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로 향하는 루나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볍고 신이 나 있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발걸음에서는 아주 작은 소리 하나 나지 않는다. 토끼 수인 특유의 보법이었다. ​ ‘언제부터였을까.’ ​ 루나는 생각했다. ​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상담이라는 단어는 그녀에게 공포와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행위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상하게도 그 시간이 기다려졌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감정은… 정말 오랜만이었으니까. ​ 마침내 상담실 문 앞에 도착한 루나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마른 입술을 혀로 살짝 축이며 긴장감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 그리고 문을 두드리기 위해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올린, 바로 그 순간이었다. ​ 문 너머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들어오셔도 괜찮습니다, 루나님.” ​ 역시, 알아챈 모양이다. 루나의 입꼬리가 자신도 모르게 살짝 올라갔다. ​ - 똑똑. ​ 루나는 기분 좋은 긴장감과 함께 문을 가볍게 노크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 그러나. ​ “… !” ​ 상담실로 들어서자마자, 루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 코끝을 찌르는… 아주 낯설지만, 동시에 자신의 본능을 뒤흔드는 익숙한 향기 때문에. ​ 선생님의 표정은 평온하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다. 하지만, 후각이 극도로 예민한 토끼 수인인 루나는 느낄 수 있었다. ​ 이 방 안에 남아있는, 아주 진득하고… 노골적인… 다른 암컷의 향기를. 본능 발현기의 암컷이, 수컷을 유혹하고 다른 모든 것의 접근을 경고하기 위해 뿌리는 지독한 페로몬 향이. ​ “…….” ​ ‘이 남자는 내 것.’ ​ 이라고 주장하는 듯한, 오만하고 소유욕 강한 페로몬. 그 향은 상담실의 주인인 선생님의 체취와 뒤섞여 루나의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 루나는 그 강력한 영역 표시에, 당황했다. ​ ‘어… 어떻게 해야….’ ​ 처음 겪는 상황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이토록 대담하고, 자신감 넘치는 페로몬을 남길 수 있는 존재는 그녀가 아는 한 단 한 명뿐이었다. ​ ‘엘리스….’ ​ 자신의 쌍둥이 동생. ​ 그녀가 먼저. ​ 먼저…? 아무튼, 이 남자를 자신의 것이라 선포한 것이다. ​ 물론 루나는 결코 알 수 없는 사실이겠지만, 엘리스는 이런 흔적을 남기고자 한 적이 없다. 그러나 방금 유선우와의 접촉은, 엘리스 역시 처음으로 겪은 강한 자극이었고. 그녀도 모르게 방출해버린 페로몬이 이 공간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 -꼼지락. ​ 그녀는 들어가지도 나가지도 못한 채, 손가락만 꼼지락거렸다. ​ ‘엘리스가 선생님에게 먼저 영역 표시를 했어.’ ‘그 아이는 늘 성숙하고 빨라. 늘 원하는 것은 먼저….’ ‘그럼 언니로서, 이번에도… 양보를….’ ​ 그러나 그녀의 마음속에서 이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아주 작은 목소리가 그녀를 가로막았다. ​ ‘아니.’ ​ 루나의 붉은 눈동자가, 날카로워졌다. ​ ‘이번에는… 싫어.’ ​ 다른 건 전부 양보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루나의 머릿속이. 매우, 복잡해졌다. ​ ‘어…? 방금 무슨 생각을….’ ​ 아, 아니지. 단순히 생각하자. 어렵게 생각할 것이 없는 것이었다. ​ ‘나는… 나는 그냥, 상담을 받으러 온 거니까.’ ​ 절대 엘리스의 것을 건드는 것은 아니니까. ​ 루나는 스스로를 그렇게 합리화하며, 상담실 안으로 발을 들였다. ​ - 휘적. ​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공중에 떠 있는 지독한 향을… 마치 날벌레를 쫓아내려는 듯 손으로 휘휘 내저으며. ​ ​ ​ ​ ​ *** ​ ​ ​ ​ ​ ​ ​ 나는 자리에 앉아 문 앞에서 한참을 멈춰 서 있던 루나가 마침내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이 들어서는 그 순간 아주 잠깐, 찡그려졌다. ​ ‘뭐지?’ ​ 방금 전까지 희미하게 미소 지었던 루나였다.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그녀의 상태를 조심스럽게 확인했다. ​ [루나] [메인 스탠스] [방 안에서 나는 향에 불쾌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적합 답변] [만족 적합률 100%] [잠시 일어나서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세요.] ​ 헐. 설마 나 냄새나나? ​ 상담사가 내담자에게 제공해야 할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쾌적하고 안정적인 상담실의 환경이다. 그래서 나는 상담실의 향기 또한 최고급 디퓨저와 공기 청정기를 구비하며 최선을 다해 유지하는 편이었는데…. 아무래도 여기가 유니온이 제공한 장소다 보니 문제가 발생한 모양이었다. ​ 루나는 기본적으로 토끼 수인. 아무래도, 나 같은 평범한 인간은 맡지 못하는 그녀의 신경을 거스르는 냄새가 존재하는 듯했다. ​ 나는 재빠르게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시스템 에어컨의 공기 청정 모드를 작동시켰다. ​ 그리고 다시 자리에 앉으며, 루나의 상태를 확인했다. ​ [루나] [메인 스탠스] [‘좋아… 사라지고 있어.’ 방 안을 채우고 있던 불쾌한 향기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깥공기에 서서히 사라지는 것에 대해 안도감과 만족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 다행이다. 나는 시스템 창을 확인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 냄새인지 다른 내담자가 남긴 냄새인지는 모르겠지만, 불쾌함의 원천이 사라졌으니 된 것이다. 앞으로는 환기에 조금 더 신경을 써야겠다며 속으로 다짐했다. ​ 루나는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 이제, 진짜 상담을 시작할 시간이었다. 나는 그녀를 향해 부드럽게 물었다. ​ “어제 하루는, 잘 보내셨나요?” ​ “네….” ​ 그녀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정되어 있었다. ​ “덕분에요, 선생님.” ​ “그럴 리가요.” ​ 나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렇게 잠시 동안 적당히 평온한 신변잡기적인 대화가 이어졌다. ​ 하지만, 오늘 내가 도달하고자 설정한 목표는 단순한 아이스브레이킹이 아니다. 그녀가 이 세계에 도착하여 숨겨왔던 그녀의 진짜 모습을 그녀 스스로 꺼내놓게 하는 것. 수인으로서의 정체성인 그 귀가, 수치심이 아닌 자긍심으로 받아들이게끔 하는 것. ​ 내가 다음 단계로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던 그때. ​ 내 마음을 이해라도 한 듯 눈앞의 시스템이 떠올랐다. ​ [루나] [메인 스탠스] [선생님과의 대화에 마음이 안정되고 기분이 좋은 상태입니다.] [적합 답변] [만족 적합률 85%] [근데 이제 슬슬 귀 좀 보여주시겠어요? 그때 보니까 예쁘던데요. (낮은 목소리 및 강압적인 톤으로)] [적합 답변] [만족 적합률 60%] [그녀의 인식 저하 마법(B) 카모플라쥬를 강제 해제하고, 엘리스가 알려 준 인사법을 행하십시오.] “…….” ​ 이번에는 정말 중간이 없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봤을 때, 1번이 나쁜 선택지는 아닐 수도 있다. 물론 내 식대로 적절히 변형을 해야겠지만. ​ 그러나 아래 선택지. ‘강제 해제’ 후 인사는… 설득력이 없었다. 무슨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 나는 1번의 선택지를 선택했다. 내 방식대로 변주를…. ​ [가급적 변주를 주지 않는 것을 추천합니다!] [ ヽ`、ヽ`(。・︿ ・。)ヽ`、ヽ ] 싫어 임마. 나는 그 경고를 가볍게 무시하고, 루나의 붉은 눈을 마주 보며 아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루나님.” ​ “네, 선생님….” ​ “루나님은 아주 잘하고 계십니다. 내담자분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고… 또 이렇게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큰 용기를 내신 거니까요.” ​ “아….” ​ 나는 먼저 그녀의 노력을 칭찬하며 안전한 지지대를 마련했다. 내 진심 어린 칭찬에 루나의 뺨이 희미하게, 붉게 물들었다. ​ “그런데,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혹시 그 변형 마법을 항상 유지하시는 것이 힘들지는 않으신가요?” ​ 나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그녀의 비밀이 아닌 그녀가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 하는 노력에 대해 물었다. B급 마법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상시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테니까. ​ “제 생각이지만 결국 루나님을 가리고 있는 모든 베일을 언젠가 전부 걷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루나님께서도 편안해지실 수 있을 테니까요.” ​ 내 말에, 그녀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 “아… 그게에… 힘들긴 하지만, 아직은… 그래도….” ​ 나는 그녀의 저항을 느끼자마자 즉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물러섰다. ​ “네, 그럼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익숙해지시면 되는 겁니다. 바로 무리하실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 내 말에, 루나는 자신이 다그침 받지 않는다는 사실에 살짝 안심한 듯했다. 그녀는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서 나는 타협안을 준비해 놨다. ​ “그렇다면… 혹시 이건 어떨까요?” ​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마지막 제안을 건넸다.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이며, 목소리를 한 톤 더 낮췄다. 마치 아주 중요한 비밀을 공유하는 것처럼. ​ “괜찮으시다면 당분간, 이 상담실 안에서만큼은. 그리고, 오직 상담사인 저에게만큼은.” ​ 나는 그녀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 “루나님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 그리고 덧붙였다. ​ “약간의 적응 기간을 가진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실… 저는, 지난번에 보았던 루나님의 본모습 또한, 아주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 ​ 나는 마지막 말과 함께 헛기침을 하며, 어색하게 시선을 돌려버렸다. ​ 루나는 내 제안에, 대답 대신 내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방금 말이 진심인지 확인하는 듯한 느낌으로 내 눈동자를 바라본다. ​ 나 또한 고개를 돌리지 않고 마주 봤다. ​ 루나는 아주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 길고 예쁜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의 붉은 눈동자 안에는 약간의 결심이 서려 있었다. ​ - 파아앙! ​ 맑고 경쾌한 소리와 함께. 루나의 머리 주변의 공간이 아지랑이처럼 희미하게 일그러졌다. ​ 그녀의 베일이 마침내 걷히는 순간이었다. ​ “선생니임….” ​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빛의 입자들 사이로 그녀의 새하얀 머리카락 위. 길고 우아하며, 끝에는 솜털이 달린 한 쌍의 새하얀 토끼 귀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 그녀는 차마 내 반응을 마주할 용기는 없는지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입술을 굳게 깨물고 있었다. 온몸이, 작은 새처럼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 나는 그런 그녀의 용기 있는 모습을 보고. 그녀가 가장 듣고 싶어 할 말을 건넸다. ​ “아쉽네요.” ​ 내 말에, 루나의 굳게 닫혔던 눈꺼풀이 아주 살짝 떨리며 열렸다. ​ “루나님의 이 모습을 아직은, 저만 볼 수 있다는 게.” ​ 불경하다. 짐승 같다. 더럽다. 루나를 평생 괴롭힌 말 대신, 그녀가 원했을 그 한마디. ​ 그 한마디에 루나의 떨림이 거짓말처럼 멎었다. 그녀의 뺨이, 붉게 물들었다. 그리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저 처음이었어요….” ​ 루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 ​ “이 모습을… 이 세계에 와서 남에게 보여준 게….” ​ “그렇군요.” ​ 나는 나직하게 대답했다. 무엇이든 첫인상과 첫 경험이 가장 중요한 법이다. 그리고 나는, 상담사로서 그 시작을 온전한 성공이라는 좋은 경험으로 남겨주어야 할 의무가 있었다. ​ 나는 그녀를 향해, 진심을 담아 말했다. ​ “그 첫 번째가 저라서 영광입니다.” ​ 그리고. ​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지금이 엘리스가 알려준 그 인사법을 사용할 최적의 타이밍이 아닐까? ​ [지금입니다!!!!!!!!!!!!!!] ​ 내 생각에 시스템이 미친 듯이 환호하며 응답했다. 나는 엘리스가 알려줬던 수인 세계의 기분 좋은 인사법의 방식을 떠올렸다. ​ ‘오른쪽 귀의 바깥쪽을, 부드럽게.’ ​ - 스윽. ​ 나는 그녀의 앞에 다가가 아주 조심스럽게, 그녀의 오른쪽 바깥쪽 귀를 내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손끝에,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진다. ​ “아….” ​ 그러나. ​ 내 손길이 닿는, 바로 그 순간. 루나의 입술 사이로 짧고 뜨거운 숨이 터져 나왔다. ​ 그녀의 몸이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그 자리에서 파르르 떨리며 굳었다. 엘리스와 비슷한 반응이었다. ​ 그리고 그녀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루나의 얼굴은 내가 지금껏 본 그 어떤 때보다도 가장 달아올라 있었다. ​ 그녀의 붉은 눈동자에 내 모습이 담긴다. 그리고 서서히, 그리고 명백하게 확장된다. 그 붉은색이 이전보다 훨씬 더 선명하고 진해지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 동시에, 루나는 미소 짓고 있었다. ​ 그것 역시. ​ 내가 봤던 루나의 미소 중, 가장 깊은 미소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