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화한 거리에 살수들이 대놓고 준동했다. 소란을 마주한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밤중에 그만한 숫자의 관군이 달려가는 것 자체부터가 흔치 않은 일이다. 소림이 자리한 하남 땅에서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천향루가 일대의 명물로 자리하고 있엇던 탓일까. 당시에 근처에 자리했던 행인들이 적지 않았다. 자연스레 소문이 빠르게 번져나갔다. 소문을 퍼뜨리는 이들 중에는 중소방파에 속한 강호인들도 끼어 있었다. 부족한 안목으로 밤중에 벌어졌던 일에 대해 살을 붙이는데, 유독 말솜씨가 탁월한 이들은 근처에 자리한 명문가의 빈객으로 불려가기도 했다. 달빛 아래 피워올렸던 거대한 련(蓮)의 모습이 워낙에 압도적이었던 탓이다. 신녀문주의 출신을 가늠하려고 애쓰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 때 불가에 몸담은 여인 같소만.” “일리가 있소. 손속이 잔혹한 듯싶으면서도 끝내 살생은 하지 않는다더군. 어쩌면 새외의 포달랍궁(布達拉宮) 출신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오.” “도인이 맞소. 불가 출신이라기엔 검격과 장법이 과할 정도로 패도적이더이다. 말만 들어서는 천산의 그 자와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지…….” “그런 이야기는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오. 민초들 앞에서 그리 말했다간 불경하다며 맞아죽을 수도 있소.” 하남은 중국의 삼대 고도(古都) 중 둘이 위치한 땅이다. 인구가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많다는 뜻이다. 오죽했으면 근처의 현까지 그 소문의 여파에 휩쓸릴 지경이었다. “도화경에서 내려오신 신선이시라지?” “저어, 예전에 뵌 적이 있는 것 같아요.” “예화야, 헛소리 하지 말고 어서 빨래나 나르렴.” “진짜인데…….” 화양현. 근래 들어 인구가 엄청나게 늘어난 현이었다. 주루는 여럿 있었으나, 신기하게도 기루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몸을 사사로이 다루는 여인이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일례로 화양현에서 가장 잘나가는 회화루조차 악기를 다루는 예기만을 보유하고 있었다. 작년부터 화양현에 자리잡은 불문율 탓이다. 회화루주와 그 아래에 있던 흑도들이 반불구가 되어 옥에 틀어박히고, 뒤이어 들이닥친 관과 무림맹이 기이하게 연합하여 흑도들을 탄압했다. 현재의 회화루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회화루, 루주가 머무는 방 안. 생각보다 단촐한 내부에서, 두 사내가 마주보고 있었다. “그래서, 하오문에 들어올 생각이 없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되겠소?” “당장은, 그렇소만.” “경직되어 있는 모습이 썩 보기 좋지는 않구려. 남들이 보면 우리가 협박하는 줄 알겠소. 허허.” “인기척도 없이 루주님이 계신 방에 그렇게 들어오시면 누구라도 그렇게 반응하지 않을까요.” 한쪽 책상에 앉아서 붓을 놀리고 있던 소녀가 당돌한 어조로 말했다. 눈빛에 총기가 가득 깃들어 있었다. 예기나 입을법한 화려한 옷만 아니었더라면 귀족가의 여식이라 착각할 만했다. 영영. 회화루에서 가장 유망한 예기였다. 지학이 겨우 넘은 연배에 비해 오성이 매우 뛰어나 총관 일도 도맡아 하곤 했다. 과거, 루주의 처소에 갇혀 있었으나 서연의 도움을 받고 구원받았던 여아이기도 했다. “상납을 바라시면 그리 할게요. 하지만 하오문의 휘하로는 들어갈 수 없어요. 죄송합니다.” “자네 딸인가?” 흑의인이 상석에 앉아있는 사내를 향해 불쑥 물었다. 매 각주, 아니. 매 루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오. 지현께서 가르치시는 아이지.” 영영이 덧붙이듯 말했다. “제일예기 겸, 총관도 겸하고 있어요.” “당돌하구나.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런 것이냐?” “아니요. 하오문에서 오셨으면 저에 대해서도 철저히 알아오셨을 것 아니에요. 그러면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면을 보여드려야 제 말을 귀담아 들으시겠죠.” 가벼워보이는 목소리에 책사나 가질 법한 기백이 어려 있었다. 잠시 둘 사이에 시선이 교환될 때였다. “내가 더 탐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더냐?” “저 혼자만이라면 하오문으로 가도 좋아요. 잘 할 자신이 있거든요.” 소녀가 가볍게 미소지었다. 보란 듯이 머리칼을 귀 옆으로 넘기면서다. 동작이 꽤나 앙증맞았다. 장성하면 뭇 남성들을 홀릴 미인으로 자랄 것이 분명했다. ‘일 년 사이에 세를 몇 곱절로 불렸다더니.’ 흑의인은 갈색 눈동자를 반짝이는 소녀를 눈에 새겼다. 회화루가 세를 엄청나게 불릴 수 있었던 것이 누구의 역량이었는지를 잠깐 사이에 깨달은 것이다. 연기 역시 능숙했다. 눈썰미를 타고난 고수가 아니라면 저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오문에 들인다면 아래부터 천천히 장악하여 제 입맛대로 굴릴 아이다. 그들의 문주와 결이 비슷하지 않았더라면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결론을 내린 흑의인이 입을 열었다. “이미 모시는 분이 있는게로구나. 아쉽게 되었다. 먼저 발견했더라면 하오문이 새 날개를 얻었을 터.” 영영은 옅게 미소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축객령이라는 것을 눈치챈 흑의인이 대소하다 매 루주를 향해 말했다. “이만 가보겠소. 그리고 애야, 하오문은 언제고 너를 빈객으로 대할테니, 마음이 바뀌면 호남의 장사(長沙)로 오려무나.” “네.” 흑의인은 마지막까지 웃으면서 사라졌다. 살수보다 은밀한 경신법이었다. 매 루주는 일다경이 지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심장 떨어질 뻔했다 이것아.” “잘 하셨어요. 거의 티 안 나던데요?” “티가 안 나기는 무슨.” 매 루주는 새삼 경이로운 눈으로 영영을 흝었다. 전대 회화루주의 처소에 갇혀 있던 여아가 이리 탁월한 견식을 가졌을 줄 누가 알았을까. 전직 흑도인 그도 최소한의 안목은 있었다. 그 분이 다녀간 이후로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다. 모종의 계기로 침잠했던 재능이 개화한 모양이었다. ‘으음.’ 아직도 그 때를 생각하면 뼈가 아리는 듯했다. 괜시리 왼팔이 저려왔다. ‘당장 신경써야 할 일은 아니니.’ 매 루주는 옅은 한숨을 내쉬며 시선을 창 밖으로 돌렸다. 새로 들어선다는 문파의 공사터가 그의 시선에 담겼다. 저만한 대방파의 등장은 회화루 입장에서는 자연재해나 마찬가지였다. 뭇 강호는 철저한 약육강식의 이치에 충실한 탓이다. 흑도일 때는 그런 것에 심력을 쏟을 이유가 없었다. 상대가 더 강하면 굽히고, 약하면 쳐들어가면 그만이었으니. 늦은 나이에 백도 행세를 하려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근래에, 악인들을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꼴로 만든다는 신녀문주의 소식을 전해들은 탓에 낮중에도 몸이 괜시리 떨렸다. 천하에 그런 인간이 둘씩이나 있는 것도 놀라웠다. 어쩌면 그 분도 신녀문도가 아니었을까. 매 루주는 괜한 상념을 애써 흘려보냈다. ***** 천호 이명산은 무거워진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뇌옥에서 죄인들을 문초하다 밤을 샌 탓이다. 쇠창살 밖을 보니 해가 중천에 떠올라 있었다. 창가로 내리쬐는 햇볓이 유독 따갑게 느껴졌다. 처음 있는 일이다. 정 5품의 무관이기 전에 명문 무가의 자제였다. 자시(子時)를 넘겨 퇴청하는 일이 드물었다. 죄인들의 치료를 도맡았던 의원이 찾아와 입을 열었다. “사지가 전부 잘려나가 사경을 해메는 이들이 다섯인데…….” “필시 엄살일 겁니다.” “…….” 신녀문주가 말했다. 출혈을 진기로 틀어막았다는 말을 덧붙이면서다. 어찌하여 이곳까지 따라온 것일까. 천호는 그것까지 알 수 없었다. 무슨 명분으로 그녀를 막아세운단 말인가. 제압도 신녀문주가 했고, 품계도 신녀문주가 높았으며, 심지어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한꺼번에 덤벼도 어찌하지 못할만큼 강했다. “…….” 그의 상급자인 정 4품 지휘첨사는 뇌옥 내부를 가볍게 살피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갑자기 고뿔에 걸렸다던가. 통보하듯 병가를 내고는 돌아오지 않았다. 평생 병이라고는 앓아본 적도 없는 호방한 인물이 그러했다. 지휘동지는 아예 등청하지도 않았다. 수하들에게 밤중에 일어났던 일을 전해듣고선, 평소에 그리 꺼리던 출장을 나갔단다. 족히 칠주야는 지나야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덧붙이면서다. 고위 관리들이 그럴진대, 그보다 신분이 낮은 자들은 오죽하겠는가. 자고로 무관이란 눈치가 없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직종이다. 그 탓인지 종 9품의 말단 무관들조차 상황이 요사하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당장 옆에 있는 부관만 해도 그랬다. “…….” 죄인들을 문초하는 도중에도 양손을 무릎에 댄 채 허리를 꼿꼿하게 세웠다. 평소의 호기로운 태도를 생각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몸가짐이었다. 누가 보면 벌이라도 받는 듯했다. 뇌옥의 입구에서 창을 들고 있는 말단 무관들도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깐 채 서 있었다. 평소의 군기가 강하기는 했으나 이 정도는 아니었다. 죄인들을 압송하며 처참한 몰골을 마주한 탓이 컸다. 산송장이라는 단어 말고는 마땅한 것이 떠오르지 않을 지경이었다. 끔찍한 몰골의 사체들을 마주한 경험이 적지 않았는데도 당황했다. 저리 살 바에는 죽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자연스레 품게 되었다. 가장 괴로운 이를 뽑으라면 당연 이명산일 것이다. 본디 뇌옥은 공간이 비좁은 탓에, 신녀문주와의 간격이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당장 바로 옆자리에 신녀문주가 앉아 있었다. 살수들에게 분노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상석으로 안내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신녀문주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기파가 태양빛보다도 따가웠다. 불편한 티를 내지도 못했다. 혹 화가 자신을 향할 것을 염려한 것이다. 천명검 대주들에 관한 일화는 관리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비리를 밝혀내면 그 자리에서 참한다던가. 한여름에 빙공에 당해 얼어죽은 우시랑(右侍郞)의 일화는 뭇 관리들에게 재앙으로 기록되었다. 우시랑은 적어도 죽음으로 안식을 찾았다. 신녀문주는 그조차도 허락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망할……!’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할 뿐, 겉으로는 짐짓 담담한 행세를 해야만 했다. 이명산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교차로 검증해보니 대살문과 흑룡회가 합심하여 일을 벌인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민초들이 해를 입을 뻔했으니, 천명검에서 나서기에 충분한 명분이지요.” “그렇군요.” 서연은 속으로 감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내심 명나라 무관들을 과소평가하고 있었음이다. 아무리 군기가 단단하다고는 하나, 밤을 새서까지 배후를 찾아줄 줄은 몰랐다. 문관과 무관을 막론하고 일정 경지에 오른 관리들은 하나같이 직업 정신이 투철했다. 살신성인이라 느껴질 정도였다. ‘명나라가 강대한 이유가 있었구나.’ 황실의 힘이 강대한 것도 자연스레 이해가 갔다. 관리들이 이토록 투철한데, 나라가 약한 것이 되려 이상했다. 서연이 속으로 흡족함을 느끼던 때였다. “처벌은 어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이명산이 불쑥 물었다. 서연은 이 와중에도 자신을 신경 써주는 배려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나라에서 정해둔 법도가 있을진대, 말이라도 저렇게 해주는 것이 참으로 고마웠다. 서연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어찌 관여하겠습니까. 나라에서 정한 법대로 집행하는 것이 맞지요. 오늘 보여주신 모습을 보니, 천호께서는 앞으로도 잘 하시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필시 높은 곳까지 올라가시겠지요.” “……그렇습니까?” 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처럼 초심을 잃지 않으신다면 분명 그리 되실겁니다.” “…….” 용무가 끝났기에 지체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호의 배려로 뇌옥 내부에 들어올 수 있었지만, 이 이상 머물렀다간 관리들의 일에 방해가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언젠가 찾아뵙지요.” “……예.” 천호는 웃고 있었다. 서연은 걸음을 옮겼다. 근처 객잔에서 잠을 청하고 있는 제자들을 데리고 화양현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금룡상단주께서 구해주셨다는 문파의 새 터를 둘러보고, 문파의 상징으로 삼을 조각을 어디에 만들어야 할지 생각해봐야 했다. 점차 멀어지는 서연의 뒷모습을 살피던 말단 관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제 막 정문을 나서셨습니다.” “언젠가, 언젠가 찾아뵌다고 하신 것이냐? 평생 죽을 날까지 이 시간에 퇴청하라고? 전쟁통에도 그렇게는…….” 절망 어린 소리가 뇌옥에 울려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