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현의 공사터. 족히 수백 명을 수용할 수 있을 만한 넓이의 담벼락이 차곡차곡 세워지고 있었다. 인부들이 머무는 천막의 숫자만 보더라도 새로 자리잡을 대문파의 위세를 짐작하게 했다. 쿵! 쿵! 무수히 많은 인부들이 망치를 두드리고 있었다. 근래에 보기 드문 대공사였다. 자연스레 인부들 사이에서도 온갖 추측이 오갔다. “해남파가 이곳으로 이주한다는 소문이 돌던데? 근래 장강 이남이 난리지 않은가.” “멸문한 광동진가의 방계라면 모를까, 한 지역의 패자로 군림하는 대문파들이 고작 두렵다는 이유 때문에 오지는 않을 것 같소이다.” “팔대세가도 멸문 당했는데 그 아래의 대문파들은 오죽할까. 나는 이해하네. 남들이 손가락질 하더라도 이승에서 구르는 것이 낫지.” “나는 공사만 마치면 호북으로 갈 생각도 하고있네 그려. 가서 신녀문주께 공양이라도 드릴까 해. 마음씨가 어찌나 고우시다던지, 우리같은 민초들에게도 격어(格語)를 써 주신다고 하더라니깐. 소림사의 고승들이나 그러지 않은가.” “아무리 그래도 다른 구파가 낫지 않을까 싶구만. 쌓아온 역사가 다른데. 당장 무당파만 해도 검선이 계시지 않은가. 기왕이면 신선이 여럿 계신 곳에 공양하는 것이 낫지.” “자네가 그날 떠올랐던 연꽃을 보지 못해서 그렇다니깐. 구천현녀의 환생이시라는 소문이 파다해.” 식사 시간에 자유롭게 떠들었다. 색이 없고 낡은 옷에서 인부들의 처지를 짐작할 만했다. 하나같이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이었는데, 요즘 같은 때에 식대를 지급하는 공사판이 있다는 것 자체를 감사히 여겼다. 금룡상단이 돈을 아끼지 않은 탓이다. 신녀문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함이었다. 당연히 외관에도 큰 신경을 썼다. 재료를 아끼지 않았다는 뜻이다. “사치스럽지 않으면서도 고아한 향취가 드러나도록 하라니. 으음…….” “상단주께서 구파의 산문을 예시로 드셨네. 장문인들이 산의 가장 높은 곳에서 문파를 굽어보듯, 작금의 공사도 그리 진행해야 할 것이네.” “산세가 완만하니 공사 자체는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책임자로 보이는 이들이 설계도를 펼쳐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근처에 팔짱을 낀 채로 경계를 서는 무인들도 있었다. 내부에 외부인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통제했다. “괜히 그런 소문이 도는 게 아니었네요.” 화려한 옷을 걸친 소녀가 말했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 곳곳에 장신구를 달았다. 그 나이대의 소녀가 가질 법한 활달함 대신 묘한 총기를 품었다. 갈색 눈동자가 빛을 내며 공사장을 빠르게 흝고 있다. 회화루의 영영이었다. 곁에 선 여인은 적어도 열 살은 많아 보였는데, 안절부절 못하는 기색이 얼굴에서부터 드러났다. 예화라는 이름을 가진 예기로, 일전에 서연에게 찾아와 도움을 구했던 여인이었다. 영영을 친동생처럼 여기는 사람이기도 했다. “영영아, 이런 곳에 있어도 될까? 무사님들이 다 검을 차고 계시는데…….”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녀를 힐끗 본 영영은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무심히 입술을 뗐다. “그래서 마실 것들을 가져 왔잖아요. 며칠 전에 책임자와 이야기를 끝내 두었으니 막지 않을거에요. 그리고…….” 주변을 살피던 영영의 눈매가 한순간에 무심해졌다. “저희보다 세가 강할 것이 분명한데, 이렇게라도 미리 알아둬야죠. 회화루는 한창 크기를 키우고 있는 중이에요. 언젠가 은인을 다시 뵙게 될 때 누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바삐 돌아다녀야 해요.” “……최근에는 언니들한테 높으신 분들이 하시는 말씀을 집중해서 듣고 적어두라고도 했다면서.” “살길을 모색해둬야죠. 언제 끈이 떨어질지 모르니.” 지학에 불과한 아이가 가질만한 심계가 아니다. 삼사층 높이의 주루가 도합 열 개도 넘는다. 객잔까지 합치면 그의 배는 되었다. 오가는 돈이 막대했다. 그만한 돈을 홀로 관리하면서도 위와 아래에서 잡음이 나오지 않도록 조율했다. 지역 관리들과 무림맹의 인사들에게 법에 걸리지 않을 정도의 대접까지 하면서다. 근래에는 하오문이 그러하듯 인근에서 정보를 끌어모으고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매 루주가 한 일로 알려져 있었다. 예화처럼 가까운 사람이나 영영의 진가를 알았다. ‘은인께서는 노래 한 곡조로 족하다 하셨지만, 은인의 제자분은 또 모르지. 나보다 나이가 어리시니. 언젠가 도움을 필요로 하실 수도.’ 영영은 가라앉은 눈매로 생각에 잠겼다. 인부와 책임자들에게 매실차를 건넬 때 환하게 웃던 사람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기녀라는 출신이 은인께 누가 된다? 다른 세상을 사는 신선들에게 그런 신분이 중요할 것이라 생각되지는 않는다. 필시 도문에서도 드높은 신분을 가지신 분이실게다. 그만한 실력을 가지시고도 신분을 감추지 않으셨더냐. 이따금 지현이 해주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회화루의 언니들은 지금의 삶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지만, 영영은 아니었다. ‘나는 여기서 끝날 그릇이 아니야.’ 상재를 타고났다고 했다. 성별을 막론하고 북경으로 찾아가 호부(戶部)에 몸 담았다면 능히 천하에 이름을 떨칠만하다고 했다. 최근 회화루에 다녀갔던 고위 관리에게서 들었던 말이다. 재능의 편린만을 드러냈는데도 그리 반응했다. 수양딸로 삼고 싶다고도 했다. 끝내 거절했다. 이 편이 은인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자고로 대문파들은 마땅한 수입원을 찾는 것이 가장 고되다고 했으니.’ 그렇게라도 은인에게 도움이 되고자 했다. ‘은인의 무학이 점창과도 비슷하다고 했었나.’ 혹시나 하여 익명으로 구호품들을 보냈다. 중소 규모의 상단들을 구워삶은 덕이다. 앞으로 일이년이면 일대를 완전히 장악할 자신이 있었다. 은인의 성함을 따 서연문이라는 이름까지 지으려 했던 터였다. ‘어떻게 막을 방법이 없을까.’ 허나 이런 거대한 문파가 들어서면 많은 것이 틀어진다. 영영은 괜시리 마음이 복잡해졌다. ***** 서연 일행은 곧장 화양현으로 향했다. 낙양 부윤이 줬었던 명예 도감 임명장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마차를 타고 대로를 가로질러 나아갔다. 금룡상단주에게 신녀문의 터가 될 곳의 위치를 전해들었었다. 마부에게 삯을 얹어주고 전해들은 위치로 향했다. “음?” 마침내 금벽산이 말했던 장소에 당도했을 때. 서연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거대한 공사장 한복판이었기 때문이다. 골조만 봐도 크기를 짐작할 만했다. 대문파가 새로 자리잡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크기였다. 과거에 종남파의 산문에 머물렀었기에 알 수 있었다. 담벼락의 길이가 심상치 않았다. 금룡상단의 옷을 걸쳐입은 관계자들이 오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신녀문의 문지방을 넘었음을 자각했다. 완성되지도 않은 대문의 대략적인 크기가 그려졌다. 마차가 두세대는 한 번에 오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대문파의 산문에 버금갔다. 안쪽에는 인부들이 땅을 파서 연못을 만들고 있었다. 마차에는 뿌리채 뽑혀 온 조경용 식물들이 적지 않았다. “이곳으로 들어오시면 안 됩……!” 막아서려는 책임자들이 경악했다. 서연이 금룡상단의 본가에서 둘째 공자를 반 불구로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 탓에 금룡상단 내부에 그녀의 용모가 널리 알려져 있었다. 당장 공사의 책임자들부터가 당시에 자리했던 이들이었다. 서연의 얼굴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한순간에 태도를 바꿔 곧장 상석으로 안내했다. 설계도가 자리한 유독 큰 천막이었다. 내부에는 족히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대규모 공사에 자주 초빙되는 인물들인지, 하나같이 장인과도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지천명을 넘은 사람이 태반이었다. 연륜이 있다는 뜻이다. 서연은 속으로 낭패라는 생각을 했다. ‘거절할 수도 없겠구나.’ 이만한 장인들을 모으는 것 자체부터가 큰 부담이었을 터. 자재나 인부를 고용하는데 들였을 자금은 말할 것도 없었다. 상단주께서 이렇게까지 성의를 보이셨는데 이제 와서 부담스럽다고 거절하는 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애써 납득하고자 했다. ‘……그래, 기왕이면 작은 것보다는 큰 것이 좋지.’ 구파와 세가, 심지어는 사파나 마교의 대문파들도 하나같이 거대했다. 문파의 세를 떨치기 가장 쉬운 방법이 크고 넓은 담벼락을 짓는 것이라는 말이 괜히 시중에 떠돌겠는가. 문파가 작으면 온갖 수단을 동원해도 명성을 떨치기 힘들었지만, 문파가 크면 자연스레 대문파라는 말이 따라붙는 법이다. ‘그래도 너무 크구나. 인원이 고작 셋 뿐인데.’ 금룡상단주께 느끼는 마음의 부담이 더욱 커졌다. 그 탓에 음성이 자연스레 가라앉았다. “실례지만 설계도를 잠시 확인해봐도 되겠습니까?” 책임자들은 괜히 흠칫했다. 신녀문주의 심기가 불편한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금룡상단주에게 엄포를 들었던 탓도 있었다. 외모로 나이를 판단하지 말라는 말부터, 괜한 무례를 저지르지 말라는 말까지 온갖 경고를 들었다. 묘한 긴장이 흐르는 분위기 속에서, 서연의 시선이 설계도를 흝었다. 건축에는 조예가 없으나 대략적인 그림을 유추할 수는 있었다. ‘정문과 균형을 맞추려면 석상은 백호의 본래 크기대로 만들어야겠구나. 문주실은 뒷산 정상에 두셨고, 빈객을 들이는 방은 뭐 이리 많을까. 연못에, 화원에, 뒷산까지 감안하면……. 돈을 여간 많이 쓰셨겠다. 이 빚을 어찌 갚아야 할까. 자식을 그리 만들었는데도 이리 퍼주시니.’ 땅의 단위가 정(町: 3,000평)을 아득히 넘어섰다. 과장하여 집성촌이 들어선다고 해도 믿을 법한 크기였다.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이쯤 되니 신녀문을 대문파로 만들지 못하는 것이 되려 죄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 서연의 분위기가 심각해지자 천막 내부에도 침묵이 흘렀다. 공기가 매우 무거워졌다. 설계도면을 내려놓은 서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도와드릴 만한 일이 있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예?” “저와 제자들이 머물 공간을 어찌 남의 손에만 맡길 수 있겠습니까. 최소한 주춧돌은 세워야 면이 설 듯합니다.” 침묵 속에서 수염이 수북한 사내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그, 혹 마음에 드시지 않는 부분이 있으신지요? 문주님의 의견을 경청할 터이니, 부디 가감없이 이야기 해주십시오.” “전부 마음에 듭니다. 다만, 이리 구경만 하는 것이 편하지 않아 그럽니다.” 조용한 천막 안에서, 서연은 진심으로 말했다. 책임자들은 그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서연의 얼굴이 여전히 굳어 있었기 때문이다. 구천현녀는 본디 선악을 엄중히 따지는 신선이라고 했다. 서연의 행보 역시 신화 속의 구천현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 사람으로 살아온 이상 찔리는 점이 한둘씩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서연이 자신들의 죄를 추궁하는 중이라 착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때 총책임자로 보이는 중년인이 입을 열었다. “문주님에 관한 이야기들을 익히 들었습니다. 각예 실력이 천하 일절이시라고 다들 말하더군요.” 천하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전문 건축가였다. 자부심이 대단하기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구파와 뭇 세가에서도 이름을 날렸을 정도였다. 장문인과 가주들을 마주한 경험이 적지 않았다. 그 탓에 천막에 위치한 책임자들 중에서 홀로 서연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도움을 주신다는 것이, 혹 건축에 직접 관여하시겠다는 말씀이신지요? 그것이 아니라면 문주님께서 마땅히 도와주실 만한 일이 없습니다. 자재는 인부들이 나르면 되고, 자금은 금룡상단에서 대주니 말입니다.” 중년인은 설계도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터가 워낙 넓고 좋습니다. 뒤에 완만한 산이 걸쳐 있는지라 낮과 밤의 전경도 매우 좋지요. 저를 믿고 맡겨주시면 삼 년 안에 완성해보이겠습니다.” “삼 년…….” 서연의 탄식을 다르게 이해했는지, 중년인이 부연 설명했다. “길게 느껴지시겠지만, 사실 이 정도면 매우 빠른 편에 속합니다. 뒷배가 금룡상단이라 그렇지요. 보통은 오 년, 자재 조달이 늦으면 십 년까지도 걸리는 일이 파다하지요.” 정론이었다. 허나 삼 년이라는 시간 동안 금룡상단이 사용할 자금의 양과, 그동안 불편하게 산 속에 살아야 할 제자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해지고 있었다. 적당한 방을 구해 들어가 사는 것도 문제였다. 대체 구파의 어느 장문인이 객잔에서 몇 년동안 숙식을 해결한단 말인가. 일문의 문주로서 그런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지탄이나 받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서연은 무심코 태실산에 있는 작은 오두막을 떠올렸다. 반나절만에 지었었던……. 으아아악―! 돌연 바깥에서 비명이 울려퍼졌다. 한둘이 아니었다. 장비와 자재 따위를 내팽겨치고 달아나는 소리가 사방에서 몰아쳤다. 거센 풍랑이라도 불어온 듯했다. 두꺼운 천막이 격렬하게 펄럭거렸다. 서연의 시선이 천막 바깥으로 향한 순간. 바람을 타고 큼지막한 무언가가 천막 내부로 들어왔다. 그야말로 찰나였다. 뒤늦게 불어닥친 바람에 책임자들의 머리칼이 거세게 휘날렸는데, 다들 눈을 부릅뜬 채로 시선을 위로 치켜들고 있었다. 큼지막한 백호가 오연히 서 있었다. 어찌나 거대한지 천막이 꽉 차다 못해 위로 들릴 정도였다. 주인의 심기를 눈치채고 달려온 것이다. 털이 풍성한 꼬리를 좌우로 흔드는 모습이 칭찬이라도 바라는 듯했다. 허나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곧장 심장을 부여잡고 주저앉는 이들은 예사였다. 반쯤 졸도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서연 역시 놀란 것은 마찬가지였다. 아무 전조도 없이, 심지어 본모습을 드러내고 나타날 줄은 몰랐다. 서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자신이 도맡아 키우는 영물이었으니 작금의 혼란도 자신의 죄일 터였다. 멀리서 병장기를 뽑아드는 소리도 들려왔다. 책임자들이 죄다 호환(虎患)을 당하게 생겼다는 외침 역시 천막 틈새로 새어들어왔다. “…….” 서연은 천천히 손가락을 치켜들어 천막 바깥을 가리켰다. 호흡을 가다듬고, 냉엄한 얼굴을 한 채였다. “나가거라.” 주인을 멀뚱히 내려다보던 백호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