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새벽 3시 반. 불금을 즐긴 인간들마저도 침대 안으로 고이 들어가 잠을 청할 시간에, 나와 200명의 결사대는 계속해서 솔로 랭크를 돌리고 있었다. [ 중학생입니다 ] [ 현재 9승 1패 ] 현재 승률은 90%. 중간에 시청자들의 성화로 서포터 챔피언으로 미드를 갔다가, 나를 제외한 네 명이 모두 트롤링을 해서 졌다. 라인전 솔킬은 내도, 챔피언 스킬셋이 근본적으로 캐리가 안되니 져야지 뭐. “이젠 슬슬 큐도 잘 안 잡히네요.” —얘는 왜 안 자냐 —미션 상금 먹고 뒤지겠단 마인드 —백단위는 킹쩔수 없지 —중딩한테 백만원이면 개크긴 해 —30대인데 나한테도 크다... —ㄹㅇㅋㅋ —근데 1승만 남은 것도 대단하누 —이기면 백마넌ㄷㄷ —하는 거 보면 받을만 하다 ㄹㅇ —이겨야 받지라는 나쁜말은 ㄴㄴ —저격 아직도 있냐ㅋㅋㅋ 뭐, 그래도 이번 판을 이기면 시청자들과의 대결에서 내가 완벽한 승리를 거두는 거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려 마지막 판의 큐가 잡힌 순간. “안 자니?” 아직까지 안 주무시고 계셨던 엄마가 불쑥 내 방으로 들어왔다. —엄크ㅋㅋㅋㅋㅋㅋ —아 엄마 이거 한판만 —이기면 백만원이야! —대충 불 끄고 자라는 어머님의 호통 —이게 이렇게 되네ㅋㅋㅋ —중딩 확실한거 같으면 개추 —이게 맞지 —어머니 헤으응 —미1친놈들아 —하지만 목소리 좋았죠? —방장 목소리 누구 유전인지 알거같으면 개추 —ㄹㅇㅋㅋ 채팅창의 속도가 새벽 들어서고 좀 잦아들었다 싶었는데, 다시 불이 붙었다. 하지만 걱정과는 다르게, 우리 장 여사의 입에서는 의외의 말이 흘러나왔다. “딸, 티어 어디까지 올렸어?” “...어?” “저번에 실버였다면서. 새벽까지 열심히 하는 거 보니까 골드는 갔지?” 아빠라면 몰라도, 엄마 입에서 티어 얘기가 술술 나오는 게 새벽의 정신상태와 더해져 인지부조화가 왔지만, 최소한 게임을 막을 생각은 없어 보이셨다. 불속성 효녀가 징징 우겨대는 것과 별개로, 딸이 하고싶다고 하는 일이니만큼 혼자 노력하신 모양이다. “어...이번 판 이기면 다이아몬드 티어야.” “벌써? 막 인터넷 검색하니까 1년동안 실버니 골드니 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내가 그만큼 잘하니까 그래.” —부모님한테 게임자랑 성공 —ㅋㅋㅋㅋㅋ —그 와중에 스플뎀 맞은 청자면 개추 —3년째 실버입니다... —2년째 브론즈다 질문 못받는다 —브론즈한테 누가 질문을 해요 —ㅅㅂ —방장한테 도네쓰고 개념설명 듣는게 훨씬 유익할 듯 —당연한 말을 왜하누ㅋㅋ “근데 엄마, 지금 이거 방송중인데...” 나는 일단 마지막 판인 만큼. 상대 팀 챔피언 픽을 보고 브루저 챔피언을 골랐다. 상대는 전부 딜에 치중된 물몸밖에 없었다. 아무튼, 그 직후 캠을 잠시 키보드만 보이게 쭉 내렸다. 하지만 엄마는 괜찮다면서 다시 캠 구도를 원상 복귀시켰다. “걱정 마. 엄마가 록은 몰라도 방송은 익숙하지.” “....응?” “캠 장비가 왜 있었겠니?” “......” 어쩐지 지나치게 성능이 좋은 방송 장비들이 세팅되어 있더라니. 록 말고 그냥 방송한다고 설쳤을 무렵에 부모님이 어디서 사 오신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개인 물건을 물려주신 모양이다. “채팅 좀 보여줄래?” 엄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채팅창은 자체 검열을 완료했다 —착한말 —대충 착한말 —우리 애 게임 진짜 잘합니다 —너 재능있어 —착한말하는중 —저녁부터 방송하면서 딱 한 판 진 대단한 따님입니다 —프로 데뷔 응원합니다~ —이 친구 진짜 잘함 이럴 때는 또 착하게 구는 모습을 보니 퍽 귀여운 시청자들이었다. “채팅창이 깨끗하네?” “다 착한 사람들이야.” “그래도 말조심하고. 알지?” “네. 네.” “엄마는 잘 테니까 다이아 승급하고 내일 밥 먹을 때 알려줘.” 그렇게 흔하면서도 흔하지 않은 걱정이 오간 뒤, 내 방문이 다시 굳게 닫혔다. “잘 참으셨으니까 이제 참은 거 10초 동안 봐 드릴게요.” —ㄹㅇ? —극 —락 —극 —락 —극 —으흐흐흐 —[블라인드 처리된 댓글입니다] —이걸 바로 싸지르네 —ㅋㅋㅋㅋㅋㅋ —네가봐준다고했다?네가봐준다고했다?네가봐준다고했다? —둘 다 일루와잇! —저런 아내와 딸을 둔 아버지는 어떤 인물일까? —부러우면 개추 —씨1발 존나 부럽습니다 —난 부모님이 새벽 세 시에 방송하면서 록하는데 그냥 넘어가는 집안을 본 적이 없다... —진짜 어머님 호탕 그잡채누 채팅창을 쭉 보다 선넘는 글들은 바로 사흘 정지를 때렸다. —끼에에엑 —사람이 죽었어요 —니가 괜찮다며 씹1련아! “저런. 전 몰라도 어머니께선 아니라고 하시네요.” 주무시러 가셨는데 어떻게 아시냐고? 원래 부모님은 다 아는 법이 있다. 아무튼, 그렇게 조금 전보다 더 깨끗해진 댓글창을 옆에 두고, 방송 종료 전 마지막 게임을 시작했다. * * * 화면에 열 명의 초상화가 뜨자마자 확인한 건 닉네임이었다. “또 익숙한 얼굴들이네요.” —ㄹㅇㅋㅋ —저 세 명 이름 다 외우겠다 —진짜 개악질새끼들ㅋㅋㅋㅋ —그래도 이번에는 서폿 트롤 하나네 본계 마스터인 인간들이 중학생 괴롭히겠다고 부계정 가져와서 새벽 3시까지 저격을 하는 거 보면 대체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가늠이 안 되지만, 굳이 더 큰 관심을 줄 필요는 없다. “...이런 씹.” 하지만 서폿템도 안 사고 미드 와서 cs 먹는 건 선을 좀 넘었다. “이 양심 없는 새끼들아!” 새 삶도 받았겠다, 혹여나 부정이라도 탈까 봐 좀 욕도 안 하고 차분하게 살아보려 했더니 이 인간들이 내 인성을 다시 예전으로 돌려놓으려고 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본계로 튀면 그만이야~ —막판이라고 트롤 농도 존나게 높네 —그래도 탑 혜지는 안했잖아 한잔해 —무서운팩트) 방장은 그판도 캐리해서 멱살잡고 승리시켰다 —근데 저거 방법 있음? 다른 건 몰라도 경험치 차이나는 건 좀 큰데 어차피 말로 해서 들을 인간도 아니라, 나는 화난 척을 하며 그대로 귀환 버튼을 눌렀다. 물론 딱 경험치는 먹는 아슬아슬한 범위 내에서. 그리고 미니언이 다 타기 직전. 싱글벙글 라인을 밀던 상대 챔피언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서포터가 어시스트를 먹을 시간도 없이, 순식간에 솔킬을 냈다. —????? —저게 킬각이야? —이새끼 암살자 브루저들 진짜 존나 잘다루네 —발화도 없는데 이게 킬이누 —미드 상성 안좋은데 초반부터 반 넘게 나가는 건 좀 선 넘긴 했어 둘 다 3레벨이 되기 직전. 아직 체력통 자체가 말랑말랑할 때 순식간에 킬을 땄다. “둘이 듀오니까, 제가 뒤로 빠져 있으면 앞으로 나갈 게 뻔하잖아요?" 그리고 내가 집텔까지 타니 둘이 신나서 음성 채팅이든 뭐든 하면서 반격 생각은 하지도 못했겠지. 그 결과가 바로 저거다. 나는 바로 오는 다음 라인을 우리 서폿의 스킬과 공격력을 생각해 가며 깔끔하게 막타만 치며 미니언 골드를 쓸었고, 그대로 텔을 타 바텀으로 달렸다. "서폿 씹새님은 미드에서 노세요." 마침 내가 고른 챔피언도 쿨타임 없이 벽을 넘어다니는 암살자다. 그러니 조금 이르지만 챔피언의 존재 의의에 맞게 플레이해 줘야지. [ True -> 앞점멸뒷플 ] [ 듀랑 -> 혜지는집에갈래 ] 다행히 원거리 딜러는 평범한 사람인지, 서포터 없이 힘든 라인전을 하다 내가 로밍 오니 신나서 내 이니시에 호응해 주었고, 동시에 우리 팀 서폿이 미국 가서 아무 생각 없이 라인을 밀어대던 상대 바텀은 그대로 킬을 헌납했다. "이번에는 탑 갑니다." 방플이든 뭐든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내가 지금 해야할 건 킬을 내는 거다. 상대가 중후반까지 갈 생각도 들지 않도록. 압도적으로. * * * [상대팀이 찬성 3표, 반대 2표로 항복하였습니다.] 채팅창에 이 문장이 뜬 순간, 나는 아껴두었던 플래시를 그대로 눌렀다. 그리고 그 직후 상대의 본진으로 카메라 구도가 빠르게 이동하더니, 이내 상대팀 본진이 터졌다. [ 승리 ] 그리고 그렇게 뜬 승리 밑의 확인 버튼을 누르자 튀어나오는 플래티넘 휘장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철컹! 영롱한 다이아 휘장이다. "씨...이....발...!" 해냈다. 챔피언 유통기한이 오기 전, 아슬아슬하게 상대팀 트롤러 2명을 제외한 이들의 기를 완전히 꺾어 항복을 받아내고야 말았다. 조금이라도 더 끌었으면 밸류가 높은 상대팀이 슬슬 기를 펴는 시점이었지만, 어찌 됐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기어코 트롤러들을 이겨냈다. "나 너무 많은 일이 있었어..." 그리고 이쯤 되면, 티어와는 상관없이 성취감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ㅊㅊㅊㅊㅊㅊ —ㅊㅊㅊ —해 냈 다! —캬 —미친년...미친년... —새벽 세시 반까지 이걸 하네 —실버에서 다이아까지 꼴랑 일주일ㄷㄷㄷ —자괴감드는 록붕이들이면 개추 —저게...재능? 다만 나는 더 기뻐하기 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 True#Silver : 야 이 씨발새끼들아 ] —????? —ㅋㅋㅋㅋㅋㅋㅋ —이거제 —컄ㅋㅋㅋㅋㅋ —그저 노빠꾸 그 자체 너희들이 먼저 시작한 거다. 난 정당방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