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말없이 타격 장갑을 쫙쫙 당기며 타석에 들어서는 성묵. 어느새 그에게서는, 강타자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오오라 마저 느껴졌다. ​ 꿀꺽- ​ 긴장감에 침을 삼킨 노진수. 좌타자인 지수용에 이어, 금성묵 마저 잡아내라는 특명을 받고 등판한 그였으나 그는 크게 긴장했다. ​ ‘젠장, 무서워…!!’ ​ 게다가 경기 영상을 보면, 중요한 상황이면 여지없이 홈런을 뽑아내는 미친 클러치 능력까지 보유하고 있다. ​ 애초에 류택진이 등판했어야 할 상황이다. 노진수는 괜히 감독과 류택진이라는 고래들의 싸움에 끼여 새우 등 터지는 신세는 되고 싶지 않았다. ​ ‘시팔, 자료 영상에 박제되는 건 죽어도 싫다고…!’ ​ 훗날 ‘문혁고 세종기 진출 허용 투수’ 따위로 영구 보존 되고 싶지 않은 노진수다. ​ 퍼엉-! ​ “베이스 온 볼스…!!” ​ 아주 교묘하게 포수의 오더보다 벗어나는 공을 던지며 성묵을 1루로 내보낸 노진수. 그에 성묵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 ‘엥……?’ ​ 큰 거 한방이면 경기를 끝낼 수 있는 상황이다 보니, 공 두어개 정도 보다가 ‘그것’을 쓸까 고민 중이었는데 상대 투수는 그와 승부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 일단 맞춰야 2루타를 치던 홈런을 치던 하지 않겠는가. 승부를 대놓고 피하는데 성묵이라고 뭔가를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 “…쩝.” ​ 그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입맛을 다시며 1루로 출루하는 것뿐이다. 이러한 투수의 소극적인 모습에 차강훈 감독은 극대노했다. ​ “저, 저 새끼가…!!” ​ 정교한 제구력의 노진수가 저런 식으로 스트레이트 볼넷을 줄 리가 없다는 걸 아는 차강훈 감독. ​ 그는 성을 내며 노진수를 바로 강판시켰다. ​ [아! 여기서 노진수 선수를 내립니다. 이번에야말로 류택진 선수를 내보내나요…!?] ​ 마음을 졸이는 한청고의 팬들. 그러나 감독의 옹고집은 여간 강한 게 아니었다. ​ [류택진 선수가…, 아니군요!! 우완 장세윤 선수가 등판합니다…!!] ​ 그동안은 뜻이 있겠지 하며 참고 있던 팬들. 3번이나 투수교체를 하면서도 류택진을 내지 않자, 그들은 결국에 폭발했다. ​ “야이 씨발, 차강훈 개새끼야…!!” ​ “우리가 니 투마카세 구경하러 온 줄 아냐…! 지랄 말고 류택진 내라고…!!” ​ 문혁고의 기세가 자뭇 심상치 않음을 느끼는 관중들. 그러나 차강훈은 여전히 지금의 태도를 고수했다. ​ ‘어차피 문혁고의 하위 타순은 세윤이조차 공략하지 못해.’ ​ 자신만만한 차강훈. 그는 부글부글 끓는 속을 삭이는 중인 류택진이 자신에게 굽히지 않는 이상, 결코 그를 마운드에 올릴 생각이 없다. ​ 따악! ​ “아웃…!” ​ ‘음, 그렇지, 그렇지.’ ​ 리동혁이 좌익수 플라이로 아웃되며 제 뜻이 맞았다고 확신하는 차강훈. 그러나 곧 그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일이 벌어졌다. ​ 따악! ​ [아, 8번 타자 서경수 쳤습니다…!! 우익수 앞에 뚝 떨어지는 안타!!] [1루 주자 금성묵 선수! 2루 돌았습니다! 카를로스 3루로 던집니다…!] ​ “세잎, 세이프…!!” ​ [금성묵 선수의 발이 더 빠릅니다…!! 1사에 주자 1,3루! 게임을 끝낼 찬스를 만드는 문혁고입니다!] ​ “우와아아악………!!!” ​ 열광의 도가니에 빠진 문혁고 측. 농구부 에이스 출신인 서경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관중석을 향해 오른팔을 우뚝 들었다. 아마 이렇게 중요한 안타를 쳐본 적이 없어 꽤 낯설기 때문이리라. ​ [최악의 위기를 맞이한 한청고…! 과연 여기서 차강훈 감독은 움직일 것인가!] ​ 한청고 측 덕아웃을 비추는 카메라. 차강훈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앉아있지만, 실상은 그 누구보다 벌벌 떨며 고민에 빠져있다. ​ ‘제기랄…!!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 문혁고의 저력을 과소평가했다. 한청고의 필승 불펜이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 정도까지 코너에 몰릴 줄이야. ​ 세종기를 위해 류택진 좀 길들이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게 생겼다. ​ ‘지금이라도 택진이에게 등판을 지시해…?’ ​ 하지만 ‘원칙’이랍시고 등판을 자처하는 류택진을 못 나가게 한 건 그 자신이다. 여기서 그걸 번복하는 순간 감독으로서의 위신은 땅을 길 게 분명하다. ​ ‘젠장, 내 위신이고 지랄이고 여기서 지면 모가지잖아…!’ ​ 계산이 선 차강훈. 문혁고에게 패배하며 창단 첫해 세종기 진출이라는 기록을 내주는 순간, 한청고의 이름은 그 맞상대로서 영원히 기록에 박제되게 된다. ​ 이대로 지게 된다면 패배의 주범은 뻔하다. 거지 같은 투수교체로 경기를 말아먹은 차강훈이 꼽히게 될 것임은 당연한 수순 아니겠는가. ​ ‘일단 급한 불부터 끄고 보자…! 나중에 따로 사과하면 어떻게든!’ ​ “감독님.” ​ “어, 어어?" ​ "죄송합니다, 제가 건방졌습니다." ​ "......!!" ​ "등판하게 해주십시오, 앞으로 그 어떤 상황이든 감독님이 지시하는 대로 마운드에 오르겠습니다." ​ 직각으로 허리 숙여 사과하는 류택진. 차강훈 감독은 놀라서 눈이 번쩍 뜨였다. 그리고는 속으로 쾌재를 내질렀다. ​ '나이스 타이밍!!' ​ 그는 근엄하게 헛기침하고는, 류택진에게 말했다. ​ "알았으면 됐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말, 들어봤지?" ​ "예." ​ "그 말 꼭 새겨두거라. 고등학교에서 천재랍시고 날뛰며 제멋대로 하는 놈들은 프로에 가서 전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내 애제자인 너는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해서 이걸 꼭 알려주고 싶었다.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지?" ​ "…예, 알 것 같습니다." ​ "그럼 바로 등판 준비하거라, 우리 팀의 마무리는 너니까." ​ "옙!" ​ 모자를 푹 눌러쓰고 빗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류택진. 그의 등장에 종묘 구장의 분위기가 일변하기 시작했다. ​ "류, 류택진…!!" ​ "드디어 나왔다, 류택진!!" ​ 절대적 수호신의 등장. 3년 동안 한청고 학생들을 단 한 번도 실망하게 한 적이 없었던 류택진이 등장하자, 한청고 측 관중석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 둥둥둥, 둥둥-!! ​ 커다란 북을 두들기며 깔리는 전주. 거기에 맞춰 취주악부 학생들이 트럼펫으로 우렁찬 소리를 뿜어낸다. 고등학생이지만 전용 등장곡까지 존재하는 류택진에게 갖는 한청고 학생들의 압도적인 믿음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 "류택진, 류택진, 류택진, 류택진…!!" ​ 지금의 위기를 금세 끊어달라는 듯 그의 이름을 연호하는 한청고 측 관객석. 성묵은 2루에서 슬쩍 그의 스탯을 엿보았다. ​ 띠링! ​ 이름: 류택진 국적: 대한민국 나이: 19세 (고3) 키: 183cm 몸무게: 81kg 소속: 한청 고등학교 스킬/ 언터처블(S+) : 세이브 상황에서 공의 구위가 상승합니다. ​잠재 키워드: 천투지체(EX) ​ ​# 투수 능력치 (*포텐셜) /좌투 스리쿼터 체력: C 제구: A (*A+) 직구: S+ (*S+) 구위: A+ (*S) 변화구: S (*S) ㄴ커터: S ㄴ스플리터: A+ ㄴ고속 슬라이더: A ​ '역시 전국 최고의 마무리인가.' ​ 금성묵의 투수 포텐셜이 전국 최고라고는 하지만, 체력을 제외한 공의 위력만큼은 류택진도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현재 순수 스텟만 따져보면 류택진이 비교하기가 미안할 정도로 차이가 엄청나다. ​ 이미 완성형인 류택진과, 빙의 후 한창 성장중인 성묵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하다. 1아웃에 주자 1,3루. 타석에 들어서는 건 9번 타자 이태경. ​ "후우우우!!" ​ 1아웃에 주자 3루. 이태경의 머리가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 '스퀴즈? 아냐, 무조건 실패할 게 분명해…!' ​ 3루수 최혁수를 비롯해 내야수들이 숨이 막힐 정도로 압박하고 있다. 어디 번트를 댈 거면 대보라는 듯이 말이다. ​ '외야로 무조건 띄운다...!' ​ 성묵이 다리가 빠른 만큼, 외야로 적당히 띄우면 성묵은 홈에 들어올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그 즉시 게임 셋. 문혁고는 세종기로 갈 수 있게 된다. 이번에야말로 타석에서 뭔가 해내서 수비 실책을 만회하겠다고 다짐하는 이태경. ​ 씨익- ​ 결연한 표정의 이태경을 보며, 류택진은 씩 웃으며 오른 다리를 들었다. ​ "꿈은 클수록 좋지." ​ 역동적으로 젖혀지는 허리. 뒷다리를 축으로 한껏 힘을 응축하더니, 이내 대포알처럼 쏘아졌다. ​ "물론 꿈에서 깨어났을 때 더 고통스럽겠지만!" ​ 뻐엉---!!! ​ "스, 스트라이크!!" ​ "......!!" ​ ".......!!" ​ 천둥 번개가 친 것 같은 굉음이 종묘 구장에 울려 퍼졌다. 화들짝 놀라 하늘을 올려다보는 관중들이 더러 나올 정도로 강렬한 파열음. 류택진의 직구는 그야말로 엄청난 위력을 자랑했다. 심판조차 당황해 한 템포 더듬다 스트라이크 콜을 외쳤다. ​ [165km!! 이게 정말 고등학생이 맞습니까! 등장부터 엄청난 직구를 꽂아버리는 류택진!] [이태경 선수가 얼어붙었습니다.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아무래도 난생처음 보는 공일 테니까요...!!] ​ '이, 이런 걸 쳐야 한다고?' ​ 정말 압도적인 직구는 타자의 기를 눌러버린다. 지금이 딱 그랬다. 류택진의 직구는 한 소년의 의지를 밟아버리기에 충분했다. ​ 뻐엉---!! ​ "스트라이크...!!" ​ "으윽....!!" ​ 배트가 헛도는 이태경. 전혀 타이밍이 맞지 않는다. ​ '그래도 쳐야 해. 어떻게든 성묵 형을 홈으로...!!' ​ 그러나 실력 차가 너무 컸다. 3구에 스윙한 이태경은 볼 수 있었다. 자신의 배트 아래로 훅 떨어지는 공을. ​ 퍼엉--!! ​ "스트라이크 아웃…!!" ​ "와아아아…!!!" ​ "역시 류택진!!" ​ 삼구삼진. 뚝 떨어지는 스플리터에 이태경은 헛스윙하며 삼진을 당했다. 등장하자 마자 상대 타자를 밟아 죽이는 압도적인 모습. 한청고 관객들은 이 모습을 그토록 바라고 있었다. ​ [삼구삼진! 뚝 떨어지는 스플리터에 이태경 선수의 배트가 속수무책으로 돌아갑니다...!!] [스플리터 구속이 151km가 나왔거든요? 고교 야구 평속보다도 훨씬 빠른 공을 일개 변화구로 던져버리는 류택진 선수의 위엄입니다!] [위기 상황에 등판한 고교 최강의 클로저! 이제 상대는 1번 타자 최아담! 과연 끝내기 안타일지, 11회로 향할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승부가 이어집니다!] ​ "되게 쪼끄맣네, 스트라이크 존이 꽤 좁겠는데." ​ 최아담을 보고 중얼대는 류택진. 키가 작은 만큼 스트라이크를 따내기 쉽지 않겠다 생각은 하지만, 그에게 크게 문제 되는 건 아니었다. ​ 뻐엉---!! ​ "스트라이크…!" ​ "뭣…!" ​ 화들짝 놀라는 최아담. 금성묵, 마초원, 장태산 등 최근 전국구 투수의 공을 가까이서 많이 본 그였지만 이건 격이 달랐다. 심지어 좌투수라 더욱 더 그 어려움이 배가되는 상황. 최아담은 숨을 가다듬으며 배트를 꽉 쥐었다. ​ "씨팔, 드루와…!" ​ "오호라?" ​ 흥미로운 표정의 류택진. 제2구가 던져졌다. ​ 따악-! ​ "파울…!!" ​ "크악!" ​ 손끝을 타고 오는 찌릿찌릿한 진동에 방방 뛰는 최아담. 류택진은 심판에게 새 공을 받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 "흠, 나름 한가닥 하는 작은 고추다 이거지." ​ 최아담의 컨택 능력이 나쁘지 않음을 간파한 류택진. 그는 상대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자신의 주무기를 보여주기로 했다. ​ "잘가, 친구." ​ 키킹하며 제3구를 던지는 류택진. 최아담은 존 복판으로 들어오는 공에 배트를 냈다. ​ '한가운데! 충분히 칠 수 있...!?' ​ 후욱! ​ 직구처럼 들어오더니, 홈플레이트 근처에서 면도날처럼 훅 꺾이는 공. 배트 중앙에 맞히려던 최아담의 의도와는 달리, 공은 배트의 목 부분에 맞으며 뭔가 부러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 빠각!! ​ 부러지며 마운드를 향해 날아가는 배트 조각. 류택진은 덤덤한 표정으로 쓱 피하고는, 마운드에서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말이다. ​ [배트 부러졌습니다! 피하는 류택진 선수! 공은 3루수 쪽으로 굴러갑니다!] [1루로 달려가는 최아담 선수! 그러나 최혁수 선수의 송구가 더 빠릅니다!!] ​ "아웃...!!" ​ 심판의 손이 올라가며 끝난 10회 말. 경기를 끝낼 천금 같은 찬스가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 이제 마운드 위에는 고교 최강의 클로저 류택진. 고교 통산 방어율 0점대. 3학년으로 한정하면 그 어떤 점수도 내주지 않은 그다. ​ 주자가 쌓인 상황에서도 뽑지 못한 점수를 이제는 오롯이 류택진을 상대로 뽑아내야 하는 상황. ​ "자자, 한 이닝 더 막고 점수 내면 그만이야...!" ​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 그런데도 쫄지 않았다. 이미 숱한 수라장을 거치며 여기까지 올라온 그들이다. 이번에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 순간 일이 터졌다. ​ 따악--!! ​ "..........!!" ​ 믿기지 않는 눈으로 뒤돌아보는 핫산. 그러나 이미 그가 힘껏 던진 투심은, 이미 하늘 높이 날아가고 있었다. ​ [아아, 박태제!! 배트를 하늘 높이 던집니다! 큽니다, 큽니다, 어디까지 갑니까!] ​ 타앙! ​ [전광판을 때리는 대형 홈런! 스코어 3대 2..!!] [최혁수 선수를 병살로 잡아낸 투심을 보자마자 담장 밖으로 넘겨버리는 박태제 선수! 정말 한청고의 기둥이라는 호칭이 전혀 모자라지 않습니다!] ​ "…너무 쉽군, 금성묵에 비하면 말이지." ​ "박태제! 박태제! 박태제!!" ​ 쩌렁쩌렁한 환호성을 받으며 베이스를 도는 박태제. 사실상 이제 경기는 끝난 셈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한청고 측 관객들이다. ​ "…핫산, 수고했다." ​ 투수교체를 위해 마운드에 오르는 명신우 감독. 이제 바통은 박찬준이 넘겨받는다. ​ 눈물이 핑 도는 걸 겨우 참으며 마운드를 내려가는 핫산, 관중석에서 지켜보는 마덕수는 혀를 찼다. ​ "쯧, 못 던진 공은 아니다만 상대가 나빴어." ​ 이미 타자로서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박태제다. 자신의 공을 믿는 건 좋지만, 볼넷을 각오하더라도 좀 더 조심스럽게 접근했어야 한다 생각하는 마덕수다. ​ "차박구 저 녀석, 많이 발전했는데 하필이면 비가 오는구만." ​ 너클볼러는 공의 회전에 몰빵하는 만큼, 비가 오는 날엔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그 뒤의 승부도 쉽지 않았다. ​ 따악! ​ [카를로스 쳤습니다! 좌중간을 완벽하게 가르는 타구...!!] [서경수 선수가 주워서 던져봅니다만, 이미 타자 주자는 2루까지 성큼성큼 걸어서 들어갑니다!] ​ "Yammy(맛있군)!!" ​ 연속으로 터지는 장타에 다시 터지는 환호성. 그래도 박찬준은 분투했다. 6번 타자 고은찬을 땅볼로 잡아내고, 7번 한이안을 외야플라이로 잡아냈다. ​ 타닥-! ​ "세이프...!!" ​ 물론 3루까지 진출한 카를로스의 태그업을 막을 순 없었고, 1점을 더 내주고 말았다. ​ "우오와아아앗...!!" ​ 더욱 목소리 높아지는 한청고 측 관객석. 박찬준이 8번 타자를 잡아내며 이닝을 끝내긴 했지만, 그들의 환호성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 [아아, 지금의 점수는 큽니다, 너무나도 큽니다앗...!!] [4대 2까지 경기를 벌리는 한청고! 종묘 구장은 지금 한청고 측 관중들의 함성으로 귀가 먹먹해질 지경입니다!!] ​ 2점 차 리드에 투수는 류택진. 1점 차도 다리 쭉 뻗고 봤을 텐데 2점 차라니. 한청고의 학생들 중 그 누구도 이걸 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 그리고 그건 고야갤의 유저들 역시 마찬가지. ​ -GG 칩니다~~~~ -이건 못 이김 ㅅㄱ -갤주 ㅈㄴ 잘했는데 더 못 보겠네 시발 ㅜㅜㅜ -한청고 강하긴 강하다. 강호 DNA가 따로 있는 건가. -차강훈 <- 이 새끼 재미까지 잡은 명장이면 개추 ㅋㅋㅋㅋㅋㅋ ㄴ 개추 ㅋㅋㅋㅋ 류택진 안 올리고 투마카세 하는 거 보고 치매 걸린 줄 알았잖슴~ ㄴ희망고문 존나게 시킨 다음 류택진 올려버리기~~~~ ㄴ 갑자기 감독님의 숨겨진 의도가 보인다 -올해 한청고 세종기 어디까지 올라갈 것 같음?? ㄴ작년처럼 최소 4강까진 올라갈 듯? ㄴ 나는 결승도 씹 ㄱㄴ하다고 봄 ㄴ 유성고, 제국고 이 두개가 너무 강해서 우승은 힘들 거 같긴 한데 ㅇㅇ - 님들아 경기 아직 안 끝남;; 문혁고가 역전할 수도 있잖음 ㄴ한점이면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품는데, 두 점 차잖아… ㄴ류택진한테 3점? ㅋㅋㅋㅋ 꿈 깨자 친구야 ​ 쏴아아아- ​ "끝이네요." ​ "그러게, 끝이지." ​ 관중석 뒷편 통로에 서서 우산을 쓴 채 경기를 지켜보는 젊은 여자와 중년 남자. ​ 부산 컵스 회장의 손녀이자 막내 스카우터인 윤지나, 창원 파이어리츠의 선임 스카우터 윤주훈이 그 정체였다. ​ “그런데 왜일까, 뭔가 일어날 것 같단 말이지…?” ​ “…예?” ​ 어이없어하는 윤지나. 그녀는 자신의 삼촌에게 되물었다. ​ "그 말은 류택진이 블론이라도 한다는 소리예요?“ ​ “가능성이 없진 않지.” ​ “고교 3년 통틀어 1실점 위로는 내준 적이 없는 투수에요. 그런 투수를 상대로 이기기 위해선 3점을 뽑아내야 하는데 말이 안 되잖아요?" ​ “말이 안 되는 게 어딨어, 류택진이 프로 상대로도 그 기록 유지할 수 있겠어?” ​ “…너무 비약이에요.” ​ "뭐, 한청고가 이길 확률이 훨씬 더 높다는 걸 부정하는 건 아냐. 그냥 한 번 지켜보자고, 어떻게 되는지." ​ 그렇게 말하면서, 윤주훈은 문혁고의 덕아웃을 슬쩍 쳐다봤다. 특히 그중에서도 금성묵 쪽을 말이다. ​ ‘뭔가 일어난다면, 필시 저 녀석 쪽이다.’ ​ 선수 보는 눈 하나는 작두 수준이라는 윤주훈이다. 그렇게 두 스카우터가 조용히 경기를 지켜보는 와중, 문혁고 덕아웃의 분위기는 가히 좋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 “……….” ​ “……….” ​ 고교 야구에 몸을 담은 사람 중 류택진의 무서움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워낙에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인데다, 전국 최고이자 국가대표 클로저 아닌가. ​ 11회가 시작될 때만 해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2점을 더 내준 지금은 두려웠다. ​ ‘할 수 있다!’ 라거나 ‘화이팅!’이라는 말조차 입에서 떼기 힘들었다. 그들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승리 가능성이 제로에 수렴한다는 것을. ​ 그 기나긴 침묵을 깬 것은, 명신우 감독이다. ​ “제군들, 한마디 할 테니 들어다오.” ​ 11회 말을 앞두고 모두의 앞에 우뚝 선 명신우 감독. 그의 일장 연설이 시작됐다. ​ “우선 두려울 거다. 패배의 그림자가 턱밑까지 드리우고 있는 데다, 상대 투수는 최강의 클로저. 듣기로는 3년 내내 블론을 해본 적이 전무하다지?” ​ “……….” ​ “그런데 제군들이 잊고 있는 게 하나 있다. 너희는 이미 그 누구도 걸어본 적 없는 길을 걷고 있단 거다. 창단 첫해 여기까지 온 학교는 전국 어디를 뒤져봐도 없다!” ​ “기록을 깨는 건 처음이 어렵지, 두 번은 어렵지 않다! 고교 통산 노블론? 강팀에서 호의호식 관리받으며 세운 그깟 기록보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세운 기록이 훨씬 더 대단하다…!!” ​ 콰앙!! ​ 덕아웃의 책상을 강하게 내리친 명감독. 그는 손을 타고 찌잉 울리는 통증을 꾹 참으며,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 “2점 내줬으면 다시 뽑으면 그만이다!! 제군들은 당연히 그럴 힘이 있다! 떠올려라, 너희가 여기까지 올라오며 눈물 흘리게 한 전국구 투수들을 말이다!” ​ 꿀꺽- ​ 선수들은 지금까지 거쳐온 투수들을 떠올렸다. 임태율, 이와사키 슌스케, 장태산, 세르게이 라스푸틴, 마초원, 류한울…. ​ 하나같이 ‘우리가 쟤를…?’이라는 이름이 나올 정도의 이름값을 가진 투수들이다. 그런데도 문혁고는 전부 이겨냈다. 그리고 여기까지 올라오지 않았는가. ​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끝까지 물고 늘어져라! 그리고 빈틈을 보이는 즉시 물어뜯어라…!! 우리는 세종기로 간다. 그 사실 하나만큼은 의심하지 말고 가슴속에 새겨라, 알겠나…!!” ​ “…옙!!” ​ 명신우의 말에 목소리 높여 답하는 문혁고 멤버들. 선두타자인 도도진을 필두로 타자들은 진지한 눈빛으로 덕아웃을 나섰다. ​ ‘나원참, 누가 악마의 주둥아리 아니랄까 봐.’ ​ 피식 웃으며 이 상황을 지켜보는 성묵. 그는 전광판을 바라보며, 11회 말을 시뮬레이션했다. ​ ‘승리를 위해 필요한 건 3점….’ ​ 2번 도도진부터 시작된 타순은 류지, 석운강, 지수용 순서로 이어져 그다음 성묵까지 이어진다. ​ ​ 투두두둑- ​ 덕아웃 밖으로 나간 성묵. 머리를 두들기는 빗줄기를 맞으며, 그는 마운드로 올라서는 류택진과 눈이 마주쳤다. ​ “아쉽군, 금성묵. 네 녀석도 잡아보고 싶었는데 말이지.” ​ 성묵에게 타석에 들어설 기회따윈 없을거라는 듯, 비릿한 미소를 짓는 류택진. ​ 그러나 성묵은 의심하지 않았다. 묘한 직감 같은 걸 느꼈기 때문이다. '내게 기회는 올 거다, 분명히.'​ 자신이 손수 모은 동료들이, 류택진과 맞붙을 기회를 무조건 만들어줄 것이라는 그런 직감을 말이다. 추욱- ​ 그러나 힘없이 처진 하반신. 지금 상태로는 류택진에게 대항하기 힘들다. 지금 성묵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단은 단 하나. ​ “…후우, 어쩌겠냐. 여기까지 왔는데.” ​ 이전 타석에서 쓰지 못했던 ‘최종 비기’. ​ 그걸 써버리면 한동안은 태양신맥 없이 F급 스킬로 빌빌대던 그 시절로 돌아가게 되겠지만, 지금 이 경기에 지면 어차피 모든 게 끝난다. 성묵은 결심을 굳혔다. 자신의 타석이 돌아오면, 무조건 '그걸' 사용하기로. ​ ‘…이 경기, 내 손으로 끝낸다.’ 조용히 의지를 불태우는 성묵. 어느덧 11회 말로 접어든 경기. ​ 경기의 승패를 가를 문혁고 최후의 공격이 이제 시작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