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망의 봄 대회 결승전. 문혁고와 가현고의 경기가 열리는 종묘 구장. ​ 이번 경기는 이전의 경기들과는 확연히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경기장에 오는 관중들의 얼굴이 한결 편안하다는 것. ​ “휴! 이미 세종기 진출 확정하니까 마음 편하네.” “그러니까, 결승전은 그냥 보너스 경기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잖아!” ​ 봄 대회 결승은 세종기 진출을 확정한 팀들끼리의 대결. 두 달 뒤 열릴 전국대회에서 꿀조에 가느냐, 헬조에 가느냐가 결정되는 경기다. ​ 대권을 노린다면 엄청나게 중요한 경기. 가현고 관중들이 오늘 경기를 ‘이겨야 한다!’라며 구장에 온 것과 대비되게, 문혁고 관중들은 그닥 승리에 집착하지 않았다. ​ “져도 되는데? 세종기 간 것만으로 기적인데 뭐.” “대충하는 것만 아니면 끝까지 응원해줄 수 있어!” ​ 즐기는 자 모드에 들어간 학생들. 기왕이면 이겼으면 좋겠다~ 하는 정도지 승리에 그렇게 집착하진 않았다. ​ 밥 먹고 고등 야구 보는 게 일상인 고야갤 역시, 오늘 문혁고의 승리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다. ​ -아니, 문혁고 지금 선발 투수진 전멸 아님? ㄴ ㅇㅇ 갤주도 핫산도 다 공 못 던진다캄 ㄴ그래도 갤주 한 20구까지는 던질 수 있는 거 아님? ㄴ 야이 씨발 ㅋㅋㅋ 이미 갤주 팔 갈아서 세종기 확정해놓고 또 갈겠다고? ㄴ 윗윗댓 저 새끼는 ㄹㅇ 악마가 따로 없누 ​ -듣기로는 가현고, 현역 너클볼러 불러서 특훈 했다던데 -대놓고 박찬준 저격인데 ㄷㄷㄷㄷㄷ ㄴ걔 혼자 7이닝 무조건 이상 먹어야 하니까 너클만 파겠다 이거지 ㅋㅋ ㄴ독하다 독해; 빈사 상태인 팀 상대로 개빡겜 하네 ​ -지금 가현고 전력은 어느 정도임? 작년 세종기는 못 갔어도 얘네도 명문이잖아 ㄴ대관령고 보다는 약하고, 금강고랑 비슷한 정도?? ㄴ그 정도면 꽤 쎈 편이네... 쉽지 않겠는데 ㄴ가현고 얘네들 문혁고가 A조 안에서도 싸그리 탱킹하면서 올라온 덕분에 전력도 꽤 보전했잖슴 ㅇㅇ; ㄴ나 오늘 일찍 야구장 왔는데, 문혁고 선수들 피로 꽤 쌓였는지 피곤해 보이더라. ​ - 문혁고 <- 얘네들 북산엔딩 날 것 같으면 개추 ㅋㅋㅋ ㄴ ??: 한청고와의 사투에 모든 힘을 쏟아낸 문혁고는 결승에서 거짓말 같은 참패를… ㄴ 일단 나부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개추가 와바박~~~~~ ㄴ져도 세종기 가잖아 한 잔해~ ​ “쓰읍, 성묵아. 이길 확률 몇 프로라고 보냐?” ​ 턱을 매만지며 묻는 명신우 감독. 그 옆에서 머리를 긁던 성묵은 잠시 고민하더니 답했다. ​ “찬준 형님이 얼마나 잘 던지냐 따라 다르겠죠. 7이닝 5실점 안으로 끊어주면 할 만하다 봅니다.” ​ “일단 실점보다 중요한 게 이닝인데, 가현고도 타선이 또 만만한 편은 아니란 말이지…. 동혁이가 맡아야 할 이닝 늘어나는 순간 게임 터진다.” ​ “그쵸, 듣기론 너클볼러 데려다가 특훈도 했다는데. 찬준 형님의 벼락치기 너클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 ​ “이런 잔혹한 녀석들, 우리 상대로 거기까지 할 필요가 어딨냐 말이다….” ​ “후, 그러게 말입니다.” ​ 툴툴대는 문혁고의 감독과 주장. 자신들에게 너무 빡겜하는 거 같다고 불평하는 그들이지만, 왕자 한청고를 박살 내고 올라온 학교에게 방심할 만큼 가현고가 멍청한 학교는 아니었다. ​ 오히려 땜빵 선발인 박찬준조차도, 혹시 모를 가능성을 대비해 철저히 대비한 그들. 문혁고 입장에선 상당히 고단한 경기가 펼쳐질 예정이다. ​ "후우…." ​ 결승전 선발 투수라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은 박찬준. 처음 선발 등판하는 경기가 이런 큰 경기라는 건 꽤나 긴장되는 일이다. ​ 그걸 아는 동료들은 그의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 "형님, 부담 없이 팍팍 던지십쇼! 팍팍…!!" ​ "네, 이 경기는 져도 괜찮으니까요! 아무도 형님 탓 안 합니다!" ​ 그러한 동료들의 말에 픽 웃는 박찬준. 그는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관중석을 바라봤다. ​ “아냐, 열심히 던져야지. 오늘 경기는 소중한 사람이 와서 지고 싶지 않거든.” ​ “…엣?” ​ "소중한 사람?" ​ 순간 가족을 불렀나 싶었지만,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 “응, 여자친구가 왔어.” ​ "……!?!" ​ 문혁고 최고의 노안. 벌써부터 M자가 선명한 머리카락의 그가 여자친구가 있었다니. ​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바로 덕아웃을 뛰쳐나오더니, 관중석을 빠르게 스캔하기 시작했다. ​ "어딨습니까, 어디에!?" ​ "찬준햄의 여자친구라니, 궁금해서 버틸 수가 없습니다악…!!" ​ 모두가 궁금해 하자 조심히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는 박찬준. ​ 거기에는 한 소녀가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대략 140cm 중반 정도 신장에 어려 보이는 외모의 소녀가. ​ “저, 저분이요? 진심으로…?” “찬준 형님, 아무리 그래도 중학생은 좀…!” ​ 야구 경기 중 선발 투수가 경기에 체포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까 벌벌 떠는 문혁고 멤버들. 박찬준은 진땀을 흘리며 손사래 쳤다. ​ “애, 애들아. 꽤 어려 보이긴 하지만 나보다 연상이야…!!” ​ “………!?” ​ 깜짝 놀라는 동료들. 1년 꿇어 20살인 박찬준 보다 연상이라는 건 법적으로 성인이라는 뜻. 그렇게 된다면 딱히 문제 될 건 없다. ​ ‘찬준 형님은 합법 취향이시구나…!’ ​ 큰 형님의 취향을 알게 된 동료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지기 싫다는 큰형님의 말에 따라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은 문혁고 멤버들. ​ 관중석은 오늘도 만석. 꽉꽉 들어찬 종묘 구장에서 봄 대회 결승전은 이제 막 시작됐다. ​ [종묘 구장에서 인사드립니다! 오늘은 문혁고 대 가현고! 서울 시드 A조 봄 대회 결승전을 여러분과 함께 감상하겠습니다…!!] [1회 초는 문혁고의 공격부터 시작됩니다! 문혁고의 라인업부터 같이 살펴보시겠습니다…!] ​ 1.최아담 SS 2.도도진 2B 3.타카히나 류지 3B 4.금성묵 RF 5.석운강 C 6.지수용 CF 7.이동혁 DH 8.서경수 LF 9.이태경 1B 선발투수: 박찬준 ​ [금성묵 선수가 다시 4번 타순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선발 우익수로 출장! 평소 우익수로 출장하던 이동혁 선수는 지명타자로 출장합니다!?] [예, 경기 전 명신우 감독의 말을 들어보면, 이동혁 선수도 꽤 체력에 부침이 있어서 오늘은 수비를 쉬게 해줬다고 합니다.] ​ 문혁고의 첫 타자가 들어서며, 경기는 정식으로 시작됐다. ​ “플레이 볼…!!” ​ “후우….” ​ 상대 투수는 가현고의 2선발 남상민. 저쪽도 세종기 결정전을 뚫고 온 만큼 1선발은 그 경기에 쓰고 온 상황이다. ​ 그래도 투수진에 대한 평가가 좋은 가현고인 만큼, 그 역시도 나름 명문고에 어울리는 2선발 감이라는 평가를 듣고 있었다. ​ ‘문혁고 이 녀석들, 류한울한테 8회까지 숨도 못 쉬고 당했다고 했지.’ ​ 그렇다면 자신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 근자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 하지만 한가지 그가 간과한 점이 있다면, 그는 류한울이 아니라는 것이다. ​ 따악! [아, 최아담 선수 쳤습니다! 좌익수 앞에 뚝 떨어지는 안타…!] [도도진의 타구가 1루와 2루 사이를 가릅니다! 1루 주자 최아담은 2루 돌아 3루로…! 주자는 무사 1,3루!] ​ 시작부터 매섭게 방망이를 돌리는 테이블 세터진. 문혁고 타선의 진격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 따악! ​ [아앗, 타카히나 류지! 쳤습니다앗…!! 간다, 간다앗!!] [넘어갔습니다! 기선을 제압하는 타카히나 류지의 쓰리런 홈런!! 남상민 선수의 입이 떡 벌어집니다!] [기다렸다는 듯 받아쳤죠? 시원시원한 홈런에 스코어는 3대 0! 앞서나가는 문혁고!] ​ “나이스 홈런…!!” ​ “캬, 역시 류지 선배님…!!” ​ 동료들의 환호를 받으며 덕아웃에 돌아간 류지. 4번 타자인 성묵 역시 안타를 뽑아내며 기세를 이어갔지만, 아쉽게도 추가점은 없었다. ​ 첫 투구 전부터 든든한 득점 지원을 받은 박찬준. 마운드에 오르는 그를 중계 카메라가 클로즈업한다. 별 볼 일 없는 무명 투수였던 그이지만, 지금은 사람들의 구미를 당길만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 [오늘 경기의 키포인트는, 땜빵 선발로 출장한 박찬준 선수입니다!] [박찬준 선수는 고교 리그의 몇 안 되는 너클볼러입니다! 무려 기린고의 세르게이 라스푸틴 선수에게 직접 배웠다고 하죠?] ​ [예, 그 누구에게도 너클볼을 전수해주지 않던 세르게이 선수지만, 박찬준 선수에게만큼은 성심성의껏 너클볼을 가르쳐줬다고 합니다!] [과연 오늘 선발 투수인 박찬준 선수가 문혁고에 승리를 가져다줄 수 있을지, 한 번 지켜봐야겠습니다…!!] ​ 가현고 타자들은 독이 바짝 든 채 타석에 들어섰다. ​ ‘이런 듣보잡 너클볼러 따위, 우리가 못 털 리가 없지…!’ ​ 박찬준은 너클볼을 익히기 전에는 언급 가치도 없는 폐급 투수였고, 익힌 뒤에도 나오는 경기마다 실점했다. 그를 상대로 단숨에 점수를 만회해 경기를 뒤집을 생각뿐인 가현고 타자들이다. ​ “후우.” ​ 로진을 툭툭 털고 안경을 쓱 밀어 올린 박찬준. 성묵은 문득, 궁금증이 들어 수비 자리에서 그의 스탯창을 읽어 보았다. ​ 띠링! ​ “…오?” ​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는 성묵. 관중석의 세르게이는 마운드에 선 박찬준을 보며 씨익 웃었다. ​ "너는 이미 그레이트한 너클볼러다, 찬준." ​ 박찬준은 스펀지처럼 그가 가르쳐 주는 너클볼의 정수를 흡수하고 있었다. 마덕수의 개인 지도와 세르게이의 너클볼 비전이 합쳐지자, 박찬준은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다. ​ 현재 그의 너클볼 스탯은, 무려 A등급이다. ​ “후읍…!” ​ 초구를 던진 박찬준. 그의 손끝을 떠난 공이 자유분방하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 갈팡질팡. 제멋대로 돌아다니던 공은 이내 석운강의 미트에 그대로 안착한다. ​ 파앙! ​ “스트라이크…!!” ​ “……!!” ​ 깜짝 놀라는 가현고의 1번 타자 장진혁. 그는 고개를 세게 저으며 다시 타격 자세를 잡았다. ​ ‘그래, 어쩌다가 잘 들어온 걸 거야. 충분히 공략할 수 있…!’ ​ 부웅!! ​ “스트라이크…!” ​ “큭!” ​ 크게 헛돈 배트. 그건 다음 공에도 마찬가지였다. ​ 부웅! ​ “스트라이크 아우웃…!!” ​ 삼구삼진으로 덕아웃에 돌아가게 된 장진혁. 그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는 깨달았다. ​ ‘연습 때 초빙한 너클볼러 보다 훨씬 공이 더러워…!!’ ​ 위기감을 느낀 장진혁은 팀원들에게 경고했다. 그러나 크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 따악! ​ “아웃…!” ​ 부웅! ​ “스트라이크 아웃…!!” ​ 삼자범퇴로 마무리된 1회 말. 박찬준은 다소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마운드를 내려갔다. ​ ‘오늘 뭔가 느낌이 좋아…!’ ​ 꽤나 들뜬 채로 마운드를 내려간 박찬준. 그는 다음 이닝에도, 다다음 이닝에도, 그다음 이닝에도 매서운 호투를 보여줬다. ​ 따악! ​ “아웃…!!” ​ 딱! ​ “아우웃…!!” ​ [아, 4회 말도 무실점! 양질의 피칭을 이어 나가는 박찬준 선수입니다…!] [넘실넘실 춤을 추는 박찬준의 너클! 전혀 맥을 못 추는 가현고 타선입니다!!] ​ 깔끔하게 이닝을 막고 있는 박찬준과는 반대로, 매 이닝 안타를 맞으며 꾸역투로 버티는 가현고 선발 남상민. 추가 실점은 없었지만 불안한 피칭을 이어가고 있다. ​ “위험한데, 분위기를 뒤집을 필요가 있겠어.” ​ 가현고 측도 마냥 당하고 있진 않았다. 감독 김지환은 5회 말을 앞두고 선수들을 불러 모아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 “너클볼러는 태생적으로 셋포지션에 약하다.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출루해서 흔들어…!” ““옙!!”” ​ 슬슬 ‘대 박찬준 공략법’을 꺼내 들기 시작하는 가현고. 그건 꽤 유효한 공략법이었다. ​ 투웅! ​ [장진혁 선수의 기습번트…!! 투수와 3루수 사이로 굴러갑니다! 박찬준 선수 뒤늦게 잡아 던져봅니다만…!!] ​ “세잎, 세이프…!!” ​ “제가 잡을 걸 그랬네요, 미안합니다 찬준 형님.” ​ “아냐, 내가 좀 더 빨리 던졌으면 됐는데…!” ​ 서로 사과하는 류지와 박찬준. 어찌 됐건 문혁고는 발 빠른 타자에게 1루를 내어준 상황. 아웃 카운트 하나 잡으면 이닝이 끝나는 상황이지만, 그 하나가 어려웠다. ​ [장진혁 달립니다…!! 2루에서 세이프…! 여유 있게 2루에 들어가는 장진혁!] ​ 석운강이 엄청난 속도의 송구를 보여줬으나, 너클볼이 느릿느릿 오는 이상 아무리 그라도 도루를 저지하긴 쉽지 않았다. ​ 그렇게 주자는 주자대로 신경 쓰이고, 타자와도 맞서 싸워야 하는 상황 속에 결국 악재가 터지고 말았다. ​ 따악! ​ “………!!” ​ [아! 유준희! 쳤습니다! 쭉쭉 뻗어나가는 타구! 담장 넘어갑니다…!!] [지금은 실투죠? 오늘 상당한 변화각의 너클볼을 보여주던 박찬준 선수입니다만, 지금은 꽤나 밋밋했어요.] ​ “우와아아아악………!!” ​ 난리가 난 가현고 측 덕아웃. 경기 초반 답답한 양상을 이어가다 탁 터진 시원한 한방이기에, 그 반응은 더욱 강렬했다. ​ “나이스 홈런…!!” “역시 준희준희!!” ​ 활기를 되찾은 가현고 측 덕아웃. 이로서 스코어는 3대 2. ​ 턱밑까지 추격당한 상황. 야구는 기세 싸움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듯, 가현고는 맹공을 이어 나갔다. ​ [아앗, 3번 타자 김종필! 우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 [4번 타자 지경필의 타구가 좌중간을 가릅니다…!! 2사에 2,3루! 멈추지 않는 가현고!] ​ 퍼엉-! ​ “베이스 온 볼스…!!” ​ 볼넷까지 내어주며 어느덧 만루. 가현고 측 관중석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졌다. ​ “투수 졸라 못 던진다…! 가만히 서 있으면 싹쓸이 가능이야!” “듣보잡 허접 투수 강판시키자!!” ​ “저, 저게…!!” ​ “아담형! 참아야 해요, 괜히 나섰다간 그림이 이상해져요…!” ​ “큭….” ​ 듣다가 발끈한 최아담. 옆의 도도진이 겨우 뜯어말렸다. ​ “후우….” ​ 투수에게 상당한 프레셔가 가해지는 상황. 가현고 측의 저 많은 관중들이 엄청난 악담을 쏟아내고 있다. ​ 심적으로 흔들리면 신체 밸런스에도 영향이 갈 수밖에 없고, 그 결과 다소 아쉬운 너클볼이 그의 손끝을 떠났다. ​ 따악! ​ “…………!!” ​ 우측으로 뻗어나가는 큰 타구. 구장의 대다수가 홈런을 확신했다. ​ [큽니다, 큽니다!! 우측 담장! 우측 담자앙…!!] ​ “아….” ​ 고개를 떨군 박찬준. 그러나, 아직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 파바박…! ​ 담장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성묵. 그는 타구를 보고 판단을 마쳤다. ​ ‘할만한데…!?’ ​ 넘어가는 공인 건 확실하다. 그러나 종묘 구장의 낮은 담장을 생각하면 승부를 걸만하다 생각했다. ​ “흡…!!” ​ 담장 앞에서 벽을 박차고 뛰어오른 성묵. 그의 몸이 펜스 위로 붕 떠올랐다. ​ 퍼엉-!! ​ “…………!!” ​ 그의 글러브 안으로 쏙 빨려드는 공. 관중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 [아, 믿기지 않는 호수비…!! 금성묵 선수가 홈런을 낚아챕니다!!] [아쉬워하며 헬멧을 내던지는 6번 권일영! 만루 홈런이 아웃 카운트 하나로 뒤바뀝니다…!!] [스코어는 그대로 3대 2! 문혁고가 리드를 유지한 채 이닝을 마칩니다!] ​ “크아악!! 성묵 형님, 대대손손 가보로 남겨둬야 할 미친 호수비입니다앗…!!” ​ “짜식이, 오바는.” ​ 덕아웃으로 돌아가며 격렬하게 기뻐하는 지수용. 관중석에서 역시 성묵의 이름을 연호했다. ​ “금성묵, 금성묵, 금성묵, 금성묵……!!” ​ 환호성과 함께 덕아웃에 돌아온 성묵. 그는 동료들과 하이 파이브 하며 기쁨을 같이 만끽했다. ​ “성묵아, 나이스 수비…!” ​ “형님, 당연한 걸 가지고.” ​ 퉁! ​ 박찬준과도 주먹을 맞부딪힌 성묵. 그는 박찬준이 불펜 쪽으로 간 사이, 타자들을 불러 모았다. ​ “얘들아.” ​ “………?” ​ 분위기를 잡는 성묵. 그가 이렇게 동료들을 불러 모을 때는 다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다. 이번 역시도 그랬다. ​ “큰형님 맞고 왔는데 가만히 있을 건 아니지?” ​ 그가 말한 ‘맞고 왔다’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상대 팀 타선은 물론, 가현고 측 관중들에게 찬준이 된통 씹힌 것도 포함해서 말이다. ​ 그라운드에 있던 야수 모두가 불편했던 상황. 최아담을 필두로, 동료들의 눈빛을 활활 불타올랐다. ​ “절대 아니지, 가현고 이 씹새끼들. 오늘이 니들 제삿날이다.” ​ “…아미타불, 방금은 저도 좀 화가 났습니다.” ​ “찬준 형님이 여자 취향이 위험해서 그렇지, 얼마나 좋은 사람인데…!!” ​ 장작을 던져주니 활활 잘 타는 동료들의 분노 게이지. 동기부여에 성공한 성묵은 씩 웃으며 외쳤다. ​ “자, 가볼까. 가현고 박살내러…!!” ​ “오오…!!” ​ 6회 초로 접어든 봄 대회 결승전. 문혁고 타자들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