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쉬러 안 갔어?” ​ 메어리는 손을 뻗은 채 내게 먼저 질문했다. 목소리에는 걱정이 담겨 있다. ​ “아직 괜찮아서.” ​ “그러면 안 돼… 푹 쉬어야지….” ​ 메어리는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 - 철컥. ​ 그녀의 따뜻한 걱정과 함께, 등 뒤에서 도어락이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 - 띡띡, 철컥. ​ 메어리는 수동잠금장치를 하나 추가했다. 그녀는 그제야 몸을 돌려, 나를 보며 다시 한번 걱정스럽게 말했다. ​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푹 쉬어….” ​ 나는 웃으며 신발을 벗었다. ​ “저녁은 아직일 테고.” ​ 그리고 방 안으로 들어가며 물었다. ​ “응응.” ​ “먹고 싶은 거 있어?” ​ 격리실은 늘 그렇듯이, 식자재만큼은 풍족했다. 오히려 나는 가끔 여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 매 순간 신선하고 질 좋은 식재료들을 보급해 주니까. 도시락을 선택해서 받아먹는 것은 어디까지나 요리를 못 하는 이방인을 위한 배려일 뿐, 사실 이곳은 요리해 먹기 최적의 환경이었다. ​ “음… 피자…?” ​ “으잉…?” ​ 메어리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아이처럼 대답했다. ​ 피자라…. 어렵지는 않다. 찬장을 열어보니 밀가루도 있고, 토마토소스와 치즈까지, 있을 건 다 있었다. 다만…. ​ “버섯 잔뜩 넣고~ 페퍼로니랑~” ​ 피자는 차라리 시켜 먹는 게 나은 느낌이다. 시중에서 파는 맛을 내려면 적어도 몇 시간 정도는 숙성시켜야 하니까. ​ 내가 그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메어리가 소파에 누워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 “도우 숙성해야 되나? 그럼 그 시간 동안 뭐 하지?” ​ 안타깝게도 도우의 숙성까지 기다릴 시간은 없어 보였다. 나는 결국 차선책인 또띠아 피자를 선택했다. ​ “… 흐음….” ​ 내가 또띠아를 꺼내 도마 위에 세팅하자 메어리는 약간의 한숨을 내쉬며 냉장고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필요할 법한 재료들을 착실하게 꺼내 내 옆 조리대에 갖다 놓기 시작했다 ​ 양파, 버섯, 페퍼로니, 그리고 올리브까지. ​ “이걸로는 부족할 텐데..” ​ 그녀는 냉장실에서 두툼한 안심 덩어리를 꺼내며 말했다. ​ “스테이크도 좀 구울게?” ​ 그렇게 우리의 즉흥적인 요리가 시작됐다. ​ - 치이익…. ​ 고기가 익는 기분 좋은 소리와 함께 고소한 버터 향이 숙소를 가득 채웠다. ​ 동선은 놀라울 정도로 깔끔했다. 내가 다음 행동을 위해 몸을 돌리면, 그녀는 이미 그 자리를 비켜나 다른 준비를 하고 있었다. ​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요리는 끝났고. ​ 큰 테이블 위에 또띠아 피자와 안심 스테이크가 보기 좋게 차려졌다. 우리는 마주 보고 앉았다. ​ - 슥슥…. ​ 나는 안심스테이크를 부드럽게 썰어 메어리의 접시 위로 옮겨주었다. ​ 그와 동시에, 메어리는 길게 늘어나는 치즈와 함께 피자 한 조각을 떠서 내 식기 위에 올려주었다. ​ “어제도 이렇게 차려 먹은 사이 같네.” ​ 그녀는 스테이크 조각을 입에 넣으며,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말했다. ​ “그러게.” ​ 묘하게 합이 잘 맞는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 우리는 식사를 하며 최근 몇 년간 하지 못했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색함은 금세 사라졌고, 마치 어제 만났던 동료처럼 편안한 대화가 오고 갔다. ​ 의도적으로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려 했다. 해결된 일이기도 하고. ​ 좋은 일은 또 아니니까. ​ 대화를 하다 보니, 몇 년간의 공백은 딱히 느껴지지 않았다. ​ “그래서… 이번 사슬지옥 공략이 사실상 계약 마지막 업무였어.” ​ 메어리와 대해의 계약은 거의 끝나가고 있다고 한다.. 원래는 4년에 1년을 추가하는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 “1년 추가 계약까지는 서로 뜻이 맞기도 해서 옵션 일으켰었는데… 부길드장 자리를 최시혁이 가져갈 수도 있다고 하네? 그래서 마음이 바뀌었지. 다음 계약은 없는 걸로….” ​ 메어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 “그런데, 죽었네.” ​ 길었던 메어리의 고민의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 “고민이 많긴 하겠네.” ​ 나는 음식을 입에 넣으며 답했다. 그만둘 것인지, 아니면 계속 속해있을 것인지. ​ 곧 있을 이적시장. ​ 그녀의 거취 자체가 이적시장을 뒤흔드는 문제긴 했다. ​ “응. 좀 있어.” ​ 메어리야 사실 갈 곳이 없는 건 아니다. 대해에서 떠나려고 한다면 오히려 붙잡으려는 위치에 가깝고. ​ 랭킹이… 몇 등이더라.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는데 거의 진세아와 비슷하거나 높았던 걸로 기억한다. 이번 사슬지옥 공략 성공으로 더 높아졌겠지. ​ 어딜가도 최고의 대우를 받을 수준이라는 뜻이다. ​ “협회는… 어떨까?” ​ 그때, 메어리가 나이프를 내려놓고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물어왔다. ​ 협회라….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 굳이 따져보자면 좋은 선택은 아니다. ​ 어디까지나 국가에 속해있는 집단이고 다른 길드에 갔을 때 누릴 수 있을 연봉이나 계약금을 누리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파격적인 대우는 어렵다는 소리다. ​ 게다가, 협회 자체가 A~B급이 선호하는 철밥통 이미지가 강하기도 하고. 그녀가 협회에 가게 된다면, 그 소식 자체가 충격 아닐까. ​ “글쎄.” ​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금전적으로는 좀 손해를 볼 것 같은데?” ​ 나는 그녀가 더 나은 선택을 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웃으며 조언했다. ​ 뭐 좋은 점이라고 한다면…. 협회 소속이니, 자연스럽게 나와의 접점이 많아지는 정도? ​ 아마 협회에서도 S급 헌터인 그녀를 극진히 모시며, 나를 전담 상담사로 붙여줄 가능성이 높았다. ​ 사실 뭐 그게 장점이라 보기도 어렵고. 그냥, 타 길드를 선택하는 게 좋아 보였다. ​ “해태는 어때?” ​ 나는 그녀가 더 좋은 대우를 받길 바라는 마음에서, 다른 선택지를 제안했다. 요즘 해태가 돈을 풀 준비를 한다는 소문을 들은 것 같다. ​ 진세아 원맨팀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소리도 들었던 것 같고. ​ 내 조언에, 메어리는 갑자기 숨을 죽여 웃기 시작했다. ​ “쿡쿡.” ​ 그녀는 웃음을 참으려는 듯, 어깨를 떨며 겨우 대답했다. ​ “아마… 음, 안 될 거야. 응. 쉽지 않을 것 같네.” ​ “그래, 뭐. 길드는 많으니까.” ​ 해태가 싫다면 다른 곳도 있다. 최소 십 대 길드 안에는 들어가야 메어리의 면이…. ​ 잠깐만. ​ 사실 이건 어디까지나 금전적인 부분이고. ​ 그녀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이 뭔지가 궁금했다. 생각해보면 보통 이런 선택을 묻는 질문은…. 답을 이미 정해두고 지지를 얻으려 하는 경향이 강했으니까. ​ 나는 그녀의 상태를 확인했다. ​ [쥴리아 메어리] [메인 스탠스] [협회에 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길드 내부의 잇속 다툼에 질려 있던 참이기도 하고,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 그렇구나. ​ 역시 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였다. ​ 나는 웃으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 아직도 멀었다. ​ [적합 답변][만족 적합률 10%] [여전히 금전적인 이유를 바탕으로 대상에게 타 길드를 권하세요!] ​ [적합 답변] [만족 적합률 80%] [어떤 선택을 하든 상관없이, 그녀의 의사를 ‘공감’ 해주세요!] ​ [적합 답변][만족 적합률 ???%] [사용자님에 대한 압박과 위해가 심해질 수도 있는 현 상황, 대상을 개인 보디가드로 고용하는 것은 어떨까요?] ​ 첫 번째 선택지는 딱 봐도 이것만 선택하지 말라는 반면교사인 것 같고. 두 번째가 옳은 선택지였던 것 같다. 이해하고 공감. ​ 그리고 세 번째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고. 내가 돈이 어딨어서 S급 헌터를 고용해…. ​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시스템은 불가능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즉, 뭔가 어떤 상황이 발생하긴 한다는 소리다. 고용 자체는 힘들지라도 이 제안이 결과적으로 그녀와 나의 행복 총량을 극대화한다는 뜻이니까. ‘…….’ … 궁금한데? 뭔가 평소처럼 비윤리적이거나 이상한 선택지도 아니고 그저 제안일 뿐이다. 장난삼아 이야기 정도는 해볼 수 있는 거 아닌가? ‘???’ 확률의 선택지를 선택했을 때 발생하는 결과가 몹시 궁금하기도 하고. 과거 뭣도 모를 때는 메어리에게 이보다 더한 선택지도 한 적이 있으니까. ​ 허리 부분을 툭툭 두드린다던가, 마사지를 해준다던가…. ​ 한번 해보자. ​ 나는 결심을 굳히고,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그녀에게 물었다. ​ “경호원 생각은 없어?” ​ “윽, 그건 별로….” ​ 내 질문에 메어리의 표정이 순간 썩어들어 갔다. 최근 돈 많은 기업가들이 S급 헌터들을 사설 경호원으로 고용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는데, 그녀는 그런 일을 경멸하는 듯했다. ​ 음,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건 아니었나 보다. ​ 나는 시스템의 실력을 순간적으로 의심하며, 서둘러 화제를 돌리려 했다. ​ [(≖ᴗ≖ )] 뭘 웃어. ​ “어, 오케이. 그냥 물어본 거야.” ​ 그러나 그때, 메어리의 눈이 살짝 떠지더니 뒤늦게 물었다. ​ “…? 그런데 누구 경호…?” ​ 나는 피자를 한 조각 집어 들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 “나.” ​ “?” ​ 메어리의 씹던 스테이크가 그대로 입 안에서 멈췄다. ​ “너?” ​ “응. 안 그래도 협회에서 경호 인력을 강화해 준다고 했거든.” ​ 자세한 건 논의 중이긴 했다. ​ “나 할래.” ​ “큭큭, 농담이었어.” ​ “난 진심인데.” ​ “…나는 농담이었어… 돈도 없….” ​ 그녀는 포크를 내려놓고, 테이블 위로 몸을 기울였다. ​ “한다고. 내가 돈이 많은데.” ​ 이게 무슨…. ​ “고용주님?” ​ 메어리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나를 불렀다. ​ “아닌데.” ​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닌데. ​ 내가 고용하는 거 아니다. ​ 협회의 재정 상태와 생각은 다를 것이다. 그러나 메어리는 내 필사적인 반박은 듣지 않았다. ​ 그녀는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거지 같은 길드 때려치워야지~” ​ 그녀는 콧노래를 부르며, 빈 식기들을 들고 주방으로 향했다. ​ 그때 눈 앞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 [ ใ(^▽^ )ว ] ​ … 혹시 지금 춤 추는 건가? ​ 앞으로는, 절대 수상한 선택지를 고르지 않겠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