러나 체칠리아에게 다가갔다. “수녀님, 괜찮으십니까?” “……머리가 아파요…… 뭐에 맞은 느낌인데요…….” “정신 공격에 당하셨습니다.” “아, 그래요……?” 체칠리아는 멀쩡한 손으로 피가 흐르는 뒤통수를 짚더니 아리송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기를 잠시, 주변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얼굴을 차갑게 굳혔다. “……의사랑 간호사.” “수녀님을 환자로 여기고 수술실에 데려가려 하는 중입니다. 어떻게, 몸을 가누실 수 있으십니까?” “아, 네. 잠시만요.” 체칠리아는 그렇게 말하고 목에 걸린 로사리오를 손으로 꽉 쥐었다. 그 순간, 그녀의 타올랐던 피부와 터져나간 팔이 순식간에 재생되었다. “……!” 어처구니가 없는 재생력에 이안의 눈이 번쩍 뜨였다. ‘초능력자였나?’ 존재 자체는 인지하고 있었으나,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아마도 능력은 급속 재생. 그 트리거가 되는 건 신성한 행위, 또는 로사리오를 만지는 것일 터. 괜히 온몸에 십자가를 도배하고 있던 게 아닌 모양이다. “의사. 나 이제 멀쩡해. 환자 아니야.” 그녀가 터져나갔던 손을 외과의사에게 내밀며 내뱉었다. 의사는 잠깐 그 자리에 서서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아무런 대답도 없이 등을 돌려 사라졌다. 기어 오던 간호사도 다시 응급실로 돌아갔다. “…….” 길쭉한 복도에 다시 적막이 가라앉았다. 이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벽에 기대어 섰고, 체칠리아가 주섬주섬 몸을 일으켰다. “그 책.” 그러면서 입을 열었다. “혹시 그리모어?” 그리모어. 마도서를 뜻하는 프랑스어이자 유럽에선 대명사처럼 사용하는 단어였다. 이안은 왼손에 꼭 쥐고 있는 심해견문록을 슬쩍 응시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마법사라는 걸 들킨 이상, 더 이상 존댓말을 고수할 필요는 없었다. 처음 뱀파이어 사냥에 나설 때는 어색하게 느껴졌던 반말이지만, 이제는 익숙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적응력이 빠른 것은 나름 장점이었다. 이안은 심해견문록의 표지를 리볼버 손잡이로 툭툭 두드리며 체칠리아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쪽도 바티칸에서 나온 평범한 수녀는 아니고. 그렇지?” “……이단 심문관. 체칠리아 카포네. 속인 건 미안해. 근데 너도 속였잖아.” 이안이 마법사라는 걸 알았기 때문인지, 체칠리아도 더 이상 억지 존댓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녀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코트 안쪽에 넣어둔 권총 한 자루를 꺼내 쥐었다. “순진한 척, 했잖아.” “마법사라는 걸 들켜서 좋을 건 없으니까.” 이안이 마도서와 리볼버를 숨기지 않은 이유는 단순했다. 여기서 계속 일반인 척, 이런 게 처음인 척 행동하면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만약 이곳이 별로 어렵지도 않은 곳이고, 쉽게 빠져나갈 수 있다면 계속 평범한 사람처럼 행동했겠지만, 종합병원은 상상 이상으로 기괴한 장소였다. 체칠리아 혼자서 모든 위험 부담을 감당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녀가 다칠 때마다 환자나 의사들이 지랄을 해댈 텐데, 그 모든 순간을 커버칠 수는 없었다. 재생능력이 있다고 한들 다치는 찰나는 무방비한 상태니까. 차라리 마법사라는 걸 밝히고, 전적으로 협력하는 게 훨씬 낫다. 적어도 이안은 그렇게 생각했다. 체칠리아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딱히 중요한 사안은 아니었다. “움직이자. 몸은 잘 작동하나?” “……응. 멀쩡해.” “다행이군. 일단 탐사가 먼저다. 괜히 이곳에 있는 괴이들을 자극하지 말고, 천천히 이동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적극적이네?” “그편이 낫지 않나?” 이안이 픽 웃으며 앞장서서 걸었다. 체칠리아가 한 손에는 단검을, 다른 손으로는 권총을 쥐고 그의 뒤를 따랐다. 길게 뻗은 복도를 넘어 병원의 로비로 들어갔다.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있는 거라고는 뇌만 둥둥 떠다니는 접수원들과 바쁘게 뛰어다니는 간호사들이 전부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하나 같이 정상적인 몰골은 아니었다. 이안은 상반신은 멀쩡하지만, 하반신이 수십 개의 머리로 이루어진 간호사를 흘겨보며 입을 열었다. “이런 공간형 신비는 일종의 역할극으로 대응하는 게 좋다고 그랬지? 그렇다는 건 우리도 역할을 하나씩 만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자유로운 역할이 최고.” 체칠리아가 즉답했다. 그녀는 권총의 약실을 슬쩍 확인하고 말을 이었다. “병원에 갇히는 것. 예를 들어 의료인이나 경비, 환자면 스스로 나가는 건 불가능. 그러니 병원의 안과 밖을 오갈 수 있는 역할이 제일 나아.” “그렇겠네.” 의사나 간호사는 당연히 병원에서 근무하니 밖으로 나가는 게 불가능하다. 출퇴근 시간이라는 개념을 신비가 이해하고 있을 리가 없으니, 사실상 종속된다고 보는 게 옳았다. 경비 또한 마찬가지다. 애초에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한 곳이다. 테마파크가 그랬듯이, 여기 또한 낮과 밤이라는 개념 없이 매 순간 업무의 연속일 게 뻔했다. 참 끔찍한 곳이었다. 관리국은 이런 곳을 방치하고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이안은 한숨을 푹 내쉬며 안내 책자가 있을 법한 곳을 살펴보았다. “뭐해?” “보통 이런 공간형 괴이에는 규칙 같은 게 있으니까. 신비 차원에서 나눠주는 경우도, 누군가 직접 작성해서 배치하는 경우도 있거든.” “아…… 나도 찾아볼게.” 체칠리아가 고개를 끄덕이고 병원 로비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이안이 ‘병원 생활 안내’와 ‘병원 센터 안내’라는 책자 2개를 발견했다. 하나는 병원에서 작성한 거고, 하나는 관리국에서 작성한 것이었다. 다행히 관리국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건 아닌 모양이다. 이안은 체칠리아를 다시 불러서 같이 관리국에서 작성한 책자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락. 표지를 넘겨 안에 작성된 내용을 확인한다. [통칭 요한종합병원. 병원장인 요한의 이름을 따서 만든 병원으로, 본 문서는 해당 병원을 탐사한 관리국 요원 박상철, 이하 본인이 찾아내고 작성한 안내문이다. 만약 해당 문서를 발견했을 때, 오염된 기미가 보인다면 망설이지 말고 폐기하길 바란다.] [만일 해당 문서를 발견한 게 일반인이라면, 관리국이 뭔지 설명할 필요가 있을 터. 그러나 내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다. 하여 관리국이란, 귀하가 처한 상황을 전문적으로 해결하고 탐사하는 조직이라는 간단한 설명만 남기고 넘어가겠다.] [아래는 나와 내 팀원들이 알아낸 정보다. 부디 귀하의 생존에 유용하길 바란다.] [1. 만약 병원에 들어오기 전, 어떤 경로로든 자신을 환자로 소개했거나 병원 관계인들이 너를 환자로 취급한다면, 안타깝지만 포기해라. 차라리 자살하는 게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