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C 결승 당일. 밀키웨이를 잡고 올라간 ST는 결승전에서 LOCC의 BBG를 다시금 만나게 됐다. [파죽지세의 ST, 그리고 지옥에서 돌아온 BBG!] [2년 전 록드컵의 리매치가, 바로 오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성사됩니다!] 깔끔하게 매치 전승을 거둔 ST와 달리 BBG는 패자조로 내려가 같은 리그에 속한 TET도 잡고 유럽의 희망도 꺾으며 꾸역꾸역 올라왔다. 그리고 저력 있는 팀들이 으레 그렇듯, 어떻게든 결승전에 올라오면 폼은 살아나기 마련이다. “얘들아, 기억해. 지지난 시즌에 BBG한테 록드컵 결승전 질 뻔했던 거. 그리고 지난 시즌에는 BDRX한테 진 것도 기억해.” 대기실의 공기가 가라앉았다. 대회의 종류는 달랐지만, 결승전의 불확실성을 잘 아는 사람 중 하나인 감독님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방심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 은설이 여기까지 왔는데 국제전 우승컵은 들게 해줘야 할 거 아니야?” “맞습니다!” “고생하긴 했어.” 감독님의 기습 언급에, 나는 그저 웃으며 선수들과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로 챙겨주면 그 누구보다도 감사히 받을 자신이 있다. 경험상 후보든 뭐든 일단 커리어에 한 줄 추가된다는 건 유·무형적으로 큰 자산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 은설이, 경기 나가는 선배들에게 한 마디 할래?” “제가요?” “평소에 말 잘하잖아. 뭐든 괜찮으니까 해봐.” ‘평소’에 하는 말을 그대로 하면 없던 사기도 떨어질 거 같아서, 나는 적절한 문장을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제가 커리어에 대한 집착이 좀 심해요.” 지금 유일하게 천하태평한 인간을 넘는 건 둘째 치고, 커리어적으로 적당히 비슷하게라도 맞추려면 최소 육 년은 잡아야 한다. “그러니까 지고 들어오면 대기실 사건 또 찍는 거예요. 알겠죠?” “......” 프라우드도 커리어 느는 거 아니냐 말할 수 있겠다만, 원래 없다가 하나 있게 되면 그 의미가 훨씬 큰 법이다. 특히 저 인간은 본인 트로피룸에 MSC 트로피 하나 늘어난다고 평가가 극적으로 안 바뀐다는 점에서, 차라리 우리 둘 다 수상하면 내 쪽에서 조금이라도 따라잡는 셈이랄까. 아무튼. 내가 해맑게 이야기를 마치자, 선배—통나무 유기자—들은 매우 확실히 이해했다는 듯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은설이의 진심 어린 당부도 들었지?” “당부요?” “솔랭에서 쌍욕 듣는 게 더 마음 편할 거 같은데요.” 바텀이 어째 불순한 말을 꺼낸 것 같긴 했지만, 어찌 됐든 선수들 개개인의 눈빛은 좀 더 날카로워졌고 전체적인 분위기는 아까보다 풀어졌으니 그러려니 했다. “그럼 이제 진행 요원이 부르기 전까지 각자 할 거 하고. 잘해보자!” “넵!” 그렇게 감독님의 말을 끝으로 선수들은 삼삼오오 흩어져 심신 안정을 위한 루틴을 시작했다. “기분이 어때?” 그 와중에 오직 프라우드만큼은 여유롭게 내게 물어왔다. “제가 결승전 치르는 것도 아닌데요 뭐.” 그쪽이 잘하셔야지. 게다가 록드컵 결승이면 모를까, MSC 결승은 긴장 안 된다. 내가 전생에 참가한 대회 중 유일하게 저 인간과 트로피 개수가 같았던 게 바로 MSC였으니까. “설마 결승전에 교체로 나가라는 말은 안 할거죠?” “지금은 어림도 없지.” 그는 슬며시 입꼬리를 올리면서도 눈을 감았다. 명상이라도 하나 싶어 저 구석으로 빠져주려 했는데, 그는 그 상태로 다시 입을 열었다. “아, 맞다.” “명상 안 해요?” “그것보단 후배한테 팝콘이랑 간식 위치 알려주는 게 중요하긴 하지.” 프라우드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캐비넷 하나가 있었다. “안에 간식 많으니까, 열어서 먹어.” “......” 놀아 본 놈이 잘 논다고. 대기실을 제 집처럼 써서 그런가 어째 모르는 게 없었다. * * * 사람들로 북적였던 대기실은 어느새 나와 코치님들을 제외하곤 텅 비었다. [자, MSC 파이널! 1세트 밴픽 시작합니다!] [블루에 ST, 레드에 BBG!] [과연 어떤 밴픽이 펼쳐질지 참 기대되네요!] 대기실의 커다란 TV 모니터로 나오는 경기장의 실시간 화면을 보고 있자니, 어느새 밴픽창 UI가 선수들의 얼굴 아래쪽에 튀어나왔다. “후우...” “첫 세트는 준비한 대로 밴픽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코치님들은 요 근래 밤을 새가며 준비한 밴픽이 충분하길 바라며 초조하게 화면을 바라봤다. [자, ST의 4, 5픽!] [그라까스와 레오난으로 마무리!] 경기장에서 경기를 뛸 때마다 밴픽 시간이 생각보다 적다고 생각했는데, 몸은 스테이지 밖에 있지만 마음만큼은 저 밴픽창 앞에 있는 상황에서 밴픽을 보고 있으니 문득 깨달았다. 시계는 잘못이 없었다. 그만큼,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음...이러면 무난한데요?” “사실상 인게임에 달렸네.” “ST 파이팅 해야지. 모여봐.” 밴픽이 끝나고 협곡에 진입하는 선수들의 모습이 화면에 나온다. [ ST 대 BBG, BBG 대 ST!] [MSC의 대미를 장식할 파이널 그 첫 번째 세트!] [지금 시작합니다!] “하나!” 해외 경기장인 데다 대기실에 있음에도 진정한 시작을 알리는 팬들의 카운트다운은 선명하기 그지없었다. “둘!” 나는 자리에 앉아 호흡을 가다듬었다. “셋!” 팬들의 환호성과 동시에. “ST 파이팅!” 나 또한 한 명의 팬이 되었다. * * * 뭐해? 틀어. —(트루_선글라스_짤.avi) MSC 파이널은 방금 4세트 BBG의 승리로 실버 스크랩스를 울리며 5꽉으로 갑니다! └ㅅㅅㅅㅅㅅㅅ └ㄱㅂㅈㄱ └ㅆ...ㅂ └이게 왜 5꽉이야 └뷰어십은 지리잖아 └한잔해~ └ㅋㅋㅋㅋㅋㅋ └트황 선글라스 짤은 언제 봐도 ㄹㅈㄷ └ㅇㅈ └고수) 아 오늘 출근 못한 트루 출근시켜준 거구나! └이런 씹ㅋㅋ └선배들의 큰그림 └ㄹㅇㅋㅋ └그게 중요해? ㅈ될거 같다고! └크아악 └?? : 이겨줄 거지? └??? : 몰라 └ㅋㅋㅋㅋㅋㅋ └다시 ‘대기실’ 마려운 트루면 개추 └어어 └그건 안된다 ?? : 난 대떡냈는데 —(ST_True.jpg) 미드 GOAT. └ㅋㅋㅋㅋㅋㅋㅋ └ㅆㅂ └다시 올라온 BBG 새끼들이 그때랑 너무 다르잖아요 └ㄹㅇㅋㅋ └사실 지금 보여주는 게 실제 실력이라고 보는 게... └맞긴해 └그때는 트루가 이상하게 미드에서 비숍 개털고 BBG 전 라인이 좀 메롱하긴 했음 └근데 진지하게 트황 미드 GOAT 가능성 있냐? └병먹금 └ㅋㅋㅋㅋㅋㅋ └다른 의미로는 가능 └헤이헤이헤이 └트루) 다 └한 10년 뒤에 보면 또 모르는 거긴 한데, 일단은 아닥하고 프라우드지 └ㄹㅇㅍㅌ MSC 파이널) 양 팀 미드 지표 —프라우드 KDA 7.7, 승리 세트 딜량 1위. 비숍 KDA 7.5, 승리 세트 딜량 1위. └이건 비숍이 대단한 거냐 프라우드가 대단한 거냐 └그 나이씩이나 먹고 젊은 놈들이랑 비비는 새끼 └vs └그 나이밖에 안 먹고 늙은 놈들이랑 비비는 새끼 └ㅋㅋㅋㅋㅋ └비숍 어림? └ㅇㅇ └트루랑 4살 차이밖에 안남 └그럼 나이 많은거 아님? └성인된지 1년 지난건데 └엄... └근데 비숍은 비숍이고, 트황 진짜 어리다 └고1이긴 함 └누구는 저 나이에 MSC 파이널 갔는데... └이걸 빨간약을 먹네 └ㅋㅋㅋㅋ └힘내라 록붕아 └파이팅 └그래도 MSC 보고 있으니 한잔해 └존1나게 재미있긴 함 └ㄹㅇㅋㅋ 대기실에서 여유로운 트루 —(영상_링크) └ㅋㅋㅋㅋㅋㅋㅋ └프라우드 때도 그렇고 중계캠 감다살 └이걸 보여주네 └5꽉 갔는데도 별로 안 놀라는 거 실화? └?? : 일상인데요 └승패패승패패승패승패승 └이뭔씹 └ㅋㅋㅋㅋㅋㅋㅋ └충분히 단련된 멘탈 └절대 이번 시즌 LOCK 1라운드를 검색하지 마 └?? : 음 익숙한 맛 └ㅋㅋㅋㅋ └솔직히 이상한 팀이 올라온 결승도 아니고 BBG 왔는데 5꽉 예상은 했겠지 └ㄹㅇ └근데 폰으로 뭐 보냐 └커뮤보는거 아님? └설마 └화질 좀만 더 좋았어도 └ㄲㅂ └근데 트황이면 진짜 볼 수도 있음 └방송 보면 록갤밈 다 알더라 └ㅋㅋㅋㅋㅋㅋㅋ 들고 있던 핸드폰 화면을 끄고, 책상에 내려놓는다. 복도 바깥이 분주해졌다. 여럿의 발소리가 울리고, 이내 선수들이 대기실로 들어왔다. 처음 경기를 시작할 때와 달리 굳은 표정은 오늘 매치가 얼마나 치열한지 말해주는 듯했다. “자, 얘들아. 방금 판 피드백할 거 거의 없었어. 빨리는 것만 조심하고, 마지막 밴픽은 내가 조금 더 신경 쓸게. 알겠지?” 객관적으로 피드백할 거리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만, 감독님 기준에서는 그런 것보단 선수들의 케어가 훨씬 중요하다고 느끼신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외딴섬처럼 눈을 감고 의자에 앉은 한 명. 나는 조용히 팝콘을 들고 프라우드에게 다가갔다. “지는 거예요?” “이겨.” 그는 그렇게 말하고선 내가 건넨 팝콘을 집어 들었다. “그러니까 편하게 봐.” 나는 믿었고. [프라우드! 프라우드! 프라우드가아아아!] [탈리아와 오리애나가 지배한 이번 MSC에서! 기어코 팔다리 다 잘린 아제르를 꺼내 들었던 프라우드가!] [이 중요한 싸움에서 BBG의 원딜과 미드를 궁극기로 넘기며 기어코 게임을 뒤집습니다!] 팬들은 환호했으며. [마지막 서폿까지 잡혔고! 가장 빠른 부활은 BBG 탑 스트롱. 37초!] [아니 이거 그러면—!] [끝납니다! 무조건 끝나요!] 신은 그 믿음에 보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