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나는 격리 상담소에서 나왔다. ​ 메어리와의 상담은… 크게 문제는 없었다. S 급 게이트를 공략한 영웅이 돌아오자마자 격리당했으니 억울한 마음이 드는 것도 당연했다. 오히려 그녀가 불쌍하게 느껴질 뿐. ​ “넌 어떻게 생각해?” ​ 나는 시스템에게 넌지시 물었다. 얘도 보는 눈이 있으니까. ​ [……….] ​ 그러나 시스템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갑자기 어디 갔지? ​ 화장실이라도 갔나. ​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통제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 문을 열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화면 가득히 떠 있는 자료들이었다. 직원들은 그 앞에 서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 나를 발견한 팀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 “상담사님! 오셨군요….” ​ 그는 중앙의 메인 스크린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 “감식반의 감식 결과가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대해 길드원들의 추측이 맞았던 것 같습니다.” ​ 화면에는 복잡한 그래프와 함께, 최종적인 결론으로 보이는 감식 결과가 큰 글씨로 떠 있었다. ​ [던전 내부 미상의 저주로 인한, ‘감정 증폭 현상’] ​ 팀장은 그 문장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 “감정의 증폭이라고 합니다.” ​ “그렇군요.” ​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방금 메어리와의 대화를 통해 대충은 인지했었다. ​ 팀장의 설명은 천천히 이어졌다. ​ “저주를 해석했던 감식반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 그는 패드를 들고 보고서의 내용을 읽어 내리기 시작했다. ​ “이 저주는 단순히 모든 감정을 증폭시키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단 하나의, 특정한 감정만을 증폭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하네요.” ​ 그의 표정이, 보고서를 읽어 내려갈수록 점점 더 굳어지기 시작했다. ​ “그리고… 그 감정은 대상이 살면서 겪었던 가장 최고조의 감정, 그러니까 피크의 순간에 고정되어 무한히 증폭되는…것이라고….” ​ 표정이 점점 안 좋아진다. ​ 생각보다 심각한 저주였다. ​ 애초에 감식반의 해석 형태는, 저주의 역산이다. 약간의 수치 차이는 있더라도 작동하는 원리와 그 개념 자체를 틀릴 수는 없다. ​ 팀장은 정신 오염 속에서 멀쩡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조건이 필요하다고 했다. ​ 첫 번째로, 대상의 감정이 더 이상 증폭될 수 없을 만큼의 피크인 상태였거나. 두 번째, 그 증폭되는 모든 감정을 짓누를 수 있을 정도의 초인적인 정신력을 가졌거나. ​ 어느 쪽이든. ​ 달성하기 쉽지 않다는 목표임은 변함이 없었다. ​ 일단 내용은 알았다. 거기에 맞춰서 인원들에 대한 대응 방식을 정하는 것은 나의 몫이다. ​ 그리고 궁금한 게 있었다. ​ “이제 오염자와 비 오염자는 구분할 수 있나요?” ​ “아, 네네. 이제 가능하다고 합니다.” ​ 오염이 되지 않은 이와 된 이를 구별할 수 있는 방식은 통상적으로 감식과 동시에 구비되는 편이다. 그걸로 메어리의 결백을 밝힐 수도 있을 것이다. ​ 팀장은 컨트롤 패널 옆에 놓여 있던 손바닥만 한 검은색 장비를 집어 들었다. ​ “여기 있는 감지기를 향했을 때, 만약 경보음이 울리면….” ​ 팀장은 시범을 보이기 위해, 단말기를 들었다. ​ 그러나, 그때. ​ - 삐…. ​ “……?” ​ “…….” ​ 우리는 말을 멈췄다. 나와 그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 - 삐… 삐…. ​ 팀장은 감지기를 들고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 안의 공간을 훑었다. ​ 소리는 꺼지지 않는다. 오히려 손이 움직일 때마다 미세하게 음량의 크기가 달라졌다. ​ 그리고. ​ 그 감지기가 내 앞으로 향했을 때. 팀장의 손이 멈췄다. ​ - 삐… 삐… 삐… 삐…. ​ 감지기는 정확히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 “이게… 왜….” ​ 팀장은 고장 난 것이 아니냐는 듯, 단말기를 톡톡 치며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허공을 바라봤다. ​ 그러자, 내 눈앞에 시스템 창이 반짝거리며 떠올랐다. ​ [ (๑•̀ㅁ•́๑)✧] ​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용자님!] ​ [본 시스템, 사용자의 돌발적인 행동 감지!] [이미 새로운 정신 오염의 징후를 발견하여 분석 중이었습니다!] ​ [마나를 매개로 삼지 않은, 미지의 정신 공격 형식으로 확인. 즉시 대응 백신 프로토콜을 가동했습니다!] ​ [백신 프로토콜 안티 섹(Anti SEC) 생성 중… 97%… 98%… 99%… 100%.] ​ [완료.] ​ [ (。•̀ᴗ-)✧ ] [진압합니다. 빵야--!] ​ 시스템의 마지막 메시지와 함께, 내 머릿속을 감싸고 있던 안개 같은 감정이 걷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갑자기 머리를 겨울철 계곡에 박아 넣고 냉수마찰이라도 한 듯, 차가워졌다. ​ “와… 이거….” ​ 방금까지 메어리를 생각하면 차오르던 동정심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 애초에 내 감정이 아니었다. 상담사가 내담자에게 동정 같은 감정을 품을 리가 없으니까. ​ 그러니까. 나는 오염이 순간적으로 전염되었다. ​ [지구상에 처음 등장한 형태의 저주로 파악되었습니다.] [한 발짝 늦은 대처에, 죄송스러운 마음뿐입니다… (´•ω•̥`)] ​ 아니다. 이 정도면 훌륭했다. ​ - 삐… 이…. ​ 나를 가리키며 울부짖던 감지기의 붉은 불빛이, 툭 하고 꺼졌다. 요란하던 경보음 또한 멎었다. ​ “…어?!” ​ 팀장은 그것을 보고는 환하게 웃었다. ​ “역시, 그냥 잠깐 고장 났었나 봅니다! 아이고, 놀랐네….” ​ 하지만 그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내 표정을 보았으니까. ​ 내 얼굴에는 안도감 따위는 떠올라 있지 않았다. ​ “팀장님.” ​ “… 네?” ​ “그거 고장 아닙니다.” ​ 팀장은 내 말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나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 “이번 정신 오염은….” ​ 위험하다. ​ “전염됩니다.” ​ 매우, 빠르게. ​ ​ ​ ​ ​ *** ​ ​ ​ ​ ​ 유선우는 메어리에게 ‘돌아온다’ 고 말했다. ​ 조금만 쉬고 있으라고. ​ “글쎄….” ​ 그는 아마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 조금 전, 그녀는 유선우의 눈에서 동정심을 보았으니까. 그는 결코 누군가를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 남자가 아니다. ​ 시선에 동정심을 담는 일 따위는 없다. 즉, 그건 그가 아니었다. ​ 다시 말해. ​ 유선우는 잠시 오염되었다는 소리고. ​ 자연스럽게… 그 오염의 근원은…. ​ “나네.” ​ 메어리는 피식 웃었다. 아닌 줄 알았는데, 맞았나 보다. ​ 바로 그때였다. ​ 그녀 앞 거대한 강화유리 벽의 표면 위로 기묘한 형상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아름다운 여인의 유려한 곡선, 등 뒤로 보이는 악마의 것과 같은 박쥐 날개. 화살표 모양의 꼬리까지. ​ 그 여성은 유리창에 비친 채, 메어리에게 속삭였다. 목소리가 아닌 글자로. [안타깝네?] [그냥, 문 열고 들어오게 두지 그랬어.] ​ 메어리는 그 글귀들을 권태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 [네가, 미치도록 원하던 거였잖아?] ​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 원했지. ​ 원했는데…. ​ 고작 이렇게 이루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네가 얼마나 참아왔는지는…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어.] ​ 유리벽 위의 글자가, 여전히 그녀를 종용했다. 메어리는 그 글귀를 보며 피식 웃었다. ​ “그럼 이것도 알아?” ​ 하지만 그 미소에는 온기가 없었다. ​ “내가 지금 얼마나 짜증이 나는지.” ​ 건드릴 사람을 건드렸어야지. ​ 그때. ​ - 촤악…. ​ 메어리의 등 뒤 허공에서, 작은 무지갯빛 구슬이, 떠올랐다. ​ 그 구슬은 프리즘처럼 방 안의 빛을 빨아들여 수만 가지의 색으로 흩뿌렸다. 메어리가 손짓하자 그 무지갯빛이 유리창으로 레이저처럼 쏘아져 나갔다. 빛은 유리벽에 비친 그 악마의 형상을 중심으로 완벽한 직사각형의 감옥을 그려냈다. ​ - 쩌저적…. ​ 그리고. ​ 빛의 감옥이 유리벽의 표면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 [잠깐, 잠깐만!! 이건 너의 감정이잖아!] ​ 메어리는 그 비명을 무시했다. 그녀는 손을 움켜쥐었다. ​ - 우드드드드드득!!! ​ 평면이었던 빛의 감옥이 그 안에 갇힌 악마와 함께 3차원의 공간으로 뜯겨져 나왔다. ​ 이제 메어리의 눈앞에는 반투명한 무지갯빛 정육면체 상자가 떠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겁에 질려 떨고 있는 날개 달린 악마가 갇혀 있었다. ​ - 슥. ​ 메어리가 손짓하자, 빛의 감옥이 그녀의 눈높이까지 내려왔다. ​ “뭘, 한 거야?” ​ 메어리는 그녀에게 나직하게 물었다. ​ “저, 저주를… 퍼뜨렸습니다. 정신을… 오염시키는….” ​ 악마는 감히 그녀와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덜덜 떨며 털어놓았다. ​ “왜 나한테는 아무것도 안 하고 유선우한테 넘어간 거지?” ​ 메어리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녀는 정말로 스스로가 오염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 악마는 거의 울먹이며 대답했다. ​ “그… 그게…! 최선을 다했는데….” ​ “최선을, 다했는데?” ​ “이미 그 감정을 최고조로 느끼고 계셔서… 더 이상 증폭시킬 감정이 없었….” ​ “아하….” “그래서 빨리 다른 숙주를 찾으려다가….” ​ 그랬구나. ​ 메어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