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와 설유월은 손을 잡고 그대로 협회 부지 가장 안쪽에 위치한 거대한 돔 형태의 단지로 향했다. ​ 그곳의 이름은 요람. 이 세계에 불시착한 모든 이방인이 사회에 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머무는 일종의 유예지대였다. 사실 협회 내부의 삼엄한 경비와는 달리 돔 내부는 평화로운 작은 신도시처럼 보인다. ​ 단지의 입구에서 깔끔한 제복을 입은 경비원이 우리를 맞았다. 나는 내 신분증을 제시하며 말했다. ​ “상담사 유선우입니다. 내담자 설유월 씨의 진로 탐색을 위해 방문했습니다.” ​ 경비원은 내 신분증을 단말기로 스캔하더니, 내 옆에서 잔뜩 경직된 채 서 있는 설유월을 한번 번갈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 - 삑. ​ “네, 신원 확인되셨습니다. 상담사님과 이방인분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설유월의 손을 이끌어 그 안으로 들어갔다. ​ “아직 여기는 와 본 적 없으신가요?” ​ 협회의 교육과정에 있어서, 교육을 듣기 위해 잠깐 올 수도 있었을 테니까. 나는 설유월에게 물었다. ​ “아직… 안 와봤어요.” ​ “그렇군요.” ​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차피 앞으로 자주 오게 될 곳. ​ 이곳에서 그녀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다른 이방인들을 만나고. 또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세상을 배워나가게 될 것이다. ​ 돔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삭막했던 협회의 풍경과는 반대인 풍경이 펼쳐졌다. ​ 하나의 작은 도시가 통째로 돔 안에 담겨 있었다. 돔의 천장은 통유리로 되어있어 태양 빛이 그대로 들어오고, 잘 가꿔진 푸른 잔디밭과 그 사이를 흐르는 시냇물 또한 기분 좋은 물소리를 내고 있었다. ​ 시냇물을 따라 이어진 길의 양옆으로는 각기 다른 국가의 건축 양식의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는 도심이 존재한다. ​ 물론 실제 도시와 같은 높은 빌딩들이 있지는 않지만, 최대한 현실을 재현하려는 것이 느껴지긴 했다. ​ 설유월은 그런 풍경을 넋을 잃고 바라봤다. 협회에서도 이 공간만큼은 최대한 공을 들인 티가 났다. ​ 저번 루나필드에 견학을 갔던 것은, 나라는 존재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특별 예외 사항이고. 원래 이방인들은 이곳, 요람을 가장 먼저 오게 될 테니까. ​ 그들의 첫인상에 좋게 남기 위해서 꽤나 고생했다 들었다. ​ 설유월에게도 꽤나 성공적이었던 것 같고. ​ “걸을까요?” ​ 나는 그렇게 멍하니 서 있는 설유월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 내 손길에 그녀는 화들짝 놀라 정신이 든 모양이었다. 설유월은 잡힌 자신의 손을 한번 내려다보고는, 이내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쫄래쫄래 내 뒤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 - 쫄래쫄래. ​ 나는 그런 그녀의 보폭에 맞춰 걸음을 옮겼다. ​ 그리고 오늘의 일정을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 “오늘은 기본적으로 길드 설명회를 들어볼 겁니다.” “이곳 요람에서는 여러 길드가 유월 씨와 같은 이방인들을 스카우트… 그러니까, 모셔가기 위해 정기적으로 방문을 합니다.” ​ 나는 그녀의 눈을 보며 덧붙였다. ​ “힘을 키우고 싶다고 하셨죠?” “그렇다면 유월 씨가 기댈 수 있는 좋은 둥지를 찾는 것이 우선일 수도 있겠네요.” ​ 설유월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거렸다. ​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우리는 도심에 도착했다. ​ 도심은 생각보다 더 북적거린다. ​ 수많은 길드의 지부들이 이 건물을 쓰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진짜 도시와 크게 다를 것도 없긴 했다. ​ 그곳의 가장 큰 건물 앞 전광판에는 오늘의 주요 일정이 떠 있었다. ​ [오전 11:00- 신규 이방인을 위한 길드 합동 설명회 (중앙 아트홀)] ​ 나는 설유월을 이끌고 그 건물 안으로 향했다. 강당 안은 이미 수십 명의 각기 다른 세계에서 온 이방인들로 가득 차 있었다. ​ 제국 출신의 이방인들도 있어 보이고…. ​ 또 중원 출신은 물론 이곳저곳에서 다양하게 와 있다. 우리가 자리를 잡고 앉자, 강당의 불이 꺼졌다. ​ 그리고 무대 위의 거대한 스크린에 푸른 용의 문양이 떠올랐다. ​ ‘창천맹이네.’ ​ 오늘의 첫 번째 설명회의 길드는 창천맹이었다. ​ 무대의 옆에서 한 명의 여인이 우아한 걸음걸이로 단상 위로 올라섰다. ​ 옥색의 비단 장포, 그리고 머리에 꽂은 봉황 비녀. ​ 이서령이었다. ​ “?!” ​ 내 옆에 앉아 있던 설유월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이 새로운 세계에서 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는 몰랐을 터였다. ​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방인 여러분.” ​ 그녀는 마이크를 잡고 수십 명의 이방인을 향해, 유려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이서령의 목소리는 듣는 이를 편안하게 하는 기운이 담겨 있었다. ​ 나는 그런 이서령이 아닌 내 옆의 설유월을 바라보았다. ​ 그녀는 연설하는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단 한 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설유월의 푸른 눈동자가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다. ​ 과거 이서령에 대한 언급을 할 때, 사시나무처럼 떨리던 그 눈동자는 이제 온데간데없고. 이제 그 두 눈에는 자랑스러움이 담겨 있었다. 두려움이나, 원망 따위는 없다. ​ 나는 그 우수한 변화에 고개를 끄덕였다. ​ 그렇게 이후에도 길드들의 설명회가 이어졌지만…. ​ 대부분의 요지는 단순했다. ​ “저희 어센트 길드에 가입하시면… 즉시 길드 인근의 최고급 빌라를 제공….” “저희 팔라딘 길드에 가입하시면, 어떤 길드보다 높은 연봉을 약속….” ​ 우수한 숙소를 제공하고. 높은 연봉을 제시. 게다가 최고급의 장비 지원까지. ​ 그들이 이방인에게 제시할 수 있는 건 그런 것들이었으니까. ​ 설명회가 서서히 끝나가는 와중, 나는 설유월에게 어떤 길드가 좋아 보이는지 질문을 하려 했다. ​ 바로 그때였다. ​ - 털썩. ​ 우리 옆 비어있던 자리에 누군가 자연스럽게 앉았다. 익숙한 난초 향이 코끝을 스쳤다. ​ “아가, 설명회는 재밌었니?” ​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이서령이 온화한 미소를 지은 채, 설유월을 바라보고 있었다. ​ “어머니….” ​ 설유월 또한 기뻐하며 그녀를 바라봤다. ​ 나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살짝 숙여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서령은 자리에서 살짝 일어나더니 내게 똑같이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저번부터 느꼈는데, 그녀가 내게 차리는 예의가 엄청나게 과하다. 설유월의 의원인 나를 자신보다 더 높은 존재로 여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 이서령은 그대로 설유월의 옆을 지나, 내 곁의 빈자리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 “다름이 아니라, 두 분을 위해 점심식사를 조금 준비해왔어요.” ​ 그녀는 강당 밖, 창문으로 보이는 공원을 손짓으로 가리켰다. ​ “이 설명회가 끝나는 대로 공원의 벤치로 와주시겠어요?” ​ 이서령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내게 제안했다. ​ 나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밥은 먹어야 했고. 설유월 또한,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식사하는 것을 싫어할 리 없으니까. ​ “그럼요. 감사합니다.”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대답에 이서령은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 “그럼, 먼저 가 있겠습니다.” ​ 이서령은 우리를 뒤로한 채, 강당 밖으로 걸어 나갔다. ​ 그녀가 사라지고 나서야 설명회가 끝이 났다. 나야 뭐… 전부 아는 내용이니 지루했지만. ​ 설유월은 그렇지 않았다. 좋은 구경을 했다는 듯 눈동자가 초롱초롱 빛난다. ​ “그럼 이제 밥 먹으러 가 볼까요?” ​ 설유월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톡톡…. ​ 나는 고개를 돌려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러나, 뒤에서 누군가가 내 손을 톡톡 건드렸다. ​ “?” ​ 나는 고개를 돌렸다. 설유월이었다. ​ “손… 좀….” ​ 설유월은 당연하다는 듯, 작은 손을 내 앞으로 내밀고 있었다. ​ “잡아… 주세요….” ​ 나는 그 요구에 결국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결국 설유월에게 다시 손을 뺏겼다. ​ - 꽉. ​ 놓칠 생각이 없다는 듯 아주 세게도 쥔다. ​ 우리는 그렇게 손을 잡고 강당을 빠져나와 햇살이 쏟아지는 공원의 벤치를 향해 걸었다. 나는 걷는 도중 그녀에게 오늘의 소감을 물었다. ​ “어떤가요? 가고 싶은 곳은, 정하셨나요?” ​ 물론 설유월의 퍼포먼스나 진짜 실력은 추후 있을 테스트에서 드러나게 되겠지만…. 지금껏 본 바로는 그녀가 결코 약할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 따라서 길드가 선택하는 게 아닌, 설유월이 선택하는 입장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 “음….” ​ 그러나 설유월은 아직 고민하는 눈치였다. ​ “괜찮습니다. 지금 바로 결정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 나는 그녀를 안심시켰다. ​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우리는 약속 장소인 아트홀 앞의 커다란 나무 벤치에 도착했다. 이서령은 벤치 위에 하얀 비단보를 깔고, 그 위에 자신이 정성껏 싸 온 화려한 찬합들을 하나씩 펼쳐놓고 있었다. ​ “아니… 이걸 전부 다….” ​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맑은 조갯국과 보기 좋게 담겨있는 각양각색의 나물무침 그리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닭고기덮밥까지. ​ 말이 도시락이지 이건 거의…. ​ 이서령은 우리를 발견하더니 환하게 미소 지었다. 나와 설유월은 자리에 앉았다. ​ 자리에 앉자마자, 그녀는 뚜껑을 연 덮밥을 내 쪽으로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 “닭고기덮밥입니다.” ​ 부드러운 목소리로 덧붙였다. ​ “의원님의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네요.” ​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숟가락을 들었다. ​ “아… 먼저 드세요.” ​ 나는 이서령에게 먼저 권했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 “의원님께서 먼저 드셔주세요.” ​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정성껏 만들어준 닭고기덮밥을, 크게 한술 떠서 입안으로 가져갔다. ​ 입에 델 정도의 뜨거움. 그리고 이어지는 탱글탱글한 계란과, 쫄깃한 닭고기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 입에 넣자마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 “너무… 맛있네요.” ​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서령에게 솔직한 평가를 전했다. 그러자 이서령 또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 “계(鷄)와 란(卵)이 한데 어우러지는 그 맛은, 예로부터 사내의 기력을 돋우는 데 우수하다 하였답니다.” ​ 이서령은 음식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 - 냠냠. ​ 옆에 앉은 설유월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오랜만에 느끼는 이서령의 손맛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 - 와구와구. ​ 이서령은 그런 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 “참… 의원님께서 좋아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 그러면서 나를 천천히 바라봤다. ​ “아… 그렇군요.” ​ 나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거리고 숟가락을 들었다. ​ “후후….” ​ 이서령의 입가에서 만족스러운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 - 냠냠냠. ​ “더 주세요…!” ​ 찬합에 코를 박고 있던 설유월이 고개를 들며 외치는 말과 함께. ​ 나도 다시 수저를 들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