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공방에는 필요한 조건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주거 공간과 철저하게 분리된 곳일 것.] [둘째, 오로지 마법을 위한 공간일 것.] [셋째, 마법을 위한 물건들을 배치하여 내부 공간을 에테르로 가득 채울 것. 해당 작업에 최소 일주일의 기간 필요.] [넷째,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조건. 절대 내부를 볼 수 있는 창문을 만들지 않을 것. 이미 창문이 있다면 모조리 가릴 것.] “흐음.” 이안은 오피스텔의 의자에 앉아 마도서의 내용을 들여보았다. “방을 얻는다고 능사가 아니었네.” 생각보다 조건이 까다로웠다. 주거 공간과 분리해야 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외에도 이런저런 부가적인 게 덕지덕지 붙어있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공방을 이용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보다 마법을 위한 물건이라. 이안은 침음성을 흘리며 가방에 넣어둔 연금술 재료와 완성품들을 테이블 위로 꺼내놓았다. 원숭이 꿈에서 채집했던 큐브 형태의 재료는 이제 거의 다 떨어져 간다. 오피스텔을 돌아다니며 귀신들의 영체를 몇 개 얻어내기는 했으나, 양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마법과 연금술을 반복하면 금세 떨어지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카르텔에서 재료를 구매하자니, 가격이 심각할 정도로 비쌌다. 당장 통장에 있는 돈은 3천 남짓. 하나에 몇백이나 하는 재료를 마구잡이로 구매하기에는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어디 근처에서 괴이 군집이라도 안 나오나.’ 그런 걸 맞닥뜨리지 않는 게 제일 좋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내심 바라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무래도 이미 머리가 마법사의 것으로 바뀐 모양이었다. 이안은 쓴웃음을 지으며 완성품들을 오피스텔의 보관함에 차곡차곡 쌓았다. 마법이 부여된 코트를 옷걸이에 걸어두고, 역방향 조준과 소리 먹는 불꽃을 가지런히 놔둔다. 그 외, 혹시 몰라 다시 만들었던 영장류를 죽이는 칼도 몇 자루 근처에 놓아두었다. ‘근데 영장류를 죽이는 칼이라는 것 자체가 되게 이상한 이름 아닌가. 애초에 칼로 찌르면 영장류는 죽는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마도서를 접고 테이블 위에 올려둔다.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꺼내고 커뮤니티에 글 하나를 작성했다. [제목: 방 하나 구해서 공방으로 만드는 중] [ㅇㅇ] 오피스텔 하나 잡아서 공방으로 개조하는 중이다. 혹시 이미 공방 있는 사람 있으면, 팁 좀 주셈. 글을 올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댓글이 우르르 달렸다. [댓글] -테이밍마스터: ? 벌써 방을 구했다고? 너 금수저냐? ㄴ심각한마법중독자: 의뢰를 많이 해결한 것 같다. 절대 금수저는 아니었어. ㄴㅇㅇ: 님. -심해아귀: 공방을 너에게 최적의 형태로 만들기 위해서는 일단 네 마법에 어울리는 성격으로 환경을 조성해야 해. 예를 들어 네가 인형술을 다룬다면, 방에 인형을 많이 놔두는 게 좋아. ㄴ(3줄 요약 콘) ㄴ심해아귀: 너한테 한 말이 아니야. “성격에 맞는 환경 조성인가…….” 이안은 어째서 이서아의 공방에 강령술과 관련된 물건이 그렇게 많았던 건지 이해했다. 굳이 마법적인 물건이 아니라 오컬트와 연관이 깊은 물건도 환경 조성에는 도움이 되는 모양이다. 다만 성격이 확실한 강령술과 달리, 연금술은 딱히 오컬트적인 물건이 없었다. 있다고 해봐야 현자의 돌인데, 그건 구할 방법도 없다. 외신의 연금술이다보니 양조기나 플라스크, 비커 등을 가져온다고 해봤자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어쩔 수 없나.” 고민 끝에 나온 결론은 결국 방치였다. 마땅한 수단이 없으니, 일단은 그대로 놔두고 나중에 환경을 조성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이서아의 공방에서도 물품 제작은 원활하게 잘 이루어졌다. 굳이 급하게 환경을 조성하겠답시고 나설 필요는 없었다. 이안은 그렇게 생각하며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이제 막 오전 12시가 된 시점. 창밖은 어두웠고, 달은 하늘의 제일 높은 곳에 걸려 있다. 슬슬 편의점으로 출근하러 갈 시간이었다. 이중생활을 하는 느낌이라 기분이 제법 이상했다. ‘빨리 그만두기는 해야지.’ 언제까지 편의점에 묶여있을 수는 없었다. 원활한 자금 조달과 생활을 위해서는, 일상과 비일상 중 비일상에 더욱 초점을 맞춰야만 했다. 일단 생활이 안정될 때까지는 그게 옳은 일이었다. 슬슬 프리랜서로 전환할 때가 되었다. 이안은 오피스텔의 커튼을 모조리 치고, 패딩을 걸치며 밖으로 나왔다. 마침 복도를 걷던 경비 귀신이 그를 발견하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엘리베이터로 향하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귀신이 1층을 꾹 누르고 사라졌다. 이안은 1층으로 내려와 택시를 잡고 편의점으로 출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편의점에 도착했다. 들어가자, 근무를 서고 있던 점장님이 보였다. 이안은 곧바로 그녀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오랜만입니다, 점장님.” “아, 이안이니?” 젊은 편의점 점장님이 이안을 보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 방금까지 재고 정리를 하고 있던 건지, 진열장에 물건이 가지런히 나열되어 있었다. “얼굴 오랜만에 보네. 잘 지냈지?” “저야 잘 지냈죠. 근데 점장님이 왜 제 전 타임에 근무하고 계십니까? 알바는 어디 가고요?” “걔 그만뒀어. 갑자기 일하기 싫대.” 그녀가 한숨을 푹 내쉬며 걸치고 있던 편의점 조끼를 이안에게 건네주었다. 이안은 조끼를 받고, 패딩을 벗었다. “왜요?” “몰라. 자아 찾기 여행하겠다면서 그냥 가버렸어. 그래서 당분간은 내가 서려고.” “흐음…… 그럼 혹시 제 타임 알바도 새로 구해주실 수 있습니까?” 이안의 물음에 점장의 몸이 덜컥 굳었다. 그녀는 목을 삐그덕 움직여 이안을 응시했다. “……왜?” “취직에 성공했거든요.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계속 이어가진 못할 것 같아요.”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일반인에서 마법사로 전직을 해버렸으니, 취직에 성공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래? 축하해.” 점장은 애매하게 웃으며 이안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러곤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도 알바를 새로 구하기 전까지는 계속 일해줄 수 있지?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건데.” “네. 일단 올해까지는 괜찮습니다.” “그럼 됐어. 하아…… 집으로 가면 바로 구인글부터 써야겠네. 아무튼, 취업 축하해. 하는 일 다 잘되길 바랄게.” “감사합니다.” 이안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점장이 소주 한 병을 결제한 뒤 편의점을 나갔다. 새벽의 편의점은 늘 그렇듯이 고요했다. 창문 밖으로는 흐릿한 달빛이 내리는 중이었고, 가로등 아래로 늦은 행인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안은 잠깐 가만히 밖을 응시하다가 일을 시작했다. *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이안은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며 일주일이 넘도록 괴이를 마주치지 못했다. 편의점에서뿐만이 아니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나 생활에서도 신비와 만나는 일은 없었다. 물론 그게 일반적인 경우기는 하다. 신비를 그렇게 쉽게 만날 수 있었으면 이 세상의 인구는 진작에 절반으로 줄어들어 있었을 것이다. 제대로 된 사회가 구축되어 있을 리가 없다. 다만 이안은 일반인이 아니라 마법사였다. 다른 이들보다 신비에 엮일 가능성이 높았고, 또 여태까지 그래왔지만…… 최근에는 굉장히 잠잠했다. 크리스마스에 산타라도 나타날 줄 알았건만, 아주 오랜만에 품은 동심은 깔끔하게 배신당했다. 산타도 마법사는 거르는 모양이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이안의 길었던 아르바이트도 이제 끝을 맞이했다. 그는 자신의 타임에 새로운 인원이 구해진 당일, 곧바로 일을 그만두고 편의점 점장과 같이 밥을 먹었다. 일종의 송별식이었다. 식사를 끝낸 후, 두 사람은 근처 카페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이안은 근처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우며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후우.” 이걸로 아르바이트나 다른 일에 얽매이는 일은 사라졌다. 제법 긴 시간 동안 일해오던 곳이라 약간 기분이 이상하기는 했지만, 이내 깔끔히 털어냈다. 어차피 취직하면 관두기는 해야 할 일이었다. 그게 조금 더 빨리 찾아왔다고 생각하자. 이안은 다 피운 담배를 재떨이에 넣고, 밖으로 나와 거리를 걸었다. 새해가 찾아온 지도 벌써 이틀이나 지났다. 친분이 있는 사람들에겐 진즉에 새해 인사를 보내두었고, 공방 작업도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앞으로 하루, 혹은 이틀만 있으면 공방이 완성될 것이다. 그럼 테마파크 의뢰를 끝내고 맞이한 짧은 휴가도 끝나겠지. 슬슬 다시 업무로 복귀할 시간이 되었다. 이미 무슨 의뢰를 처리할지도 전부 결정해 놓은 상태였다. 이안은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카르텔 어플을 실행하여 미리 봐두었던 의뢰를 다시 확인했다. [폐도서관 탐사] [카르텔 측에서 입수한 정보는 없습니다. 일반인의 출입은 엄격하게 금하고, 마법사와 초능력자에게만 입장을 허가하는 장소라는 사실만 알아냈을 뿐입니다. 하여 카르텔 소속 마법사 또는 초능력자들의 귀한 인적 자원을 소비하는 대신, 돈으로 해당 장소를 탐사하고자 합니다.] [목표: 도서관의 안전 수칙과 정보를 기록하기.] [보수: 기본 한화 1억. 규칙 또는 정보 하나당 추가 보상 1천만.] 무려 보수가 억 단위인 의뢰. 거기에 추가 보수까지 두둑하게 달려있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서 그렇다기보다는, 마법사와 초능력자의 인력비가 상당히 비싸다고 생각하는 게 맞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마주치며 깨달은 그들의 성향은 도덕성보단 이득과 금전에 맞춰져 있었다. 그래서 아무리 난이도가 높은 곳이라도, 일반인 또한 들어가는 게 가능하다면 보수를 그렇게까지 높이 쳐주지는 않는 것 같았다. 대표적으로 테마파크가 그렇다. 반면 도서관은 일반인들은 정식적인 루트로 출입이 아예 불가능하며, 내부 환경이 밝혀진 것이 없었다. 그런 곳에 귀한 인력인 마법사나 초능력자만 들여보내 규칙을 얻어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의 구미가 당길 만한 보수를 책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가려 하지 않을 테니까. 솔직히 이안에겐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였다. 돈을 더 준다고 하면 반길 사안이지,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아무리 봐도 테마파크보단 훨씬 쉬운 의뢰였다. 아마 당분간은 거기보다 어려운 곳에 휘말리는 일은 없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그렇다고 방심은 하지 않는다. 신비가 그렇게 우습게 볼만한 놈은 아니었다. 공방이 완성되고 의뢰를 받으려는 것도 그래서였다. 최대한 안전을 지킬 수 있는 물건은 만들고 움직이는 게 훨 나으니까. 자신감이 높아졌다고 해서 불나방처럼 머리부터 들이밀 생각은 없었다. 그러다가 죽으면 자연사나 다름이 없다.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준비를 마치고 움직이는 게 옳은 일이었다. 앞으로도 그런 기조가 바뀌는 일은 없을 거다. * 바티칸에서 일주일 동안 한국어를 공부한 끝에, 체칠리아는 드디어 낯선 아시아의 땅에 발을 들였다. 긴 시간 날아오며 잠을 푹 잔 덕분에 몸은 개운했지만, 시차 적응까지는 아직 시간이 더욱 필요했다. “…….” 그녀는 온갖 총기와 무기, 성수, 나이프와 옷가지가 든 케리어를 질질 끌며 공항 밖으로 나갔다. 특수 처리를 한 케리어라 공항에서 붙잡히는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으으, 추워.” 한국의 겨울은 그 악명만큼이나 춥고 시렸다. 체칠리아는 목도리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이탈리아어로 적힌 쪽지를 확인하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공항에서 제일 가까운 대성당으로 찾아가라…… 그냥 십자가가 있는 곳으로 가면 되겠지.’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십자가 목걸이를 손으로 쥐고, 가만히 성스러운 기운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공항과 가까운 성당을 포함한 교회를 찾았다. 그리고 그 수가 가히 압도적으로 많다는 걸 인지한 즉시, 그녀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왜, 왜 이렇게 교회랑 성당이 많아……?’ 편의점보다 교회의 수가 훨씬 많은 대한민국의 땅덩어리는, 평생 바티칸에서만 지내온 그녀에게 있어서 미로와도 같은 장소가 되어버렸다. “……끄잉.” 체칠리아는 울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