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무리 보육원] ​ “…하고 있다는 게 봉사였을 줄이야.” ​ 부모 없이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이 시설에, 도연 누나는 매달 한 두 번 이상은 꼭 방문해 봉사한다고 한다. ​ 차에 가득 실은 선물 박스를 아이들에게 나눠주는 그녀를 보고 있자, 보육원장이 내 옆에 서서 말을 걸어온다. ​ “들었어요, 도연 씨의 지인이시죠.” ​ “예, 맞습니다.” ​ “저희는 도연 씨가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전에도 봉사 활동은 꾸준히 했었는데, 이제는 보육원의 제1 후원자까지 도맡고 계셔요. 어떻게 저런 젊은 나이에 예쁜 마음씨를 가질 수 있는지….” ​ 훌쩍이며 감격하는 보육원장. 그녀는 곧 눈물을 쓱쓱 닦고는 내게 물었다. ​ “오늘은 도연 씨를 보러 왔다고는 들었지만, 가급적 아이들이 다가오면 모질게 대하지는 말아주세요. 부모 없이 힘들게 자라온 아이들인 만큼 따뜻한 관심이 필요하거든요….” ​ “…예, 명심하겠습니다.” ​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이들을 바라봤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성인이 되어 자립한 뒤에도 부모를 잃고 난 뒤 모든 걸 잃은 것처럼 힘들었는데, 이 아이들처럼 아예 없다시피 자란 아이들은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 ​ 도연 누나가 이곳에 자주 오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렇게 멀찍이 보고 있는데, 나를 발견한 그녀가 내게 달려왔다. ​ “아, 성묵아…!” ​ 내게 달려온 그녀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혀있었다. 차에서 선물을 수십 종류씩 꺼내어 주며 꽤나 힘을 쓴 모양이다. ​ “대단하네, 안 힘들어?” ​ “안 힘들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괜찮아, 아이들의 미소 한 방이면 금방 회복되는걸.” ​ 씩씩한 미소를 짓는 도연 누나. 나도 씩 웃는데, 뭔가 평소랑 다른 게 보였다. ​ “누나, 차 바꿨어?” ​ “아….” ​ 분명 포르쉐에서 나온 SUV를 탔던 걸로 기억하는데, 꽤나 오래된 고물 SUV를 타고 온 그녀. ​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 “…요즘 아이들도 고급 차 브랜드를 알 만큼 알더라고, 위화감 느끼는 애들이 있을까 봐 여기 올 때만 직원 차를 잠깐 빌리고 있어.” ​ “오오….” ​ 그런 깊은 뜻이 있을 줄이야. 세심한 부분까지 저렇게 남을 배려할 수 있다니.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 것 같아 뭔가 그녀에게 묘한 경외심마저 들었다. ​ 그렇게 그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보육원장이 종종걸음으로 우리 둘에게 달려왔다. ​ “헥, 헥…, 도연 씨. 실례가 안 된다면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염치 없는 이야기지만, 부탁할 사람이 도연 씨밖에 없어서….” ​ “앗, 당연하죠. 부담 갖지 말고 말해주세요.” ​ “정말, 정말 감사해요! 일단은 이쪽으로….” ​ 화색이 되어선 도연 누나를 어딘가로 데려가는 보육원장. 그리고 나는 곧 보게 되었다. ​ “…………!?!” ​ 보육원에서 보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그녀의 파격적인 코스튬을 말이다. ​ “내가 어쩌다 경찰 코스튬을….” ​ 안절부절못하며 몸을 배배 꼬는 그녀. 도연의 굴곡 있는 몸매에는 다소 의상이 꽉 끼는데, 그게 또 나름대로 그녀의 폭력적인 몸매를 부각했다. ​ “……크흠.” ​ 계속 보고 있기 뭐해 시선을 돌렸다. 보육원장에게 들어보니, 여기 보육원에는 주기적으로 안전 교육을 한다고 한다. ​ 특히 밖에서 돌아다니다 자동차 사고 등으로 변을 당하는 일이 많아, 교통안전을 특히 신경 써서 교육한다고. ​ 그런데 생판 일반인이 말해봤자 아이들이 들어먹질 않아 한가지 수를 썼고, 그게 바로 경찰복과 유사한 코스튬을 입고 교육하는 거라고 한다. ​ 그렇다고 실제 경찰을 초빙하기엔 절차가 복잡해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하고 있었다는데, 오늘은 교육을 해줄 만한 인원이 죄다 연차를 썼다나. ​ 나름 이 교육 시간을 좋아하던 아이들의 기대를 배반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도연 누나에게까지 부탁하게 됐다고. ​ “해볼게요, 아이들을 위한 거라면…!” ​ 일단 맡게 되었으니 열심히 해보겠다는 도연. 준비된 대본만 PPT를 따라 읽어도 그만인데, 그녀는 꽤나 열심히 맡은 걸 수행했다. ​ "자동차가 멈춰 있다고 그 앞이나 뒤에서 놀면 아주 위험해요. 운전석에서는 키가 작은 친구들이 잘 안 보일 수 있거든요." ​ "길을 건널 때는 꼭! 이렇게 생긴 하얀 줄무늬, '횡단보도' 위로만 가야 해요. 다른 데로 막 건너면 안 돼요. 약속!" ​ ““약속……!!”” ​ "오늘 배운 것들, 꼭꼭 기억해서 우리 모두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지내기로 해요! 알겠죠?" ​ ““네에……!!”” ​ 아무런 이질감 없이 교육을 소화한 그녀. 보육원장은 ‘제가 본 그 어떤 발표 보다도 훨씬 훌륭해요…!!’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 ‘분석하고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는 능력 하나는 세계관 탑이니까.’ ​ 좋은 의미로 능력 낭비랄까. 그렇게 훈훈하게 교실을 바라보고 있는데, 창밖에 누군가가 눈에 띄었다. ​ “저 아이는…?” ​ “아, 하준이 말씀이시군요.” ​ 급격히 어두워지는 보육원장의 얼굴. 나는 곧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 ‘다른 애들이랑 섞여서 안 놀고, 맨날 나가서 벽에다가 야구공만 던진다라….’ ​ 뭐랄까, 왠지 눈에 밟힌다. ​ 모든 사람들에게 벽을 치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일단 야구에는 관심이 있어 보이니 이야기가 조금은 통하지 않을까. ​ 원장에게 허락을 받은 나는 일단 녀석과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 ‘조심, 조심….’ ​ 살금살금 녀석의 뒤로 다가가, 대뜸 녀석에게 말을 걸었다. ​ “뭐하니, 하준아.” ​ “…………!!” ​ 화들짝 놀라는 녀석. 그리고는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 ​ “뭐야…!! 고리타분한 교육 따위 관심 없다고 말했…!!” ​ 홱 하고 뒤돌아보는 녀석. 그런데 곧 녀석의 눈동자가 초롱초롱하게 바뀐다. ​ “그, 금성묵…!!” ​ “너 나 알아?” ​ “다, 당연하죠. 문혁고 에이스 금성묵 형이잖아요…!!” ​ 대뜸 날 알아보는 녀석. 요즘 길거리에서 날 알아보는 사람이 늘긴 했지만, 이건 꽤나 신기한걸. ​ “형 나온 경기는 전부 챙겨봤어요…! 금강고전부터, 기린고전, 대관령고전, 한청고전까지 전부…!!” ​ “나 참, 이런 곳에서 팬을 만날 줄이야.” ​ 꽤나 신나 보이는 하준이. 나는 녀석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고는 말했다. ​ “캐치볼이나 한번 할래?” ​ “헉, 그래도 돼요…!? 그치만 형, 피곤하실 텐데….” ​ 내 체력을 걱정하는 녀석.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 ‘코흘리개랑 캐치볼 몇 번 했다고 몸에 무리 올 정도면, 야구로 밥 벌어먹고 못 살지.’ ​ 나는 녀석의 머리를 쓱쓱 강하게 훑고는 말했다. ​ “당연히 괜찮지 임마, 내가 몸이 얼마나 튼튼한데.” ​ “오…!!” ​ 화색이 되는 하준이. 그렇게 우리 둘은 글러브를 끼고는 캐치볼을 시작했다. 신기한 게, 녀석도 나와 똑같은 왼손잡이다. ​ “하준이 네가 몇 살이지?” ​ “초등학교 4학년, 11살이요…!” ​ “그렇구만.” ​ 딱히 야구를 어디서 배운 건 아니지만, 보고 들은 건 좀 있는지 자세는 나쁘지 않다. 독학으로 이 정도면 합격이다. ​ “나중에 되고 싶은 거 있어? 뭐 많잖아, 변호사라든지, 의사라든지.” ​ “당연히 야구선수죠. 그거만큼 멋있는 직업이 어디 있다고.” ​ “그건 맞긴 하지.” ​ “나중에 스타 선수가 되어서, 별무리 보육원의 모두를 책임질 거에요.” ​ “허어….” ​ 꽤나 엄청난 소리를 하는 녀석. 흑인 커뮤니티에선 밖에서 성공한 한 명이 전체를 책임지는 호미(Homie)문화가 있는데, 뜬금 이걸 자기가 하겠다는 녀석. ​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의 치기로 여길 수도 있겠지만, 나는 녀석의 말이 썩 나쁘게 들리지는 않았다. ​ ‘사내자식이 저 정도 그릇은 되어야지.’ ​ 파앙! 나는 글러브를 두들기며 하준이를 칭찬했다. ​ “대단한데, 너 남자구나?” ​ “당연하죠…! 그리고 프로 선수가 되기 전에 고등학교는, 꼭 문혁고로 갈 거예요.” ​ “응…?” ​ 굳이 좋은 선택지들 놔두고 여길…? ​ 문혁고는 그냥 다른 학교를 못 가는 상황이라 택했을 뿐, 야구부로서 아무런 헤리티지도 장점도 없는 학교다. ​ 얘가 다 클 때면 문혁고는 높은 확률로 ‘세종기, 진출했다고….’만 외쳐대는 개퇴물팀이 되어있을 텐데. ​ 아무리 내 팬이라지만, 이건 아니다. ​ “다시 생각해봐. 다른 명문 학교도 많잖아?” ​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녀석. 녀석의 눈은 한없이 진지했다. ​ “문혁고의 야구에는 다른 고교야구팀과 다른 뭔가가 있어요…! 전 나중에 꼭 문혁고에 입학해서 형처럼 멋진 에이스가 될 거예요!” ​ “크윽….” ​ 거기까지 말하는 거냐. 젠장, 저런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순 없지. ​ “좋아, 하준이가 문혁고의 에이스가 될 재능이 있을 지, 내가 직접 테스트해 주마.” ​ “와아…!!” ​ 사실 뭔가 말이 이상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문혁고 같은 신생 핫바지 팀을 혼자 캐리하려면 어마무시하게 잘해야 하지 않겠는가? ​ 재능이 그 정도가 아닌 거 같으면 순순히 포기하고 적당한 명문고나 가라고 살살 달래야겠다. ​ “오케이, 던져봐.” ​ “네, 던질게요!” ​ 투수처럼 자세를 잡고 공을 뿌리는 녀석. 공을 10개 정도 던졌는데, 받아본 내 입장이 어땠냐? ​ ‘이 녀석, 재밌는 볼을 던지는데.’ ​ 강속구의 재능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볼이 지저분하다. ​ 이건 또 이것대로 재능이다. 그냥 직구 그립 잡고 던졌을 뿐인데 자연적으로 공이 지저분해지는 ‘무빙 패스트볼’의 재능은 아무나 가지고 태어나는 게 아니니까. ​ ‘흠, 대충 테크트리가 떠오르긴 하는데.’ ​ 일단은 초4가 아주 늦은 건 아니지만 빠른 것도 아닌 만큼, 정식 야구부에 들어가서 배워야 한다. 아마 내가 부탁하면 도연 누나가 재정적 지원은 해줄 거다. ​ ‘그다음은, 내가 아는 여러 가지 꼼수들.’ ​ 게임의 고인물인 내가 알고 있는 여러 가지 성장 꿀팁. 세상에 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보육원의 꿈 많은 아이에게 알려주는 정도는 괜찮겠지. ​ “될 수 있겠다, 문혁고 에이스.” ​ “정말요?!” ​ “그런데 그러려면, 체계적인 훈련이 필요해. 내가 어떻게 훈련했는지 한번 배워볼래?” ​ “헉, 좋아요…!!” ​ “자, 나중에 중학교나 고등학교 올라가서 시간 날 때 해봐. 일단 전북 남원시에 구룡폭포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에 가면….” ​ “……!!” ​ 내 훈련법이라니까 눈빛을 빛내는 녀석. 나는 녀석이 하면 좋을 법한 여러 가지 이스터 에그성 훈련법들을 알려줬다. ​ 물론 나는 하준이가 리스트의 절반도 채 하지 못할 거라고 확신했다. 머리가 클수록, 맨정신으로 저런 이상한 훈련을 하기란 쉽지 않을 테니까. ​ ‘그래도 뭐, 저 리스트 반의반만 하더라도 또래 중에서 중간은 가겠지.’ ​ 딱 그 정도 생각이었다. 이때의 나는 몰랐다. ​ 내가 내 손으로 미래에 문혁고의 2차 전성기를 이끌 괴물을 키우고 있다는 것을…. ​ 아무튼 얼추 끝이 난 하준이의 코칭. 녀석은 꽤나 신나 보였다. ​ 그러다가 뭔가를 발견했는지, 표정이 잠깐 묘하게 바뀐 녀석. 이내 내 옆에 착 붙어서는 속닥댄다. ​ “형, 도도연 누나랑 친하죠?” ​ “친하지, 왜?” ​ “그, 음…. 이걸 말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 머리를 긁적이며 고민하는 녀석. 이내 나는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자기가 본 걸 털어놓는다. ​ “행사가 있을 때마다 다 빼먹고 담장 앞에 있다 보니 알게 된 건데, 도연 누나가 보육원에 올 때마다 담장 밖에서 누나를 지켜보는 아저씨가 있어요.” ​ “……!?” ​ 꽤나 놀랐다. 스토커가 붙은 것일까. 나는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 “어떻게 생겼는지 말할 수 있겠어?” ​ “일단 몸집이 되게 크시고, 안경도 쓰시고, 수염도 깔끔하고, 나름 아저씨 중에서는 잘생긴 편인 것 같아요….” ​ “어?” ​ 머릿속에 누군가가 떠오른다. 그런데 그 사람은 도연 누나의…. ​ “아, 저기 저 사람이에요!” ​ “…!” ​ 홱 하고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한 중년 남성과 눈이 마주쳤다. ​ “도학훈 회장…?” ​ “………!” ​ 내가 본인을 알아본 것을 눈치챘는지 후다닥 도망가버리는 도학훈. 쫓아갈까 했지만 나는 굳이 그러지 않았다. ​ ‘…냄새가 나, 분명히 뭔가가 있어.’ ​ 한국 야구 협회장이자, 도연 누나와 도진의 친부인 도학훈. ​ 두 남매를 버리고 재혼을 한 최악의 친부라고 듣기는 했다만, 도진의 말대로 그에겐 뭔가 말 못 할 사정이 있어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애절한 눈빛을 할 리가 없다. ​ ‘조만간 한 번 찾아가 볼까.’ ​ 어릴 때부터 부모가 없다시피 자란 도씨 남매다. 부모 자식간에 뭔가 오해가 있었다면 풀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 물론 도연 누나와 도진이 나와 연이 깊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다른 속셈이 없는 건 아니었다. ​ ‘야구계 최고 권력자 중 한명인 그와 연을 터 둬서 나쁠 건 없겠지.’ ​ 한국은 인맥이 꽤나 중요한 사회. 어디 국가대표에 선출되거나, 상 하나를 받을 때도 협회 측에 아는 사람 하나라도 있으면 훨씬 이야기가 수월하게 진행된다. ​ 심지어 협회장쯤 되면,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 ​ “하준아,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이다. 알겠지?” ​ “넵, 알겠어요…!!” ​ 신이 나서 반기는 녀석. 이제 슬슬 돌아가야겠구만. ​ “형, 내일 봄 대회 결승전도 힘내요. 꼭 본방사수 할게요…!!” ​ “오냐, 한 방 날릴 테니 보고 있으라고.” ​ 내일 경기엔 아마 지명 타자로 나오겠지. 태양신맥이 없다고 생각하니 가슴 한 켠이 답답하지만, 일단은 벌어둔 깡스텟으로 어떻게든 해보는 수밖에. ​ 나는 녀석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고는, 다시 보육원 건물로 돌아갔다. ​ “아, 성묵이 왔어?” ​ 그러자 교육이 마무리되고 뒷정리 중인 도연 누나가 보인다. ​ 이 교실에는 나와 도연누나 둘뿐. 나는 그녀 옆에서 정리를 적당히 도와선 빠르게 일을 마무리했다. ​ “수고했어 성묵아…! 하준이랑 얘기는 잘 했어?” ​ “응, 내 팬이라던데. 잔뜩 팬서비스해주고 왔지.” ​ “앗, 정말…?” ​ 겸사겸사 캐치볼도 해주고, 투구 지도도 해줬다 하니 반색하는 도연 누나. 하준이가 꽤나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 “아, 그나저나 누나. 오늘 혹시 시선 같은 거 느낀 적 없어?” ​ “시선……?” ​ 내 말에 갸우뚱하는 도연 누나. 그녀는 곧 손뼉을 딱 치며 말했다. ​ “아, 있어!” ​ “…!” ​ 그녀도 친부의 시선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것일까 싶었는데-. ​ “오늘 애들이 경찰복을 엄청나게 보더라. 정말로 애들이 경찰 의상을 좋아하나…?” ​ “……….” ​ 나는 슬쩍 시선을 내렸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꽉 끼는 의상. ​ 아무리 어려도 남자는 남자. 자기도 저 압도적인 풍만함에 시선이 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 “저, 저기. 성묵아….” ​ “응?” ​ “그렇게 빤히 보면 부끄러운데….” ​ “………!!” ​ 나는 곧바로 홱하고 고개를 돌렸다. 잠깐 훔쳐본다는 것이, 가슴을 너무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들켜버렸다. ​ ‘젠장, 부끄럽게시리.’ ​ 묘하게 흐르는 기류. 나는 헛기침을 하고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 “…크흠, 잘 어울려서 나도 모르게.” ​ “놀리는 거지?” ​ “아니, 진짜로.” ​ “……!” ​ 얼굴을 붉히는 도연 누나. 잠시 정적이 흐른다. ​ 슬며시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는 그녀. 다소 부끄럽다는 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한다. ​ “…그러면 더 봐도 되는데.” ​ “……!” ​ 이 무슨 폭력적인 문장인가. 아마 태양신맥이 살아있다면, 뭔가 반응했을지도 모르겠다. ​ “크흠.” ​ 이거 원. 봐달라는데 안 봐줄 수도 없고. ​ 도연 누나의 간곡한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 파앙! ​ “꺄앗……!?” ​ 갑자기 펑 하고 터진 의상의 단추. 그녀의 거대한 흉부의 압박 속에서 겨우 버텨내던 단추가 터져버린 것이다. ​ 그렇게 날아오른 단추는 빠르게 날아올랐고-, ​ “켁.” ​ 정확히 내 이마에 직격했다. 나는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 쿠당탕! ​ “꺄악, 성묵아…!!” ​ 단추가 터져 그대로 검은색의 레이스 속옷이 드러났음에도, 내가 단추에 맞고 뒤로 넘어가자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녀. ​ ‘……와, 보소.’ ​ 내 눈앞에서 흔들리는 거대한 둔덕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사실 딱히 아프지도 않지만, 한동안은 아픈 척해도 되겠다고. ​ 아무튼, 결승전 전날. 여러모로 알찬 휴식일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