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입해!!” ​ 바로 등 뒤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협회의 진압팀이 방탄 방패를 앞세우고 문을 열며 재빠르게 안쪽으로 들어갔다. ​ 선두에 선 대원이 쓰러진 최시혁을 향해 마력 구속구를 던졌다. ​ 그물 형태의 구속구가 몸을 덮고 강하게 수축했지만…. ​ - 바스락…. ​ 구속구의 압박마저 견디지 못하고, 최시혁의 몸이 부서져 내렸다. 나는 고개를 돌린 채 그의 최후를 바라보고 있었다. ​ 악마의 저주가 아니었다면, 그는 이렇게는 죽지는 않지 않았을까. 어찌 되었든 최고의 길드에서 정점을 노리던 헌터였으니까. ​ 순간적으로 씁쓸한 안타까움이 차올랐다. ​ 바로 그때, 시스템이 내 감상적인 생각을 칼같이 잘라냈다. ​ [그렇지는 않습니다.] ​ 녀석은 냉철하게 말을 이었다. ​ [이렇게 단시간에 악마의 권속화를 받아들인 것 자체가, 그의 정신 상태가 이전부터 심각한 위험 인자를 내포하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저주는 그저 방아쇠였을 뿐… 계기가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 내가 그 분석을 읽고 잠시 말을 잃었을 때, 시스템 창의 분위기가 다시 바뀌었다. ​ [그러니 슬퍼하지 말아주세요! 사용자님이 슬퍼하시면… 저도 슬픕니다.] [。゚ヽ(゚´Д`)ノ゚。] ​ 알았어. 슬퍼한다니까 또 할 말이 없었다. ​ 내 아래에 깔려 있는 메어리에게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곧바로 손을 내밀어, 그녀 또한 바닥에서 일으켜 세웠다. ​ 메어리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숨 또한 가쁘다. 아무래도 최시혁을 억제하는 데 모든 힘을 쏟아부은 모양이었다. ​ 나는 그런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여주었다. ​ “고생했어.” ​ 생각해보면, 메어리 또한 이번 사태의 명백한 피해자다. 그런 그녀가, 자신과 똑같은 고통을 겪는 다른 이들을 위해 기꺼이 나를 도와주었다. ​ 피곤할 것이다. 이제는 그녀 또한 쉬어야만 했다. ​ “가자.” ​ 나는 메어리를 부축하며 말했다. ​ “끝났어. 이제 아무 생각 말고 푹 쉬어.” ​ 그녀는 대답 대신 내게 몸을 기대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 뒤늦게 들어온 팀장이 내게 고개를 숙였다. 나 또한 살짝 목례를 한 뒤, 그녀를 이끌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 지독했던 이틀간의 악몽이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 ​ ​ ​ ​ ​ ​ *** ​ ​ ​ ​ ​ ​ 늦은 저녁이 거의 다 되어가지만, 협회의 통제실 불은 꺼지지 않았다. 나와 직원들은 텅 빈 눈으로 떠 있던 TV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 - 어제 저녁, 대한민국을 긴장시켰던 ‘사슬 지옥’ 던전 브레이크 및 집단정신 오염 사태가 사실상 종결되었습니다. - 금일 새벽을 기점으로 총원 24명 중 단 한 명을 제외한 전원이 완치 판정을 받은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 앵커의 목소리가 끝나는 순간 정적이 꺠졌다. ​ “고생하셨습니다아!!!!!!” ​ 누군가의 외침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과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피를 말리던 직원들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긴장을 풀었다. ​ 나도 마찬가지. 압박감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 종결은 이미 내렸지만, 이렇게 공적인 보도를 통해 알리는 것은 또 다르다. ​ 전염성까지 띤 최악의 대형 오염 사태. ​ 이렇게 무난하게 해결된 것 자체가 엄청난 위업이다. ​ - 오염의 성격은 전염성까지 띤 것으로 밝혀졌습니다만 전례 없는 심리적 치료법과 S급 헌터 메어리의 협력 덕분에…. ​ 재빠른 대처라는 한마디로 요약되기에는 너무나도 길도 험난한 과정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스물 세 명을 구해냈다. ​ 그때, 피곤함이 역력한 얼굴의 팀장이 내게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는 내가 몇 시간 전 문의했던 사항에 대한 답변을 가져온 듯했다. ​ “우선 강민호 헌터에게는 생명의 지장이 없습니다. 자살 시도의 후유증으로 다소 불안 증세를 보이긴 하지만… 오염 또한 완벽하게 제거되었습니다.” ​ 메어리가 그의 오염까지 정화를 마쳤었다. 혼절한 틈을 타서. ​ “그리고 메어리 헌터 또한 최종 검사 결과, 오염 수치가 완벽하게 소실되었습니다. 이걸로 전 인원의 저주가 해결되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 “그렇군요.” ​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행이다. ​ 사상자는 이렇게 되면 최시혁 하나뿐이다. ​ 던전 브레이크가 유발한 추가적인 몬스터들은 진세아를 비롯한 다른 길드들이 제압했다고 하니. 이제는 정말로 끝이었다. ​ 아마 이번 사태는 내가 협회에 소속된 시점에서 마주할 수 있는 가장 큰 사태일 것 같다. ​ 앞으로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게 최우선이어야 한다. ​ 이번에는 운이 좋았다. 과정 자체가 기적에 가깝다. 마침 메어리가 옆에 있었으니까, 그녀가 없었다면 아직도 해결하지 못했을 것이다. ​ 그런 의미에서 그냥 앞으로도 아무 일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 “차량을 대기시켜 놨습니다. 이제 돌아가서 푹 쉬시죠.” ​ 사건이 종결되었다. ​ 팀장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긴급 투입된 나를 배려한 제안이었다. ​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았다. ​ “괜찮습니다.” ​ 물론 피곤하긴 했지만, 중간중간 앉아서 몇십 분씩 쪽잠을 자고 나니 정신은 오히려 좀 또렷한 느낌이었다. ​ 나는 그에게 궁금했던 점들을 더 물었다. ​ “대해 길드원들은 언제쯤 복귀가 가능할 것 같습니까?” ​ 이건 순수한 궁금증이었다. 재빠르게 오염이 사라진 것은 맞으나, 협회의 판단은 다를 수도 있으니까. ​ 팀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답했다. ​ “원칙적으로는 24시간의 추가 관찰과 심리 검사가 필요합니다만… 아마 생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이 문제에 있어서는 상담사님의 소견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 내 의견이 절대적이라는 뜻이었다. ​ 그렇다면… 딱히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저주의 치료와 동시에 나는 그들의 내면까지 확인을 마친 상태니까. 시스템의 교차검증까지 더해서. ​ “큰 문제는 없어 보이긴 합니다. 심리검사는 필요 없어 보이네요.” ​ 다만, 24시간의 추가 관찰에는 동의한다. 만일의 사태에는 대비하는 것이 좋을 테니까. ​ 나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식사하러 가십니까?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 팀장이 내게 말했지만, 내게는 이미 다른 생각이 있었다. ​ 나는 정중히 그의 제안을 거절하고 통제실 밖으로 나왔다. ​ 복도를 걷다가 벽에 붙은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 [이방인 격리소 A동] ​ 대해 길드원들은 전원 이방인 격리소에 격리되어있는 상태. ​ 나는, 메어리에게 향하기로 결정했다. ​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어느새 저녁 식사 시간. ​ 홀로 방에서 지친 몸을 추스르고 있을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 메어리는 현재 저주 및 오염이 전부 치료된 상태. 공식적으로도 종결된 상태다. 약간의 관찰 시간이 필요할 뿐. ​ 따라서 그녀의 숙소로 방문하는 것 또한 문제는 없다. 게다가 나를 도와준 것에 대한 간단한 사례도 하고 싶었다. ​ [좋은 생각입니다!] [(。•̀ᴗ-)✧] ​ 나는 마지막 확인을 위해, 메어리에게 핀을 걸어 상태를 확인했다. ​ [※세이브 가드의 자동 순화 기능이 작동되었습니다.] [ (>ω<)☆] ​ [쥴리아 메어리] [PINNED] [현재 상태: 휴식 중… 취침 후 기상한 상태라 피로는 사라진 상태. 심리적으로는 안정. 약간의 허기를 느끼고 있음.] [메인 스탠스: 오전에 유선우와 함께했던 일들을 복기하고 있음. 마지막 상황, 그의 대담한 ‘‘-계획-’’ 과 자신의 ‘‘-판단-’’이 착,하고 부드럽게 맞닿은 것에 대해 극도의 만족감을 느끼는 중임. 꿈에서부터 기상 후까지, 지속적인 복기 중임.] 나 또한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내 계획은 메어리의 판단이 없었으면 이루어지지 않았겠지. ​ 나는 망설임 없이, 그녀가 머무는 숙소동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복도에서 대해 길드원들의 식사를 보급하는 직원을 발견했다. 막 그녀의 방으로 향하려던 참인 듯했다. ​ 나는 그녀를 멈춰 세웠다. ​ “메어리 헌터는 식사 괜찮습니다. 제가 방문할 예정이어서요.” ​ “앗, 네! 알겠습니다, 상담사님! ​ 직원은 내게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는, 메어리의 방을 지나쳐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 나는 그녀의 방문 앞에 서서, 부드럽게 문을 두드렸다. ​ - …. ​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답게 침대 위에서 밍기적거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 하지만 잠시 후. ​ - 뚜벅… 뚜벅…. ​ 문 안쪽에서부터, 잠결인 듯 느릿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제법 빠르네. ​ 배가 고프긴 고팠던 모양이다. 나는 작게 미소 지었다. ​ 그리고 문이 반쯤 열렸다. ​ “하암….” ​ 메어리는 문밖의 상대가 누구인지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커다란 하품을 하며 도시락을 집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그러나 바닥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대신 익숙지 않은 구두가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 “……?” ​ 고개를 든 메어리의 시선이, 마침내 나와 마주쳤다. ​ “…….” ​ 품이 큰 잠옷을 입은 그녀는 3초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토끼처럼 동그래진 눈동자가 깜빡이기만 할 뿐. ​ “들어가도 될까?” ​ 내가 먼저 물었다. ​ 메어리는 그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그냥 내 뒤쪽으로 손을 뻗어서 문고리를 잡고는…. ​ - 쿵. ​ 그대로 닫았다. 나는 그녀의 팔에 이끌려 얼떨결에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