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문혁고, 확실히 심상치 않지?” ​ “맞아, 이제는 무시할래야 무시할 수가 없을 만큼 존재감이 커졌단 말이지.” ​ 신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화력과 투수력을 모두 지닌 문혁고. 신생 주제에 강호고에게 어떻게 비비냐! 라고 하기엔 이미 금강고와 기린고를 꺾고 올라온 그들이다. ​ 아무리 대관령고가 강팀이라지만, ‘혹시 문혁고라면…?’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법하다. 문혁고의 돌풍에 대해서는 해설위원들 역시 흥미가 있는지, 경기 시작에 앞서 꽤나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내뱉었다. ​ [경기에 앞서 각 팀 전력 분석 부터 해보겠습니다. 문혁고 타순의 핵심이라 하면, 역시 ‘금석류 트리오’를 빼놓을 수가 없겠죠?] [최근 네티즌들이 문혁고의 중심 타순 세타자를 엮어 그렇게 부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현재 서울 시드 클린업 중에 가장 많은 홈런을 합작하고 있죠?] ​ [예, 금성묵 선수가 6홈런, 석운강 선수가 4홈런, 타카히나 류지 선수가 3홈런으로 총 13개의 홈런을 합작 중입니다…!] [엄청난 페이스입니다. 문혁고는 고작 4경기밖에 치르지 않았는데요…!!] ​ 나란히 서서 경기장을 바라보는 금성묵, 석운강, 류지를 조명하는 카메라. 이윽고 옆에 근엄하게 서 있는 명신우 감독을 조명한다. ​ [과거의 멍에를 뒤로 하고, 문혁고의 돌풍을 지휘하고 있는 명신우 감독입니다. 오늘은 타순을 이전 경기와 다르게 약간 손을 봤는데요?] ​ [예, 대회 중 1번부터 6번까지는 변화를 준 적이 없던 명신우 감독이 이번에는 약간의 조정을 거쳤습니다. 오늘은 류지 선수가 3번, 금성묵 선수가 4번, 석운강 선수가 5번에 배치됩니다! 이유가 있을까요…?!] ​ [선구안이 좋은 류지 선수를 앞에 붙여서, 최근 엄청난 타격감을 뽐내는 금성묵 선수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의도로 보입니다! 이제 다른 타자들에게 우산을 씌울 수 있을 만큼, 금성묵 선수의 존재감이 커진 것도 하나의 이유로 보입니다.] ​ 그 뒤에는 핫산을 조명하는 카메라. 명신우 감독에게 뭐라뭐라 이야기를 듣고 있다. ​ [아, 오늘의 선발 투수인 1학년 하산 이크발 선수입니다. 지금까지 꽤 좋은 피칭을 보여줬었죠?] ​ [한빛고와 금강고를 상대로 괜찮은 피칭을 보여줬던 하산 선수입니다만, 오늘 처음으로 진정한 의미로 시험대에 오르게 됐습니다. 과연 서울권 최강 타선이라 꼽히는 대관령고를 상대로 어떤 피칭을 보여줄지…!!] ​ “핫산아, 딱 4이닝만 던져보자. 4이닝…!” ​ “네, 감독님!!” ​ 오늘 핫산의 제한 투구 수는 60개. 저번에 타구에 맞은 부상이 온전하게 낫지 않은 만큼, 딱 그만큼이 한계였다. ​ ‘저런 식으로 의사가 정해준 수치는 무조건 지키는 게 좋단 말이지.’ ​ 게임을 설계할 때 의도한 것인지, 저렇게 한계 투구 수를 전문가가 정해주면 그게 정말로 투수의 한계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 이상은 한구한구 던질 때마다 부상 확률이 곱절로 높아지니 말이다. ​ “핫산이 4이닝 2실점 정도만 해준다면….” ​ 그 뒤는 막강한 타순이 어떻게든 해줄 거라 믿는 명신우 감독. 어쩔 수 없이 리동혁이 갈리긴 하겠지만, 우선은 어떻게든 오늘 경기에서 이긴 뒤 성묵에게 바통을 넘겨야 한다. ​ “플레이 볼…!!” ​ 그렇게 시작된 경기. 문혁고와 대관령고의 운명을 결정지을 경기가 시작됐다. ​ ​ ###### ​ ​ 경기가 시작되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문혁고의 남학생 둘은 급히 종로3가역에서 뛰쳐나왔다. 그들은 종묘 구장을 찾아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 “저쪽이다, 저쪽…!!” ​ “아오, 왜 성균관에서 안 하는 건데…!” ​ “고교 야구 하루 이틀 보냐!? 5차전부터는 무조건 종묘잖아!” ​ “허억, 헉, 시발놈아, 우리 학교에 야구단이 첨 생겼는데 모를 수도 있지….” ​ 성균관 구장으로 착각하여 지하철을 잘못 탄 탓에 도착시간에 늦은 그들. 어느덧 종묘 구장의 입구에 들어서자, 경기장 안에서 울려 퍼지는 함성이 그들의 귀를 때렸다. ​ “와우씨, 함성소리 뭔데? 이거 벌써 뭔 일 난 거 아니야…!?” ​ “설마, 금성묵 걔 또 홈런 친 거 아니야…!?” ​ “오, 그럴 수도 있겠는데?” ​ 후다닥 좌석 통로에 들어가 경기장을 내려다본 둘. ​ 그들은 곧 마주하게 되었다. 기대와 멀리 떨어진, 아주 잔혹한 현실을. ​ 대관령고 : 문혁고 8 : 0 ​ 3회 말, 스코어는 8대 0. 만루 홈런을 치고 유유히 베이스를 도는 마초원. 마운드 위의 핫산의 고개가 축 처져있다. ​ “…뭐, 뭐냐 이 상황은?” ​ “초반부터 게임 터졌는데…? ​ 문혁고는 초반부터 하염없이 무너져 내렸다. ​ [아, 하산 이크발 선수. 경기 초반부터 4개의 홈런을 얻어맞습니다…!] [이번 이닝에 얻어맞은 만루홈런으로 벌써 8점 차, 이건 많이 큰데요.] [도서관에라도 온 듯이 조용해진 문혁고 측 객석입니다. 벌써 자리를 뜨는 학생들도 뜨문뜨문 보입니다.] ​ “이히히힝…!!” ​ 홈런을 터트린 뒤 동료들과 말 울음소리 세레모니를 하는 마초원. 너희들의 좋은 시간은 여기까지라고 말하는 듯, 경기 초반부터 대관령고는 엄청난 점수 차로 문혁고를 따돌렸다. ​ [대충격입니다, 이 정도로 핫산 선수가 무너질 거라는 건 문혁고의 계산에는 없었을 텐데요.] [충격이 커 보입니다, 문혁고 선수들…!] ​ 물론 대부분의 문혁고 관계자는 예상 못하고 있었지만, 불안감을 가진 사람은 존재했다. 그중에는 당연히 성묵과 도연이 있었다. ​ ‘핫산 저 녀석, 저번 경기에서 보여준 투기를 전혀 찾아볼 수가 없잖아…?’ ​ ‘하산 선수의 폼이 이전 경기와 미묘하게 달라. 부상 탓에 밸런스가 흔들린 건가…?’ ​ 무상고 전에서 타구에 맞으며 얻은 약간의 부상이 나비효과를 만들어냈다. 60구 안에 많은 이닝을 소화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핫산에게 경기를 즐기지 못하게 만들었고, 미묘한 어깨의 불편함은 그의 구위를 저하시켰다. ​ 그 결과가 이거다. 3회 말에 스코어는 0:8. 신생 고교에게 전의를 상실하게 만들기엔 충분한 스코어다. ​ -gg~ 게임 터졌네 씨~발 -이게 야구냐? ㅋㅋㅋㅋㅋ 경기 초반부터 8대떡 ㅋㅋㅋㅋㅋ 눈을 의심했다 ㅋㅋㅋ -걍 중계 껐다 ㅅㄱ ㅋㅋㅋㅋㅋㅋㅋ 시간 아깝다 ㄹㅇ -갤주 불쌍해서 어떡하냐 저딴 선발 호소인 외노자 땜에 대회 떨어지곸ㅋㅋㅋㅋㅋㅋ -솔직히 문혁고 이 정도면 졌잘싸 인정? 신생 치곤 많이 올라왔지 ㅇㅇ ㄴ 홈런 4방 쳐맞고 떡실신 당했는데 졌잘싸는 니미 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 문혁고 응원하는 내 인생이 레전드다 씨발 ㅋㅋㅋㅋㅋ 오늘부로 탈갤함 ㅅㄱ (내일 다시 올 예정) -감독 저 새끼는 안 빼고 뭐 하냐? 같이 술 마셨나? 핫산 저 새끼랑 같이 손잡고 나가라 좀 ​ “…아웃!” ​ 어찌저찌 수비의 도움으로 3회를 마친 핫산. 넋이 나간 표정으로 덕아웃에 돌아온 핫산은 그대로 덕아웃에 주저앉았다. ​ 그리고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 “크윽, 흡, 흐윽, 흑…….” ​ 자기 손으로 동료들의 1년을 끝내버렸다는 죄책감. 처음으로 동료들과 야구를 하는 중인 그에게는 너무나 무거운 짐이었다. ​ “……….” ​ “……….” ​ 축축 처지는 문혁고의 덕아웃. 도연의 승률 계산식으로도 이미 ‘3%’까지 떨어진 문혁고의 승률. ​ 모두가 ‘여기까지인가’ 라는 생각을 머릿속에 한 번쯤은 하던 그 순간, 성묵이 핫산의 어깨에 손을 짚었다. ​ “울지마라, 핫산.” ​ “형…. 그렇지만 저 때문에 팀이….” ​ “아무도 너 욕 안해, 애초에 네 덕분에 여기까지 온거잖냐. 욕하는 놈 있음 말해, 내가 죽여줄 테니까.” ​ “성무크 형….” ​ 핫산을 위로한 뒤, 동료들에게 시선을 돌린 성묵. 그의 표정은 결코 포기한 자의 표정이 아니다. ​ “다들 막막하지? 경기 초반부터 점수 차가 이만큼이나 벌어졌으니까.” ​ “……….” ​ “자, 다들 들어봐. 내가 간단한 해결책을 줄 테니까.” ​ “해결책…?” ​ “지금 이걸 해결할 수 있다고?” ​ 도무지 답이 안 나오는 상황. 그렇게 모두가 생각하고 있는 와중에 성묵은 당당히 ‘해결책’을 이야기한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일까, 모두는 궁금했다. ​ “뭔데, 어떻게 하면 되는데…?” ​ 다급한 최아담의 질문. 성묵의 답은 간단했다. ​ “내 앞에 주자 쌓아, 그럼 내가 해결한다.” ​ “………!!” ​ 참으로 광오한 한마디. 자신의 실력에 대한 압도적인 확신이 없으면 결코 내뱉을 수 없는 말이다. ​ 꿀꺽…! ​ 침을 삼키는 소리가 덕아웃에 울려 퍼진다. 금성묵에게는 이제 저런 말을 해도 될 정도의 무게감이 있다. ​ ‘…성묵 선배는 자기가 한 말을 어긴 적이 없어.’ ​ ‘확실히 이 녀석, 찬스 때마다 뭔갈 보여준단 말이지.’ ​ 서로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이는 문혁고 야구부원들. 벌써부터 포기한 채 졸전을 치르느니, 자신 있게 단언하는 캡틴에게 찬스를 만들어주자고 단결하기 시작했다. ​ “출루하면 니가 해결한다 이거지? 딱 기다려, 나중에 반찬 투정 하면 뒤진다…!” ​ “확실히 아직 포기하긴 일러요, 어떻게든 성묵형한테 기회를 만들어 볼게요.” ​ 열의를 품은 채 타자 대기석으로 향하는 아담과 도진의 테이블 세터진. 스코어 8대 0 이라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문혁고는 위대한 반란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