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시만요 유월 씨….” ​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물론 상담사로서 눈앞의 내담자가 눈물을 흘리는 것은 지극히 흔한 일이다. 감정의 응어리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은 가장 자연스러운 수단이니까. ​ 그러나 무슨 상담도 아니고 보자마자 뿌엥하고 세상이 떠나가라 눈물을 터트리는 경우는…. 일단 처음 보긴 한다. ​ 나는 문고리를 붙잡고 서럽게 우는 그녀를 잠시 멍하니 바라봤다. ​ 내 방식대로 일단 달래주고. 바로 안으로 들어가는 게 중요해 보였다. ​ 그러나 그때. ​ 눈앞에 상태창이 떠올랐다. [설유월] [메인 스탠스] [의원님이 어제 안 좋은 일을 겪으셨기에, 당연히 안 오실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찾아와주신 것에 너무 감사하고, 또 자신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만든 것 같아 죄스럽습니다.] 그는 그녀의 스탠스에 고개를 끄덕였다. ​ 내가 와준 것은 정말 고맙지만, 또 동시에 자신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이라 생각해, 슬픈 감정이 복합적으로 터져 나온 모양이었다. 설유월의 착한 성정이 만든 일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 하지만 문제는 그 아래에 떠오른 선택지였다. [적합 답변][만족 적합률 ??%]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당신의 넓은 품으로 그녀를 끌어안아 어르고, 달래주십시오.] [적합 답변] [만족 적합률 ???%] [아비가 어딜 가겠느냐. 당연히 내 딸의 곁으로 와야지.] ‘…….’ ​ 죽을래? ​ 딱 봐도 수작질이다. ​ 숨겨져 있는 거 가져와. ​ [(☍д⁰)] [숨겨진 선택지를 표시합니다.] [적합 답변] [만족 적합률 85%] [울어도 괜찮다고, 다정하게 말하며 그녀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려주십시오.] ​ 이게 정상이지. ​ 뭐… 나쁘지 않긴 한데. 일단 이렇게 복도에 있는 건 좀 그렇다. ​ “뿌에에에에엥….” ​ 나는 일단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잡아, 방 안으로 이끌었다. 이대로 복도에 계속 서 있는 것은 그녀에게도 나에게도 좋지 않다. ​ - 철컥. ​ 문이 닫혔다. 훌쩍이는 그녀를 소파까지 자연스럽게 데려와 자리에 앉혔다. ​ 그렇게 그녀가 조금 더 울 시간을 주었다. ​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설유월의 등이 떨릴 때마다 부드럽게 토닥여주었다. ​ “울어도 괜찮습니다.” ​ 나는 품에 있는 깨끗한 손수건을 꺼내 그녀의 뺨 위로 흐르는 눈물을 톡톡 두들겨 닦아 주었다. ​ “…으엥.” ​ 그녀는 그런 내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서서히 울음도 그쳐갔다. ​ 솔직히 말해 썩 좋은 방향은 아니긴 했다. 어쨌든 내가 하고 있는 지금 이 행동 또한, 그녀의 의존이 깊어지는 방향성의 행동 중 하나일 테니까. ​ 물론 지금은 울음을 그치는 것이 먼저였기에 신경 쓰지는 않았다. ​ 훌쩍거리며 숨을 가쁘게 쉬던 설유월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물기에 젖어있다. ​ “죄송… 합니다… 의원님….” ​ 그녀는 고개를 푹 숙였다. ​ “많이 힘드실 텐데… 저 때문에… 여기까지 오시게 해서….” ​ “그렇지는 않습니다.” ​ 나는 즉시 그녀의 생각을 부정했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젖은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 “제가 정말로 힘들었으면 오지 않았을 겁니다.” ​ 나는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 ​ “저는 제 한계를 명확히 아는사람이고, 무리해서 내담자를 만나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그건 내담자님에게도 실례가 되는 일이니까요.” ​ 그리고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 첨언했다. ​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진솔한 목소리와 미소로 그녀에게 말했다. ​ “저도 유월 씨가 보고 싶었습니다.” ​ 내담자가 나의 상담과 치료를 통해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과 변화를 지켜보는 것. 그것은 상담사로서, 그리고 내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이다. ​ 어제의 그 안 좋았던 일 때문에 내가 쉬어버린다면. 어쩌면 오늘 내가 보았을지도 모를 그 작은 변화를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정말 막심한 손해 아니겠는가? ​ 피해를 두배로 보고 싶지는 않았다. ​ 따라서 설유월을 보고 싶었다. ​ 얼마나 변했을지. 또 얼마나 변할지. ​ 그게 내 진심이었다. ​ 내 말의 진심이 그녀에게도 전해졌는지, 푸른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정말… 입니까?” ​ “그럼요.” ​ 내 확언에 설유월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 약간 고민했다. 그리고 이내 입을 열었다. ​ ​“… 의원님….” ​ “네.” ​ “저번에 말씀드렸습니다. 제… 새로운 목표는 가정을 꾸리는 것이라고….” “네,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주 멋진 목표였죠.” ​ 분명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고, 또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 나는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말했고. 그녀의 꿈을 지지했다. 그녀의 부모인 이서령 또한. ​ “… 그런데 또 하나가 생긴 것 같습니다.” ​ “정말요?” ​ 나는 기쁜 목소리로 물었다. 의존이 깊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기우인 듯했다. ​ 그녀는 착실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 설유월은 주먹을 작게 쥐었다. 얼마나 세게 힘을 쥐었는지, 바들바들 떨리는 것이 보일 정도로. ​ “어제, 의원님께서 납치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 설유월의 푸른 눈동자가 타오른다. ​ “그때 저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 방 안에서 무력하게 기다리는 것 외에는.” “이제, 그런 삶은 싫습니다.” ​ 그녀는 나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 “어머니를 잃고… 차가운 동굴 바닥에서 나아지지도 않을 무공을 붙잡고, 어머니가 돌아오시기를 기다리기만 했었습니다.” “이제, 그런 무력한 삶을 살고 싶지 않습니다.” ​ 흔들리며 눈물을 흘리던 아이는 어디 가고. 눈앞에는 중원의 무인이 서 있었다. ​ “힘을 키우겠습니다. 누군가를 지킬 수 있을 만큼.” ​ 나는 아무 말 없이 설유월을 바라볼 뿐이었다. ​ 당장 박수라도 마구 쳐주고 싶은데. 그런 분위기는 아닌 것 같아서 참았다. ​ 즉, 설유월은 마침내 스스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바로 세웠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변화인가. ​ 대견함을 억눌렀다. 나는 머리를 마구 쓰다듬어 주고 싶은 것을 참고, 고개를 천천히 끄덕여주었다. ​ 내가 상담사로서 내담자인 설유월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지지와 존중의 표시였다. ​ “바람직합니다.” ​ 그리고 조금 웃었다. ​ “솔직히… 조금 멋있기까지 하네요.” ​ 이것 또한 내 진심이었다. ​ 그러자 설유월 또한 고개를 끄덕거리며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아까까지 뿌엥하고 울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 “그럼….” ​ 나는 그런 그녀의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곧바로 다음 장작을 넣어주었다. 그게 상담사의 역할이다. ​ “그 멋진 목표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있겠군요.” ​ 나는 우리가 있는 이 아늑하지만 동시에 감옥이기도 한 숙소를 손짓으로 가리켰다. ​ “앞으로, 이곳에서 나가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지. 또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유월 씨가 직접, 선택해야만 합니다.” “길드에 들어가, 다시 무인의 삶을 살아도 좋고. 혹은 평범한 직장인이 되어도 좋겠군요.” ​“따라서, 오늘은 그 모든 가능성을 직접 눈으로 보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함께 구경을 다녀볼 생각입니다.” ​ 그것은 내가 미리 계획해두었던, 그녀를 위한 두 번째 현장 학습이었다. ​ 협회의 부지 안에는, 이방인들만을 위한 작은 도시가 존재한다. ​ 이곳에서는 이방인들이 사회에 완전히 동화되기 전, 자신의 미래를 탐색하고 결정하는 모든 과정이 이루어진다. 즉, 출소 전… 아니 퇴소 전, 이방인들의 진로를 찾는 공간이라 보면 될 것 같다. ​ 따라서 오늘은 그곳을 가볼 것이다. ​ 수많은 길드가 새로운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 스카우터를 파견하고. 또, 평범한 삶을 원하는 이들을 위해 수백 가지의 직업을 미리 체험해볼 수 있는 공간 또한 존재했다. ​ “가볼까요?” ​ 나는 그녀에게 부드럽게 물었다. ​ 설유월은 잠깐 망설이는 듯하더니…. 손을 슬쩍 내밀었다. ​ “손··· 잡아… 주세요….” ​ 경어체가 아닌 말투는 처음이었다. ​ 나는 웃으면서 그녀의 손을 감싸 쥐어 잡아주었다. ​ “그럼요.” ​ 그리고, 그녀의 푸른 눈동자를 보며 덧붙였다. ​ “그리고, 요로 끝내는 편이 확실히 듣기에도 훨씬 더 편안하네요.” ​ 내 말에 설유월의 뺨이 희미하게 붉게 물들었다. ​ “그렇…군요….” ​ 우리는 그렇게 손을 잡고 함께 문밖으로 나서려 했다. ​ 바로 그때였다. ​ “아.” ​ 설유월이 복도 벽에 걸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화들짝 놀라며 잡고 있던 내 손을 놓고, 자신의 방으로 후다닥 뛰어 들어갔다. ​ “?” ​ 나는 영문을 몰라 멍하니 서 있었다. ​ 잠시 후, 방문이 아주 살짝 열렸다. ​ 문틈으로 붉어진 뺨과 푸른 눈동자만이 삐쭉, 내밀어졌다. ​ 그녀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 “저… 저번에 사주신 옷으로… 갈아입고 가면 안 될까요…?” ​ 나는 그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당연히 갈아입히고 나갈 생각이었다. ​ “… 음.” ​ 나는 장난기가 발동하여 잠시 고민하는 척했다. ​ “특별히, 허락해드리겠습니다.” ​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감사합니다….” ​ 설유월은 내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문을 닫고, 안으로 다시 사라졌다. 방 안에서 부산스럽게 옷을 갈아입는 소리가 들려왔다. ​ 아무래도, 오늘 하루는 생각보다 길 것 같았다. ​ ​ ​ ​ ​ ​ ​ *** ​ ​ ​ ​ 창천맹의 아침은 그 어떤 곳보다도 고요하게 시작된다. 이서령은 거울 앞에 앉아, 시종들이 자신의 긴 머리를 빗어 넘기는 것을 눈을 감은 채 느끼고 있었다. ​ “맹주님.” ​ 보고를 위해 들어온 시종 하나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 “의원께서는 오늘 아침. 예정대로 설유월 소저를 만나러 가셨다고 합니다.” ​ “그렇구나.” ​ 이서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 바로 전날 그 끔찍한 일을 겪고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자신의 일을 다하는 사내. 역시…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갈수록··· 멋있다고 느껴진다. 이서령의 붉은 입술에 부드러운 미소가 걸렸다. ​ 바로 그때, 그녀의 몸단장을 돕던 어린 시종이 코를 킁킁거리며 활발한 목소리로 물었다. ​ “맹주님! 그런데 어디서 이렇게 맛있는 냄새가 나는 겁니까? 혹시 조찬 메뉴는 특별한 것인지요?” ​ 이서령은 그제야 눈을 떴다. ​ “… 닭고기 덮밥과 조갯국이란다.” ​ 계란과 닭고기를 비법 간장에 졸여 따뜻한 밥 위에 올린 것. 그리고 목이 멜 것을 염려해, 시원한 조개를 가득 담아 맑게 끓여낸 조갯국까지. 도시락으로 가져가기에 가장 적합한 음식이었다. ​ “와! 맛있겠습니다!” ​ “··· 좋아해 주셨으면 좋겠구나.” ​ - ♪~ ♩~ ​ “그분께서 말이야.” ​ 이서령의 입가에서 작은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 시종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갸웃했다. ​ 맹주님이 저토록 기분이 좋아 보이는 것은, 정말이지 오랜만이었으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