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성은 자신을 죽이기 위해 펼쳐진 게 분명한 진법을 자세히 살폈다. 진법에 대한 건 초월자 갤러리 선배들이 말해준 바가 있었다. 진법의 용도는 말 그대로 상대방을 완벽하게 죽이려는 것. 그리고 조용히 일을 처리하려는 의도에서 펼치기도 한다고 했다. 숙소의 지면에 내려앉아있는 진법은 자신의 발을 완전히 묶고 있었다. 진법은 마치 대못들이 길게 늘어진 것 같은 형상으로 존재감을 피력하고 있었다. - 시궁창검성) 진법은 사냥꾼이 깔아놓는 함정이라고 할 수 있다. - 당하연) 진법은 역이용할 수 있는 구석도 있는 검다!! 진법을 시전한 쪽은 진법 내에선 권역을 사용하는 걸 극도로 꺼리는 검다! - 天魔) 진법에 걸렸을 때의 대처법이 뭔가. 간단하다. - 天魔) 쫄지 말고 진법의 중심이 되는 진원(陳源)을 부수면 된다. ‘…진원을 부순다.’ 하나, 당장으로선 그 진원이란 것의 위치조차 모르는 상황이었다. 한유성은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몸을 맨 끝으로 날렸다. 촤아아아아악! 쫓아오는 게 불가능하게 하려고 횡 방향의 원거리 참격을 내뻗으며. 초월자 단말기를 잽싸게 꺼내, 영상 촬영 기능인 비소그라피카를 작동시켰다. ‘찍을 건 찍어야지.’ 비소그라피카의 남은 사용 가능 횟수는 2회. 하지만 이번 전투는 찍을 가치가 있다고 확신을 하고 있었다. 한유성 이외의 존재들에겐 보이지 않는 촬영 드론이 활공을 시작했다. “…뭘 하는 거냐, 저놈은?” 6위계 홍기륜은 갑자기 몸을 뒤로 훅 빼낸 한유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동일 위계의 부하인 6위계 가진풍이 입을 열었다. “진법의 진원을 찾기 위해서 거리를 확보한 것 같습니다.” 쯧- 홍기륜이 혀를 찼다. “멀리 떨어지면 진원이 잘 보이기라도 한단 말이냐? 이상한 놈이로다.” 홍기륜은 검에 검강을 일으켰다. “빨리 끝내야 한다. 쟁천무회의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홍기륜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지금 적으로 두고 있는 한유성이 두려운 게 아니라, 소란이 크게 벌어져 호북연가의 연설아를 납치하려던 걸 들키는 게 두려웠다. 그럼 자신이 충성하고 있는 백리세가에게 피해가 갈 테니까. 무림맹주인 남궁원은 오늘의 일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하북팽가의 영향력에 묵인해주고 있는 것일 뿐. 하북팽가는 일이 잘못되어도 백리세가라는 꼬리를 잘라 내버리고 책임에서 회피하겠지만. “저놈을 죽이는데 다섯이면 충분하다. 둘은 빠져서 계집을 쫓아라.” 흑의를 입은 사내 둘이 고개를 끄덕였다. 몸을 돌린 둘의 발걸음이 숙소의 문 쪽으로 향했다. 직후. 바닥에 칼자국이 그려졌다. 써걱. 파육음이 거칠게 울려 퍼졌다. 뒤편 끝에 있던 한유성의 몸은 어느새 문 앞에 도달해있었다. 무언가 치솟아 올랐다. 푹! 촤아악! 양손을 모조리 잘린 둘의 비명이 입 밖으로 뱉어지기도 전에. 좌측에 있는 놈의 목에 깊이 검이 쑤셔박히고. 우측에 있는 놈의 심장이 꿰뚫렸다. 정적이 숙소를 내려앉았다. 한유성은 기감을 펼쳤다. 숙소 바깥에 있는 연설아에게 멀어져 있던 유화윤이 다시 다가와 있었다. 화산파의 출전자인 유화윤. 당신에게 할 말이 있는데. 어젯밤, 한유성은 유화윤에게 언질을 해두었다. 애가 조만간 목숨이 노려질 거니까, 한 번 위험해지고 나서 명분 생기면 도와줘. 그냥 막 도와주라고 하진 않을 테니까. 한유성은 그냥 막 도와주려는 선인들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했다. 유화윤은 웃으며 그렇게 해주겠다고 대답을 했다. - 시궁창검성) 화산파는 대체로 선하다. 대체로 말이다. - 당하연) 반드시 선하진 않는 검다!!! 한유성도 그 정도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게 현 상황에서 조치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우선 신경을 끄고.’ 지금 눈앞에 있는 적들에게 집중할 때였다. 화산의 유화윤은 6위계. 백리세가 측에서 보낸 주요 전력으로 보낸 이들을 자신이 제대로 막고 있으면, 연설아가 죽을 일은 없다고 믿고 움직여야 했다. 한유성은 검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호신강기를 먼저 일으키고. 백색의 검기를 검신에 흘려보냈다. 한유성은 걸음을 내디뎠다. 둘을 죽였다. 남은 건 다섯. 홍기륜은 미간을 좁혔다. 저놈이 만만치 않은 적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자신이 소림파 자선과의 전투를 객석에서 목격한 이들 중 한 명이었으니까. 하지만 움직임. 순식간에 둘을 죽인 한유성의 움직임은 몇 시간 전에 보았던 것과 괴리감이 들었다. 꽈르르르릉! 한유성은 자신의 앞에 내리치는 적색 섬광을 직면했다. ‘진법의 힘인가.’ 다섯의 무인은 서서히 한유성을 포위하듯 전방위로 좁혀들었다. “…진법의 힘을 극대화한 상태에서 동시에 몰아붙이면 아무런 피해 없이 죽여버릴 수 있을 거다.” 홍기륜의 명령은 계속되었다. “천칭을 내려찍을 거다. 동시에 달려들어서 숨통을 끊어라.” 진법을 조율하는 홍기륜이 지면에 검을 내리찍었다. “이곳이 저놈의 묫자리다.” 붉은 별들이 한유성의 몸을 휘감았다. 천칭이란 게 뭔지 절로 체감이 되었다. 몸을 움직일 시도조차 하지 못할 정도의 압박감이 정수리를 짓눌렀다. 마치 거대한 대못이 몸을 관통하고 있는 것 같은 이질적이면서도 불쾌한 감각. 한유성은 검기를 모조리 가라앉히고. 다시 쌓아나갔다. 화악- 검기를 덧씌웠다. 한없이 짙어지는 검기. 한 겹, 두 겹, 세 겹. 그리고 검 끝에서 휘돌아가는 나선. 홍기륜을 비롯한 이들의 얼굴에 이변이 일어났다. 한유성의 검을 타고 흐르는 기류는 도저히 검기라고 부를 수 없는 형상을 띄고 있었다. 검강(劍罡). 6위계 이상의 전유물. 홍기륜의 미간이 구겨졌다. ‘5위계였다.’ 몇 시간 전에 소림의 자선과 전투를 벌일 때까지만 해도 분명히. 한유성은 자선과의 전투를 끝낸 직후. 6위계에 돌입했다. 근간을 담당하고 있는 중추의 양옆으로 자리 잡은 세 개의 기둥이 한유성이 6위계에 올랐음을 방증했다. 소림파 출전자 자선과의 대결 후, 또다시 이름을 알렸다는 알림창과 함께 2레벨의 상승이 이루어졌고. 최상의 상태에서 창안한 고유의 내공심법을 공전 시킨 결과였다. 갑작스러운 위계의 상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셀 수도 없이 계속 두드리고 있던 벽. 그 벽이 이제야 허물어졌을 뿐. - 빛의검) 진법의 진원 위치를 파악하는 방법은 간단하다면 간단하다. - 시궁창검성) 진법에 아주 강대한 공격을 먹이면 진원에서 퍼져나가는 흐름이 보일 거다. - 天魔) 아무리 네놈이라도 곧바로 권역을 쓰는 건 역부족일 거다. - 빛의검) ‘권역’의 창안은 6위계를 들어서는 것만큼이나 많은 시일이 걸릴 수도 있는 일이다. - 마룡왕) 벨투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어디까지인가- 그걸 스스로 알 필요가 있어요오. - 당하연) 6위계의 무인은 생각보다 할 수 있는 게 많은 검다!! 단, 스스로 알아내야 하는 검다! 한유성은 진법을 부술 수 있을 만한 검로를 떠올렸다. 용살검 중에도 있으나, 그중에서 고르기엔 아직 학습이 부족한 면이 있었다. 가장 직관적으로 떠오른 건, 반 이네르의 검술. 피엘뷔르트의 극의 중 하나가 떠올랐다. 지금처럼 이동의 제약이 걸려있을 때도 대기를 뒤덮을 수 있는 검법. 검강(劍罡)의 상태를 유지한 채, 검신에 검강의 기류를 압축시킨다. 아주 날카롭게. 6위계로서 할 수 있는 것. 그것에는 검기의 세밀한 조율도 포함되어 있었다. 6위계란 즉, 심상을 검로에 이끌어낼 수 있는 경지. 한유성은 지금부터 행할 무공이 펼쳐내야 할 풍광을 머릿속에 그려냈다. 공격의 방향과 범위. 거기에 걸맞은 검강이 조각되었다. 한유성의 오른팔이 움직였다. 하단부터 백색의 참격이 대각선으로 치솟아 올랐다. 곡검의 세 번째 변주. 흉천(凶天). 써걱. 공간에 무언가 그어졌다. 대각선의 백색 섬광. 진법이 뒤흔들렸다. 붉은 핏방울이 허공을 떠다녔다. “──!” 6위계, 홍기륜의 오른팔이 검격의 방향을 따라 대기에 떠 있었다. 홍기륜의 찢어질 듯이 커진 두 눈이 정신없이 굴러다녔다.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서. 5위계 둘의 상체에 돌이킬 수 없는 검흔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한 명은 이내, 숨통이 끊어졌다. 한 명은 죽지는 않았으나,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쿵. 홍기륜의 오른팔이 바닥에 떨어졌다. 홍기륜은 기를 일으킨 왼손으로 완벽히 잘려나가 비린 단면을 움켜쥐었다. 콰아악! 지독한 고통이 뇌리를 후벼팠으나. 으드득!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무섭게 쏟아내라던 피가 멎었다. 고통보다 허탈감이 몇 배는 더 했다. 진법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린 참격이었다. ‘재능.’ 홍기륜은 이제는 잊고 살았던 단어를 떠올렸다. 아무리 고민해도 해결이 되지 않는 말. 자신이 재능이 6위계가 한계라는 걸 인정했다. 이제 더 이상 올라갈 곳도 없이 없다는 것을. 근데 눈앞에 나타난 새파란 애송이가. 직전까지는 5위계였으며, 조금 전에 6위계로 올라온 게 분명한 애송이의 손에 오른팔이 완전히 절단되어버렸다. ‘일이…이딴 식으로.’ 진법의 원활한 가동 때문에 펼치지 않고 있던 권역을. 이제는 강제로 펼치지 못하게 된 꼴이 되어버렸다. 자신의 권역은 일순간 막강한 힘을 끌어올리는 순수 무력 쪽에 치우쳐 있어, 몸뚱이가 멀쩡해야 운용이 가능했다. 홍기륜은 입을 열었다. “네가 어떤 판에 끼어들어 설치고 있는지 알고 있나, 애송이.” “그건 모르겠고.” 인벤토리에서 검 한 자루를 꺼내 들었다. 10층에서 쓰러트린 기사 데칸의 검. [유칼레타의 이빨] “여기가 내 묫자리가 아니라는 건 알겠어.” 6위계가 되어, 이전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한유성은 지금 처음 시도하려는 걸, 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검을 던지는 것. 투검(投劍). 투검의 체공 시간 중, 그리고 목표물을 맞히는 그 순간까지 검에 서린 검기를 유지할 수 있을 거란 확신. ‘흉천’의 일으킨 파장으로 인해, 진법의 진원이 은은한 적색 빛을 대기에 흩뿌리고 있었다. 검강을 맺은 데칸의 검을 던졌다. 쿠구구궁─! 진법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콰과과과광! 숙소의 구조물과 함께. 한유성은 미약하게 짓누르고 있던 압박감이 녹듯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몸이 깃털처럼 움직였다. 뻗어나간 섬광의 끝에는. 또 다른 6위계인 가진풍의 심장이 있었다. 불가피했다. 한유성의 뒤편에 펼쳐진 자욱한 칼바람을 끝내기 위해선, 가진풍을 죽여야 했다. 가진풍의 왼손에 쥐고 있던 도(刀)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한유성은 자신의 몸뚱이에 대각선으로 그어진 상흔을 바라보았다. 그간 쌓인 고통 내성이 드디어 효과를 발휘했는지, 생각보단 참을 만했다. 회복 물약의 절반은 상흔에 들이붓고. 절반은 입에 털어 넣었다. 찰나였다. 동 위계인 6위계 간의 전투도. 한순간의 판단과 선택이 생사를 갈랐다. 한유성을 향해 달려들기 위해 발걸음을 내디딘 홍기륜의 움직임이 우뚝 멈춰 섰다. 그림자가 드리웠기 때문이다. 무수하고. 강대한 그림자들이. [NPC - 하북팽가 가주 7위계 팽무일] [NPC - 모용세가 가주 7위계 모용진천] [NPC - 사천당가 가주 7위계 당명허] [NPC - 남궁세가 가주 7위계 남궁원] [NPC - 제갈세가 가주 6위계 제갈시헌] 무너진 건물의 지붕 위에. 정파 무림의 핵심들이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