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우가 깊은 잠에 빠진 밤. 그의 눈앞에 빛이 깜빡였다. - 삐빅! 삐비비비빅! ​ [경고! 경고!] ​ [( °ᗝ° ).ᐟ.ᐟ] ​ [사용자의 요청 없이, 평행 세계 알고리즘의 데이터가 도착했습니다!] ​ 잠든 유선우의 시야 너머로 반투명의 시스템 창이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 [평행세계 알고리즘 결괏값 파편 전송 확인….] ​ [결괏값 파편 : IF-LUNA-01 강제 수신….] ​ [데이터 무결성 검토 중… _〆(。。)] [검토 완료! 오류 없음! 완벽한 데이터입니다!] [ (๑✧∀✧๑) ] [시스템 알고리즘 #1: 내담자 L ] [분기점: 첫 번째 대면 상담] [ROOT #지배자 (The Dominator)] [지금부터 사용자가 선택하지 않았던, 또 다른 가능성의 재생을 시작합니다.] [🎬 START! ( •̀ ω •́ )✧] [ 🍿 ] - 와작와작. *** ​ 눈앞의 루나는 생크림 쿠키를 집어 들었다. 입안 가득 퍼지는 식감과 퍼터의 풍미. ​ 그리고 녹기 시작하는 부드러운 생크림 위에 얹어진 상큼한 딸기까지. 긴장으로 굳어 있던 그녀의 어깨에서 서서히 힘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 이게 유선우가 가장 선호하는 방식이었다. 아이스브레이킹을 하는데, 잘 만든 디저트만큼 확실한 것은 없으니까. ​ 이제, 진짜 상담을 시작할 시간이었다. [루나] [메인 스탠스] [자신의 치부를 전부 아는 상담사입니다. 차라리 전부 터놓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그녀의 스탠스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음 질문을 위해 시스템을 확인했다. 하지만. [적합 답변] [만족 적합률 ??%] [근데 귀 좀 보여주시겠어요? 그때 보니까 예쁘던데요. (낮은 목소리 및 강압적인 톤으로)] ​ ‘……?’​ ‘이게 무슨 소리지?’ ​ 유선우는 이후에 더 나올 선택지를 기다렸지만. 눈앞에는 정신 나간 선택지 하나만 덩그러니 떠 있을 뿐이었다. ​ ‘너 고장 났니?’ ​ [그렇지 않습니다!] ​ [본 선택지가, 관련된 모든 인물의 행복 총량을 계산했을 때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 [ (๑•̀ㅂ•́)و✧] ​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젓고 싶었다. 그는 눈앞에 루나가 있기에 참았다. ​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이건 말이 안 된다. 유선우가 지키고 싶은 직업적 윤리와 정면으로 어긋나는 일이었다. ​ 시스템의 제안을 무시하고 스스로의 방식으로 상담을 진행하는 것이 맞아 보였다. ​ 하지만. ​ [ㅠㅠㅠㅠㅠㅠㅠㅠㅠ] ​ [강력하게 권고합니다!!] ​ [가장 빠르고 완벽한 길입니다!!] ​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 시스템이 거의 울부짖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적극적으로 요구한 것은 처음이었기에, 그 또한 이 기묘한 상황에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 시스템은 지금껏 유선우에게 가장 옳은 선택지와 가장 좋은 결과만을 가져다주었다. ​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 엄청난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의 이성과, 직업적 윤리는 저 선택지가 틀렸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그의 손을 잡고 이끌어주었던 조언자는 저 길이 맞다고 소리치고 있다. ​ “…….” ​ 결국 유선우는 깊은 한숨 끝에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을 먹었다. 그래, 무슨 이유가 있겠지. ​ 시스템이 그래야만 하는 데에는 분명 알지 못하는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결국 그는 이 녀석을 믿어보기로 했다. ​ 그런데 어떻게 하지? 유선우는 기본적으로 누군가에게 쓴소리하거나 상처 주는 것을 선호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런 종류의 강압적인 말은 어설플 가능성이 높았다. ​ 그때. 시스템이 그의 생각을 읽은 듯, 메세지를 띄웠다. ​ [괜찮습니다! 이것은 연기입니다.] [마치 정해진 배역을 연기하는 배우처럼 생각하는 겁니다!] ​ … 그래. 해보지 뭐. ​ 그는 턱에 손가락을 얹은 채 입을 열었다. ​ “그런데 말이죠….” ​ 루나의 어깨가 움찔, 하고 떨렸다. 그의 갑작스러운 분위기 변화에 당황한 것일까. 그러나 유선우는 멈추지 않았다. ​ “혹시, 그때 그 귀. 다시 한번 보여주시겠습니까?” ​ 그는 그녀의 머리 위, 귀가 있어야 하는 자리. 그러나 지금은 텅 비어 있는 그곳을 빤히 응시했다. ​ “저번에 보니까… 아주 예쁘던데요.” ​ 눈을 가늘게 뜬 채, 낮고 고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해보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 그 말에 루나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 “네? 네?!” ​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지진 난 듯 미친 듯이 흔들렸다. 얼굴은 목덜미까지 새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 “그… 그게 무슨….” ​ 루나의 입장에서는 너무 당황스러운 이야기였다. 이 세계로 넘어와 그 누구에게도 단 한 번도 보여준 적 없었던 자신의 수치. 그런데 갑자기 그것을 보여달라고 말해버리니. ​ 너무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 그녀는 필사적으로 그의 시선을 피하려 애썼다. ​ 하지만 유선우의 시선은 루나가 어디로 도망치든, 그 끝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그런 그녀의 혼란을 지켜보았다. ​ “제 생각에, 루나 씨가 저를 찾아온 이유는 단순합니다.” ​ 유선우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사실 이건 그의 추측이었다. ​ 그러나. ​ 가능성이 높은 추측. ​ “확신이 없어서.” ​ 유선우는 단 한 순간도 루나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 “수인이, 당신이라는 존재가 이 새로운 세상에서 사랑받을 수 있다는 그 확신이 없어서.” “그래서 저를 찾아온 겁니다. 맞습니까?” ​ 이것은 유선우가 원래 준비했던 길이 아니었다. 원래대로라면 그는 지금쯤, 그녀를 위해 준비해 온 수많은 민간인의 감사가 담긴 영상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당신은 이미 사랑받고 있다고 그러니 괜찮다고, 다정하게 위로했을 것이다. ​ [NOPE!!] ​ 그런데 하지 말라니까. 일단 알겠다. ​ 루나는 입술을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맞는 말이다. ​ 확신이 없었다. 루나에게 있어, 그녀의 귀는 당장이라도 떼고 싶은 종류의 낙인 같은 것이었다. ​ 정곡을 찔린 그녀는 그저 필사적으로 고개를 휙휙 돌리며, 이 상황을 벗어나려 애썼다. ​ 유선우는 그런 그녀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갔다. 그리고 귓가에 가깝게 입술을 가져갔다. ​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알려드리겠습니다.” ​ [적합 답변] [만족 적합률 ???%] [그녀의 인식 저하 마법(B) 카모플라쥬를 강제 해제하세요. 당장!!!!] “루나씨가 얼마나 사랑받을 수 있는지.” “이러… 시지… 마세요….” ​ 루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손가락만 오물거렸다. ​ 상담을 시작한 처음부터, 끝까지. 루나는 유선우에게 저항할 수가 없었다. ​ 이유는… 알 수 없었다. ​ 유선우는 그런 그녀의 등 뒤에 서서, 시스템 창을 바라봤다. ​ 아마, 저걸 하면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 다만…. ​ 어쩌면 이미 늦은 건 아닐까? 믿어보기로 하지 않았는가. ​ 그는 오른손의 검지와 엄지를 맞대었다. ​ - 따닥! ​ 경쾌한 핑거 스냅. 그 소리와 동시에. ​ [강제 해제.] ​ 루나의 눈앞에도 시스템이 하나 떠올랐다. ​ [인식 저하 마법(B) 카모플라쥬가 강제 해제됩니다. 당신은 절대 거역할 수 없습니다.] ​ “어…? 읏…? 아… 안돼!!!” ​ 루나가 비명을 질렀다. ​ - 팡! ​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루나의 머리 위로 길고 새하얀 토끼 귀 한 쌍이 쫑긋하고 솟아났다. 루나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방어기제를 강제로 해제당했다. ​ 유선우는 그런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살짝 굽혔다. 그리고 그녀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 “예뻐요.” ​ 그는 그녀의 파르르 떨리는 하얀 귀를 보고 말했다. ​ “아… 아….” ​ 루나는 눈을 감은 채 달뜬 목소리만을 간헐적으로 흘리고 있었다. ​ 결국, 보여져 버렸다. ​ 그녀의 모든 것을. ​ 혐오스러운 귀부터. 엉덩이 위에서 파르르 떨리고 있는 작고 동그란 꼬리까지. ​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눈을 가리고 가쁜 숨을 내쉬는 것이 전부였다. 그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 이제, 곧 자신의 귀를 향한 비난이 돌아올 것이다. 루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 하지만. ​ 그녀의 귀로 들려온 것은 예상과는 다른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 “이렇게 예쁜데… 왜 숨기셨나요?” ​ [적합 답변] [만족 적합률 ???%] [턱을 잡고, 눈을 뜨라 명령하세요.] ​ 유선우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파르르 떨리고 있는 루나의 턱을 부드럽게 잡았다. ​ 루나의 작은 얼굴이 그의 손에 잡혔다. ​ ‘예쁘다고?’ ​ 절대 예상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 루나는 혼란을 느꼈다. 평생동안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던 말이다. ​ 그리고 동시에, 처음 느껴보는 듯한 만족감을 느꼈다. 가슴 깊은 곳이 채워지는 듯한… 기묘한 느낌. ​ “눈 떠.” ​ 그 순간. ​ 눈앞 상담사가 나직하게 명령했다. ​ 그녀는 고민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의 손길에 이끌려 고개를 들었다. ​ “두 번은 말 안 할게요.” ​ - 움찔. ​ 루나는 그 서늘한 말을 듣자마자, 본능적으로 몸이 반응했다. 모든 저항이 무의미하다. ​ 그의 말을 들어야만 할 것 같았다. ​ 결국 굳게 닫혀 있던 눈꺼풀이 열렸다. ​ 그리고 그 틈새로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한 방울 흘러내렸다. 절대 슬픔의 눈물은 아니다. 다만 어떤 눈물인지는 루나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 유선우는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아이를 칭찬하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 “잘했어요.” ​ 칭찬이었다. ​ “…… 네….” ​ 그 한마디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만족감이. 또 가슴속에 피어올랐다. 루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 유선우 그녀의 하얀 머리를 만족스럽다는 듯이 쓰다듬어 주었다. ​ 그의 눈앞에 또 무언가가 떠올랐다. ​ [적합 답변] [만족 적합률 ????%] [귀를 만져도 되는지 질문하세요. 그리고, ‘어디를’ 만져야 하는지까지 물어보세요.] 지금껏 마음대로 다 해놓고, 이제 와서 질문하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스스로 선택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텅 빈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루나를 향해 물었다. “음…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귀를 만져도 될까요?” 그의 시선이 파르르 떨리고 있는 그녀의 하얀 귀로 향했다. - 움찔! 루나의 몸이 다시 한번 굳었다. “그런데, 어디를 만져야 할지 모르겠네요.” ​ 애초에 그는 허락을 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 “어디를 만질까요? 알려주세요.” ​ 유선우는 루나를 보며 작게 웃었다. 그 미소에, 그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 루나는 생각했다. 아니 생각하려 애썼다. ​ 수인에게 있어, 귀를 만져지는 행위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 첫 번째. ​ 상대의 시점에서 오른쪽 귀를 내어주는 것은… 연인에게만 허락된 성적인 칭찬의 행위이다. 다소 수위가 높긴 하지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연인들이 침실에서나, 나누는 그런 종류의 장난. ​ 그리고… 두 번째. ​ 왼쪽 귀. ​ 상대의 시점에서 왼쪽 귀를 내어주는 것은…. ​ 그, 의미가 매우 다르다. ​ 수인들은 오랜 시간 ‘주인’이라는 개념이 존재했다. 귀족들의 소유물이었던, 그 세계의 방식. ​ 즉, 수인인 루나가 자신의 왼쪽 귀를 만지게끔 한다는 것은…. ​ 상대를 자기 주인으로 인정하고,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복종의 맹세였다. ​ 루나는 고민했다. 어쩔 줄을 몰랐다. 하지만. ​ 아까부터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차오르던, 이 기묘한 만족감. 그녀의 종족. 그녀의 DNA에 깊숙이 새겨진, 잊고 있던 본능의 반응. ​ 눈앞에 있는 이 남자와는 절대 연인이 될 수는 없었다. 죽었다 깨어나도 거역할 수 없으며, 절대 수평적인 관계에서 이야기할 수 없음을 그녀는 단번에 느꼈다. ​ 그렇다면 답은, 하나뿐이었다. ​ 결국 루나는 고개를 숙였다. ​ 그리고. ​ “여기를… 만져주세요….” ​ 루나는 왼쪽 귀를 내밀며, 작게 떨리는 손으로 귀를 가리켰다. ​ “꽉… 잡아주시면 될 것 같아요….” ​ 그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었다. 유선우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 그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 그녀의 하얀 토끼 귀, 부드러운 털이 유선우의 손끝에 닿았다. ​ - 흠칫! ​ 루나는 생각했다. ​ 이제, 잡히면 끝이다. ​ 지금이라도 당장 자리에서 벗어나야…. 그렇지… 않으면… 루나는… 끝…. ​ - 꽉. ​ 루나의 머릿속에서 소리치던 마지막 이성은. 유선우의 손아귀에 그대로 짓이겨졌다. ​ 그는 루나의 귀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 “흐읏…! 아, 아…!” ​ 루나의 입술 사이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귀의 뿌리부터 척추를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아찔한 복종의 쾌감. ​ 그녀를 평생 짓눌러왔던 모든 고민과 수치심이 눈 녹듯이, 사라져 내렸다. ​ 그리고 그녀는 깨달았다. ​ 수인이 태어난 진짜 이유를. ​ ‘주인의 손길 아래에서 통제당하기 위해.’ ​ 그것이 전부였다. ​ 그녀를 지배하던 공포의 감각이 서서히 뇌가 녹아내리는 아찔한 쾌감으로 바뀌어 갔다. ​ 그녀는… 더 이상 저항하지 않았다. ​ [적합 답변][만족 적합률 ????%] [주인님] ​ 루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가, 바로 풀었다. ​ “더… 만져… 주세요…” ​ 그리고 붉게 달아오른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애원했다. ​ “주인님….” ​ 루나에게는, 새로운 주인이 생겼다. ​ ​ ​ ​ ​ ​ ​ ​ ​ ​ ​ *** ​ ​ ​ ​ ​ ​ - 치지직… 치지지직…! [?!] [시스템 알고리즘 #1: 내담자 L 의 재생이 종료되었습니다. ] [ROOT #지배자 (The Dominator) 스트리밍 완료.] ​ [다음 시나리오를 위한, 데이터 패킷을 수색합니다….] ​ [IF-LUNA-02 데이터 수색 중….] ​ [#2 식별 불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 [( TдT)] ​ 그렇게 유선우 앞의 시스템 창이 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