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 리그 결승전. 금요일 저녁에 펼쳐지는 한 시즌의 마무리는, 평소의 마스터 리그 아레나가 아니라 LOCK 리그가 진행되는 대형 경기장에서 펼쳐진다. “트루! 트루! 트루!” “ST 파이팅!” “밀키웨이 파이팅!” “가자아아아!” 경기장의 관중석 지하에 있는 선수 대기실은 마스터 리그 경기장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울림이 들려왔다. “...저 소리가 반밖에 안 온 거라고?” 플루크의 아연실색한 표정에서 관중의 열기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래도 아마 반보단 많이 왔을걸.” 좌석의 삼분의 이 정도 찬 걸로 알고 있다. 뭐, 그렇다고 만석이 아닌 것에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평소의 마스터 리그의 관중석—1000석—이 정규 시즌에 가끔 가득 차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걸 생각하면 지금 관중들의 수는 입이 떡 벌어질 수준이 맞았다. 실제로 이 인간들 반응만 봐도 정신 못 차리는 게 눈에 선했다. “그래도 분위기는 홈 경기니까 괜찮으려나.” “은설이 오고 언제 아닌 적은 있었냐.” “그렇긴 해.” “알면 감사하십시오, 인간들.” “얼씨구.” 나는 킥킥 웃으면서 언제나 그랬듯 의자를 뒤로 쭉 빼고 그대로 드러누웠다. “근데 진짜 만석이면 더 좋았을 텐데, 좀 아쉽긴 하네요.” 결승전 관련해서 훈련을 시켜야 할 인간들이 나 빼고 전부라 더 그렇다. 그래도 내가 이번 생에 처음 맞이한 팀원들인데, 나중에 어디 가서 누구 덕에 우승 한 번 하고 그 뒤론 무관이라는 소리 들으면 인간적으로 슬플 것 같긴 했다. 그러니 많은 관중들 앞에서 승리의 분위기와, 이기는 법을 익히게 해주고 싶다. 겸사겸사 나한테 당당하게 나오라고 말한 상대도 같이 처리하고. 친구의 오빠든 뭐든, 일단 프로씬에서 싸움을 걸면 받아주는게 인지상정이다. 언제 록을 시작했고, 얼마나 어린가 따위는 내 알 바가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더 어리잖아.’ 후배를 핍박하려는 선배는 역시 잘근잘근 밟아놔야 협곡의 정의가 바로 선다. 한편,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 인간들은 숙소에서 여기까지 올 때와 변한 게 없었다. 여전히 정신 나가서 긴장이 몸에서 흘러넘치고 있다는 소리다. “뭐래. 우린 지금도 정신 나갈 거 같아.” “앞플 박고 이기고 싶다...원딜 캐리...” “숟가락이면 버스나 타라. 내가 딜서폿이 될게.” 헌터와 버텀 듀오는 역시나 ‘결승 무서워’ 증상을 호소 중이었다. 게임 던지는 지름길이 달리 있는 게 아니라, 저 정신머리로 플레이하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씁.’ 밀키웨이는 그래도 명색이 전년도 마스터 리그 우승팀이다. 그리고 나름 아마추어 리그든, 아니면 마스터 리그든 우승한 선수들이 포진해 있는 만큼 우리보다는 결승전에 익숙하겠지. 아무래도 초반에는 통나무를 좀 들 필요가 있어 보였다. 특히나 팀에서 나 말고도 언제나 상수 취급을 받는 플루크가 정신이 나간 상태라 더 그랬다. “살아는 있지?” “아니...” “그러게 저녁에 불닭볶음면 먹지 말라니까.” “안 먹었어!” “안 먹고 이 상태면 더 심각한데?” “......” 본인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잘 알고 있긴 한지, 플루크는 다크서클 내린 눈을 쓸어내리고선 머리를 헝클였다. “지금이라도 좀 잘래?” “어떻게 자냐. 이렇게 사람들 응원 소리가 큰데.” “이거 빌려줘?” 내가 누운 상태에서 은근슬쩍 특정 부위를 손으로 흔들자, 말뜻을 알아들은 녀석은 그대로 대기실 구석으로 도망쳤다. “은설이는 진짜 긴장감이란 게 없는 걸까?” “몰라. 일단 그래도 웃기잖아. 한잔해.” 숟가락—도구 듀오는 내 행동에 이미 익숙해져서 그런지 늘 있는 플루크 놀리기 WWE를 재미있게 구경했다. 처음에 했을 땐 이것보다 효과가 좋았는데, 몇 번 더 장난치고 나서부터는 놀리는 맛이 떨어진다. 아무튼. 구석으로 처박힌 녀석에게 다시금 다가갔다. 나는 녀석을 전생과 같은 별명으로 불리게 할 생각은 없었다. 황족 미드 라인을 포기했으니, 보상은 확실해야 한다. “자. 네가 오늘 할 일은 딱 하나야.” 이것만 기억하면 경기에서 질 일 따위는 없다. “그냥 박아.” “...뭐?” “박으라고.” 그거 하나면 충분했다. * * * 경기장의 입구에 양 팀 선수들이 나란히 섰다. [자, 기다리고 기다리시던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시즌의 마무리, 그리고 한 시즌의 왕을 가리는 오늘 매치!] [LOCK 산하 마스터 리그, 대망의 결승전! ST 대 밀키웨이, 밀키웨이 대 ST의 경기를 위해 찾아주신 많은 분들의 환호가 들리고 있습니다!] 옆을 슬쩍 보니 밀키웨이 선수들도 긴장을 아예 안 한 건 아닌 듯싶었다. 확실히 아무리 결승전에 많이 올라갔어도, 이렇게 많은 관중은 처음이겠지. [자, 이제 선수들 입장하는군요!] [탑에는 ST의 플루크, 그리고 밀키웨이의 렉돌!] [두 선수 모두 이번 시즌 내내 솔리드한 모습과 더불어 캐리도 자주 하면서 탑의 정석을 보여줬죠!] 탑을 시작으로 선수들이 입장한다. [헌터로는 ST의 옥스, 그리고 밀키웨이의 인켈!] [무력의 옥스, 그리고 설계의 인켈!] [서로 담당하는 분야가 다르지만 각자 마스터 리그 한정으로는 그 분야 최고점에 오른 선수들이죠!] 헌터까지 자리를 잡고 나니, 이번에는 미드 라이너 차례가 왔다. [미드에는 ST의 트루! 그리고 밀키웨이의 엔비!] [양 팀 주장임과 동시에, 이번 시즌을 이끌어간 황족 미드 간의 재대결! 과연 오늘 승자는 누가 될까요!] 당돌하게 나를 도발했던 엔비를 흘긋 보고선, 한발 빠르게 경기장으로 들어선다. “와아아아아!” “트루! 트루!” “오늘 이기고 우승 가자아아아!” 압도적인 인원수가 내 이름을 연호한다. 나는 무대를 올라 서로 갈라지기 전, 엔비에게 웃으며 말했다. “나오라고 해서 나왔으니까, 즐겁게 해 봐요.” 물론, 나만. * * * [자, 이제 선수들 모두 밴픽룸에 들어왔습니다!] [그럼 오늘 결승전! 첫 세트 밴픽부터 만나보시죠!] 결승전에서 어느 사이드로 시작할지는 감독님들끼리 코인 토스로 정한다. 그리고 우리의 영원한 황제께서는 적장의 목을 베지는 않았지만 이름에 ‘토스’가 들어가서 그런지 아제르 궁으로 토스하듯 앞뒷면을 기가 막히게 맞추시고는 블루 사이드를 가져오셨다. “우리 준비한 대로 하자.” 우리는 우선 원딜 중 이동기 있는 챔피언들 중 현 패치에서 쓸만한 녀석들 두 개와, OP 픽 하나를 밴했다. [ST가 먼저 말을 걸어옵니다.] [우리 이거 사기 챔피언들 하나씩 나눠 먹자! 그런데 미드 챔피언이랑 탑 챔피언 남았는데, 우리한테 어느 거 줄 거야?] [사실 ST 입장에서는 어느 쪽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게 지금 단순히 나눠 가지자가 될지, 아니면 밀키웨이의 밴 카드 두 개를 써서 밀키웨이 측이 저것들을 밴할지가 궁금해지는 순간입니다!] 밀키웨이는 고민의 시간이 길었지만, 결국 OP픽을 밴하지 않고 다른 공격적인 헌터 챔피언을 밴했다. 상대 헌터가 지능적인 플레이에 강점이 있지, 대놓고 싸우는 것에는 그다지 유리하지 않다는 걸 잘 아는 모습이었다. “이러면 바로 잭슨 가져와.” 현 패치에서의 잭슨은 탑에서는 라인전만 좀 힘들지 사실상 무상성 챔피언이고, 카운터 소리 듣는 그라까스도 사이드에서 신나게 봉 돌리면서 팰 수 있다. [ST의 첫 번째 픽은 잭슨!] [보통 블루 사이드의 픽이 전체 세트의 밴픽을 관통하는데, 미드 챔피언이 아닌 탑 챔피언 잭슨을 플루크에게 쥐어줬다는 부분이 여러모로 흥미롭습니다.] 그 뒤의 밴픽은 무난했다. 상대는 미드에서 나를 억제하기 위해 OP픽인 아킬라와 더불어 세주를 가져갔고, 나는 오리애나를 픽했다. [이거, 라인전 강하게 가져가겠다는 소리죠?] [아무리 아킬라가 세도, 스킬 적중 여부에 따라 갈리는 상대이기도 하고, 특히 오리애나 하면 라인전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세주같은 경우는 아무래도 ST의 픽을 뺏겠다는 의도도 있어 보이네요!] 그 뒤는 무난한 밴픽이 흘러갔다. 상대나 우리나, 밴픽 준비는 나름대로 한 모양인지, 누구 하나가 무조건 유리하지는 않았다. 물론 세 라인 중 두 라인이 우리 쪽의 우세라 밴픽에서의 기본적인 손해야 밀키웨이 쪽이 좀 보긴 했지만. [여기서 밀키웨이가 이즈를 픽합니다!] [잭슨과 다른 챔피언들에게서 도망치면서 딜을 넣으려면 이게 최선이겠죠!] 밀키웨이는 심지어 탑마저 아예 버티겠다는 마인드로 갈레온을 픽했고, 서폿은 이니시 챔피언의 대표 주자인 노틸런스를 가져왔다. [그에 대응하는 ST의 조합도 완성됐습니다!] [탑에 잭슨, 헌터에 비에곤, 미드에 오리애나, 바텀은 카이스와 마오이카로 맛을 내는 ST!] 밴픽이 끝났다. “하던 대로만 하자.” “무난하게 하면 이기는 조합이니까.” “가자.” 나는 귓가에 들리는 동료들의 말에 덧붙였다. “무슨 소리에요.” “......?” “첫 세트는 원래 박살내고 시작하는 거예요. 알겠죠?” 결승전은 기세다. 기세에서 밀리면 아무것도 안 된다. 관중석에 우리를 응원하는 사람이 몇인데, 이미 다 잡은 기세를 내주는 일 따위는 절대 없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