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결국 협회와의 이야기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놀랍게도 그들이 말한 온라인 상담 시스템은, 이미 거의 완성 단계였다 그니까 전원 버튼만 누르면 되는 단계. ​ 이번 백시은 사건을 계기로 도입이 앞당겨졌을 뿐. 언제든 준비가 되어있다는 소리였다. ​ 따라서, 당장 내일부터 시스템을 시범 운영하고 모든 길드에 공식적인 공문을 보내겠다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되었다. ​ 나는 알겠다고 대답하고 그곳에서 나왔다. 직원이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지만, 일단은 거절했다. ​ 그니까 집을 가긴 할 건데… 백화점을 들를 생각이었다. ​ 집에서 그냥 쉴 생각은 아니다. 보답의 의미로 선물을 준비하고자 했다. ​ 진세아 그리고 자화연에게. ​ 자화연이 내게 오지 않았더라면, 진세아가 날 구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많이 위험했을 것이다. 그 끔찍할 수 있던 결과를 막아주었다. ​ 따라서 나는 그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보답을 하고 싶었다. 거창한 선물이나 비싼 식사 같은 것도 좋겠지만… 그녀들은 이미 경제적으로는 부족함이 없는 존재들이다. ​ 그래서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내 진심을 담은 선물을 하고 싶었다. ​ 나는 백화점 지하의 식품 코너로 발을 옮겼다. ​ “뭐가 좋을까?” ​ 허공을 향해 질문했다. ​ [내담자 자화연에게는 역시 브라우니가 좋지 않을까 합니다!] [ ( •̀ ω •́ )✧ ] ​ “그건 너무 많이 드리지 않았어?” ​ [그래두… 좋아 보입니다!] ​ 창의력이 없구나. 뭐 그래도 조언은 반영하겠다. ​ 진하고 꾸덕꾸덕한 초콜릿 무스로 만든 케이크. 슈가 파우더를 둘러, 눈이 내린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리고 라즈베리까지 얹으면, 깔끔할 듯했다. ​ 약간 브라우니 스타일로 만들면, 브라우니를 좋아했던 그녀도 만족스러워 할 것 같았다. ​ “세아는?” ​ 나는 다시 한번 허공을 향해 물었다. ​ [… 잘 모르겠습니다!] ​ 그러게. ​ 나도 잘 모르겠다. 그녀에게는 정말 많은 것들을 만들어 줬지만. ​ 진세아는 언제나 내가 만든 것들을 똑같이 맛있게 먹어주었다. ​ 그럼 이번에도 적당히. 내가 주고 싶은 걸로 해야겠다. ​ 나는 필요한 재료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 사 온 재료들을 주방 조리대 위에 널브려 놓았다. ​ 만들려고 하는 것은 치즈 케이크와 초콜릿 무스 케이크다. 기본적으로 둘 모두 손이 많이 간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 하룻밤의 숙성이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나는 가장 먼저 오븐을 예열했다. ​ 그리고 단단한 통밀쿠키를 부수기 시작했다. 칼로리가 엄청나기로 유명한 녀석이다. ​ - 빠작 ​ 잘게 부서진 쿠키의 고소한 향이 코에 맴돈다. 나는 그 쿠키 가루에, 실온에 녹인 버터를 섞어 케이크 틀 바닥에 단단하게 눌러서 담았다. ​ 치즈케이크의 밑부분을 담당하는 크러스트다. 일반적인 케이크와는 다르다. 뉴욕식이라고는 하는데… 그냥 이게 더 맛있다고 생각한다. ​ 다음은 초콜릿 무스를 위한 얇은 시트. ​ 중탕으로 녹이고 있던 초콜릿과 완전히 녹인 버터를 섞었다. 그리고 설탕과 달걀, 소량의 밀가루를 넣어 얇게 펼쳤다. ​ 이러면 브라우니 시트가 된다. 브라우니도 먹고 초콜릿 무스 케이크도 먹게 되는 것. ​ 원래는 다크 초콜릿으로 하려 했지만, 자화연은 생각보다 훨씬 더 단맛을 좋아하는 듯했다. 따라서 어른의 맛보다는 더 달콤한 맛에 중점을 두었다. ​ 따라서, 밀크초콜릿으로. 설탕도 넉넉하게. ​ 아직 어리니까 좀 달아도 괜찮다. ​ 나는 두 개의 반죽을 오븐에 넣었다. ​ 베이스는 만들었고 이제는 본체를 쌓아 올려야 한다. ​ 여기서부터는 살짝 공정이 피곤해진다. 나는 커다란 유리 볼에, 실온에 두어 부드러워진 크림치즈를 쏟아부었다. ​ 그리고 그 위로 설탕을 뿌리고 섞기 시작했다. ​ 부드러워질 때 달걀도 하나씩 하나씩 조심스럽게 깨트려 넣는다. 명칭은 필링, 이것이 치즈 케이크의 본체가 될 것이다. ​ 다른 한쪽에서는 젤라틴을 차가운 물에 불리고 진한 초콜릿을 중탕으로 녹였다. ​ - 띵 ​ 오븐이 준비가 끝냈음을 알렸다. 나는 갓 구워낸 뜨거운 두 개의 베이스를 꺼내 창가에서 식혔다. 잠시 시트가 식을 동안, 초콜릿 무스의 베이스를 만들어야 한다. ​ 차가운 생크림과 우유에 젤라틴을 녹여 놓고 마구마구 휘저었다. 점차 단단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 이러면 초콜릿 무스도 끝. ​ 다음은 치즈케이크 마무리 단계다. 필링을 오븐에 누워 다시 한번 구워냈다. ​ 모든 준비가 끝났다. ​ 두 개의 케이크는 냉장고 깊숙한 곳에서 숙성을 거치게 될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기다림? ​ “아, 허리 아파.” ​ 나는 뻐근한 허리를 펴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 “… 뭐야 이거.” ​ 주방에 들어왔을 때는 분명 해가 중천이었는데. 창밖은 이미 밤이 되어 있었다. ​ 하루가 전부 지나가 버렸다. ​ ​ ​ ​ ​ ​ ​ ​ ​ *** ​ ​ ​ ​ ​ ​ 루나는 밤새 잠을 설쳤다. ​ 결국 엘리스가 주는 옷을 입게 되었다. 옷이라고 하기 뭐한, 검은색 천 조각을. ​ 루나는 반강제로 그 옷을 입어야만 했다. 엘리스는 그런 루나를 일으켜 세우고 전신 거울 앞으로 끌고 갔다. ​ - 언니, 눈 뜨고 똑바로 봐…. ​ 그녀는 루나를 일으켜 세우고 거울 앞에서 지켜보게 했다. 그리고 칭찬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몸매는 무슨 국보로 지정을 어쩌고…. ​ 자기도 나와 비슷하면서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가. ​ - 아마 선생님도 좋아할… ​ - 따악! ​ 그 말만큼은 참을 수가 없었다. 루나의 손이 본능적으로 번개처럼 날아가 엘리스의 이마에 찰진 소리와 함께 꽂혔다. ​ 완벽한 딱밤. ​ “아야!” ​ 순간적으로 너무 놀라서. 그 말을 들은 순간 심장이 덜컹해서. ​ 어쨌든 엘리스를 조금 혼내주었다. ​ 그러나 엘리스가 던진 그 말은 밤새도록 루나의 가슴을 뜨겁게 뛰게 만들었고. ​ 결국 루나는 밤을 새웠다. ​ 이른 아침, 길드의 모든 인원이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정훈 교육 시간. 라운지의 대형 스크린에는 지루한 목소리의 강사가, 어젯밤 있었던 게이트 현황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 이 시간을 빌려 잠시 잠을…. ​ 그녀는 그렇게 잠에 빠져들려던 참이었다. ​ “언니.” ​ “으응…?” ​ 루나는 누군가가 속삭이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앞의 강사는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 “이제 직접 찾아뵙지 않아도 상담을 받을 수 있습….” ​ 응? 강사가 말하는 내용이 흥미롭다. ​ 루나는 귀를 쫑긋하며 들었다. ​ 잠이 순식간에 달아났다. ​ 엘리스는 라운지의 대형 스크린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그곳에는 협회의 공식 로고와 함께 안내문이 떠 있었다. ​ [비대면 원격 상담 플랫폼 시범 운영 안내] ​ 루나의 붉은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 “?!” ​ 엘리스는 그런 언니에게 즐겁다는 듯 속삭였다. ​ “이제 집에서도 선생님이랑 이야기할 수 있대.” ​ 루나는 기뻤다. ​ 솔직히 말해 최근, 조금은 정체된 느낌이 들고 있었다. ​ 선생님을 만나고 용기를 얻기는 했지만. 그다음 단계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몰랐으니까. 다시 예전의 그 어둠 속으로 돌아가게 될까 봐 두려웠다. ​ 게다가 요즘 선생님이 너무 바쁘시기도 했고, 안 좋은 일도 겪으시다 보니 상담을 신청하기도 죄송스러웠다. 그런데 이렇게 기회가 오다니…. ​ 루나의 뺨이 희미하게 물들었다. ​ 다시 선생님과 얘기할 수 있다. ​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 ​ ​ ​ ​ ​ ​ *** ​ ​ ​ ​ 한편, 천마전(天魔殿). ​ 옥좌에는 막 잠에서 깬 듯, 부스스한 모습의 자화연이 앉아 있었다. 천마신교 또한 길드다. ​ 그곳에도 비대면 상담에 대한 공문이 도착해 있었다. ​ “그래서. 언제부터라고?” ​ 옥좌에 앉은 자화연이 보고를 올리는 금강에게 나직하게 물었다. 금강은 고개를 숙인 채 답했다. ​ “협회의 공문에 따르면 오늘 오전부터 바로 시범 운영에 들어간다고 하옵니다.” “따라서 신교 또한 공식 길드로 등록되어있으니 원하신다면 언제든….” ​ 금강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화연이 헛기침을 했다. ​ “큼, 큼.” ​ 금강은 즉시 품 안에서 미리 준비해두었던 검은색의 태블릿을 꺼내 옥좌 위로 정중히 내밀었다. ​ 자화연은 아무 말 없이 그것을 집어 들었다. ​ 그리고 익숙한 손길로 화면을 켰다. ​ 그녀의 입가에는 아주 오랜만에 소녀의 미소가 걸렸다. ​ ​ ​ ​ ​ ​ ​ ​ *** ​ ​ ​ ​ ​ ​ ​ ​ ​ ​ ​ ​ 약간 긴장된다. ​ 오전 10시. 협회에서 말한 비대면 상담 플랫폼의 시범 운영이 시작되는 시간. 나는 내 서재 컴퓨터 앞에 앉아, 모니터의 시계가 넘어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 이번 시범 운용 기간을 계기로 잠시동안 재택근무로 전환되었다. 집에서 내담자를 맞이할 생각을 하니, 또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 1분 정도가 남았지만…. 약간 괜한 짓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 10시가 되자마자 상담이 들어온다는 보장도 없는데. ​ 상담은 두 가지의 종류가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신원을 밝히고 싶지 않아 하는 헌터를 위한 완벽한 익명 상담. ​ 두 번째, 기존처럼 신원을 확인하고 진행하는 일반적인 비대면 상담. ​ 첫 번째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비대면 상담의 장점이었다. 물론 익명이라 할지라도 시스템 내부에서는 신원 검증을 절차를 거치기에 그 안정성 확실하다. ​ 10시가 되었다. ​ 나는 바로 메세지 창을 열었다. ​ - 띠링. ​ “!” ​ 벌써? ​ [익명의 헌터 1 님이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 바로 도착했다. 나는 급하게 메세지를 열었다. ​ 첫 번째 비대면 내담자는, 익명의 헌터였다. 역시 대면 상담은 부담스러웠던 헌터가 신청을 했구나. ​ 이 순기능에 감사를…. ​ 채팅창이 활성화되었다. ​ [익명의 헌터 1]: 의원. 있느냐. ​ “?” ​ 나는 키보드 위로 손을 올리려다 잠시 멈칫했다. ​ [익명의 헌터]: 본좌를 기다리게 할 셈이냐. ​ “…….” ​ 음…. ​ 왜 누군지 알 것 같지. ​ - 끼익. ​ 나는 의자를 끌고 일어나 냉장고로 향했다. ​ - 찰칵. ​ 그리고 안에 있는 완성된 케이크의 사진을 찍었다. 새하얀 슈가파우더로 덮여있는 먹음직스러운 초콜릿 무스 케이크였다. ​ 다시 자리에 돌아온 나는 키보드를 두들겼다. ​ - 타닥타닥. ​ [유선우]: 초콜릿 무스 케이크라고 아십니까? ​ [유선우]: (사진) ​ [익명의 헌터 1]: 이것이 무어냐? ​ [유선우]: 내일 상담소로 오시거나 사람을 보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 [익명의 헌터 1]: 내가 누군 줄 알고 그런 말을…. ​ [유선우]: 안 드시렵니까? 저번의 다과보다 훨씬 맛있을 겁니다. ​ 메세지에는 약간의 침묵이 흘렀다. ​ [익명의 헌터 1]: …오늘은 어떻게 안 되겠느냐? ​ 나는 그 대답에 미소를 지었다. ​ 역시, 꼬마 군주는 단것을 좋아한다.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