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연 일행은 진령산 방향으로 향했다. 산길을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묘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짐승의 사체가 썩어 문드러지는 듯한 역겨운 냄새였다. “여기서 잠깐 기다리시오.” 팽무성은 일행을 멈춰 세우고 구덩이로 다가섰다. 그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자신의 도를 구덩이 속으로 찔러 넣었다가 뺐다. 찐득한 무언가가 도신을 타고 흘러내렸다. 오래전 썩어내린 사체의 핏물이었다. “…….” 화련이 미간을 좁혔다. 진득한 사기를 보아하니 한두 마리가 묻혀 있는 것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직은 검수보다 방술사로서의 경험이 많은 화련이었다. 진령산에 들어서기 전부터 대기를 메우던 사기의 정체가 이제야 분명해졌다. 암단화는 냉기, 다른 말로는 음기를 품은 영약이다. 빙설로 뒤덮인 땅이 아니라면, 지맥의 기운을 받아 자라는 영약이 양기를 품는 것이 자연의 이치. 허나 이 이치를 꿰뚫고 억지로 음기를 머금게 하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기 또한 음기의 일종이었다. 이따금 공동묘지에서 음기를 잔뜩 품은 영약이 나타나고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물론 평범한 묘지가 내뿜는 사기는 그저 그런 수준이라서, 나오는 영약의 수준도 기껏해야 십년 하수오 정도에 비견될 수준이었다. 허나 산 전체를 시체로 가득 메운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암단화 만한 영약이 자랄만도 했다. 화련은 속으로 혀를 찼다. ‘산 전체가 재배지였구나.’ 녹림이 헛소문을 퍼뜨리고 길목을 막아선 이유가 명백해졌다. 이토록 진동하는 시취라면 일반인조차 이상함을 알아챌 터였다. 사천당문이 연루되었다는 말 역시 신빙성이 있었다. 암단화는 영약이기 전에 독초다. 이만한 음기를 머금은 독초는 사천당문으로서도 쉽게 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산 전체를 재배지로 만들려던 모양이오.” 팽무성도 곧 그것을 알아챘다. 온 산이 구덩이로 가득했다. 짐승의 사체만 들어있을 리 없었다. ‘지독하다.’ 팽무성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산 깊숙이 들어갈수록 호흡할 때마다 지독한 사기와 음기가 혈도 속으로 스며들었다. 이렇게 되면 마치 빙공에 당한 사람처럼 운기의 수발이 느려지고, 몸 또한 둔해지기 십상이었다. 녹림도가 어찌하여 진령산 주변만 철저히 지키고, 정작 산 안쪽은 내버려두나 했더니 이런 내막이 있었던 것이다. ‘이 자체로 독이나 다름없구나.’ 팽가의 독문무공인 혼원벽력신공(混元霹靂神功)을 익혔는데도 이 정도였다. 일반적인 심법을 익힌 무인이었다면 자신의 곱절은 몸이 굳었을 것이다. 팽무성은 둔해진 감각을 되찾고자 끊임없이 손을 쥐었다 폈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돌려 서연을 응시했다. 서연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놀라운 것은 그녀의 등에 안긴 화련 또한 멀쩡해 보였다는 점이다. 아무리 정순한 도가의 심공을 익혔다 한들, 매 순간 기를 발산하지 않고서야 저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피독주라도 물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종남 장문인에게 받았던 영목으로 된 각패의 비호를 받는지도 몰랐다. 청목족들이 신으로 모시는 나무라고 했다. 그 자체로 신령스러운 기운을 풍겨 사악한 기운으로부터 보호받는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민간에서는 여전히 전설처럼 여기는 말이다. 팽무성 또한 천명검에 합류하고 몇 년이 지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 사악. 허공을 가르며 다시금 유혼이 서연의 어깨 위로 날아들었다. 유령처럼 날갯짓 소리 하나 없이 내려앉는 그 모습은 신비롭기 그지없었다. “저쪽으로 가면 될 듯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서연이 앞장서고 있었다. 말려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음에도 팽무성은 서연을 뒤따르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저벅. 산속이 사기로 물든 탓에 그 흔한 벌레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발소리가 유독 크게 울렸다. 서연은 담담한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시체는 어렸을 때 질리도록 보았던 탓에 익숙했다. 다만 제 등에 안겨 있는 제자가 문제였다. 이런 곳에 오래 머물게 하고 싶지 않았다. “팽 공자. 속도를 높여도 될까요?” “……그러도록 하시오.” 우웅! 결심한 순간 전신에 맺혀 있던 진기가 격렬하게 맥동했다. 산 전체에 깔린 막대한 사기는 서연의 신체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했다. 찰나지간에 신형이 앞으로 쏘아지며 잔상을 남겼다. 이형환위(移形換位)라 착각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속도였다. 팽무성은 경악으로 가득 찬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속도가……!’ 적진 한복판에서 자신의 신법을 자랑하기라도 하려는 것인가. 팽무성은 온 기운을 발끝에 집중시킨 다음 황급히 뒤쫓았다. 파악! 그 역시 내로라하는 고수이자 팔대세가 중 하나인 하북팽가의 장자였다. 고절한 신법을 펼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서연의 뒤를 따라잡았다. 달리는 와중에도 진기를 억지로 순환시켜 체내에 쌓이는 사기를 해소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럼에도 평소보다 내력 순환에 어려움을 겪었다. 자신이야 철저한 훈련을 거쳤으니 그렇다 쳐도, 서연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은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무리하고 있는 것 아닌가?’ 오죽했으면 적진에 도달하기도 전에 서연이 탈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 정도였다. 팽무성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지금 속도로 가도 괜찮겠소?” “괜찮습니다.” 서연의 속내는 사뭇 달랐다. 주변을 샅샅이 살피며 가느라 속도를 더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오가며 매복한 산적 무리를 다섯이나 보았다. 속도를 높여 빠르게 지나가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알 수 없었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인기척이 많다.’ 서연은 미간을 좁히며 걸음을 멈췄다. 팽무성 또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처음보다 호흡이 약간 거칠어져 있었다. “사방이 녹림도로 가득하구려. 이전처럼 빠르게 주파하는 것은 무리겠소.” 사기가 점점 짙어졌다. 그 말은 저 앞을 지키고 있는 녹림도 또한 보통 무인들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위로 가겠습니다.” “……위라니?” 탓! 서연은 곧장 나무의 튀어나온 부분을 밟으며 하늘로 솟구쳤다. 파라락! 옷자락이 펄럭이며 나뭇가지를 딛는 몸놀림은 맨발로 땅을 딛는 것처럼 유려하기 그지없었다. “……허.” 팽무성의 허탈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팔보다 얇은 나뭇가지를 딛고 나아가는데도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얼핏 들으면 바람 소리로 착각할 만큼 미미했다. ‘청목족 혼혈이라도 되는 것인가.’ 이쯤 되니 진지하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종남파에서 저만한 보신경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청목족은 영생에 가까운 시간을 산다고 했으니, 어쩌면 손녀가 아니라 진짜로 종남 장문인의 숨겨진 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보신경만큼은 천하 일절이라더니.’ 팽무성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서연을 뒤따랐다. 서연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은밀하게 나아간다는 목적만은 지켜냈다. 화아아악! 빽빽하게 솟은 나무 위까지 경계할 정도로 철저한 녹림도는 없었다. 설령 있다 한들, 작정하고 인기척을 감춘 서연과 팽무성의 실력을 감지할 정도로 뛰어난 자는 없었다. 멀지 않은 곳에 동굴이 보였다. 입구에 꺼진 횃불이 놓여 있었는데, 동굴에서 새어 나오는 음기에 영향을 받은 듯 축 늘어져 있었다. ‘제대로 찾아왔다.’ 서연은 주위를 둘러보고 인기척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조심스럽게 발을 디뎠다. 어둠에 영향을 받지 않는 시야를 타고났다. 음기로 가득 찬 동굴 속이 대낮처럼 환히 보였다. 그때, 동굴 벽면에서 인영이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서연이 다가오는 것을 그제야 눈치챘는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품속에서 다급히 무기를 꺼냈으나, 서연의 발검이 곱절은 빨랐다. 어느새 빛무리가 일렁이는 검이 상대의 목덜미에 들이밀어져 있었다. “항복입니다.” 여인보다는 소녀에 가까운 목소리였으나, 놀랍게도 겁에 질린 기색은 없었다. 연녹빛 눈동자가 서연을 빤히 응시했다. “구파의 도인이신 듯 한데, 검을 거두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자색이 뒤섞인 짧은 흑발에 녹안을 지닌 여인이었는데, 그녀가 입고 있는 녹빛 경장(輕裝)이 유독 눈에 띄었다. “이곳까지 오신 이유를 대충 알겠습니다. 암단화 때문이지요? 저 역시 그것 때문에 왔습니다.” “입을 열어도 된다고 한 적은 없는데.” 서연은 무정하게 느껴지는 말투로 말했다. 목을 언제든 벨 수 있다는 허장성세를 부리기 위함이었다. “그러면 물어보십시오. 만족하실 때까지 답해드리겠습니다.” 담담한 말투에서부터 성격이 드러났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기보다는, 애초에 사람 자체가 무감정한 듯했다. “사천당문에서 왔나?” “그렇습니다. 현 가주께서 제 아버지 되십니다.” 예상보다 더 거물이었다. 서연의 얼굴에 경계심이 한층 짙어졌다. 순순히 답변하는 척하다가 독을 뿌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곳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던거지?” “저도 정확히는 모릅니다. 다만 가문의 오 장로가 연루되었다고 짐작하고 있는 중입니다.” “오 장로?” “칠 년 전에 파문되었던 인간입니다. 절차대로라면 사지근맥을 전부 자르고 독단도 부쉈어야 했는데, 가주께서 쓸데없이 정이 많으신 분이시라 몸 성히 쫓겨났었지요.” 곧 그녀의 무감정한 시선이 서연의 뒤편에 있는 팽무성을 향했다. “이런 식으로 가문의 명예를 더럽힐 줄 알았다면 억지로라도 목을 쳤을텐데 말입니다.” 팽무성이 입을 뗐다. “녹림이 아무리 미련하다 해도 옛적에 파문당한 장로에게 속아 넘어갔을 것 같지는 않다만.” “공표하지도 않은 사실을 무지렁이들이 어찌 알았겠습니까.” “듣기로는 폭우이화침도 가지고 있다던데.” “그 사실은 저희도 안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저희라는 말을 들은 팽무성은 혀를 찼다. 여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동굴 곳곳에서 날카로운 기파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명색이 사천당문의 직계다. 어찌 홀로 보냈겠는가. 곧 사방에서 녹색 옷을 입은 무사들이 우수수 나타났다.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은 기세를 풍겼다. “패검대의 팽무성인가.” “아가씨를 놓아드리도록.” 일갈하려던 것을 억지로 참고 노기를 다스리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동굴에 잠입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출수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서운 기세를 풍겼다. 허나 서연은 여전히 검을 거두지 않았다. 츠츳! 오히려 검 끝에 맺힌 진기가 이전보다 더욱 세찬 기운을 내뿜었다. 어두웠던 동굴 내부가 순간적으로 밝아졌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진정 해보겠다는 건가……!” 당가의 무인들이 나섰다. 그중에는 당장이라도 비도를 출수할 것처럼 구는 무인들이 적지 않았다. 중원에서 독으로는 제일이라 했다. 시야를 새외까지 넓혀야 비로소 견줄 만한 집단이 생길 정도였다. 그때였다. “그만.” 서연에게 목이 겨눠진 여인이었다. 그녀의 연녹빛 눈동자가 서연을 빤히 응시했다. 처음으로 놀라움이라는 감정을 비추고 있었다. “내려오십시오. 들켰습니다.” “…….” 당가 무인들의 움직임이 일제히 굳었다. 여인은 제 목에 칼날이 닿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치켜들었다. “두 번 말해야 합니까?” 그제서야 천장에서 한 사내가 착지했다. 다른 당가 무인들보다 어두운 색상의 옷을 입고 있었다. 여인이 서연을 보고 말했다. “이제 되었습니까?” 서연은 그제서야 납검했다. 저쪽에서 먼저 출수하기는 했으나, 피아 식별이 되지 않은 상황이었으니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상황 자체가 이들의 결백을 증명했다. 만약 이들이 적이었다면 이런 식으로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팽무성과 안면이 있는 듯했다. “당소소(當小小)라 합니다. 그쪽은?” “서연이라 합니다.” 당소소는 여전히 무표정했다. 다만 눈가에 묘한 흥미가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