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덜덜덜…. ​ 유니온 길드 라운지 가장 구석진 소파. 루나는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떨리는 손을 애써 진정시키며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 오늘 오전에 길드에서 안내한 비대면 상담 프로그램. ​ 루나는 그 비대면 상담의 어플리케이션을 깔아, 10시 정각. 정확히 상담이 시작되는 그 시간에 들어갔다. ​ 썼다, 지웠다를 수십 번 반복했다. ​ ‘안녕하세요.’ ​ 이건 너무 딱딱한가. ​ ‘선생님!’ ​ 이건 너무 나잖아…. ​ 그녀는 결국, 조금 딱딱하더라도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게 옳다는 판단을 내렸다. ​ 궁금하고, 상담받고 싶은 것은 그녀의 트라우마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만큼은 다시금 언젠가 그의 얼굴을 직접 보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 따라서 그걸 물어보고 싶은 건 아니었고. ​ 익명의 가면 뒤에 숨어. 정말 물어보고 싶었던 것은…. ​ 요즘 자신을 뒤흔드는 정체 모를 이 감정. 물론 선생님이 수인에 대해 잘 알 리는 없었기에, 어느 정도 감안해야 했겠지만. 일단. 물어보고 싶었다. ​ [유선우]: 존경심은 아닌 것 같습니다. [유선우]: 사랑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 “흐…에에…?” ​ 루나의 얼굴이 점점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목덜미부터 얼굴까지. ​ 정말? ​ 정말로? ​ 진짜로요? ​ [루나]: 그럴… 그럴 리가 없어요…. ​ 결국 루나는 연기하는 것도 잊어버린 채 부정했다. ​ [유선우]: 물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떤 감정이든, 정확히 정의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까요. [유선우]: 저는 언제나 가능성이 높은 쪽을 말씀드린다고 생각해주시면 되겠습니다. ​ 아니, 그러면…. 진짜 사랑이라고 치자. ​ 선생님을 향한 감정이 이 사랑이라고 하자. ​ 그럼 나는. 방금, 그 당사자에게. 너를 향한 이 감정이 대체 무엇인지 물어본 것이고. ​ 그 당사자는 아주 친절하게도. ​ 그 감정이 자신을 향한 사랑이 맞다고, 직접 확인해 준 것이 아닌가? ​ 루나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뚝 하고 끊어졌다. ​ “사랑… 사랑….” ​ 루나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라운지 소파 위로 그대로 쓰러졌다.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 부정할 수 있는가? 모르겠다. ​ 선생님이 틀린 말을 할 리가 없다.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 ​ “어떡하지…….” ​ 지금이야 비대면 상담이니 괜찮지만…. 실제로 얼굴을 보게 되었을 때 평정을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 ​ 감정의 정체를 자각하는 것과.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설레기만 하던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 안… 될 텐데…. ​ 선생님이 나를 좋아해 주실 리가 없어…. ​ 그녀의 머리 위, 보이지 않은 베일 너머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 - 추욱. ​ 그녀의 투명한 토끼 귀가 힘없이 아래로 쳐졌다. ​ - 토독토독…. ​ 루나는 결국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여 메세지를 보냈다. ​ [루나]: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 궁금증이었다. ​ 답해주세요. ​ 선생님. ​ 선생님이 직접 정답을 알려주세요. ​ 그렇게 떨리는 심정으로 조금 더 기다리던 그때. ​ - 띠링. ​ 답변이 도착했다. ​ [유선우]: 우선, 그 감정이 정말로 사랑이 맞는지 아닌지에 대해 고민을 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 [유선우]: 만약 그 감정이 사랑이 맞다고 확신이 드신다면. ​ [유선우]: 천천히, 그분에게 다가가 내담자님의 마음을 조금씩 표현해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겠군요. ​ 루나는 화면 위에 떠 오른 문장들을 읽었다. ​ 몇 번이고 다시 읽어 내렸다. ​ 감정을 느끼는 대상에게 천천히 다가가 표현하라고. ​ 루나는 다급하게 질문했다. ​ [루나]: 이게 잘못된 감정은 아닌가요? ​ [유선우]: 그럼요. [유선우]: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는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유선우]: 오히려 축하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 그러니까, 이 감정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축하해야 할 일이다? ​ 루나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 아니, 아직이다. ​ 아직…. ​ 좀, 더 확실히 하고 싶어졌다. 루나는 언제나 조심스러운 성격이고. ​ 확신을 얻고 싶어 한다. ​ [루나]: 선생님. 저는 사실 수인이에요. 그래도 괜찮은 건가요? ​ 어느새부터 루나는 상담사라는 칭호를 써, 정체를 숨기려고 했던 것도 잊어버리고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쓰고 있었다. ​ 루나는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자격지심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 수인의 사랑에 대해서. 제국에서는 그것을 천박하고 불경하며. 수인들의 본능과 욕망은 억제되어야 하는 짐승의 것이라 했다. ​ 평생을 그렇게 배워왔다. ​ 그러나. ​ [유선우]: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유선우]: 내담자님이 수인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 선생님은 이번에도 그렇지 않다고 했다. ​ “…….” ​ [유선우]: 이 세계에서는 절대 그런 것들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 절대 아니라고 했다. ​ 루나의 뺨이 서서히 뜨거워졌다. 선생님은 대화를 나누는 상대가 나인 줄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 그러니, 당연히 루나에게 하는 이야기도 아닐 것이다. ​ 그저 익명의 내담자를 향한, 이론에 입각한 위로뿐일지도 모른다. ​ 그러나. ​ ‘선생님.’ ​ 그 말에 루나의 마음속에 남아있던 불안의 벽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 “선생님이… 괜찮다고 하셨어요….” ​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되뇌었다. ​ 서서히 달아오르던 뺨이 이제는 터질 것처럼 뜨거워졌다. ​ 그리고 루나의 입가에 오랜만에, 진짜 미소가 피어올랐다. ​ 선생님이…. ​ 허락하신 거예요. ​ ​ ​ ​ ​ ​ *** ​ ​ ​ ​ ​ ​ ​ ​ [익명의 헌터]: 감사합니다. 선생님. 덕분에 고민이 많이 해소됐어요. ​ [유선우]: 다행이네요. 저도 기쁩니다. ​ [유선우]: 그렇다면 이제 상담을 종료해도 괜찮을까요? ​ [익명의 헌터]: 네… 나중에 다시 뵐게요. ​ [유선우]: 감사합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 나는 채팅 창을 닫고 의자 등받이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 “좋은데.” ​ 그냥 단순하고 새로운 연애상담인 줄 알았는데…. ​ 그건 아니었다. ​ 상담 도중에 루나의 익숙한 감정이 튀어나왔다. 수인과 자신의 존재에 대한 뿌리 깊은 자격지심. ​ 그건 처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치료해왔던 문제의 전부였다. ​ 그래서, 겸사겸사 좋을 것 같았다. ​ 그녀에게 찾아온 새로운 사랑과 수인에 대한 자격지심 모두 타파할 수 있게끔. 나는 그것을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고, 그녀에게 조언했다. ​ 결론적으로는… 좋았다. 그녀 또한 어느 정도 납득한 것처럼 보였다. ​ 그런데, 이건 별개의 이야기지만…. ​ 과연 루나의 마음에 들어온 그 남자는 대체 누구일까? 이건 순수한 궁금증이긴 했다. ​ 모르긴 몰라도 분명, 아주 좋은 사람일 것이다. 그녀의 그 깊은 상처를 알아보고, 보듬어줄 수 있을 만큼 다정하고 또 속이 깊은 사람이겠지. 수인이라는 편견 없이 그녀의 진짜 모습을 알아봐 줄 수 있는 그런 남자. ​ 나는 나도 모르게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 그녀가 마침내 좋은 인연을 찾았으면 좋겠어서. ​ 상담사로서 기뻤다. ​ 루나의 상태를 확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이번 비대면 상담이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 ​ ‘핀.’ ​ 마음속으로 루나에게 핀을 걸었다. 그러자, 눈앞에 상태창이 떠올랐다. ​ [으잉…? (・ㅁ・;)]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데이터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 [쓱싹쓱싹 … _〆(。。) ] ​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창이 떠올랐다. ​ [루나] [PINNED] [현재 상태: 유니온 헌터의 길드 라운지 소파에 편하게 앉아있습니다. 선생님과의 대화 이후, 마음이 매우 따뜻하고 안정된 상태입니다.] [메인 스탠스: 나의 감정은… 나쁜 게 아니였구나. 선생님이 옳다고 하셨어. 선생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야…. 부정할 필요가 없어….] ​ 나는 그녀의 메인 스탠스를 읽었다. ​ ‘선생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야….’ ​ 뭔가 뉘앙스가 살짝 다르긴 한데. 내 말이 다 맞는 건 아니니까. ​ 뭐, 그래도 그녀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사랑이 나쁜 것도 아니고. ​ 부정할 필요도 없는 감정은 맞다. ​ 아무래도 루나는 잘 이해한 것 같았다. ​ 자신을 혐오하고 부정하던 사람이,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긍정하기 시작했다. 비록 시작점은 누군가의 격려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 이 작은 긍정의 씨앗을 수인이라는 그녀의 정체성에 대한 단단한 자긍심으로 키워내는 것. ​ 그것이 추후에 있을 루나의 상담에서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인 것 같다. 물론, 루나가 상담 신청을 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겠지만. ​ 그때. ​ - 띠링. ​ 새로운 상담 요청이 도착했다. 그리고 그 발신자의 이름은. ​ [유니온 길드 S급 헌터: 루나] ​ 루나? 뭐지, 방금 상담한 거 아닌가…. 아, 아니지. ​ 방금 상담한 사람은 ‘익명의 헌터’다. ​ 나는 그녀의 상담을 수락했다. ​ [루나]: 안녕하세요 선생님! ​ [유선우]: 안녕하세요 루나 씨. ​ 나는 반갑게 맞이했다. 처음 보는 사람이다. ​ [루나]: ㅠㅠ 다름이 아니라, 선생님의 대면 상담은 언제쯤 다시 시작되는지, 여쭤보려고요… ​ 아. ​ 그녀는 비대면 상담을 통해 하는 이야기는 별로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다. 좋다. ​ 상담에 대한 의지가 존재하기만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 [유선우]: 아마 일주일 내로는 진행할 거 같습니다. 아직 시범 운영 단계라서요. ​ [루나]: 그렇군요! ​ [루나]: 그럼 그때 바로 신청할게요! 그때 봬요 선생님! ​ [루나]: ₍ᐢ ›_‹ ᐢ₎ ​ 그녀의 전매특허인 토끼 이모티콘까지. 저건 어떻게 입력하는 걸까. ​ [유선우]: 네. 그때 뵙겠습니다. ​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채팅방을 나갔다. ​ 나 또한,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 내 두 번째 내담자였던 루나. ​ 그녀와의 상담도 서서히 끝이 보이는 것 같았다. ​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