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종지회의 결과는 장안 전체로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섬서의 중심이 되는 두 도문의 겨룸이었다. 관객이 적지 않았던 만큼 순식간에 소문이 퍼져나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동률이었다면서?” “초반에야 화산이 우세했지, 그런데 연배가 높아질수록 종남이 강해지더이다. 아무래도 그 나이는 되어야 중검이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겠지. 결론적으로 일대제자끼리 겨뤘을 때는 일대 일 동률이기는 했지만 말이네.” “듣자하니 화산의 이대제자들이 비무 도중에 깨달음을 얻었다던데?” “놀랍기는 했네. 속절없이 밀리다가 갑자기 몰아붙이더군. 내 무림인들의 세계는 잘 모르겠으나 그건 충분히 깨달음이라 불릴 만했네.” “그래놓고 결론이 사대 사 동률이라. 탕진한 도박꾼들이 꽤 많았겠어.” 장백신옹은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검후가 뒤에서 협잡질을 벌이지 않았더라면 육대 이로 종남이 압승했을 터였으니 말이다. 소검후가 나서지 않은 경기였다. 최소한 우세를 점했어야 했다. ‘정파 무림이 자랑하는 협의지사로 기억하고 있거늘.’ 수십 년 전에 일어났던 정사대전에서 현 종남 장문인을 구해냈던 것이 검후였다. 사마련의 내로라하는 고수들을 일개 후기지수의 신분으로 당당히 맞섰다. 심지어 마땅한 보상도 거절했다. ―나중에 화산이 위험에 처했을 때 종남이 도와주는 것으로 족합니다. 반쯤 잘려나간 오른팔을 붙잡고 웃으며 그리 말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협객이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때 현장에 있었던 장본인 중 하나였기에 느끼는 바가 컸다. 그렇기에 공론화하지 않았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마음이 복잡했다. 검후 정도 되는 인물도 나이를 먹으면 달라지는 것일까. “죄송합니다, 장로님.” 일대제자 명진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모습에 다시금 마음 한켠이 아려왔다. 종화지회를 이길 생각으로 왔을텐데, 동률에 그쳤으니 상심이 클 제자들의 심정이 이해됐기 때문이다. “수고했다. 최선을 다했으니 누가 타박하겠느냐? 장문인께서도 잘했다고 칭찬해주실 것이다. 상심하지 말고 오늘은 장안에서 쉬도록 하자꾸나.” 착잡한 마음을 뒤로한 채 움직이려던 차였다. ―장백신옹. 큰 폐를 끼쳤소. 입이 두 개여도 할 말이 없소. 사과하고 싶으니 내가 있는 곳으로 와주시겠소? 직접 찾아가는 것이 도리이나, 사정이 있어 그럴 수 없소. 검후였다. 마침 대화를 나눌 생각이었기에, 장백신옹은 순순히 검후가 안내하는 방향으로 향했다. ‘할 말이라도 원없이 하고 와야 마음이 편하겠구나.’ 그런 생각으로 걸음했다. 검후는 처음에 보았던 그 객잔에 있었다. 바가지를 그득하게 씌우기로 유명한 객잔이었다. 그 때문인지 객잔 이층에는 검후와 웬 여인 한 명, 그리고 그 위에 걸터 앉은 여아가 전부였다. 특이하게도 여인은 죽립에 면사까지 쓰고 있었다. 흰 장포를 걸쳤음에도 옷에 때 하나 묻지 않았고, 피부도 새하얗고 고왔다. 검후가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다는 것으로 볼 때, 검후보다 높은 사람인 것은 확실했다. 저만한 연배의 여인을 검후가 깍듯이 대할 이유는 없다. 강호의 법도 밖에 있는 존재라면 모를까. 필시 황실에서 온 귀인이리라. “이쪽 분은 종남파의 장백신옹이시네.” 검후가 말했다. 황족을 대한다기엔 말투가 불경했다. 장백신옹이 미간을 좁히기 무섭게 검후가 전음했다. ―편히 대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하셨기에 이리 하는 중이네. 어울려 주시게. ―누구시기에?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절세고수시네. 믿기 힘든 말이었다. 문득 검후가 또 장난질을 하는 건지 의심부터 들었다. 허나 진중한 눈동자를 보니 또 아닌 것 같았다. 본디 검후는 웃음과 장난기가 많은 여인이나, 진중할 때는 한없이 진중해지는 여인이었다. 장백신옹은 내심 한숨을 내쉬며 한 번 더 속는 셈 치고 자리에 앉았다. “종남의 장로시지요? 일전의 경기는 잘 보았습니다. 종남의 저력이 한 눈에 보이더군요.” 검후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여인이 입을 열었다.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고운 말투였다. 장백신옹은 경어를 써야 할지, 아니면 평소대로 말할지 고민하다가 천천히 입을 뗐다. “그리 봐주시니 고맙소. 헌데 누구시오?” “서연이라 합니다. 하남성 태실산에서 왔습니다.” 서연은 약간 놀란 상황이었다. 합석했던 여인이 지인을 불러도 되냐고 묻기에 순순히 응했는데, 갑자기 종남파의 장로씩이나 되는 사람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역시 보통 분은 아니셨구나.’ 어째 안목이 남다르다 했다. 종남파 장로를 지인으로 둘 정도라면 분명 평범한 여인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검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종남파의 장로인 장백신옹을 너무 편하게 대했기 때문이다. 겉보기에 이립도 되지 않아 보였으나, 검후가 옛적에 노화순청을 이뤄 젊을 적의 용모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온 장안이 그 이야기로 떠들썩했기에 걷기만 했음에도 알게 되었다. 거리를 거닌지 일다경도 되지 않아 검후와 관련된 이야기를 다섯 번도 넘게 들었으니 그 파급력을 짐작할 수 있겠다. 곧 장백신옹이 물었다. “태실산이라면.” “소림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이따금 조각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필부지요.” “……조각?” 장백신옹의 눈에 순간 이채가 돌았다. 노년에 들어 얻은 몇 안 되는 낙이 바로 정교한 각예품을 감상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구경에는 재물이 들지 않으니 그렇게 된 것이다. 솔직히 말해 이번 종화지회가 아니었더라면, 금룡상단이 여는 각예대회에도 기꺼이 찾아갔을 이가 바로 장백신옹이었다. “혹시 이번에 금룡상단에서 열었던 각예대회에 참가하셨소?” “부족한 실력을 좋게 헤아려 주신 덕분인지, 운 좋게 우승할 수 있었습니다.” “우승이라? 천하에 이름난 장인들이 적지 않게 참가했다 들었거늘, 너무 예를 차려도 폐가 되는 법이오.” 장백신옹은 너털웃음을 지으면서도 속으로는 냉정하게 서연을 흝었다. 이렇다 할 기파가 느껴지지 않았다. ‘내공은 없는 듯한데.’ 자신이 느끼지 못할 수준의 반박귀진을 이루었거나, 아니면 무공을 익힌 적 없는 일반인이라는 뜻이다. 아무리 보아도 전자보다는 후자일 가능성을 높게 쳤다. 검후의 말을 듣지 않았더라면 전자는 애초에 생각치도 않았을 터였다. 손 또한 조각을 익힌 장인의 손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이렇다 할 상처나 굳은살이 없었기 때문이다. 장백신옹은 수염을 쓰다듬고 잠시 사색에 잠기더니, 서연에게 물었다. “혹시 조각하는 것을 구경할 수 있겠소?” “여기서 말인가요?” “빈도의 오랜 취미올시다. 이번 지회만 아니었어도 각예대회로 찾아갔을 것이오. 우승자라 하니 그 솜씨를 견식해보고 싶소.” 장백신옹은 품 속에서 타원형의 옥을 꺼내 서연에게 내밀었다. 손바닥보다 살짝 작은 크기의 옥석이었다. 백옥 특유의 은은한 빛깔을 띄고 있었는데, 손에 쥐면 차가운 기운이 강하게 느껴졌다. 마치 얼음을 만지는 듯했다. 범상치 않은 물건임을 단번에 알아본 서연이 입을 열었다. “귀물이군요. 정말 이걸 사용해도 되겠습니까?” “오래 전에 빙궁에서 전해받은 물건이오. 마땅한 사용처가 없어 그저 지니고만 다니고 있었지. 좋은 구경거리로 쓰일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오.” 말은 그렇게 했으나, 장백신옹은 나름대로 큰 결심을 한 것이었다. 저만한 옥은 같은 무게의 금으로도 구할 수 없었다. 나중에 뛰어난 장인을 만나면 그때 맡길 생각으로 아껴둔 것이었다. ‘검후…….’ 검후의 말을 믿고 내밀었다. 이마저도 거짓말이면 평정을 찾기 힘들 것 같았다. 장백신옹은 시선에서 걱정을 애써 숨긴 채 서연이 옥석을 깎아내는 모양새를 지켜보았다. 서연은 한 손으로 옥석을 잡고, 반대 손으로 정을 잡고 힘을 주어 깎아냈다. 그리 힘을 많이 준 것 같지도 않은데 단단한 옥석이 무른 나무토막이라도 되는 것처럼 턱턱 깎여나갔다. 서연은 옥석의 겉면의 일부를 깎아내더니, 깊은 곡면을 새겼다. 둥글기만 했던 겉껍질이 바람에 흩날리는 구름처럼 변했다. 장백신옹은 어느새 반쯤 몰입한 상태로 서연의 손놀림을 응시했다. ‘군더더기가 없다.’ 절세고수임은 아직 모르겠으나, 각예대회에서 우승했다는 것은 분명해보였다. 곧 옥석의 중심부에 깃털이 하나둘 생겨나더니, 유유히 비행하는 학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서연은 학의 다리 끝부분에 소나무 한 그루를 새긴 다음, 장백신옹에게 옥석을 건넸다. 장백신옹은 숨을 죽인 채 제 손에 놓인 백옥의 겉면을 천천히 매만졌다. 운학(雲鶴)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학의 날개는 깃털 하나하나가 살아 숨 쉬는 듯했고, 길게 뻗은 목은 고고한 기상을 뿜어냈다. 학이 아니라 그 주변을 파내어 양각(陽刻)한 것이다. 역동적으로 그려진 탓에 학이 당장이라도 백옥 바깥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 뒤로 펼쳐진 배경은 또 어떤가. 겹겹이 이어진 산봉우리는 마치 수묵화처럼 아득하게 펼쳐져 있었고, 그 봉우리 사이사이에 웅장하면서도 기개 넘치는 나무들이 뿌리를 박고 서 있었다. 틈 사이로 은은하게 새어나오는 냉기가 안개처럼 퍼져나가며 더없을 운치를 풍겼다. 장백신옹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손바닥보다 작은 옥에 어찌 이런…….” 가히 신기라 칭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마음에 드시는 듯하니 다행입니다.” “마음에 들다니? 이건 고작 그런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오.” 장백신옹은 아예 백옥을 눈 바로 앞에 치켜들고 살폈다. 반들반들한 겉면을 만질때마다 감탄이 절로 새어나왔다. 어찌 날카로운 면이 하나도 없단 말인가. 그때였다. “종남에는 검선 여동빈을 묘사한 석상이 있네. 당대 최고의 석공이 무려 십오년에 걸쳐 완성한 걸작이지.” 검후였다. 그녀는 은근한 얼굴로 서연을 쳐다보며 말했다. “예전에 가서 직접 본 적이 있는데, 각예의 미학을 알지 못하는 빈도가 보기에도 굳건한 기상이 절로 느껴졌다네. 섬서를 통틀어도 그만한 석상을 보기는 힘들걸세.” “그렇습니까?” “안타까운 점은 종남의 내당에 위치해 있어, 장로 정도 되는 인물의 허락이 없다면 구경할 수 없다는 걸세.” 그러면서 장백신옹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근데 마침 이 자리에 종남의 장로가 계시는구려.” “…….” 이쯤 되니 장백신옹도 검후의 속내를 읽을 수 있었다. ―검후, 무슨 생각이오? ―참을성이 부족했었네. 도인답지 않은 모습을 보였어. 검후는 일전에 있었던 일을 담담히 털어놓았다. 낙화검에 이어 오행매화검이 다시 태어나는 것을 목도했을 때의 충격을 숨김없이 고했다. 협보다 무를 중시했다. 도인이기 전에 무인처럼 굴었다. 문파의 흥망을 짊어진 자로서 마땅히 해야할 일이라 생각해서 그리했다. 천지의 이치를 꿰뚫는 듯한 고수의 조언을 두고 그 어떤 무인이 평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 탓에 평생을 갈고닦아 이룬 명경지수가 형편없이 요동치는 것을 알지 못했다. ―종남이 뫼셔야 옳아. ―화산은? ―언젠가 모셔야겠지. 더없을 은혜를 입었으니. 다만 지금은 아닐세. 준비가 되지 않았어. 그렇게 말하는 검후의 목소리는 걷잡을 수 없을 떨리고 있었다. 웃음 뒤에 감춰져서 미처 깨닫지 못했다. 검후의 혈색이 흑철처럼 시커멓게 죽어 있었다. 지독한 심마가 뿌리내린 것이다. 검후가 한쪽 입꼬리를 치켜들었다. ―알아채는 것이 너무 늦어. 장백신옹이 눈을 부릅떴다. ―괜찮소? ―이만하면 싸게 먹힌 거지. 말 몇 마디에 눈이 멀어 일평생 쌓아온 도를 스스로 부정했으니. 어쩌면 처음부터 시험하시려 한 것이 아닐까 싶네. 자네는 통과했고, 나는 실패한게지. 검후는 차라리 심마에 든 것을 다행이라 생각했다. 처음에는 알지 못했으나, 화종지회가 끝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문파의 미래만을 생각하고 억지로 저 여인을 모셨더라면 분명 화산은 이전보다 강해졌을 것이다. 허나 도문으로서의 정체성 또한 잃었을 것이다. ―오늘 일로 무마할 생각은 없소. 도인이 그래서는 안되겠지. 정양을 마친 후에 직접 찾아가 사죄하리다. 검후는 새까맣게 죽은 안색을 이끌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와중에도 몇 번씩 쿨럭이며 기침을 쏟아냈다. “몸이 좋지 않아 먼저 가보겠네. 밥 잘 얻어먹고 가네.” “아, 조심히 가십시오.” 서연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서 마주 포권했다. 어느 순간부터 안색이 시커멓게 죽길래 슬슬 걱정되던 차였다. 이제라도 떠나간다고 하니 다행이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검선 여동빈을 묘사했다는 석상 생각을 하던 중에도 계속 걱정이 되었으니 오죽할까. 심한 병이 아니기를 기도할 뿐이다. 검후가 떠나가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장백신옹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편히 말씀하십시오.” “내일 아침에 종남산에 오를 계획인데, 같이 가시는 건 어떠하시오?” 서연의 안색이 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