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이 이 세계로 전이됐을 때 그들을 맞이하는 절차는 명료하게 정해져 있다. ​ 기본적으로 비교적 온화한 이방인들. 즉 ‘안전’ 등급으로 판별이 된 이방인들은 협회가 마련한 장소로 이동한다. ​ 그리고 여러 적응에 필요한 교육을 받으며, 그곳에서 자신과 같은 처지의 다른 이방인들과 교류하며 새로운 삶을 살아갈 준비를 하게 된다. ​ 그런데. 만약 전이 직후 적대적인 태세를 보이거나 협회의 통제를 거부하는 '주의' 등급의 이방인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현장에 대기 중인 헌터들이 즉시 대상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협회의 격리 구역으로 이송한다. ​ 만약 이후 대화를 통해 교화의 가능성이 보인다면 별도의 적응 절차를 밟게 된다. ​ 그렇다면 마지막, ‘위험’ 등급의 이방인이라면? 제압이 가능할 경우 '주의' 등급과 비슷한 절차를 밟는다. 그러나 제압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된다면…. ​ 그 자리에서 즉시 사살한다. ​ 그것이 이 세계를 위한 헌터들과 사람들이 내린, 사회적 약속이었다. ​ 따라서 설유월도 일차적으로는 협회가 마련한 독방으로 이송될 것이다. 나는 의식을 잃은 그녀가 이송 차량에 실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 그때 협회의 담당 직원이 내게 다가와, 카드 키 하나를 건넸다. ​ “여기 출입 카드입니다.” ​ “네.” ​ 나는 은색 카드를 받아 들었다. ​ “앞으로 많은 시간 출입하셔야 될 수도 있겠습니다.” ​ 직원의 말에는 안타까움이 섞여 있었다. ​ 안전으로 판단됐다면 가끔씩 방문하면 됐겠지만…. 주의 등급인 이상, 이방인의 교화 가능 여부를 판단하고, 또 그 교화의 모든 과정을 책임지는 것은 내가 될 테니까. ​ 별도의 차량으로 가기 전, 나는 내 임시 경호팀 멤버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 “엘리스님. 고생하셨습니다.” ​ 그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엘리스는 손을 휘적대며 담담히 답했다. ​ “아니에여. 별로 어렵지도 않았어여.” ​ 그리고 자화연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협회의 직원들에게 둘러싸여 일종의 조사를 당하고 있었다. ​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왜 튀어나온 건지, 그런 게 아닐까 한다. ​ “글쎄, 이 몸이 아는 자래도.” ​ 슬슬 그녀의 목소리에 짜증과 귀찮음이 묻기 시작했다. ​ “맞습니다. 실제로 아시는 분 같았습니다.” ​ 나는 그녀를 그 곤란한 상황에서 구출했다. ​ 약간의 설명을 덧붙이자, 협회 직원들도 고개를 끄덕 거리며 물러났다. 그리고 자화연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 그녀의 참전은 여러모로 놀랐지만, 도움이 된 건 사실이었으니까. ​ “오늘 감사했습니다. 천마님.” ​ “별것 아니었다. 나도 궁금해서 따라온 것이니라.” ​ 자화연은 입꼬리를 씨익 끌어올리며 답했다. 그리고 내 눈을 아주 깊게 바라보며 말했다. ​ “의원.” ​ “네.” ​ “그대는 아마 창천맹주를, 필히 만나게 될 것이다.” ​ “그렇군요.” ​ 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 “그대가 외형만 보고 상대를 판단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믿으마.” ​ “네?” ​ 나는 그녀의 말에 의문이 들었지만, 이내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렸다. ​ “천마님은 제가 그럴 사람같이 보이십니까?” ​ “하하하!” ​ 내 자신감 넘치는 반문에, 자화연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 “내 의원이, 그럴 리 없지.” ​ ​ 그녀는 그 대답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몸을 돌렸다. 그리고 쿨하게 떠났다. ​ “정리되면 또 오도록 하마.” ​ 맘 같아서는 나도 자화연과 함께 퇴근하고 싶었지만, 내 일은 엄밀히 따지면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 “…….” ​ 딱 봐도 야근인데. ​ 문제는 내 냉장고에는 주인을 기다리는 푹신한 빵들이 있었다. 오늘 아침, 이른 새벽부터 만든 케이크들, 출동 전에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 아무래도 직접 주는 것은 어렵겠다. 갓 만든 디저트는 빨리 먹어야 맛있는 법이니까. ​ 나는 엘리스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 “엘리스님 괜찮으시다면 부탁드릴 게, 하나 있습니다.” ​ “먼데여?” ​ 엘리스는 귀를 쫑긋 움직이며 물었다. ​ “제 상담소로 가면 방 옆에 주방이 있습니다. 그 주방 안 냉장고에 케이크 상자 두 개가 있을 겁니다.” ​ 나는 그녀에게 손짓하며 위치를 설명했다. ​ “하나는 딸기 케이크 다른 하나는 바닐라 케이크입니다. 딸기는 루나 님께 전해주시겠습니까? 그리고… 그 옆의 바닐라 케이크는 엘리스님 몫입니다.” ​ 포장을 다 해놨으니 문제는 없을 것이다. 내 말에 엘리스의 붉은 눈이 놀라움으로 동그랗게 커졌다. 루나는 몰라도, 내가 자신을 위해 따로 케이크를 준비했다는 사실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눈치였다. ​ “저도… 진짜여…?” ​ 그녀의 목소리에는 순수한 당혹감이 묻어 있었다. ​ “네. 상담소 위치는 검색하면 나올 겁니다. 그리고 여기 열쇠입니다.” ​ 나는 주머니에서 상담실의 열쇠를 꺼내 그녀의 손에 쥐여주었다. 엘리스는 내 열쇠를 받아들며 기쁜 표정을 지었다. ​ 그 미소는 보육원에서 아이들을 보며 지었던 그 미소와 닮아 있었다. ​ “… 잘, 먹을게여.” ​ 그녀는 수줍게 그 한마디를 남기고 돌아섰다. ​ “…….” ​ 나도 고개를 돌렸다. ​ 진짜 일을 하러 갈 시간이었다. ​ ​ ​ ​ ​ ​ *** ​ ​ ​ ​ ​ ​ 차량을 통해 협회의 시설로 이동했다. ​ 시설의 건물은, 외관부터가 첨단 기술이 요소요소 쓰였다는 것이 티가 났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 거대한 규모와 달리, 도심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 나는 협회의 격리 시설 회의실에 앉아, 담당 팀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 “많이 위험한가요?” ​ “그렇지는 않습니다. 공격에 사유가 있어 보였습니다. 당시 현장에는 천마님이 함께 계시기도 했고….” ​ “아… 그건 그렇네요….” ​ 담당 팀장은 커피를 마시며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중원이라는 세계의 생태를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이 세계에서의 흐름으로 보건대 천마에게 적의를 드러내는 존재라면 그녀의 출신은 정파일 확률이 높았다. ​ ​ “그래도, 일단 주의 등급은 맞긴 하겠습니다.” ​ “네. 그게 좋겠습니다.” ​ 그의 말에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 “팀장님…!” ​ 그때 회의실의 문이 거칠게 열리며 한 직원이 뛰어 들어왔다. ​ “창천맹주가 직접 찾아왔습니다…!” ​ “뭐? 왜?” ​ 팀장의 표정에 당혹스러운 의문이 깃들었다. 이방인들의 균형을 유지하는 거대한 세력 중 하나의 수장인 그녀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어째서 이 격리 시설까지. ​ “오늘 전이한 이방인, 그러니까 설유월 이방인의 어머니… 보호자라고 하시면서 지금 정문에서 면회를 요청하고 계십니다….” ​ 이방인들은 아주 운이 좋다면, 이미 이 세계에 넘어와 자리를 잡은 아는 사이의 사람이 존재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을 협회에서는 보호자라 칭하고, 초기 적응을 위해 적극적인 만남의 기회를 제공한다. ​ 이미 이곳에 먼저 적응을 한 사람이 새로운 이방인에게 이 세계를 직접 설명하는 것만큼 빠르고 효과적인 교화 수단은 없을 테니까. ​ 그 말에 팀장의 굳어 있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 “그래? 당장 안으로 모셔!” ​ 나도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은 일이다. ​ 무슨 관계인가 했더니… 모녀관계였구나. ​ 매우 다행이다. ​ 잠시 후, 회의실의 문이 조용히 열리고 한 여인이 안으로 들어섰다. 얼핏 보면 앳돼 보이는 얼굴과 그에 비해 고혹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아름다운 여성. ​ 창천맹주였다. ​ 그녀의 시선은 다른 협회 직원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곧장 나를 향했다. ​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 “처음 뵙겠습니다, 맹주님. 상담사 유선우라고합니다.” ​ “네,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심의(心醫) 선생님.” ​ 그녀는 맹주라는 지위가 무색하게 아주 사근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를 추켜세웠다. ​ “창천맹주, 이서령입니다.” ​ 그녀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 창천맹주는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듯 급한 목소리로 곧장 이야기를 시작했다. ​ “유월이는 제 하나뿐인 딸이었습니다.” ​ 그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 “그런 딸을 중원에 놔두고 이 낯선 세계로 넘어왔을 때는 얼마나….” ​ 그녀의 말이 순간 끊어졌다. 그리고 천천히 이어갔다. ​ “유월이의 모습을 영상으로 봤을 때는 얼마나 감격스럽고 눈물이 나던지···.” ​ 이서령은 터져 나오려는 감정을 억지로 삼키려는 듯, 입술을 굳게 깨물었다.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티슈 한 통을, 그녀의 앞으로 조용히 밀어주었을 뿐. ​ 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 그녀의 슬픔에 감정이 동해서? ​ 아니. ​ [이서령] [메인 스탠스] [창천맹주로서의 위엄 있는 모습보다 ‘모성애가 강한 어미’로서의 연약한 모습을 보여 동정심을 유발하는 것이, 그녀의 목표를 이루기에 적합하다 판단했습니다.] 표리부동. 겉과 속이 다른,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의 타입이라서. ​ 차마, 표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 그녀는 내가 밀어준 휴지를 잠시 바라보더니, 조용히 답했다. ​ “감사합니다….” ​ 휴지를 꺼내들어 눈을 톡톡 두드리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 “저희 유월이는… 언제 볼 수 있을까요?” ​ 그녀는 시종일관 내게 묻고 있었다. ​ 지금까지 이 방에 들어와 모두에게 말하는 듯 보였지만, 결국 모든 결론은 나였다. ​ 협회의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 지금 이 상황을 통제할 키가 나에게 있다는 것을 애초에 인지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 나는 담담히 답했다. ​ “우선 이방인 분의 상태를 직접 확인해 봐야 하기 때문에 면회는 조금 이후에 가능할 것 같습니다.” ​ “그냥… 같이 들어가면 안 될까요? 얼굴이라도 아주 잠깐이라도, 보고 싶습니다….” ​ 어떻게 할까. 평소의 나라면, 흔쾌히 허락했을 것이다. 오히려 여기서 고민하는 게 이상할 정도일 수도 있다. ​ 그런데…. ​ 왜일까. 나는 알 수 없는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 “얼마 걸리지 않을 겁니다.” ​ 나는 그녀의 부탁을 거절했다. ​ “그렇군요….” ​ 그러자 이서령이 실망한 듯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며 한 번 더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이전보다 훨씬 더 간절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 “그래도, 어떻게, 정녕, 안 되겠습니까?” ​ “안….” ​ 어? ​ [경고: 암시(A급)이 당신을 교란합니다.] ​ 바로 그때, 내 눈앞에 붉은색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 암시? ​ 그러니까 방금 그녀의 그 애처로운 부탁에 암시가 담겨 있었다고? ​ “상담사님.” ​ 그때 누군가가 내 어깨를 잡았다. ​ “그냥, 같이 들어가게 해주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 협회의 팀장이었다. 그의 눈에는 이성적인 판단 대신 과도한 동정심이 어려 있었다. 그는 이미 그녀의 암시에 당한 듯했다. ​ [상태 이상: 암시(A급)를 인지했습니다. 강제 해제를 시도합니다.] [일전의 사용자 피드백 반영… 대응 방식을 제시합니다.] ​ [A) 파훼: 그녀의 정신 공격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분쇄하여, 당신이 기술에 저항했음을 보입니다.] [B) 방어: 그녀의 정신 공격을 조용히 무력화시키고 그녀가 자신의 능력이 통하지 않았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 [C) 행패: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이냐며 그녀의 멱살을 잡고 옷을 늘어드리며 고래고래 소리칩니다.] ​ ‘나이스.’ ​ 너, 많이 발전했구나. 물론 C 빼고. ​ 나는 즉시 B를 선택했다. 동시에 내 머리를 어지럽히던 불쾌한 감각이 사라졌다. ​ 그리고 나는 바로 표정을 구겼다. ​ “아… 저도 정말 그러고 싶은데….” ​ 나는 이서령과 팀장을 번갈아 보며 진심으로 안타깝고, 또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 “이게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규율이라서요….” ​ 정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 - 삐비비비비비빅!! ​ 바로 그때였다. ​ 나와 팀장 사이에 놓인 회의실의 메인 모니터에서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렸다. ​ 그 소리에, 멍해있던 팀장의 눈동자에, 비로소 이성의 빛이 돌아왔다. ​ “… 이방인이 정신을 차렸습니다. 상담사님!” ​ “네.” ​ 나는 재빠르게 일어났다. ​ 그리고, 이서령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 설유월에게서 이 알 수 없는 거부감의 이유를, 알아봐야겠다. ​ 그리고 방을 나서는 그 순간, 나는 보았다. 회의실의 유리에 비친 그녀의 얼굴을. ​ 나와 눈이 마주쳤다. ​ 이서령의 입꼬리는, 아주 희미하게 올라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