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G와의 경기를 치르고 며칠이 지났다. [ 트루야한번만 님께서 1,000,000 원 후원! ] [제발 미호 코스프레 한 번만 ‘해 줘’] 방송을 켠 직후부터 유사한 내용의 도네이션이 쏟아진다. 다 세보진 못했지만, 얼추 어림잡아도 오백은 훌쩍 넘기는 금액이었다. “제 방송 어디 좌표라도 찍혔어요?” 내 질문에 채팅창의 시청자들은 즉답했다. —ㅇㅇ —ㅇㅇㅇㅇㅇ —당연하지 —활활 잘 탄다~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니까 왜 세리머니를 미호로 해! —크르릉 —못... —엄ㅋㅋㅋㅋ —못 참으려다 말았네 —잘 참았다 —ㄹㅇ —??? : 잡혀간다고! —암튼 빨리 미호 코스프레 줘 —경기 후기 듣고 싶어서 온 슽팬들을 밀어내다니 —인정한다 록갤 너희는 슽갈들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이다 —뭐래 그냥 둘 다임 —ㅅㄱ —ㅋㅋㅋㅋㅋㅋㅋ —이게 맞긴 해 나는 한숨을 내쉬며 방장의 권능을 이용해 선 넘는 채팅과 그냥 마음에 이상하게 안 드는 몇몇 인간들을 밴 해버리고선 말을 이었다. “자, 저번 경기에서 무슨 일이 있었죠?” —ㄷㄷ —트끼야아아아악 —여기 사람이 죽었어요! —ㄷㄷㄷㄷㄷ —착해졌누... —무슨 소리야 —트청자들은 원래 착했는걸? —ㄹㅇㅋㅋ —중국팀이랑 붙었다고 이상한 거 배워왔네 —뭐뭣? —워아이베이징 —이건 좀 논란이 되겠네요 —팀 색깔이 빨간색이긴 하지 —BBG 숙소도 북경이긴 함 —심지어 경기 장소도 빨간 애들이 한번 먹긴 함 —엄ㅋㅋ —다들 키보드에서 손 떼라 —아가리 나는 채팅과 함께 도네이션 기능마저 꺼버릴까 하다, 이내 자체 검열을 하는 기특한 ‘진짜’ 시청자들을 봐서 입을 다시 열었다. “자, 마지막으로 물어볼게요. 그날 제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중국최강팀BBG를미드차이내면서개털어버리신킹갓트황상님의MSC2라운드승자조경기가있었읍니다 —매치승 축하해용 —ㅊㅊㅊㅊㅊㅊ —유~하 —ㅅㅅㅅㅅㅅ —(대충 여기서부터 유튜브 영상 편집하면 된다는 짤) —ㅋㅋㅋㅋㅋㅋㅋ —ㅊㅊㅊㅊㅊ —이겼으니 한잔해 흠. 이제 좀 봐줄 만하다. “자, 4강에 진출하냐 마냐를 따지는 중요한 경기가 있었는데 지금 제가 코스프레를 할 건지가 중요해요?” —??? —당연한거 아님? —ST 알 바 아닌데숭 —니가먼저꼬셨잖아 —크아아악 —그깟 MSC —슽팬들아 오늘은 희생 좀 해라 —씹 진짜 MSC 유럽에서 하니까 이 시간에 댓글 농도 실화냐 —받아들이면 편해~ —ㄹㅇㅋㅋ 역시나 어질어질한 채팅창이다. “일단 코스프레 관련 도네이션은 다 환불해 드릴 테니까 돈 가져가시고요.” 내가 옷 입는데 아무리 거부감이 없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ST 로고가 박혀 있을 때 얘기고. 아예 코스프레를 위한 노출 가득한 옷은 절대 NG다. 특히 미호가 인게임 내에서도 절대 귀염둥이 따위의 컨셉은 아닌 데다, 애초에 모티브가 구미호라 더더욱 그랬다. —ㅅ1ㅂ —배때기 부른 거 봐 —트루) 다 —아ㅋㅋㅋ이미 원화 채굴 낭낭하게 했다고ㅋㅋ —ㄹㅇㅋㅋ —꼬우면...아시죠? —?? : 더 많은 돈 —ㅋㅋㅋㅋㅋㅋ “...다들 그렇게 보고 싶어요?” 슬쩍 운을 띄우자, 채팅창은 온갖 인간들의 애원으로 도배가 됐다. —ㅇㅇㅇㅇㅇ —제발 —우승 공약으로라도 걸어다오... 사실 이 상황에 아예 무시해버리면 당분간 고달픈 관계로, 나 또한 어느 정도 양보는 했다. “이번 시즌에 ST가 록드컵 우승하면 입어볼게요.” 우승하면야 뭔들 못 해줄까 싶다. —MSC는? —이것도 국제전이야! “개막전 포함 딱 두 경기 이기자마자 4강 안착한 것만 봐도 록드컵이랑 같은 취급 해주긴 좀.” 솔직히 말해서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MSC가 록드컵과 동급의 대회가 될 수는 없다. 시즌의 마무리인 록드컵을 위해 달려가는 팀들 입장에서 볼 때 있으면 나쁠 건 전혀 없고, 골든 로드—한 시즌 중 게임사 주관 모든 대회 우승—타이틀을 따기 위해선 필수긴 한 대회는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 시즌에 걸쳐 저거 하나만 바라보냐 물으면 아닌 관계로 어쩔 수 없는 차이였다. —뭣? —게임사 오열 —하지만 팩트인걸 —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애초에 공약으로 건 록드컵 우승은 고사하고 결승 가는 건 가능하냐 —요즘 보면 ST 기복 심하긴 하지 다른 건 다 두루뭉술했지만, 최소한 저 질문에 대한 대답만큼은 주저하지 않았다. “전 믿어요.” 나는 그 누구보다도 당당했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란 건 그 누구보다도 잘 알았으니까. —프라우드 돌아온 ST를 믿는 트황 —ㄷㄷㄷㄷㄷ —근데 그거 안 믿으면 세상에 믿을 거 없다 —ㄹㅇㅋㅋ —그걸 어케 안 믿어 아무튼 그렇게 시청자들의 시선을 코스프레에서 성공적으로 MSC 얘기로 끌고 왔다. 역시 어지간한 이야기는 더 큰 갈드컵을 열어버림으로써 정리할 수 있다. 아무튼. 그렇게 리플레이 돌려보면서 리뷰 방송 좀 하다 보니, 건전한 질문들이 튀어나왔다. —근데 4강부터는 프라우드가 뛴다는 거 진짜예요? “네. 밀키웨이랑 하는 4강은 출전 안 하고 구경할 예정이에요.” 당장 내가 다음 경기 준비 안 하고 편하게 호텔방에서 방송 켠 것만 봐도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참고로 밀키웨이는 1시드로 와서 약간 부침을 겪긴 했으나, 경기를 치르며 패자조에서 손쉽게 올라와 4강에 안착했다. —대기실에서 방송 켜줌? —젭알 —되겠냐 —ㅋㅋㅋㅋㅋ —아무리 관대한 게임사랑 팀도 그짓은 못하지 —ㄹㅇㅋㅋ “방송은 켤 거예요.” —??? —ㅇㄱㅈㅉㅇㅇ? —이거진짜에용? —트루)...맞나? —어케허락받았는데 —이게 트황 방송의 영향력...? —트루야 우리가 좀 더 힘낼게 —가즈아 “정확히는 대기실에서는 못 켜고, 옆집 가려고요.” 오랜만에 익숙한 얼굴 한번 보러 가야지. * * * MSC 4강. 그 첫 번째 경기를 장식하게 된 팀은 LOCK를 양분하는 ST와 밀키웨이다. “자, 여러분! 제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아세요?” 그 팀들 중 밀키웨이의 파트너 스트리머로 선정되어 영국에 도착한 아그니는, 곧 경기가 열릴 홋스퍼 스타디움의 스트리머 전용룸에서 방송 중이었다. —캬 —경기장 ㅈㄴ크네 —축구 경기장 개조한 거니까 당연하지 —사실 개조라기엔 그냥 경기장 자체 기능이긴 해 —내일모레 토트넘 경기도 많관부 —이걸 기습영업을 —안봐요 안봐 —ㅋㅋㅋㅋㅋㅋㅋㅋ “어허, 다른 종목 얘기는 다른 데 가서 하세요. 오늘만큼은 여긴 밀키웨이의 홈구장입니다.” —? —ST한테 밀려서 우승 못하는 거 보면 여기 경기장 원주인이랑 잘 어울리긴 함 —엄ㅋㅋ —너어는 진짜... —심지어 유니폼 색도 비슷하다는거임~ —ㅋㅋㅋㅋㅋㅋ —이건 닭집팬이 울어야되냐 아님 밀키웨이가 울어야되냐 —갈드컵 on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이 좋은 날에 이상한 걸로 싸우지 마요!” —노처녀 히스테리 봐라 —이 누나 또 이러네 —사실... —어허 거기까지 —ㅋㅋㅋㅋㅋㅋ —파트너 스트리머 어떻게 된 거냐는 나쁜말은 ㄴㄴ —잘 어울려요 예쁜 사랑 하세요 —가실 때 되긴 했어... “좀! 다들 조용! 게스트 소개해야 하는데 이러면 분위기 이상해지잖아요!” 아그니는 극적으로 반응하며 맛있게 시청자들의 WWE를 접수하면서도 정보 전달을 놓치지 않았다. —?? —뭔 게스트 —여기 개인룸이잖아 —누가 옴 “후후. 제가 누굽니까.” 그녀는 항상 시청자들에게 맞고 살 때와는 달리,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말을 이었다. —아그니요 —늙은 원딜 —저기 대기실에 계신 밀키웨이 미드님 여친이요 —ㅋㅋㅋㅋㅋㅋ —이걸 노빠꾸로 —갈! —넌 차단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 “흠. 흠! 그런 거 말고요!” —뭐가 더 있는데 —ㄹㅇ “트루 선수에게 평딜 짤짤이를 알려준 첫 스승! 그게 바로 저라고요!” —<---그 직후 유기당함 —ㅋㅋㅋㅋㅋㅋㅋ —인터뷰 언급도 못 찾아봄 —ㄹㅇㅋㅋ —솔직히 밀키웨이랑 연관 생겨서 손절했다는 게 정배긴 해 —그 슽갈중의 슽갈련... —ㅋㅋㅋㅋㅋㅋ —트루가 진성 슽갈이긴 함 —?? : 밀키웨이 묻었네 —바로 개같이 유기 “아무튼!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게스트는 바로!” 그녀가 손짓하는 타이밍에 맞춰, 나는 시청자들이 보는 카메라 화면 속으로 들어섰다. “트루입니다!” —????? —뭐? —뭐여 —이왜진 —오늘 갈드컵 종결의 날인가요? —록갤 폭발의 날 아님? —진짜모름 —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이건 뭔 조합이야 —슽갈과 우유갈ㄷㄷㄷ —어허 —스승과 제자 —스승(이번 시즌 그마) —제자(마스터 리그 무패우승, LOCK 데뷔) —청출어람이라는 좋은 말 쓰세요 —ㅋㅋㅋㅋㅋㅋㅋ —어림도 없지 나는 실시간으로 터져나가는 채팅창을 보며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 “안녕하세요. ST의 식스맨이자 미드라이너. 트루입니다.” 채팅창뿐만이 아니라 방송이 터지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