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가를 9회 초, 문혁고의 마지막 공격. 성묵은 타자들을 모아두고 한마디를 남겼다. ​ “내 부탁은 하나뿐이다, 애들아.” ​ “……?” ​ “어떻게든 출루해서 나한테 이어줘. 마초원을 내가 끝장낸다.” ​ “…!” ​ 확신에 가득 찬 성묵의 목소리에 침을 꿀꺽 삼키는 동료들. 그들은 이 눈앞의 남자가 지금껏 보여온 모습에, 이번에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성묵에게 잇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 이닝 첫 타자는 하위타순인 8번 타자 서경수부터 시작, 4번인 성묵까지 잇기 위해서는 마초원을 상대로 세 명 이상이 출루해야 하는 상황. ​ 나름 타석에 들어가 분발해 봐도, 서경수의 능력으론 마초원에게 유효타를 뽑아내기 쉽지 않았다. ​ 따악! ​ “아웃…!!” ​ “크윽….” ​ 힘없는 2루수 땅볼을 치며 아웃당한 서경수. 그 다음 타자인 수비 전문 요원 이태경은 수비 몰빵 스탯의 보유자답게, 마초원의 강속구에 배트가 따라가지 못하며 붕붕 대다 삼진을 당했다. ​ “…….” ​ “…….” ​ 순식간에 싸늘해진 분위기. 한창 열을 올리며 바짝 따라붙어 보기도 했던 문혁고지만, 아웃 카운트 하나면 올해 문혁고의 야구는 끝이 난다. ​ “…금성묵, 다시 한번 상대하고 싶었지만 쉽진 않겠군.” ​ 절망스럽기 그지없는 상황. 여기서 최아담이 타석에 들어섰다. ​ “……흠, 으흠!!” ​ 콧김을 뿜어내며 땅을 고르는 최아담. 그는 어떻게든 출루하겠다는 의지가 강렬했다. ​ 뻐어엉!! ​ "으헛...!!" ​ 높은 패스트볼에 놀라며 물러난 최아담. 160km에 달하는 공의 빠르기는 과연 엄청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도 잠시라는 듯, 눈빛을 빛내며 다음 공을 기다렸다. ​ ​ 따악! ​ 2구에 노린 듯 배트를 휘두른 최아담.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면, 이번엔 극단적인 다운스윙으로 공을 찍어 눌렀다는 거다. ​ 크게 바운드되는 3루수 땅볼, 꽤나 크게 튀긴 공은 3루수가 훌쩍 뛰어올라서야 잡아낼 수 있었다. ​ 그렇게 1루로 송구하며 3루수는 깜짝 놀랐다. 어지간한 타자는 전부 잡아낼 수 있을 타구지만, 최아담은 이미 1루에 거의 도착해 있었기 때문이다. ​ “세잎, 세잎…!!” ​ “으랏챠챠챠앗……!!!” ​ 내야 땅볼로 출루하며 희망의 불씨를 살린 최아담. 다시 문혁고 측 관중들이 응원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 일단 출루한 이상, 가만히 있을 생각이 없는 최아담은 초구부터 바로 2루로 스타트를 끊었다. ​ “2루, 2루…!!” ​ “큭, 콩알만 한 게……!!” ​ 마초원의 직구를 잡아들고는 바로 2루로 송구하는 하후동. 나름 동 타이밍으로 보였지만, 완벽한 타이밍에 스타트를 끊은 최아담이 한 템포 더 빨랐다. ​ “세잎…!!” ​ “흐하, 뒈지는 줄 알았네!!” ​ 특유의 다리로 1루에 진출하더니, 순식간에 득점권에 진출한 최아담. 여차하면 3루까지 가버리겠다는 듯 깐족이기 시작했다. ​ “쓰읍….” ​ 다소 불편한 기색을 보이는 마초원. 하후동은 어차피 2아웃에 점수 차도 크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만, 저런 타입을 그닥 좋아하지 않은 마초원은 신경이 꽤나 가는 모양이었다. ​ 주자에 신경이 빼앗기면 타자에게 소홀해지기 마련. 도도진은 제2구, 존에 들어오는 포크볼을 완벽하게 받아쳤다. ​ 따악! ​ [아, 도도진 선수의 타구가 우익수 앞에 뚝 떨어집니다! 최아담 선수는 3루 돌아 홈으로…! 세잎, 세잎입니다!!] [우익수 보르긴 선수는 엄청난 강견 중 하나인데요! 여유 있게 홈으로 들어오는 최아담 선수입니다! 엄청난 속도군요!] [이래서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하는 것일까요…! 아웃 카운트 단 하나를 남겨두고 한 점 따라붙는 문혁고입니다! 스코어는 11대 8!] ​ “마초원이라, 오늘 붙게 될 줄이야.” ​ 마치 먹잇감을 바라보듯 마초원을 바라보는 류지. 오랜만에 용혈이 발동된 그는 한 스텟 올라간 파워 스텟을 뿜어내며 타석에 들어섰다. ​ 그는 성묵을 슥 쳐다보며, 흐릿한 미소와 함께 손을 쓱쓱 휘저었다. ​ "…?" ​ 의미를 알 수 없는 제스처에 고개를 갸웃하는 성묵. 의미는 다음과 같았다. ​​ “성묵아, 나도 많이 굶주렸다." "이번은 양보 못 한다, 이거야…!!” ​ 따악!! ​ 몸쪽 깊숙한 직구를 기다렸다는 듯 후리는 타카히나 류지. 우측으로 쭉쭉 뻗어나가는 공은 담장 상단을 때리며 튀어나왔다. ​ [도도진 선수 뜁니다! 홈까지 갈 수 있습니까! 아, 멈춤 지시를 받고 멈추어 섭니다!] [방금 엄청난 타격 스킬이었거든요…!? 어지간한 구장이었으면 무조건 넘어갔습니다! 타카히나 류지 선수가 마초원을 상대로 2루타를 뽑아내며 희망의 불씨를 살려 나갑니다!!] ​ ​"쓰읍, 넘어간 줄 알았는데." ​ 탄식하는 류지. 손맛 좀 보려 했는데 2루타에 그친 게 상당히 아쉬운 모양이다. ​ 어찌 됐든 주자 2, 3루의 황금 같은 찬스가 만들어진 상황. 성묵은 타격 장갑을 쫙 잡아당기며 타석에 들어섰다. ​ [운명의 장난일까요! 큰 거 한방이면 동점까지 가능한 상황에, 타석에 들어서는 건 금성묵 선수입니다…!!] [금성묵 대 마초원, 마초원 대 금성묵! 오늘 경기의 승패를 결정지을 매치업이 성사되는 순간입니다!!] ​ “금성묵, 금성묵, 금성묵, 금성묵!!” ​ “마초원, 마초원, 마초원, 마초원!!” ​ 각자 선수의 이름을 부르며 열기를 띄워가는 응원전. 최고의 피날레를 장식할 수 있는 이 순간에 마초원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 "...하하, 바라던 바다. 금성묵!!" ​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성묵과 상황이 바뀌어 투수 대 타자로 대결하게 된 게 못내 기쁜 듯한 눈치다. 그의 투구 수는 이제 한계에 달하고 있었기에, 성묵이 사실상 마지막 타자라고 보는 게 맞았다. ​ 2사에 주자는 2, 3루. 굳이 주자를 견제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기에, 마초원은 크게 와인드업하며 초구를 던졌다. ​ 뻐엉!! ​ "스트라이크...!!" ​ 160km의 강속구. 바깥쪽에 꽂히는 직구에 꿈쩍하지 않는 성묵. 아마 저 코스는 쳐봤자 좋은 타구를 만들기 힘들다는 계산 하에 내린 선택이리라. ​ "볼...!" "볼!!" ​ 그 뒤에 떨어지는 포크와 하이패스트볼을 모두 골라낸 성묵. 제4구에는 배트를 휘둘렀다. ​ 따악!! ​ "파울...!" ​ 포크를 노려서 쳐봤지만, 뒷그물을 때리는 파울. 제 5구인 슬라이더의 제구가 빗나가며 풀카운트. ​ 이제 마초원의 투구 수는 49개. 그가 던질 수 있는 공은 단 하나다. ​ 풀카운트까지 몰린 상황. 이제 마운드 위에서 마초원에게 허락된 공은 단 하나. ​ 여기서 마초원은, 다시 한번 모두가 예상치도 못한 행동을 저질렀다. ​ [아앗...!? 마초원 선수, 글러브에서 공을 꺼내서 앞으로 내밉니다! 저건 설마!? [네! 직구 그립입니다…!! 자기도 금성묵 선수처럼 직구를 던지겠다고 모두에게 예고하고 있습니다…!!] ​ 예고 직구. 거짓말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근엄한 표정으로 공을 내미는 마초원. ​ “이런, 시팔…!? 초원이 저 자식, 지금 뭔 개짓거릴 하는 거야…!!” ​ ​깜짝 놀라 일어나는 유휘웅 감독. 이런 중요한 국면에, 어디 열혈 만화에나 나올 법한 짓거리라니. 그의 입장에선 아연실색할 정도로 미친 짓거리였다. ​ 하지만 이미 말릴 수 없다. 애초에 마초원은 한 번 꽂힌 건 황소고집으로 밀고 가는 스타일인데다, 조금 전 대결에서 괜히 끼어들었다가 안 좋은 결과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유휘웅 감독이 손가락만 빨며 지켜볼 수밖에 없는 그때, 성묵은 예상했다는 듯 사악하게 웃었다. ​ '저럴 줄 알았지.‘ ​ 마초원이란 캐릭터는, 성묵의 ‘예고 직구’같은 멋있는 짓을 혼자 하게 놔둘 사람이 아니다. 물론 남들 눈에는 미련한 짓이지만, 더 강한 힘을 숭상하는 그의 입장에선 참으로 쿨한 행동. ​ 이전 이닝에서 성묵이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직구를 예고하고, 실제로 던졌던 가장 큰 이유가 여기 있었다. 이 순간을 위해 깔아둔 포석을 회수할 시간이 다가왔다. ​ "금성묵, 이번에야말로 네 녀석을 힘 대 힘으로 제압하겠다!!" ​ "아, 안돼...!!" ​ 쐐애액!! ​ 유휘웅의 샛된 비명을 뒤로하고, 마초원의 강속구가 그의 손끝을 떠났다. 그리고 뿜어져 나오는 성묵의 배트. ​ 상대를 믿지 못한 마초원과, 상대를 온전히 믿은 금성묵. ​ 승부의 세계에서 ‘상대를 믿는다’라는 단어만큼 어색한 일도 없겠지만, 이번만큼은 그 차이가 승부를 갈랐다. ​ 따악!! ​ "........!!" ​ 성묵의 배트에 공이 맞는 순간, 마초원은 가슴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그리고는 뒤를 돌아보며 느꼈다. 자신이 패배했음을. ​ [아아악!! 쳤습니다! 큽니다! 큽니다앗!! 어디까지 갑니까앗...!!] [우측 담장을 넘어가는 금성묵 선수의 동점 쓰리런 홈런!! 9회 초에 승부를 원점으로 돌리는 천금 같은 홈런이 터집니다! 8점 차까지 뒤졌던 경기를 결국에 동점으로 만드는 문혁고! 미친 경기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 거의 발광에 가까운 상태로 광분하는 해설위원들. 그리고 광분 상태에 접어든 건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 -갤주 씨발 미쳤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성묵 업! 성묵 업! 성묵업! 성묵업!성묵 업! 성묵 업! 성묵업! 성묵업!성묵 업! 성묵 업! 성묵업! 성묵업!성묵 업! 성묵 업! 성묵업! 성묵업!성묵 업! 성묵 업! 성묵업! 성묵업!성묵 업! 성묵 업! 성묵업! 성묵업! -갤주 오늘 그냥 날이네 ㅋㅋㅋㅋㅋㅋ 신들렸다 ㄹㅇ -만리런+쓰리런으로 혼자 7타점? 이게 고딩이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민증 한 번 까보자 ㅇㅇ 솔직히 갤주 잘생기긴 했는데 좀 노안임 ㄴ님 지금 태닝한 사람= 노안이라는 거임?? -저 새끼 저거, 자기도 할 수 있답시고 직구 예고했다가 개쳐맞네 ㅋㅋㅋㅋㅋㅋ 새끼 존나 순수하노 ㅋㅋㅋ ㄴ마초원: "직구 간다!" (쳐맞음) ㅋㅋㅋㅋㅋㅋ 아니 이 새끼 개그함? ㅋㅋㅋㅋㅋㅋㅋ -고교야구 수준 왤케 높냐?? 존나 재밌네;;; ​ "크하하, 내 완패로군...!" ​ 허탈한 표정으로 쓴웃음을 짓는 마초원. 오늘 투수로서도, 타자로서도 금성묵에게 완전히 패배해버렸다. 그는 결국 한계 투구 수인 50개를 전부 채우고 강판당했다. ​ [결국 동점을 허락한 채로 마운드를 내려가는 마초원 선수입니다.] [오늘 홈런도 치고, 좋은 피칭을 보여주는 등 활약한 마초원 선수입니다만, 금성묵 선수 상대로는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이었습니다. 참으로 아쉽겠는데요.] ​ 그 뒤의 투수도 나름 팀 내 3위 투수라곤 하지만, 이미 불이 붙은 문혁고의 타선을 막아내기는 역부족이었다. ​ 따악!! ​ [아, 석운강 선수의 2루타!!] ​ 따악--! ​ [아앗, 이 국면에서 터지는 지수용 선수의 투런 홈런!!] ​ 따악!! ​ [서경수 선수의 타구가 파울 라인을 타고 빠져나갑니다! 이동혁 선수가 홈인하며 스코어는 14대 11!] [이번 이닝 무려 7점을 뽑아내며 대역전에 성공하는 문혁고입니다...!] ​ [이대로 경기가 끝나면, 문혁고는 세종기 진출 티켓을 가지고 한청고와 맞붙게 됩니다! 남은 아웃카운트는 단 세개! 과연 최후에 웃는 승자는 누가 될 것인지!!] ​ 이제 9회 말, 문혁고의 정규이닝 마지막 수비. 마운드 위에 오른 것은 문혁고의 수호신, 리동혁이다. ​ “우우우우우……!!” ​ “꺼져라……!!” ​ 터져 나오는 야유. 리동혁은 관중석을 쓱 훑어보고는, 그 원인을 기민한 눈치로 알아차렸다. ​ ‘당에서 사람을 푼 모양이로군.’ ​ 수령의 사생아인 리동혁은 존재 자체가 당의 치부. 그가 빠르게 예선에서 탈락해서 대회에 얼굴을 비추지 않는 게 그들 입장에선 가장 달가운 결말일 터. ​ ‘…인민의 싱커가 견제되기는 하는 모양이지?’ ​ 어깨를 빙빙 돌리며 최종 점검하는 리동혁. 여전히 야유 소리와 비난의 목소리가 그의 귀를 때렸다. ​ “저저, 북한에서 내려온 빨갱이 녀석이 신성한 고교야구를 더럽힌다!!” ​ “네 나라로 꺼져라, 이 간첩 자식아!!” ​ 대관령고 측 관중석에서 열심히 선동하며 야유의 크기를 더 키우는 정체불명의 사람들. 그러나 문혁고 측도 가만히 있는 건 아니었다. ​ “이동혁, 이동혁, 이동혁, 이동혁……!!” ​ 노아의 제스처에 맞춰 그의 이름을 연호하는 문혁고 측 관중들. 맞불을 놓은 양 진영의 응원전 속에서, 리동혁은 피식 웃었다. ​ “다들 고맙소.” ​ 눈을 감더니,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눈을 뜨는 리동혁. 크게 와인드업하며 잠수함처럼 스르륵 가라앉는 그의 팔. 이내 엄청난 속도로 솟구치는 공은 타자가 움찔하는 사이, 석운강의 미트에 볼이 도달했다. ​ 퍼엉!! ​ “스트라이크…!!” ​ “우와아앗!!” ​ 152km의 직구. 땅에서 솟구치는 듯한 리동혁의 공들은 처음 보는 타자 입장에선 마구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는, 압도적인 ‘생소함’을 지니고 있었다. ​ 따악! ​ “아웃…!!” ​ 그의 싱커를 쳐보았지만, 하염없이 류지 측으로 굴러가는 땅볼. 부드럽게 1루로 송구하며 원아웃. ​ 따악! ​ “…큭!!” ​ 다음 타자 역시 내야 땅볼인 건 마찬가지, 최아담에게 무난하게 잡힌 공은 어느덧 1루수 이태경의 글러브에 빨려 들어가며 투아웃. ​ 이제 남은 아웃카운트는 하나. 문혁고 측 관객석은 점점 더 미친 듯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리동혁은 왠지 모르게, 점점 더 힘이 솟아오르는 걸 느꼈다. ​ 휘리릭!! 퍼엉…! ​ “스트라이크…!!” ​ “크윽!” ​ 2번 타자 하후동의 배트가 헛돌며 카운트는 원 스트라이크. 리동혁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제 손을 바라봤다. ​ ‘이건, 설마….’ ​ 뭔가를 느꼈지만, 아직은 검증이 더 필요한 상황. 동혁은 2구 역시도 존 밖에 뚝 떨어지는 싱커를 뿌렸다. ​ 부웅!! ​ “스트라이잌…!!” ​ 어느덧 카운트는 0-2. 이제 리동혁은 확신할 수 있었다. ​ ‘…그렇군. 나를 믿어주는 동료들, 그 다음은 나를 믿어주는 관중들이었나.’ ​ 동료에게 감동을 주고 신뢰를 얻으면, 자연히 경기를 지켜보는 관중들에게도 신뢰를 얻게 된다. 그리고 그 믿음을 바탕으로 투수는 더욱 강해진다. ​ 이것이 어머니가 말한 ‘인민의 싱커’가 가진 선순환의 굴레. 리동혁은 마치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 ​ 그는 다시 한번 관중석을 올려다봤다. ​ “이동혁, 이동혁, 이동혁, 이동혁………!!” ​ 저들의 믿음이, 외침이, 눈빛이, 그를 더 강하게 만든다. 그 사실은 그가 마운드 위에 있는 이상, 절대로 변하지 않으리라. ​ 띠링! ​ [리동혁의 싱커 스텟이 A+ ->S 로 강화되었습니다!] ​ ‘……시팔, 뭐지?’ ​ 대뜸 리동혁이 관객석 쓱쓱 보고는 ‘으헛!!’ 하는 표정을 짓더니, 뜬금 싱커 스텟을 각성해버렸다. 다소 요상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지만, 성묵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흐린 눈을 뜨기로 했다. ​ ‘마지막 공은 역시 그거겠군.’ ​ 성묵은 저 기분을 누구보다 잘 안다. 방금도 그 역시, 직구 스텟 S를 갖기 무섭게 펑펑 써대지 않았던가. 고2에 불과한 리동혁 역시 마찬가지. 이번에 던질 결정구는 뻔했다. ​ 휘리릭!! ​ “………!?!” ​ 안 그래도 괴랄한 싱커가, 한층 더 지랄맞은 무브먼트로 다가온다. 하후동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 배트를 휘둘렀다. 그리고 누구도 예상 못한 소리가 구장에 울려 퍼졌다. ​ 빠각!! ​ 배트가 부러지며 투수 앞으로 힘없이 구르는 땅볼. 리동혁은 아주 여유롭게 공을 잡아들더니, 1루를 향해 뿌렸다. ​ “아웃……!!” “게임 셋! 최종 스코어 14대 11! 승리자는 문혁 고등학교!!” ​ “우와아아아악!!!” “이겼다, 씨이팔!! 우리가 이겼다고!!” ​ 땅바닥에 주저앉아 기뻐하는 야수들, 그리고 그라운드로 뛰쳐나오는 문혁고 덕아웃의 선수들, 그리고 승리의 순간에 객석에서 펄쩍 일어나 승리를 제 일처럼 기뻐하는 관객들까지. ​ 다 내줬다고 생각한 경기인 만큼, 승리의 과실은 참으로 달콤했다. ​ “……흠!” ​ 삼자범퇴로 마지막 이닝을 막아낸 리동혁. 그는 감정 표현이 거의 없던 평소와 달리, 주먹을 불끈 쥐며 기쁜 감정을 표했다. 그리고 그걸 게슴츠레 바라보는 석운강. ​ “이, 이건….” ​ “한층 더 성장하셨군요, 동혁 시주. 싱커를 받아보고 알았습니다.” ​ “…역시 알아차렸습니까, 운강 동무의 눈은 못 속이겠구려.” ​ “다음 경기에도 잘 부탁합니다, 아미타불.” ​ “아아, 이쪽이야말로 잘 부탁하겠소.” ​ 그렇게 팀 내에서 말 수가 가장 적은 축에 속하는 배터리가 서로의 손을 꽉 마주 쥐며 승리를 만끽했다. 그리고 오늘의 MVP, 성묵은 스텟 상승 보상을 확인할 겨를도 없이 기자들의 무수한 질문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 “금성묵 선수, 한국 팀 중에 선호하는 팀이 있으십니까……!!” “프로에 가서도 이도류를 계속하실 생각입니까! 아니시라면 투수와 타자, 어떤 쪽을 더 선호하시는지!!” ​ “다 답해드릴 테니, 한명씩 부탁합니다. 한명씩…!!” ​ 승자의 권리를 문혁고가 누리는 동안, 관객석 구석에서 선글라스를 낀 채 이 상황을 지켜보는 푸른 머리카락의 두 남자가 있었다. ​ “이건 예상 못했는데, 그치 형?” ​ “그래, 설마 그 대관령고가 우릴 만나기도 전에 탈락할 줄이야.” ​ 두 남자는 서울 최강, 한청고 전력의 핵심 중의 핵심인 ‘류씨 형제’다. ​ 고교 우완 선발 중 TOP3에 항상 꼽히는 에이스 류한울. 그리고 자타공인 고교 최강 마무리, 어릴 때부터 모든 연령대의 국가대표 마무리를 놓친 적이 없는 류택진. ​ ‘두 사람은 문제아지만 최강’이라는 문장이 그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게 이 쌍둥이 형제들이다. 몇 분 늦게 태어난 걸로 동생이 된 류한울 쪽이 선발투수인 만큼, 에이스 취급은 받았지만 알 사람들은 다 안다. ​ 사실 가장 강한 투수는 형인 류택진 쪽이라는 것을. 동생인 한울 역시 그걸 잘 알고 있었고, 형인 택진을 꽤나 존중했다. ​ “택진이 형, 어땠어?” ​ 한울의 물음에 잠시 생각에 잠긴 류택진. 그는 이윽고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 “…확실히 좀 놀랐어. 문혁고가 내 생각보다 훨씬 강했거든.” ​ “오, 형이 이렇게 좋은 평가 하는 건 오랜만이네.” ​ 나름 놀라는 류한울. 류택진은 어지간한 팀은 언제든 밟아 죽일 수 있는 개미 취급하기에, 문혁고에 대한 평가는 그의 입장에서 꽤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 “뭐, 어디까지나 생각보다 강하단 것뿐.” ​ 휘이잉!! ​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휘날리는 푸른 빛 머리카락 사이로, 류택진이 씨익 웃었다. ​ “우리가 훨씬 더 강해, 세종기에 가는 건 우리다.” ​ 세종기 티켓은 단 하나. 자타공인 서울 최강 한청고, 돌풍의 주인공인 문혁고. ​ 과연 누가 이기고 그 티켓을 거머쥘 것인지. 모든 것은 며칠 뒤, 이곳 종묘 구장에서 결정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