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션!” 환자의 입에서 울컥하고 터져 나온 피와 토사물을 빨아들이는 소리가 소생실을 갈랐다. 그와 동시에 한재언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후두경을 쑤셔 넣고 튜브를 박아 넣었다. 기도 확보, Airway. 외상 환자 처치의 알파이자 오메가. 일단 숨은 쉬게 만들어야 다음이 있다. 내 역할은 Circulation. 순환. 이민재와 함께 환자의 몸에서 새어 나가는 피를 어떻게든 막고, 그만큼 채워 넣는 역할. 나는 환자의 축 늘어진 몸 위로 올라탔다. 찢겨 나간 바지 아래로 드러난 끔찍한 상처. 피부와 근육을 뚫고 튀어나온 뼛조각과 그 주변에서 울컥울컥 쏟아지는 피. 개방성 골반 골절. “Pelvic binder 됐습니다!” 환자의 골반을 거대한 벨트, 펠빅 바인더로 꽉 조였다. 부서진 골반뼈를 안정시켜 내부 출혈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필사적인 발버둥. 하지만 바인더 아래로 스며 나오는 피의 양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게 최악이었다. 내 머릿속에서 지난 1년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모든 좆같은 상황들을 정의하는 단어들이 비명처럼 울려 퍼졌다. 대량 출혈, 쇼크, 대사성 산증, 저체온증, 혈액응고장애. 죽음의 트라이앵글이고 나발이고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건 그냥 곧 죽을 사람인데. “수액 2리터 들어갔는데 혈압 왜 그대로냐고!!” 이민재가 거의 울부짖듯 소리쳤다. 이민재의 손은 압력백을 쥐어짜다 못해 터뜨릴 기세였다. 링거 폴대에 걸린 투명한 수액 팩 두 개는 이미 홀쭉해져 있었다. 맑고 투명한 액체가 굵은 혈관 라인을 타고 환자의 몸속으로 미친 듯이 쏟아져 들어가고 있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들어가는 속도보다 어딘가에서 터져 나오는 속도가 더 빨랐다. 하지만 모니터 위에서 깜빡이는 숫자는 우리의 기도를 비웃고 있었다. 제발 좀 올라라, 이 개같은 혈압 새끼야. 나는 환자의 복부를 짓누른 채, 내 눈앞 모니터에 떠 있는 숫자를 저주했다. 저 붉은색 숫자들이 내 모든 노력을 비웃고 있었다. [BP: 65 / 35] 지랄. 나는 속으로 욕을 뱉었다. 2리터? 20리터를 들이부어도 안 오를 거다. 수액을 들이붓는데도 오르기는 커녕 더 떨어지고 있다. 혈관 안에 더 이상 흐를 피가 없다는 소리다. 지금 환자 몸은 그냥 밑 빠진 독이다. 한쪽 팔에 잡은 라인으로 수액이 쏟아져 들어가는 동시에 박살 난 골반 아래로는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가고 있다. [HR: 145] 미친 듯이 깜빡이는 심박수. 그래, 심장 저 새끼 혼자만 지금 존나게 일하고 있다. 몸에 피가 없으니 빈 펌프질이라도 해서 어떻게든 뇌랑 심장에 마지막 남은 한 방울까지 쥐어짜 보내려는 처절한 몸부림인 거다. 하지만 저것도 얼마 못 가겠지. 저러다 지쳐서 그냥 V-fib(*심실세동)이나 Asystole(* 무수축)로 넘어가는 건 순식간이다. [SpO2: 92%] 산소를 15리터짜리 마스크로 코와 입에 거의 쑤셔 박고 있는데도 떨어지고 있다. 산소를 실어 나를 피 자체가 없다는 뜻이다. 도로 위에 차가 없는데 신호등만 파란불이면 뭐 하냐고. 배달 갈 차가 없는데. “쌤! 엘리베이터 타기도 전에 어레스트 오겠는데요? 외상외과 언제 와요!” 백은서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저 순진한 1년 차의 눈에는 지금 이 상황이 세상의 종말처럼 보이겠지. 틀린 말은 아니다. 적어도 저 환자에게는 종말이 맞으니까. 이민재가 화이트보드 앞에서 얼어붙은 박성정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박성정의 얼굴은 이미 하얗게 질려 핏기조차 없었다. 그래, 저게 정상적인 1년 차의 반응이지. 저 지옥 한복판에서 뭘 하겠다고 덤비는 내가 미친놈인 거고. “라인 하나 막혔어요! 역류해요!” 젠장. 간호사의 외침이 들렸다. 아까 역류하던 그 라인이 다시 막혔나? 혈압이 너무 낮아 어렵게 잡은 라인 하나가 죽어버렸다. “IO 니들 가져와! 뼈따구에 구멍이라도 뚫어서 쏴야겠다!” 이민재는 이제 거의 반쯤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 Intraosseous access(골내주사). 정강이뼈에 드릴로 구멍을 뚫어서 수액을 때려 박겠다는 소리다. 저건 진짜 마지막 수단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겐 그 마지막 수단 말고는 남은 게 없다. 그 와중에도 4년 차 한재언은 묵묵히 환자의 머리맡에서 앰부백을 짜며 기도를 확보하고 있었다. 저 선배의 멘탈은 대체 뭘로 만들어진 걸까. “한현재! 압박 제대로 해! 손 떼지 마!” 이민재의 불호령에 나는 정신을 차렸다. 손바닥 아래로 느껴지는 감촉이 끔찍했다. 단단해야 할 복벽은 온데간데없고, 마치 물컹한 피주머니를 누르는 것 같은 불쾌하고 무력한 감각만이 전해져 왔다. 체중을 실어 누르는 이 행위가 과연 의미가 있기는 한 걸까. 그냥 맨손으로 터진 댐을 막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꼴 아닌가. “피 왔습니다!” 구세주 같은 목소리였다. 혈액은행에서 달려온 인턴의 손에 O형 혈액팩 두 개가 들려 있었다. “어, 바로 달아! 빨리!” 이민재가 소리쳤다. 간호사가 수액 라인을 끊고 혈액팩을 연결했다. 압력백을 감아 쥐어짜자 검붉은 피가 튜브를 타고 환자의 몸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나는 여전히 환자의 복부를 미친 듯이 압박하고 있었다. 아, 촉감 최악이네 이거. ‘…씨발.’ 이대로 끝인가. 그냥 이렇게, 내 손 밑에서, 한 사람이 서서히 식어가는 걸 구경만 해야 하는 건가. 이 모든 노력이, 이 모든 발버둥이 그냥 죽음이라는 정해진 결말을 몇 분 늦추는 것에 불과한 쇼인가. 무력감이 온몸을 덮쳤다. 이 지옥 같은 응급실에 들어온 이후로 수없이 겪었던, 하지만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그 엿같은 감각. 눈앞의 모든 것이 느리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울부짖는 모니터 소리, 선배들의 절규에 가까운 고함, 내 손바닥 아래에서 희미하게 꺼져가는 생명의 온기. 아, 젠장. 갤러리라도 켜? 1년 차 때의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다. 빙의. 그리고 메스의신. 빙의를 또 쓰자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이 상태에서 배를 뭘 쓴다고 될 것 같지도 않은데…. 배를 가른다고 해결될 것도 아니고…. 그때는 복부만 문제였지만, 지금은 골반 뼈따구도 문제다. 문제가 더블이라고. 괜히 시간만 더 소요되는 결과를 맞이하지 않을까. 오히려 내 몸만 12시간 동안 지옥을 맛보게 되겠지. 환자는 환자대로 죽고 나는 나대로 반병신이 되고. 이건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다. 하 씨, 모르겠다. 나는 애써 그 유혹을 떨쳐냈다.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일에 집중하자. “선생님!” 나는 거의 정신이 나간 채 백을 쥐어짜고 있는 이민재를 향해 소리쳤다. “피! 피는 제가 짤게요! 선생님은 초음파 한 번만 더 봐 주세요!” “어, 그래! 고맙다!” 이민재는 내게 압력 백을 넘겨주고 다시 초음파 프로브를 잡았다. “은서야!” 나는 옆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서 있는 백은서의 어깨를 붙잡았다. “너! 그거! Pelvic binder 풀리지 않게 양쪽에서 꽉 잡고 있어! 골반에서 피 더 나면 진짜 끝이야!” “네!” 백은서가 호다닥 바인더를 잡기 시작했다. 이민재의 얼굴은 땀으로 번들거렸다. “FAST! FAST 좀 보자! 어디서 이렇게 터지는 거야!” 곧이어 이민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비장. 비장이..” 나는 혈액 팩이 담긴 압력 백의 펌프를 미친 듯이 쥐어짰다. 차가운 피가 튜브를 타고 환자의 몸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래, 지금은 백만 짜고 있으니까…. 한번 도움을 구해보자. 아까는 뭔가 할 일이 많던 상황이고, 지금은 백만 쥐어짜면 되니까. 지금이 아니면 질문할 시간도 없어. 나는 황급히 허공의 파란 창을 켜고,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뒤진 의학자 갤러리] 제목 : 헬프헬프씨발존나급해요 작성자 : 헬조선노예1 20대/M, TA, Open pelvic Fx c massive hemoperitoneum. BP 60s, HR 140s. MTP 가동중인데 반응 없음. 외상 팀 기다리는중, ETA 10+ min. [댓글] ㅇㅇ (210.94) : 와… 좀 심하네. 저 정도면 반쯤 시체 수준 아니냐. 수술실망령3 : 어떠냐 내과 놈들아. 이게 진짜 전장이다. 니들이 맨날 차트만 보면서 딸깍거리는 거랑은 차원이 다르다고. ㄴ 라떼는말이야 : 이딴 댓글 달 시간에 저 환자 어떻게 살릴지나 고민해 봐라 이 싸이코 새끼야. 갤러리는 부질없는 댓글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언제나 명쾌한 답을 알려주던 갤러리마저 의미 없는 댓글들로 찼다는 게 뭘 의미할까. 과연 일부러 해결책이 있는데도 사람 살리기에 진심인 미친 망령들이 저런 댓글을 달까? 아닐 거다. 많이 절망적인 상황이라는 뜻이겠지. 바로 그때. 환자의 머리맡에서 앰부백을 짜던 한재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왜! 뭐!” 이민재가 고개를 치켜들며 대답했다. “EtCO2(*호기말 이산화탄소 분압), 20이예요. 심장 곧 멎습니다. 시간 없어요.” 정상 수치는 35에서 45. EtCO2가 20이라는 것은 심장이 뿜어내는 피가 거의 없어서 폐로 이산화탄소를 운반할 혈액조차 남아있지 않다는 뜻이다. 심정지의 가장 강력한 예고 신호 중 하나. 그리고 그 예고는 곧바로 현실이 되었다. “BP 55에 30입니다! 계속 떨어져요!” 간호사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모니터의 심박수는 동시에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 미친듯이 치솟고 있었다. 155회. 160회. 165회… “하, 씨발! 미치겠네! 안 돼! 안 된다고 심장 새끼야! 버텨!” 이민재가 모니터를 향해 절규했다. 나는 그 와중 내 머릿속 갤러리 창에 새로고침된 마지막 댓글 하나를 보았다. 메스의신 : 빙의 써봐라 ㅇㅇ. 내가 해결해 줄게. … ……?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해결한다고? 이걸? ㄴ 헬조선노예1 : 해결할 방법이 있다고?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