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우.” ​ 타석에 들어서는 도도진. 그는 선두타자로서, 출루를 통해 문혁고 공격의 물꼬를 튼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타석에 섰다. ​ ‘직구를 노리자.’ ​ 노림수를 좁힌 도진. 그러나 류택진의 직구는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 뻐엉--!! ​ “스트라이크…!!” ​ “…큭.” ​ 헛돌아간 도진의 배트. 165km의 직구가 미트에 꽂혔다. ​ 마음이 꺾일 것만 같은 압도적 속도와 구위. 도진은 머리가 새하얘졌다. ​ ‘…격이 다르다, 이건 기합만으로 될 문제가 아니야.’ ​ 도진은 자신의 컨택 능력으론, 이 공을 쳐내 정타를 만들어내기 힘들 것임을 인정했다. ​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마 상당히 희박한 확률이리라. ​ ‘방법은 있을 거야. 생각해내자, 출루할 방법을…!’ ​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는 도진. 그때였다. ​ 투두두- ​ “어, 비 그치나…?” “이제 부슬비 정도밖에 안 오는데?” ​ 무겁게 내리던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관중들 중에는 우산을 접거나 우비를 벗는 사람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 [앗, 하늘이 무너져라 내리던 비가 거의 그칩니다…! 먹구름 사이로 햇빛도 조금씩 새어 나옵니다! [새벽까지 비가 온다고 들은 것 같은데, 이건 또 생각지 못한 기후 변화로군요! 이게 과연 경기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지켜봐야겠습니다!] ​ “하늘도 도와주는군.” ​ 위를 올려다보며 씩 웃는 류택진. 특급 투수인 만큼 비에도 크게 영향을 받지는 않았지만, 축축하게 젖는 것 자체가 싫어 비가 그친 건 환영이었다. ​ 제2구를 던지는 류택진. 그 공을 맞이하는 도진은, 지금 다른 걸 보고 있었다. ​ ‘…잠깐만, 저건.’ ​ 비가 오며 먹구름이 잔뜩 껴있던 구장에 햇볓이 들며 일어난 명암 차이. ​ 도진의 눈에는 보였다. 3루수 방향 쪽에, 물이 잔뜩 고여있는 잔디의 구간이. ​ 머리가 선명해졌다. 그가 지금 할 것은 명확했다. ​ 토옹-! ​ “……!?” “세이프티?” ​ 3루수 방향으로 흐르는 세이프티 번트. 기습적으로 대고는 1루를 향해 달리는 도진을 향해 한청고의 모두가 코웃음 쳤다. ​ “갑자기 기습 번트라니, 어지간히 자신이 없었나 보구만…!” ​ 이 정도 타구는 식은 죽 먹기보다 쉽다며 대쉬하는 3루수 최혁수. 그는 바운드를 정확히 계산하며 오른손을 뻗었다. ​ 바로 맨손으로 잡아 송구할 심산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 순간, ​ 찰박-! ​ “뭣?!” ​ 울려 퍼지는 물 튀기는 소리. 잔디 속 물웅덩이에 담가진 타구는 속도가 급격히 죽어버렸다. ​ 스텝이 엉킨 최혁수는 두 템포 정도 공을 줍는 게 늦어졌고, 겨우 송구해봤지만 결과는 뻔하다. ​ “세잎, 세이프……!!” “………!!” ​ 경악한 한청고 멤버들. 그들은 당당하게 문혁고 덕아웃을 향해 주먹을 번쩍 드는 도도진을 보며 느꼈다. 이건 의도된 플레이라는 것을. ​ [앗, 기습번트…!! 최혁수 달려 나옵니다만, 아앗!? 타구의 속도가 확 죽었습니다! 뒤늦게 1루로 던집니다!] [세잎, 세잎입니다!! 세이프티 번트로 선두 타자 출루하는 문혁고! 아직 경기 끝나지 않았습니다…!] ​ [지금 보시면, 피칭 직전에 도도진 선수의 눈알이 빠르게 돌아가거든요? 전부 의도한 플레이로 보입니다!] [엄청난 센스로군요…!! 타고난 관찰력과 실행력이 없으면 결코 할 수 없는 과감한 플레이입니다!] ​ “와아아앗………!!” ​ 다시 살아난 희망의 불씨. 아직 대부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문혁고 측 관객석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 예상치 못한 선두타자 출루. 류택진은 굉장히 불쾌한 표정이다. ​ “아, 싫다, 싫어. 요행으로 야구 하는 새끼들이 제일 싫어.” ​ 더 빠른 속도, 더 강한 힘. 둘의 격돌이 가장 야구다운 것이라 생각하는 그는, 방금처럼 우천 상황과 그라운드 상황을 이용한 도진의 플레이가 못마땅한 듯하다. ​ 그리고 그건 차강훈 감독도 마찬가지. 그는 심판에게 강하게 항의하며, 그라운드에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 ​ [아, 대회 진행 요원들이 물밀대를 가지고 경기장에 들어옵니다! 이제 비가 그쳤으니 잔디에 물이 고인 곳들을 정리하겠다는 의도로 보입니다.] ​ [방금 같은 플레이는 당하는 입장에선 어찌 손쓸 도리가 없거든요? 다시 악용하는 타자가 없도록 철저하게 대처하는 한청고 측입니다…!!] ​ 빠르게 물을 빼는 진행 요원들. 애초에 배수 시설이 잘 되어있던 구장이니만큼 조치는 빠르게 끝났고, 경기는 곧바로 재개됐다. ​ “플레이 볼…!” ​ [경기 재개됩니다! 타석에 들어서는 건 3번 타자 타카히나 류지! 오늘 이 경기를 진흙탕 싸움으로 만든 장본인이죠?] ​ [맞습니다, 류한울 선수에게 동점 투런포를 뽑아낸 전적이 있습니다! 과연 형제 모두에게서 출루할 수 있을지…!!] ​ 뻐엉--!! ​ “스트라이크……!!” ​ 존에 꽂히는 166km의 직구. 류지는 혀를 내둘렀다. ​ “…나참, 공이 너무 싸가지가 없는데.” ​ 동생인 류한울에게도 홈런을 뽑아냈던 그지만, 류택진은 그보다 한두차원 더 위에 있는 느낌이다. ​ 따악! ​ [아, 내야 높이 뜨는 타구…!! 유격수 한결 선수가 잡아냅니다! 원아웃에 주자는 움직이지 못합니다…!!] [다음 타자는 4번 타자 석운강! 금성묵 선수 다음으로 많은 홈런을 뽑아낸 강타자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 고고고- ​ 엄청난 기세를 뿜어내는 석운강. 평소처럼 조용한 실눈 페이스인 건 변함 없지만, 뭔가 그 안에 격렬한 감정이 담겨져 있었다. ​ ‘화가 난다, 동료들을 돕지 못한 나 자신에게…!’ ​ 지금 그는 자기혐오로 화가 나 있다. 힘든 경기를 치르는 와중에, 중요할 때 그가 해준 게 없다는 것이 그를 괴롭게 했다. ​ 그렇게 화가 난 결과 현재 S급 스킬인 마승(魔僧)이 발동된 상태. 운강은 류택진의 바깥쪽 직구를 그대로 받아쳤다. ​ 따악-! ​ [아, 쳤습니다…!! 우익수 앞에 뚝 떨어지는 안타!!] [1루 주자 도도진은 2루…, 돌지 못합니다! 1사에 주자 1,2루! 큰 거 한방이면 끝내기가 가능한 상황까지 가는 문혁고!!] ​ “우와아아아악!!” “석운강, 석운강, 석운강……!!” ​ 다시 문혁고 측의 분위기가 들끓기 시작했다. ​ “지수용, 지수용, 지수용……!!” “으랏챠……!!” ​ 열띤 응원을 받으며 기합을 내지르는 지수용. 그는 딱히 긴장감을 느끼지 않는지, 파이팅 넘치게 타석에 들어섰다. ​ “잔챙이는 꺼져.” ​ 뻐엉--!! ​ “스트라이크…!” ​ 뻐엉--!! ​ “스트라잌…!!” “크핫…!” ​ 순식간에 투 스트라이크. 전체적으로 지수용의 배트가 따라가질 못하는 느낌이다. ​ 이미 견적이 나온 배터리. 그들은 길게 승부할 생각이 없었다. ​ 퍼엉--!! ​ “스트라이크 아우웃……!!” ​ “크흐윽….” ​ 떨어지는 151km의 스플리터에 그대로 헛돈 지수용의 배트. 그러나 문혁고 측 관중석의 열기는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 [운명의 대결이 다가옵니다…!! 11회 말 2사에 주자는 1,2루. 큰 거 한방이면 경기가 뒤집히는 이 상황에 타자는 금성묵입니다…!!] ​ [문혁고 측 관객석이 용암처럼 뜨겁습니다! 중요한 상황에선 늘 클러치 홈런을 터트려온 금성묵 선수입니다!] ​ [누구에게도 뚫리지 않는 방패 류택진! 그리고 온갖 방패를 뚫어온 강력한 창 금성묵! 둘의 최종 결전이 이제 시작됩니다…!!] ​​ -갤주 두개재 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 -역전 쓰라린 가즈앗~~~~~~~~~~~~~~~ -와 결국 빅 매치업 성사 ㄷㄷㄷㄷㄷㄷ -정보) 갤주는 장태산, 슌스케, 세르게이, 마초원 등 에이스들에게 모두 홈런을 쳤다 ㄴ심지어 전부 결승 홈런 ㄷㄷㄷㄷㄷ ㄴ오늘 류한울한테는 못 쳤는데? ㄴ ㅅㅂ 8이닝 가까이 똥꼬쇼 하면서 막아줬는데 홈런까지 치면 그게 신이지 임마 ㄴ딱 4명이네. 류택진 추가하면 인피니티 건틀릿 완성 ㄷㄷㄷㄷ -제발 문혁고 이기자 ㅈㅂㅈㅂㅈㅂㅈㅂㅈㅂㅈㅂㅈㅂ ​ “금성묵, 금성묵, 금성묵……!!” ​ ​현장과 넷상 가릴 것 없는 뜨거운 분위기. 우선 흐름을 한 번 끊을 필요가 있다고 느낀 포수 권석준이 마운드에 올랐다. ​ “뭐야, 굳이 올라올 필요 없었는데.” ​ "…택진아, 조심해라. 금성묵 저 녀석은 위험하다.” ​ 내로라하는 에이스들을 상대로 죄다 결승 홈런을 뽑아내는 건 운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무대에서 더욱 강해지는 해결사 본능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 권석준은 그게 마음에 걸려 류택진에 경고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호승심을 불태울 뿐이다. ​ “알아, 그래도 내가 이겨.” “……그러냐.” ​ 권석준은 여전히 뭔가가 걸렸지만, 괜히 초를 치는 것 같아 순순히 마운드를 내려왔다. ​ "후우." ​ 타격 장갑을 주욱 잡아당기며 타석에 들어선 성묵. 그는 대관령고와의 일전 뒤, 마초원과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 ​ ####### ​ ​ "그래서 뭔데, 한청고를 상대할 비법이?" "정확히 말하자면 한청고 공략법이라기보단, 류택진 공략법이다." "오?" ​ 철벽의 마무리 류택진을 뚫을 방법이라니. 사실 나도 하나 알고 있는 게 있기야 하지만, 방법이야 많을수록 좋지 않겠는가. ​ "류택진은 고교 통산 홈런을 단 하나도 맞은 적이 없다고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뭐? 그럼 언제 맞았는데." ​ "재작년에 연습 겸 국가대표 소집을 했을 때, 원정을 간 국가에서 대진 상대가 잘 잡히지 않아 아프리카의 팀과 경기를 한 적이 있다." "아프리카?" ​ "거기서 바쿠? 뭐 그런 이름의 타자가 류택진에게 홈런을 뽑아냈다. 그것도 무려 두 개나 말이지." "…!!" ​ 이건 또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이럴 때 종종 느끼곤 한다. ​ 직접 빙의한 것과 밖에서 모니터를 통해 접하는​ 정보량 자체가 차원이 다르다는걸. ​ "경기가 끝나고 녀석에게 따로 물어봤지, 어떻게 류택진을 상대로 그렇게 쉽게 홈런을 뽑아냈냐고." ​ 같은 서울권 고교이니, 언젠가 적으로 만났을 때를 대비해 알아두려고 한 모양이다.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 "그래, 그 녀석이 뭐라고 했는데?" "흠, 그 녀석이 말하길…." ​ ​ ##### ​ ​ '직구는 '타악!' 커터는 '스윽탁!' 이라고 했다. 그러면 간단하게 홈런을 칠 수 있다고 하는군!' "…시팔, 그게 뭔 개소리야." ​ 타석에 들어서며 성묵은 인상을 찌푸렸다. 공략법이라길래 기대했건만 도움이 되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 그다. ​ 동료들에게도 혹시 몰라 이야기 해뒀고, 타석이 끝난 뒤에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전혀 감이 안 온다고. ​ "후우." ​ 성묵은 호흡을 다잡았다. 그는 지금, 이 한 타석에 모든 것을 걸 심산이다. ​ 태양신맥 오버플로. 따로 서혁준에게 배웠던 기술이다. ​ '만약 이걸 사용하면, 처음 각성하셨을 때 솟구친 거대한 힘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될 겁니다.' ​ 한청고 전에서 양맥을 뚫고 태양신맥을 얻었을 때, 성묵은 첫 각성 효과로 무려 4단계의 스텟 강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힘의 폭주. 결코 정상적인 범주 내의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부작용도 강하다. ​ 기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한동안 태양신맥을 쓸 수 없게 된다. ​ 성묵은 주변을 둘러봤다. 주먹을 꽉 쥔 채 성묵에게 모든 것을 맡긴 동료들. 마지막이 될 이 승부에 목 놓아 응원하는 문혁고 학생들. 관중석에서 간절한 눈으로 지켜보는 도도연, 올리비아, 노아까지. ​ 망설임은 없다. 그저 자신을 응원해주는 저들을 위해, 모든 걸 쏟아낼 뿐이다. ​ 꾸욱- ​ 배꼽 아래의 혈을 강하게 누른 성묵. 직전에 석운강의 도움을 받아 등의 혈 5개를 눌러둔 상태에서, 마지막으로 누르는 6번째 혈이다. ​ [경고! 경고! 경고!] [사용자의 신체에 큰 무리가 갈 수 있습니다!] [당장 중지할 것을 권합니다!] ​ 혈의 압박을 멈추라며 울려대는 경고음. 그러나 성묵은 더 강하게 꾹 눌렀다. ​ [태양신맥이 강제로 재활성화됩니다!] [강화하실 스텟 4가지를 선택해주십시오!] ​ 벌떡! ​ 자기가 언제 쓰러졌냐고 말하기라도 하듯,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는 하반신. ​ 그 어느 때보다 우람한 자태를 자랑하는 그것은, 세 단계 강화의 강발(强勃)보다도 커다랐다. 굳이 명칭을 붙이자면, 풀발(Full-勃)이라 불러야 마땅하리라. ​ [파워 스텟이 A->A+로 강화됩니다!] [파워 스텟이 A+ ->S로 강화됩니다!] [컨택 스텟이 B+ -> A로 강화됩니다!] [컨택 스텟이 A -> A+ 로 강화됩니다!] ​ 이제 싸울 무기는 갖췄다. 일시적이지만, 성묵은 전국구 홈런 타자인 박태제와 동급의 타격 능력을 손에 넣었다. ​ 그 증거가 바로 이거다. ​ 따악-!! ​ “………!!” ​ 초구부터 시원하게 돌린 성묵. 류택진의 초구 직구를 받아쳤고, 좌측으로 엄청나게 큰 타구가 날아간다. ​ [금성묵…!! 큽니다! 큽니다! 홈런이냐, 파울이냐…!!] [아앗, 파울, 파울입니다! 구장 모두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초대형 파울 홈런! 류택진 선수의 얼굴에 순간 핏기가 가셨습니다!] ​ -크아아아아아아아악 -ㅆㅂ 이게 안 넘어가?? -와 경기 바로 끝날 뻔했는데 ㅜㅜㅜㅜㅜㅜㅜㅜ -류택진이랑 차강훈 표정 가관이네 ㅋㅋㅋㅋㅋㅋㅋ -발딱 선 갤주는 아무도 못 막는다 ㅋㅋㅋㅋ 다 뒤졌다 ㄴ 아니 비유 표현인 줄 알았는데 ㄹㅇ이네 ㅁㅊ ㄴ 존재감 무엇 ㄷㄷㄷㄷㄷ 마운드에 있을 때는 어떻게든 카메라 워킹으로 가리던데 타석은 쩔수네 ㅋㅋㅋㅋㅋ ㄴ최근 관중석 보니까 수상할 정도로 연상 여자 팬들이 늘어나고 있던데, Hoxy…? -스윙 개 지린다 ㄷㄷㄷㄷ 이게 서울 시드 홈런 1위 클라스??? ​ “꺄으읏, 아까워어…!!” ​ 방방 뛰는 노아를 필두로 관객석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반대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한청고 측. ​ 그중에서 가장 극적으로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한 것은, 당연히 류택진 본인이다. ​ “하, 하하…!! 뒈질 뻔했다…!” ​ 초구부터 저렇게 완벽하게 대응할 줄이야. 아랫도리가 벌떡 선 금성묵은 기이할 정도로 더 강한 힘을 낸다는 낭설을 듣기는 했지만, 이건 완전히 다른 사람 아닌가. ​ 퍼엉--!! “볼…!” ​ 존 아래로 떨어지는 스플리터. 그러나 성묵은 반응하지 않았다. ​ 그 뒤로도 이어지는 치열한 공방. ​ 뻐엉--!! “볼…!!” ​ 따악! “파울…!!” ​ 직구, 커터, 스플리터, 슬라이더. 던질 수 있는 모든 공을 던진 류택진. ​ 그러나 성묵은 모두 골라내거나, 커트해냈다. 어느덧 둘의 승부는 10구째. ​ 경기장의 모두를 숨 막히게 하는 이 승부 속에서, 류택진은 그 어느 때보다 즐거웠다. ​ ‘이 정도 위협을 느낀 건 처음이다, 금성묵…!’ ​ 머릿속에서 아드레날린이 미친 듯이 분비된다. 얼굴에서는 숨길 수 없는 황홀한, 잔뜩 상기된 표정이 튀어나온다. ​ 누가 봐도 야구장에서 지을 표정이 아닌 류택진의 얼굴을 보고, 성묵은 때가 왔음을 느꼈다. ​ ‘떴구만, 그 표정.’ ​ 원작에서도 류택진은 1티어 특급 마무리다. 당연히 공략하기 어렵지만, 하나 돌파구가 있다. ​ 그건 바로, 자신을 긴장하게 만드는 강타자가 등장하면 저런 흥분한 표정을 짓는다는 것. ​ 그 뒤엔 무조건 특정 코스에 특정 구종을 던진다. 자신이 가장 자신있어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코스에 말이다. ​ ‘…몸쪽 낮은 존으로 파고드는 커터.’ ​ 성묵은 호흡을 다잡았다. 어디로 올지 안다고는 하지만, 류택진의 커터 스텟은 무려 S. ​ 타자 배트를 숱하게 부러트린 그의 커터는 알고도 치기 힘든 공이다. 그런데 성묵은 지금, 피식 웃었다. ​ ‘이제 알겠다, 마초원.’ ​ 직구는 ‘타악!’ 커터는 ‘스윽탁!’ ​ 처음엔 뭔 개소린가 싶었지만, 10구 가까이 보다 보니 느껴진다. 마초원의 말이 맞았다. 녀석의 말은 직접 겪은 타이밍과 일치했다. ​ “슬슬 끝내볼까, 이 경기.” ​ ‘이 공으로 끝낸다.’ ​ 금성묵도, 류택진도. 모두가 이번 공으로 경기를 마무리할 심산이다. ​ 강하게 키킹한 류택진. 그의 손에서 커터가 쏘아졌다. ​ 휘릭! ​ 몸쪽 깊숙이 들어오는 빠른 공. 홈플레이트 근처에서 면도날처럼 꺾이는 이 커터에 성묵의 배트가 헛돌 거라고 배터리는 확신했다. ​ ‘어…?’ ​ 그러나 성묵의 배트는 완벽히 그 궤적을 좇고 있다. 마치 이곳에 던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는 듯이. ​ 구종, 코스, 타이밍. 모든 것이 계산대로. 상대가 원하는 곳에 늘 강력한 공을 던질 수 있는 투수이기에, 성묵은 그 어떤 의심도 품지 않을 수 있었다. ​ ‘고맙다 류택진, 네가 특급 투수여서.’ ​ 따아악--!! ​ “………!!” ​ 구장에 울려 퍼지는 엄청난 파열음. 해설위원들조차 말을 잃었다. ​ 관중석의 모두가 타구를 쫓아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 성묵은 배트를 하늘 높이 던지고는 터벅터벅 걸었다. ​ 다른 이유는 없다. 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 터엉-! ​ 좌측 담장 상단에 꽂히는 대형 홈런. 성묵은 결과가 나오기 무섭게 포효했다. ​ “우효오오오오…!!!” ​ 경기를 뒤집는 굿바이 홈런.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해설진들은 미친 사람처럼 날뛰었다. ​ [이게, 이게 무슨 일입니까…! 역전 쓰리런!! 금성묵 선수가 경기를 완전히 뒤집어버립니다!!] [대이변, 대이변입니다!! 문혁고 세종기 진출…!! 한청고를 무너트리고 전국으로 향하는 것은 문혁고입니다!] [창단 첫 해 세종기 진출이라는 대업을 달성합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문혁고…!!] ​ “우와아아아아악…!!” “…미쳤어, 미쳤다고!!” “이거 현실 맞지? 꿈 아니지…?!” ​ 문혁고 측 관중들의 반응은 대체로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었다. 미친 듯이 방방 뛰거나, 엉엉 울거나. ​ 성묵의 세 여자들은 대체로 후자 쪽의 반응이다. 뜨겁게 달아오른 것은 현장뿐만 아니라, 온라인 또한 마찬가지다. ​ -씨빠아아아알 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 -갤주 역전 끝내기 쓰리런 미쳤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설마설마 했는데 와 이걸 ㅠㅠㅠㅠㅠㅠ -갤주 홈런 쳤는데 왜 가슴이 뛰지? 이거 설마…? ㄴ 이 글을 성묵게이 님이 좋아합니다. -캬 역시 국대 마무리~ (방어율 4점대) -금성묵! 금성묵! 금성묵! 금성묵! 금성묵! 금성묵! 금성묵! 금성묵!금성묵! 금성묵! 금성묵! 금성묵!금성묵! 금성묵! 금성묵! 금성묵!금성묵! 금성묵! 금성묵! 금성묵! -야 스 묵 대 스 묵 황 스 묵 파 워 쎅 스 묵 -류택진 내려 감독 씨발련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이미 경기 끝나서 내려오고 있다네요~ ㄴ ㅋㅋㅋ 차강훈 경질포 쑤아리 질럿 ㅅㅅㅅㅅㅅ ㄴ슬슬 감독의 의도가 보인다던 새끼들 다시 나와봐 ㅋㅋㅋㅋㅋ -와 창단 첫해 세종기 진출 ㄷㄷㄷㄷ 이거 다시 깰 팀 나오는 거 가능? ㄴ 앞으로 500년간 불가능할듯 ㅋㅋㅋㅋㅋㅋ ㄴㅋㅋㅋㅋ 애초에 창단팀에 저 정도 포텐 선수 모인 게 기적임 ​ 천천히 베이스를 도는 성묵. 그는 3루를 돌며, 홈플레이트 쪽을 바라봤다. ​ “오…?” ​ 살짝 걷힌 먹구름 틈새로, 커다란 빛기둥이 홈플레이트를 쬐고 있었다. 마치 성묵의 홈런을 하늘조차 축하하듯 말이다. ​ 그리고 그가 홈런을 치자마자 덕아웃에서 뛰쳐나온 동료들이 대기 중이다. 그가 홈을 밟는 순간 손에 든 물병을 쏟기 위해서. ​ “…참나.” ​ 피식 웃은 성묵. 한 걸음, 두 걸음 걷던 성묵은 이내 홈을 밟았다. ​ 그리고 많은 것들이 그의 위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 콸콸--!! 퍼버벅!! ​ “세종기 간다, 세종기…!! 씨이빠아아알…!!” “끄허엉, 성묵 형니이임……!!” “정말 위대한 홈런이오, 금성묵 동무…!!” ​ 흠뻑 쏟아지는 물벼락 위에, 동료들의 엄청난 타격이 쏟아진다. 성묵은 이대로 있다간 맞아 뒈지겠다 싶어 도망치기 시작했다. ​ “야, 잡아라…!!” “성묵 형, 아직 좀 더 맞아야 돼요…!!” ​ 끈질기게 쫓아오는 동료들을 보며, 성묵은 그 어느 순간 보다도 밝게 웃었다. ​ 최종 스코어 5:4 문혁고 세종기 진출. ​ 그 소식이 전해지자, 한국 야구계가 발칵 뒤집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