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쎄. ​ 메어리의 얼굴 위로는 어떤 징후도 떠오르지 않았다. 표정의 변화, 손끝의 움직임, 눈동자의 떨림까지. 전부 방에 들어온 그 순간부터 유심히 살피고 있지만, 그녀는 극히 정상이었다. ​ 육안의 관찰로는 무엇도 단정할 수 없다. ​ 그것이 오염의 무서운 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 그러나, 내 능력을 통해 메어리의 진짜 속 마음까지 볼 수 있다. 그것까지 본 것을 차분히 말해보자면…. ​ 일단, 문제는 없어 보이기는 한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 “내가 보기에는 아닐 것 같기는 한데.” ​ 그 말에 메어리의 동그란 라일락 눈동자가 크게 뜨이더니. 안도의 한숨이 흘러 나와 유리 벽을 하얗게 흐렸다. 그리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 “역시 그렇지? 선우라면 알아볼 줄 알았어.” ​ 그런 경우가 있다. ​ 오염당한 헌터 옆에 있을 경우, 오염 수치가 같이 나올 때. 강력한 오염원, 즉 던전에 장시간 노출된 헌터는 그 잔 저주로도 수치가 검출되는 경우가. ​ 그렇게 되면 잠시 몸에 달라붙은 이물질에 가깝다. ​ 지금 협회에서는 미친 듯이 오염의 정체에 대해 분석하고 있을 것이고. 그 결과가 나오게 되면, 아마 그녀의 오염 여부 또한, 확실해지지 않을까. ​ 메어리는 유리 벽에서 몸을 떼더니, 방구석에 있던 금속 의자를 망설임 없이 끌고 왔다. ​ “나는 솔직히 너무 억울했거든.” ​ 그녀가 투덜거리며 엄청 억울하다는 듯,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 “자, 이제 질문해! 맘대로 해!” ​ 그녀는 의자를 돌려 그 위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그리고 내 목적을 어서 달성하라는 듯이 두 팔을, 활짝 벌렸다. ​ 메어리의 입가에 요염한 미소가 걸렸다. ​ “자 이제 질문해도 돼. 의사 선생님.” “마음껏.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 “고마워.” ​ 나 또한 의자에 앉아 그녀를 마주했다. 협조적인 태도면 나는 더 좋다. ​ 오랜만에 만난 동기에게 건네는 첫마디가, 안부가 아닌 증언 채집이라는 사실이 조금은 씁쓸할 뿐. ​ 나는 그녀의 눈을 마주하며 천천히 상태를 열었다. 우선, 메어리 직전에 만났던 강민호의 경우. 부정적인 감정이 매우 증폭된 상태였다. ​ 적어도 매체에서 나오는 그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 쾌활하고 털털한 모습이었으니까. ​ 그렇다면 우선, 메어리의 부정적인 감정 또한 증폭된 것은 아닐지에 대한 확인을 해봐야 한다. ​ [쥴리아 메어리] [메인 스탠스] [우선 자신의 억울함이 조금이나마 해소되어서 기쁩니다. 보답으로 선우가 원하는 것을 전부 해줄 생각입니다] ​ 역시, 부정적인 감정은 보이지 않는다. ​ 그렇다면. ​ 여러 개의 방향성으로, 생각이 뻗어갈 수 있었다. ​ ‘메어리는, 정신 오염을 당하지 않았다.’ ​ 혹은……. ​ ‘메어리는 다른 방향성의 정신 오염일 수도 있겠구나.’ ​ 라는 생각. 노란색 논문에 의하면, 긍정적인 감정 또한 증폭될 수 있다는 선택지를 고려해야 하니까. ​ 따라서, 나는 대화를 통해 그녀의 상태를 추측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상태창은 유능하지만 모든 감정을 다 보여주는 것은 아니니까. ​ 내 생각에 시스템이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했다. ​ [적합 답변][만족 적합률 70%] [지금… 기분은 어때?] ​ [적합 답변][만족 적합률 ???%] [괜찮으면 편하게 유리 벽 열고 대화할까?] ​ 첫 번째 질문은 정석적이고 명확하다. 두 번째 질문은… 어차피, 차차 문을 열고 대화를 나누게 될 것이니 아예 반려할 사항까지는 아니었다. ​ 이상하네. ​ 원래 즉시 반려할 사항의 말도 안 되는 선택지만이 ‘???%’ 의 형식으로 떠올랐던 것 같은데. 그런데, 이번에는 꽤나 정상적인 질문임에도 불구하고 확률이 보이지 않는다. ​ [ ( ͡° ͜ʖ ͡° ) ] ​ 뭔데. ​ 어쨌든 결정을 내렸다. ​ “지금… 기분은 어때? 세세하게 말해주면 더 좋아.” ​ 내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그녀의 방으로 울려 퍼졌다. 그 말에 메어리는 양팔을 벌렸던 자세를 풀고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댔다. ​ 붉은 입술 위로 손가락 하나를 가져가 지그시 누르며, 고민을 시작했다. ​ 그 와중에도 시선은 나를 향한 채 고정되어 있었다. ​ “흐음…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 ​ 그녀는 입술을 매만지던 손가락을 천천히 내리며 말을 이었다. ​ “답답한 던전에 있다가 밖으로 나온 거기도 하고. 공략도… 뭐 이 정도면 성공적이라고 생각하고.” ​ 그렇게 말하며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 “다행이네. 혹시 조명이 너무 밝거나 불편하지는 않아?” ​ 긍정적인 감정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할 때는, 종종 과도한 신경 자극으로 인해 빛이나 소리 같은 외부 자극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는 경향을 보일 때가 있다. ​ “응, 딱 괜찮아.” ​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조금 민감한 영역으로 들어가야 한다. 얼추 메어리의 상태에 대해서는 파악이 끝났다. ​ 그녀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닌 이상은…. 나는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도 조사해야 했다. ​ 강민호는 답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니까. ​ “협회로부터 이번 공략에 대한 정보는… 대충 전달받았어.” ​ 나는 유리벽 너머의 그녀를 보며 말을 이었다. 목소리에 신뢰감을 싣기 위해 노력했다. ​ “원래대로라면 길드 내부의 최고 기밀이겠지만, 이번 상담은 특례야. 공략 내부 상황에 대한 어떤 질문이든 허가된 상태고.” ​ 내 말에 메어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상관없다는 눈치. ​ “괜찮다면… 던전 안에서 있었던 일들을 기억나는 대로 말해줄 수 있을까? 아주 사소한 거라도 좋아. 오염의 근원으로 추측되는 것이나… 혹은 그냥, 네가 느꼈던 감정이라도.” ​ 나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 메어리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 “응.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 그녀는 시선을 잠시 허공에 두었다. ​ “처음에는… 정말 별거 없었어. 그냥 평범한 던전. S급 던전이라 하더라도 다를 것은 없었거든. 조금 많이 강한 것만 제외하면?” ​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씩 낮아졌다. ​ “그런데 문제는, 던전의 중앙에서 시작됐어. 아마 중앙의 가디언이었던 것 같은데.” ​ 던전에는 보통 등급이 상승할수록 보스가 늘어난다. 그래서 그것을 구분하기 위해 마지막은 보스. ​ 중간에 나오는 보스, 그러니까 중간보스를 가디언이라고 부른다. ​ 메어리는 잠시 말을 멈췄다. 마치 무언가를 떠올리기라도 한 듯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 “가디언을 처리하고 나니, 갑자기 펑 하는 소리가 나고 귀가 먹먹해지더라고. 그리고, 아주 기분 나쁜 파장이 던전 전역을 덮었고… 우리는, 그 안에 잠겨버렸어.” “그때부터였네. 방패를 들던 전열의 탱커가 팔에 벌레가 기어 다닌다며 비명을 질러댔고. 여기저기서 환각을 보고했어. 당연히 후퇴했어야 맞는 상황이었지. 적어도 나는 그렇게 판단했어.” ​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 “하지만 최시혁 그 병… 아니지, 걔는 달랐어. 엄살떨지 말라면서, 별거 아니니 전진을 강행하겠다는 거야.” ​ 메어리의 목소리에는 그때의 어이없음이 묻어났다. ​ “사실, 강민호 부길드장은 허수아비거든? 그래서 결국 강행했지.” ​ 그녀는 나를 보며 윙크했다. ​ “아, 이건 비밀. 너만 알고 있어.” ​ 메어리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놀랍게도, 최시혁의 말처럼 공략대가 전진하자 팀원들의 상태가 점점 나아졌다고 했다. 비명도 멎고, 환각 증세도 사라지고. ​ 메어리도 그가 맞았나 싶었다고. 일시적인 상태 이상이었나보다, 하고. ​ “그런데 그때…. 지원팀의 한 남자 헌터가 아무 말 없이 일어나는 거야? 눈은 완전히 풀려서는… 갑자기 자기 갑옷을 미친 듯이 벗더라고?” “그리고는 맞은편에 있던 여성 힐러에게 그대로 달려들었어. 우리 모두 너무 놀라서 아무것도 못 하고 있는데….” ​ 날 놀랍게 한 것은, 그 힐러의 반응이었다. 메어리의 입술에서 헛웃음이 새어나았다. ​ “비명을 지르기는커녕 기쁘다는 듯이 두 팔을 벌리더라. 서로 옷을 찢고 그 자리에서… 바닥을 뒹굴던데….” “아무도, 아~무도 못 말렸어. 그걸 대체 누가 건드려?” ​ 메어리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다른 한 헌터가, 작은 목소리로 알려주었다고 했다. ​ 두 헌터는 원래, 부부 사이라고. ​ “그걸 보고 우리는 깨달았어.” ​ 그녀는 덧붙였다. ​ “아, 감정의 증폭이구나.” ​ 메어리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 “근데 나는 완~전 멀쩡했거든? 그래서 아무 일 없는 줄 알았는데… 힝… 여기 갇혀있네.” ​ 메어리는 방을 가리키며 기지개를 쭈욱 폈다. 그녀의 설명을 들으니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 중앙 가디언이 사라지고 그들에게는 저주가 묻었다. ​ 그리고 그 이후 잠시 나아졌던 건, 저주가 몸에 퍼져가는 과정. 잠복기라 보면 될 것이고. ​ 정확한 분석은 파악해야 알겠지만 그들의 판단은 맞는 것 같았다. ​ 개인적인 추측으로는. 메어리가 멀쩡한 이유는 아마… 그녀가 너무 강해서이지 않을까 한다. ​ 애초에 그녀는 출신 자체가 남다르니까. ​ “고마워. 대충 알겠어.” ​ 전체적으로 이해는 했다. 이제 협회의 분석과 다른 인원들의 상태를 대조해서 결과를 뽑아내면 된다. ​ 나는 그 순간 안에 있는 메어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S급 던전의 공략이 끝나자마자 갇혀있는 신세라니. 원래라면, 전 국가적인 축하와 칭찬을 받아야 마땅한 시기에…. 방에 갇혀 의자 위에 앉아 있는 상태다. ​ 그 어이없는 부조리함에, 순간적인 동정심이 왈칵하고 차올랐다. ​ 나는 그녀가 안타깝게 느껴졌다. 당장 메어리를 위로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 “음… 잠깐 문 열고 들어가도 될까? 내가 맛있는 거 만들어줄게.” ​ [[?!?!??!? ( °ᗝ° ).ᐟ] ​ 설유월의 케이스처럼 주방으로 들어가, 간단한 디저트 하나 정도는 만들어 줄법해 보였다. 그게 내가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확신이 무조건적으로 들었으니까. 게다가, 상태창은 나를 위험에 빠트리는 선택지는 절대 주지 않기도 하고. ​ 그 말에, 메어리의 눈이 크게 뜨였다. ​ 그녀는 손을 무릎 위에 올리더니, 손가락 끝으로 무릎을 톡톡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했다. ​ 그리고 희미하게 웃었다. ​ “응… 아냐. 괜찮아. 나야 뭐 너무 좋지만….” ​ 그녀는 내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 “너를 위해서.” ​ 나는 그 알 수 없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 “괜찮아. 이 정도는 상담사의 권한이야.” ​ 문제없다. 내가 임의로 이 문을 연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협회는 내 의견을 존중해야만 한다. 내 대답에 메어리의 미소가 깊어졌다. ​ “그래?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 그러더니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 “방 밖으로 나가면 카메라 없는 거 맞지?” ​ 그녀는 고개를 들어 방의 구석을, 힐끗 쳐다보았다. ​ “어, 거실부터는 사생활 보호 구역이라.”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격리 인원의 인권을 존중하는 것이다. ​ “너무 좋다.” ​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으로 문을 휙휙 가리켰다. ​ “알았어. 그럼 열어줘.” ​ 기분이 한결 좋아졌는지 살랑살랑 거리며 몸을 흔든다. ​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가 있는 격리실의 문을 열기 위해 제어판의 버튼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나 바로, 그때였다. ​ - 아, 아! 상담사님! 들리십니까! 감식 결과가 방금 나왔습니다! 지금 바로 통제실로 와주…! ​ “이런.” ​ 문 너머의 메어리가 아쉽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아쉽네.” ​ “그러게.” ​ 나 또한 동의했다. 타이밍이 안 좋았다. ​ 그녀는 나를 향해 어서 가보라는 듯, 턱짓했다. ​ “빨리 가봐. 선우야.” ​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 “응. 쉬고 있어.” ​ 그리고 몸을 돌려 통제실로 향했다. ​ “금방 올게.” ​ 맛있는 음식이야… 언제든 만들어줄 수 있었으니까.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