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비아 언니, 성묵 오빠 좋아하시죠?” ​ “……!?” ​ 대뜸 찾아와선 폭탄 발언을 하는 노아. 올리비아는 화들짝 놀라며 전혀 표정 관리를 하지 못했고,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더니 노아를 으슥한 장소로 데려갔다. ​ “의도가 뭐죠? 갑자기 찾아와서는….” ​ 경계심을 드러내는 올리비아. 금강고 전이 끝난 뒤 삼자대면했을 때 노아 측에서 살갑게 다가오며 유아무야 끝나긴 했지만, 연적으로서의 인식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 그러나 노아는 그런 생각은 전혀 없다는 듯, 그저 방긋 웃을 뿐이었다. ​ “도와드리고 싶어서 그래요…!” ​ “도와준다니, 뭘 말이죠.” ​ “성묵 오빠랑 언니가 이어지는 거요.” ​ “………!?!” ​ 후끈하게 달아오른 올리비아의 얼굴. 이런 말을 들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한 듯한 반응이다. ​ “그, 그게 무슨…!!” ​ “언니는 그런 생각 해본 적 없으세요? 계기만 있으면 확! 하고 사이를 좁힐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 “………….” ​ 노아의 말에 침을 삼키는 올리비아. 최근 성묵에 대한 마음이 나날이 깊어져 가는 것과 반대로, 요리를 전해줄 때와 수업 시간 외에는 접점이 크게 없다. ​ ‘계기….’ ​ 노아는 같은 야구부 소속이니 자연스레 가까이할 시간도 많고, 도연은 야구 분석을 핑계로 언제든 자리를 만들 수 있는 상황. ​ ‘기회 창출’이라는 면에서 가장 처지는 게 그녀일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올리비아의 뇌리를 강타했다. ​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의문이 들었다. 원래는 경쟁자로서 인식되던 노아다. ​ 그런 그녀가 왜 자신을 도와주는가. 그거 하나는 짚고 넘어가야 했다. ​ “…왜 저를 도와주는 건가요. 경쟁자 아니었나요, 우리.” ​ “단순해요. 언니는 성묵 오빠를 좋아하고, 성묵 오빠도 언니한테 호감이 있다고 생각해요.” ​ “성묵 씨가…!?” ​ “서로한테 호감이 있지만 자꾸 한발씩 엇나가는 남녀, 저는 이 둘이 이어지는 걸 보고 싶을 뿐이에요. 다른 이유는 없어요!” ​ “………!” ​ 놀라는 올리비아. 그녀는 꽤 많은 생각이 들었다. ​ ‘이 아이, 좋은 애였구나…!’ ​ 노아를 다시 보게 된 올리비아. 마치 사랑의 큐피드가 그녀를 돕기 위해 내려온 기분이었다. ​ 물론 다른 이유는 없다고 했지만, 노아에게는 말하지 않은 다른 목적이 존재했다. ​ ‘올리비아 언니쯤 되는 사람이 성묵 오빠 옆에 있으면, 어중간한 날파리도 안 붙겠죠……!’ ​ 성묵을 다른 여자들과 함께 차지할 생각인 노아지만, 그렇다고 어중이떠중이 같은 년들까지 들러붙도록 놔둔다는 뜻은 아니다. ​ 노아 본인이 인정할 수 있는, 소수 정예의 여자들만 성묵의 하렘에 들어올 수 있도록 판을 짤 생각이다. ​ ‘올리비아 언니랑 도연 언니, 둘이 제가 성인이 될 동안 오빠 곁을 지키고 있다가….’ ​ 성인이 되자마자 빠르게 성묵과 선을 넘길 생각인 그녀. 나름대로 훌륭한 계획이라고 생각한 노아다. ​ 그런데,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 “………!” ​ 성묵의 폰을 받아 SNS 계정을 만들어주려던 노아는 보고만 것이다. 성묵과 다정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은 푸른 머리의 미소녀를. ​ ‘엄청나게 예뻐….’ ​ ‘게다가 몸매도……!’ ​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냉미녀 상이지만, 성묵의 옆에서 그 누구보다 행복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소녀의 모습. ​ 성묵을 마음에 담은 두 여성으로서는 의식을 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짧은 사이에 수많은 가설이 스쳐 지나갔다. ​ ‘전여친? 아냐, 숨겨둔 여자친구일 가능성도 있어….’ ‘성묵 오빠는 한 때 통제 불능의 시절이 있었다고 했으니까, 설마 파트너 관계…!?’ ​ 그러나 가설만으로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 떠오르는 모든 가능성을 검토한 그녀들은 이내 성묵에게 물었다. ​ “성묵 씨, 이 여자 누구예요?” “오빠, 이건 좀 해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 물론 성묵은 답하지 못했다. 빙의 전에 금성묵이 누굴 만났는지 그가 상세하게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 그런데 사진을 자세히 보며, 성묵은 그 사람이 누군지를 얼추 알아챘다. ​ ‘서예빈…?!’ ​ 행복한 표정이 대다수라 처음엔 못 알아봤지만, 성묵은 확신했다. ​ ‘푸른색 생머리에 이 정도 미모와 몸매. 의심할 여지 없는 그녀다.’ ​ 서예빈. ‘유진 홀딩스’라는 대기업 회장의 손녀다. ​ 원작 게임의 유저들 중에는 그녀에게 좋은 감정 보다는, 악감정을 품은 사람이 훨씬 많았다. ​ -서예빈 이 썅년, 조같네 진짜;; -왤케 싸가지 없냐 얘?? ㄴㄹㅇ 뺨싸다구 좆나 마렵다 시발 ㄴ얘 튀어나올 때마다 그냥 기분이 더러움 ​ ‘…사사건건 플레이어를 방해하는 포지션이었지.’ ​ 엄청난 미모의 소유자인 만큼 공략 가능 히로인이었다면 세탁기를 열심히 돌릴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공략 불가 대상. ​ 유진 홀딩스의 자회사인 ‘유진 프레스’라는 언론사를 젊은 나이에 물려받게 된 서예빈은 사사건건 플레이어 측에 안 좋은 스캔들을 터트렸다. ​ 히로인과 얽힌 스캔들이 떴다 싶으면 죄다 ‘유진 프레스’에서 낸 기사라고 봐도 될 정도. ​ ‘그런데 얘가 금성묵이랑 연인관계였을 줄은….’ ​ 안 그래도 둘은 같은 부전고 출신. 이 사진도 사진대로 강력한 증거지만, 성묵은 현재 살고있는 자취방을 뒤지다가 반지를 발견한 적이 있었다. ​ 거기에는 새겨져 있었다. ‘YB♥’라는 이니셜과 하트가. ​ ‘잠깐, 사진 속에 서예빈이랑 같이 타고 있는 바이크, 자취방 앞에 주차된 거 아냐?’ ​ 워낙에 튀게 생겨서 바로 알아봤다. 자취방 올라가는 길의 1층 복도를 크게 막고 있어서, 지나다닐 때마다 쌍욕을 했는데 그게 사실은 금성묵의 소유였던 모양. ​ 성묵은 이제야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 들었다. ​ ‘서예빈이 그 어떤 남자에게도 철벽을 유지했던 게, 금성묵 때문이었을 지도….’ ​ 일단은 그녀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결론이 난 상황. 성묵은 가감 없이 그녀들에게 말했다. ​ “전 여자친구야, 부산에 있을 때 잠깐 만나다 헤어졌어.” ​ “………!” ​ 흠칫한 그녀들. 그래도 얼추 마음의 준비는 한 것인지,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 “전 여자친구, 그렇군요….” ​ “그, 혹시 전 여자친구분에 관해선-.” ​ “미안, 그다지 좋은 기억은 아니라서.” ​ “앗….” ​ 노아가 뭔가 물어보려 했지만, 꺼려하는 듯한 뉘앙스로 바로 차단한 성묵. ​ ‘…나도 말해주고는 싶다만, 아는 게 없단 말이지.’ ​ 서예빈에 관련해 더 알아봐야겠다 생각하는 성묵. 그렇게 이날의 삼자 데이트는, 두 여자에게 묘한 위기의식을 심어준 채 끝을 맞이했다. ​ ​ ​ ################ ​ ​ ​ “후우, 잘 잤다.” ​ 어제 그녀들과의 만남은 그럭저럭 잘 수습됐다. 전적으로 노아의 역할이 컸다. ​ ‘맞다, 올리비아 언니 최근에 백화점에서 팝업하셨다면서요. 그 얘기해주세요…!!’ ​ 서예빈의 사진이 갑툭튀하며 분위기가 싸해졌지만, 그녀가 다른 쪽으로 주제를 돌리는 걸 물심양면으로 도왔고, 처음엔 차가운 분위기였던 올리비아도 점차 진정이 됐다. ​ 서예빈의 사진에 심기가 불편한 걸 숨기지 않았던 그녀. 그녀가 그렇게 과민반응 하는 이유도 나는 알고 있었다. ​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날 좋아한다고 했지.’ ​ 올리비아 본인이 말한 적은 없지만, 도시락을 먹으며 상태창에게 이미 스포일러를 당한 상황. ​ 그녀의 마음을 의도치 않게 알게 되긴 했으나 나는 딱히 별다른 액션을 취하지는 않았다. ​ ‘각자 돌아갈 곳이 있으니까.’ ​ 나는 현실, 올리비아는 영국. 각자 돌아갈 홈타운이 존재한다. ​ 순간의 활활 타오르는 감정에 몸을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감정이 너무 깊어진다면 양쪽 모두에게 파멸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르니까. ​ 아무튼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김없이 문혁고 야구장에나 갈까 싶었지만, 명감독에게 훈련 참여 금지 통보를 받았던 걸 떠올렸다. ​ “쓰읍, 진짜 뭐하지?” ​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야구 하나만 보고 달려왔다고. ​ 야구를 못 하는 상황이 되자 할 게 없었다. 딱히 만날만 한 사람도 없다고 생각하는 와중, 누군가가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 “아……!” ​ 그녀의 이름이 떠오르기 무섭게, 나는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 [여, 여보세요…?] ​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 그녀. 나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 “도연 누나, 오늘 시간 괜찮으면 밥 같이 먹을래?” ​ 내가 떠올린 건 다름 아닌 도도연이다. 평소에 신세도 많이 지고 있고, 그녀가 온천에서 나랑 좀 더 친해지고 싶다고 하기도 했으니 자리를 한 번 마련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 […………!!] ​ 호흡을 삼키는 소리가 전화 너머로 들려온다. 그녀는 뭔가를 고민하더니, 이내 대답했다. ​ [응, 나는 좋긴 한데….] ​ “한데?” ​ [내가 지금 하고있는 게 있어서 그런데, 혹시 괜찮으면 여기로 올래?] ​ “흠?” ​ 도연 누나가 하고있는 거라. 아마 야구에 관련된 뭔가가 아닐까. 애초에 내가 찾아가려 했으니 나는 선선히 수락했다. ​ “어, 지금 어딘데?” ​ [그게…….] ​ “…응?” ​ 그녀가 입 밖으로 꺼낸 곳은, 굉장히 의외의 장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