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황실의 메인 모니터에는, 텅 빈 방만을 비추고 있었다. ​ 조금 전, 유선우 상담사가 강화유리 너머로 들어간 이후, 설유월이 조심스럽게 따라들어갔다. ​ 그 이후로 설유월과 그의 모습은 화면에서 사라졌다. ​ 시간이 지나도 화면에는 그 어떤 움직임도 잡히지 않았다. ​ ‘벌써 이십 분이 넘었다.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긴 건….’ ​ 팀장은 마른 입술을 축이며, 초조하게 발끝을 까딱였다. 주의 등급 이방인과 상담사를 단둘이 둔 시간으로는, 너무 길었다. ​ 그의 시선이 옆의 보조 모니터로 향했다. 다행히 두 사람의 바이탈 사인은 안정적이지만…. ​ 그러던 중. ​ - 삑삑. 삑삑. ​ 고요하던 상황실에,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렸다. 설유월의 심박수가, 수직에 가깝게 치솟기 시작했다. ​ ‘이게 왜 이래?’ ​ 그러나 그 반응은 아주 잠시였다. 그래프는 거짓말처럼, 다시 천천히 잦아들었다. ​ 그 현상이 지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방의 문이 열렸다. 모두의 시선이 모니터로 향했다. 화면 속에서, 유선우 상담사가 홀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 그는 방금 전 자신이 열었던 유리벽을, 다시 굳게 닫았다. 그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팀장은 참았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이해는 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 잠시 후, 유선우가 상황실로 돌아왔다. ​ “아, 상담사님. 끝나셨습니까?” ​ 팀장은 궁금증이 뒤섞인 표정으로 그를 맞았다. 유선우는 희미한 피로감이 깃든 얼굴로,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 “네. 오늘은… 일단 잘 마무리됐습니다.” ​ 유선우의 대답에 팀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상황실 한쪽 구석에서, 그림자처럼 조용히 기다리고 있던 이서령이 앞으로 나섰다. ​ “유월이는… 괜찮은 건가요, 의원님?” ​ 그녀의 목소리에는 애타는 듯한 어미의 걱정이 가득 담겨있었다. ​ 유선우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지만, 현재는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 “그렇다면 이제 제가 들어가 봐도 될까요…? 어미로서 직접 아이의 얼굴을 봐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아서….” ​ 그녀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한 애처로운 표정으로 유선우에게 부탁했지만…. 그는 그런 얼굴을 무심하게 바라보며,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 “죄송하지만 그건 어렵겠습니다.” ​ 이서령의 온화했던 미소가 아주 희미하게 굳었다. ​ “네?” ​ 팀장이 먼저 놀란 표정으로 유선우를 바라봤다. ​ “상담사님… 그게 무슨….” ​ 이방인에게 있어, 가장 빠르게 이 세상에 적응할 수 있는 기회를 고르라고 한다면, 단언컨대 지인과의 접촉이다. 그런, 없어서 못하는 보호자와의 접촉을 왜? ​ “아직 내담자가 누군가를 만날 만큼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 그는 담담하게 말할 뿐이었다. ​ “아… 그렇군요….” ​ 그 말에 팀장은 입을 닫았다.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매뉴얼상, 이방인에 대한 현장의 모든 판단은 담당 상담사의 권한. 그것이 규율이었다. 따라서 유선우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런 것이다. ​ 다만. ​ 그 규율을 따를 생각이 없는 사람이, 이곳에 한 명 있었다. ​ “의원님.” ​ 이서령의 일전 애처로웠던 목소리는 온데간데없었다. ​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린 채, 눈은 웃지 않는다. ​ 그녀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담담히 말을 이었다. ​ “혹시… 이유가 있을까요?” ​ 그러나 그 목소리에는 약간의 압박이 담겨 있었다. ​ “제 딸과의 면회를, 거부하시는 이유가요.” ​ 유선우는 그녀를 힐끗 바라보더니, 동요하지 않는 목소리로 담담히 답했다. ​ “말씀드렸다시피, 설유월님께서 아직 그럴만한 상태가 아니라는 판단입니다.” ​ “그러니까, 그 이유는요?” ​ “본 상담사의 판단입니다.” ​ 더 이상의 질문은 의미가 없다는 듯한 그의 발언. ​ 그 대화에서 팀장은 놀라움을 느꼈다. 그가 아는 유선우는 이런 사람이 아니다. ​ 늘 온화하게 웃는 얼굴.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듣는 이를 편안하게 만드는 목소리. 그것이 상담사의 자격증을 위해 협회에 자주 출입했을 시절, 모든 이들이 입을 모아 말하던 그의 모습이었다. ​ 그러나 저런 모습은 처음 봤다. ​ ‘날카로운 인상이구나….’ ​ 의도적으로 웃지를 않으니, 상당히 날카롭게 생겼다. 팀장은 처음으로, 그가 정색하는 모습을 보았다. ​ 놀란 것은 창천맹주, 이서령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유선우를 처음 봤을 때, 그저 곱상한 사내라고만 생각했다. 계집보다도 고운 얼굴선에, 강단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을 것이라 얕보았다. ​ 그런데 그 예측은 빗나갔다. ​ 아까는 암시를 물처럼 흘려보냈다. 그리고 지금 이서령은 목소리에 내력을 낮게 눌러 담아 보내고 있었다. 일반인은 결코 느낄 수 없지만, 상대를 정신적으로 짓누르는 교묘한 압박. ​ 하지만 유선우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 태연한 얼굴로 이서령을 향해 한 걸음, 다가섰다. 그리고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면회가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바로 팀장님을 통해 말씀드리겠습니다.” ​ 둘 사이의 긴장감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 “그러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 주셔도 괜찮겠습니다.” ​ 유선우는 그 말을 끝으로, 더는 이서령을 보지 않았다. 명백한 축객령. 그는 고개를 돌려 굳어있는 팀장을 바라보았다. ​ “다음 상담은 내일 오전에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내담자분에게도 말씀드렸으니, 일정 확인 부탁드립니다.” ​ 유선우는 자신의 모든 용무를 마쳤다는 듯, 가볍게 목을 풀며 상황실을 나섰다. ​ 남은 것은, 이서령의 눈치를 살피는 팀장. 그는 용기를 내어 뒤의 존재를 향해 고개를 들렸다. ​ 그곳에는 분노한 맹주가 아닌, 나른한 미소를 띤 여인이 서 있었다. ​ “… 흐응.” ​ 그녀의 붉은 입술 사이로, 뜨겁고 달콤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입꼬리를 끌어올리고, 그 시선은 여전히 유선우가 사라진 문에 고정된 채였다. ​ 마침내, 그녀는 팀장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 “의원님이 유월이를 생각하는 마음이 아주, 각별한가 봅니다.” ​ 목소리에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짙게 배어 있었다. ​ “이 어미의 조급함은 잠시 넣어두어야겠군요. 언제든, 부르시면 오겠습니다.” ​ 그녀는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는 미련 없이 상황실을 나섰다. ​ 팀장은 그 기묘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었다. ​ ​ ​ ​ ​ ​ ​ *** ​ ​ ​ ​ ​ ​ ​ ​ 피곤하다. ​ 상황실을 나오자, 긴장이 풀리며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 ‘만… 나기 싫어요….’ ​ 귓가에, 설유월의 떨리는 목소리가 다시 맴돌았다. 설유월은 그렇게 말했다. ​ ‘알겠습니다.’ ​ 그래서 알겠다고 말했다. ​ 그 이후의 과정은 어렵지 않았다. 모든 권한은, 상담사에게 있다. ​ 대한민국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직업이다. 적어도 이방인과 헌터의 정신적인 부분에 관해서는 절대적인 권한을 보장받는다. 협회든, 길드든 누구도 내 판단에 토를 달 수는 없었다. ​ 오히려 의외였던 것은, 이서령의 반응이었다. ​ 나는 그녀가 더 강하게 나올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 권한을 확인한 순간, 아주 깔끔하게 물러섰다. 마치 더 싸워봐야 이득이 없다는 것처럼. ​ 만약 이서령이 거기서 한 걸음만 더 나왔다면, 나는 설유월에 대한 접근 금지 명령까지 내릴 생각이었지만…. ​ 창천맹주라는 집단의 리더다운 깔끔한 판단이었다. ​ “후….” ​ 일단 설유월에게 울타리를 만들어주는 것은 성공했다. 이제 울타리 안의 설유월을 자기 스스로 일어날 수 있게끔 만들어야 한다. ​ 나는 즉시 헌터 협회의 자료실로 향했다. ​ “B-9 기록이랑, H-5 기록이요. 네네. 대여 형식으로.” 이번에도 역시, 사례를 좀 확인하기 위해서. ​ 설유월의 케이스는 단순한 의존성 성격장애가 아닐 것이다. 그 기저에는, 오랜 시간 이어진 이서령의 무언가가 복합적으로 얽혀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 나는 산더미 같은 자료를 들고, 집으로 향했다. ​ 뜨거운 물로 샤워를 마치고 의자에 앉자 피로감이 몰려왔다. ​ “어우…….” ​ 상담사라는 직업은 그래서 어렵다. ​ 세상에 똑같은 마음의 병은 존재하지 않는다. ​ 비슷한 사례를 수백 개 공부해도, 하나의 다른 요소가 있다면 대응도 크게 달라지니까. ​ 나는 책상 위에 펼쳐진 자료들을 지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 “시작할까.” ​ 나는 논문을 읽기 시작했다. ​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차가운 커피로 잠을 쫓으며, 나는 모니터와 서류 더미에만 집중했다. ​ 설유월에게 적용할 수 있는 실마리를 하나라도 더 찾아내기 위해. ​ 문득 피로함이 다가와 고개를 들었을 때, 시계는 오전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 “오늘은… 여기까지.” ​ 나는 뻑뻑한 눈을 비비며 중얼거렸다. 내일의 상담을 위해, 엉망으로 흩어진 자료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 단말기에서 출력한 새하얀 A4 용지들을 한데 모아 정리하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 손끝에, 이질적인 감촉이 느껴졌다. ​ 몇 시간 전 뽑아 새하얀 자료들 사이에 섞여 있는, 누렇게 변색하고 너덜너덜해진 종이 한 장. ​ “아… 제발.” ​ 세 번째다. 이제는 누렇게 변색된 종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 그, 연구자가 쓴 논문이다. 정신 나간 연구. ​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 종이를 열었다. 그리고 제목을 확인했다. 제발, 내용이라도 필요 없는 것이기를 빌면서. ​ 그러나. ​ [헌터 정신질환: 의존성이 짙게 나타난 내담자의 치료법에 대한 간단한 고찰.] 빌어먹을. ​ 정말 딱 내게 필요한 내용이었다. 이번에도 제목은 정상적이다. ​ 필체도 그 새… 아니, 그 사람이 맞다. 나는 이번에는 맨 뒤의 연구 결과부터 확인했다. ​ 빨간 딱지가 없다. 진짜 기록이다. ​ “후….” ​ 이제 진짜 도망칠 구석이 없다. 나는 논문이자 보고서의 첫 장을 열었다. ​ [논문에 앞서, 모든 과정은 실제 기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음을….] ​ 알았어. 알았다고. ​ 이번에도 작성자는, 제 3의 관찰자가 쓴 것에 가까워 보였다. ​ [사례 H-19: 중증 의존성 성격 장애를 겪고 있는 내담자 S와의 상담 및 치료 기록] [내담자 S(A급 여성 헌터)는, 부모의 지속적인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속적인 상담을 받고 있었음.] 설유월의 케이스가 가스라이팅인지는 아직 정확히 알 수는 없다. ​ 그러나 강한 압박에 취약한 반응을 보이는 것을 봤을 때, 얼추 비슷해 보이긴 했다. ​ [2회차] ​ [내담자 S]: 너무 힘들어요… 세상에 제 편이 하나도 없고,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상담을 해도 이게 나아지기는 할까요…? ​ [상담사]: 내담자분에게 여러 고민이 존재하고, 또 지지할 곳이 없다는 점을 인지했습니다. [상담사]: 이제 상담사인 제게 전부 털어놓으시면 됩니다. ​ 밑에는 이번에도 빨간색 휘갈겨 쓴 첨언이 달려 있었다. ​ [상담사는 정석적인 방법으로 내담자를 치료하려 했으나, 내담자의 의존도와 자립성이 상당히 부족하다고 판단함.] ​ [따라서, 상담사에게 우선적으로 의존할 수 있게끔 하는, ‘치료적 전이’를 선택했음.] ​ 교과서적인 접근이었다. 나 또한 고려하고 있는 방법 중 하나고. ​ 나는 그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재빠르게 상담 회차를 넘겼다. ​ [7회차] ​ [내담자 S]: 감사합니다 상담사님, 어제는 저 스스로 이번 달에 대한 목표도 세웠어요. 이제 길드에서도 저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해요…. ​ [상담사]: 정말 다행입니다. 전부 내담자님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 [기록: 그 결과는 효과적이었고, 베테랑 상담사답게 내담자 S의 증상은 날이 갈수록 호전되었음. 따라서, 상담사는 적절한 시기가 왔다고 판단. 울타리를 걷고 내담자가 스스로 밖으로 걸어나가게끔 의존을 덜어내는 방향성을 결정함.]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좋아….” ​ 여기까지는 좋다. 이상적인 효과. 그리고 이상적인 후속 대처. ​ 베테랑 상담사라는 말은 아무래도 거짓이 아닌 듯 보였다. ​ 나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음 장을 확인했다. ​ [8회차] ​ [상담사]: 훌륭합니다. 스스로 계획을 세워나가고, 이뤄내는 과정에서 사람은 기쁨을 얻는 법입니다. ​ [내담자 S]: 헤헤… 감사합니다…. ​ (잠깐의 침묵) ​ [내담자 S]: 상담사님… 저는 가끔 이렇게 생각해요…. ​ (내담자 S가 상담사에게 손을 뻗어 손등을 부드럽게 만짐.) ​ [내담자 S]: 사실··· 상담사님이… 진짜 제 아빠 아닐까요? ​ (상담사가 즉시 손을 떼려 했으나, A급 헌터인 내담자에게 손목이 붙잡힘.) ​ [내담자 S]: 어머니는 저를 괴롭혔고… 상담사님이 저를 치료해 주셨잖아요. 그래서… 말인데요 상담사님…. ​ [내담자 S]: 혹시… 아빠라고 불러도 될까요? ​ [상담사]: 내담자님이 저를 믿어주시는 것은 좋지만, 호칭은 다소 부적절해 보입니다. ​ [내담자 S]: … 왜요? ​ 베테랑이어도, 쉽지 않은 과정인 것은 맞다. ​ 상담사는 내담자 S의 세상에 새로운 기둥이 되어 주었다. ​ 그러나 정작, 그녀가 그 기둥 없이, 스스로 서는 법은 가르치지 않았다. 의존의 대상이 어머니에게서 상담사로 완벽하게 옮겨갔을 뿐. 따라서 이것을 해결하는 것이 가장 우선으로 보였다. ​ [기록: 상담사는 내담자가 본인에게 ‘아버지’의 역할을 원한다는 것을 인지함. 따라서 그 감정이 현재의 감정이 아닌, 과거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결핍이 투영됐음을 인지시키고자 함.] ​ 나는 기록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부터 대처 자체는 완벽에 가까웠다. 부디, 그 뜻을 이룰 수 있기를. ​ [15회차] ​ 그러나 상담이 15회차까지 이어진 것을 보면, 그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은 듯했다. ​ [상담사]: 어렸을 적 내담자님의 아버지가…. ​ [내담자 S]: 아니에요. 괜찮아요. 상담사님, 제 눈을 봐주시겠어요? ​ (상담사가 내담자의 눈을 바라보자, 그대로 굳었음. 그리고 이내 멍해진 눈동자의 상담사가 천천히 손을 뻗어 내담자 S의 볼을 쓰다듬기 시작함.) ​ [상담사]: 딸아…. ​ [내담자 S]: 하… 하아… 네… 아빠…. ​ (이후 상담사가 내담자 S에게 서서히 접근함) ​ ■■■■■■■■■■■■■■■■■■■■■■ ​ 다음 기록은, 붉은색 블록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미치겠다.” ​ 명백한 검열이었다. ​ (상담실의 문이 다급하게 열리는 소리.) ​ [상담사 B]: 당장 치유계 전문 헌터 불러!! 빨리!! ​ [내담자 S]: 하··· 아빠… 헥··· 너무··· 황홀했어요…. ​ [상담사]: 으··· 아··· 내, 내가… 대체 무슨…? ​ [기록: 내담자 S는 A급 정신계 헌터. 상담사가 이번 상담에도 호전되지 않을 시, 상담을 포기할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음. 따라서 마지막 기회라 여기며 정신 지배를 감행했음.] ​ [사후 결과: 상담사는 자의는 아니었어도 내담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상담사를 은퇴함. 내담자 S는 약간의 사회봉사로 처벌이 끝남. 그 능력의 쓸모 때문에 협회에서 편의를 봐준 것이 아니냐는 후문이 존재함.] ​ [사후 결과 2: 뒤늦게 알아낸 사실. 내담자 S와 상담사는 결혼하여 외국으로 이민을 갔다는 것이 밝혀짐.] ​ 나는 논문을 덮었다. ​ 손이 조금 떨리는 것 같기도 하다. 담담히 볼 수 있는 내용은 아니었다. ​ 결국 그는 의존을 덜어내는 것에는 실패했다. 게다가 논문 속 상담사는 훗날 자신의 내담자와 혼약까지 맺어버렸다. ​ 최악의 결과다. ​ “하….” ​ 대체 누구지? ​ 깊은 한숨과 함께, 의문이 피어올랐다. ​ 이 정신 나간 연구를 진행한 사람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내일, 협회를 가게 되면 반드시 물어봐야겠다. ​ “아니야.” ​ 나는 고개를 저었다. 더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 그저, 극단적인 사례일 뿐이다. 이렇게 될 일은 없다. ​ 루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논문 속 수인의 묘사와 기록이, 루나 자매와는 전혀 달랐던 것처럼. ​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는 저 상담사에게는 없었던 것이 있다. ​ 능력. ​ 최악의 상황이 닥치기 전, 모든 것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 ​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리고 지친 몸을 일으켜, 침실로 향했다. ​ 창밖으로, 어느새 동이 트고 있었다. ​ 그래, 아마도. ​ 괜찮을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