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읍, 후우." ​ 드디어 소림사의 본원에 도착했다. 엄청난 숫자의 계단을 기어코 걸어 올라왔다. 웬만한 사람들은 여길 오르는 것만으로 하체가 다 털려서 한동안 드러누워 쉬어야 할 정도로 쉽지 않은 길이었다. ​ ‘솔직히 좀 쫄았는데, 그다지 힘들진 않네.’ ​ 나의 체력 스탯은 무려 A+, 금성묵이 그나마 개화가 잘 된 유일한 스텟이었다. 그 덕에 적당히 몸 좀 잘 풀었다 정도의 느낌으로 소화해냈다. ​ 대앵- 댕-! ​ 더욱 크게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귀에 담으며 아래를 내려다보니 가히 절경이었다. 사람들이 이래서 등산하는 건가 싶어질 정도로. 적당히 숨을 돌린 나는 종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걸어갔다. ​ "......흠?" ​ 그곳에는 ​낑낑대며 양 옆에서 종을 잡아당기는 승려 두 명, 그리고 그 반대쪽에 한 거대한 몸집의 승려가 있었는데, ​ 대애앵---! ​ 그는 당겨져서 강한 힘으로 다가오는 종을 한 손으로 받아냈다. ​ '어떻게 종을 한 손으로...?' ​ 자세히 보니 한 손으로만 받아내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거대한 범종의 속도에 맞춰 왼손을 자연스레 뒤로 당기고는, 온몸으로 그 충격을 분산하여 받아냈다. ​ 자기 능력에 대한 믿음, 그리고 신체 활용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없으면 금방이라도 부상당하기 십상일 미친 수련이었다. ​ "…못 보던 분이 와계시는군요." ​ 그렇게 한창 수련하던 와중 나의 시선을 느꼈는지 수련을 멈추는 남자. 그는 이내 손에 둘둘 감은 붕대를 풀며 내게 다가와 합장했다. ​ "처음 뵙겠습니다. 석운강입니다." ​ “금성묵입니다.” ​ 그를 처음 본 인상은 상당히 거대하다는 것. 192cm인 나와 비슷한 수준이 신장, 거대한 몸집에 돌덩이처럼 단단해 보이는 근육, 그리고 희미하게 뜬 실눈이 인상적인 사내였다. ​ '이 자가 고교 넘버원 포텐셜의 포수란 말이지.' ​ 2d 그림으로 보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은 그 박력 자체가 달랐다. ​ [석운강 님의 스테이터스를 열람할 수 있습니다. 열람하시겠습니까?] [Yes / No ] ​ 직접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자 뜨는 안내창.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Yes를 선택했다. ​ 이름: 석운강 국적: 홍콩 나이: 18세 키: 189cm 소속: 소림사 한국 지부 ​ 스킬/ 마승(魔僧) (S) : 분노할 시 파워와 컨택이 한 랭크 상승합니다. 선구가 한 랭크 감소합니다. ​ 잠재 키워드: 천타지체(EX) , 금강불괴(S+) ​ 타자 능력치 (*포텐셜) / 우투 우타 파워: A+ (*S) 컨택: C+ 스피드: D 선구: B 수비: S (*S+) 어깨: S (*S+) 추천 포지션: 포수 ​ 더 말할 것도 없다. S등급 포텐셜을 3개 이상 가져야 하는 천타지체를 소유한 포수는 지금 고교세대에 석운강, 이 녀석 뿐이다. 소림사에서 맹훈련을 받아서 그런지 대부분의 주요 스텟들이 발달하여 있었다. 이러니 명문 고교들이 군침을 안 흘릴 수가 없지. ​ ‘스킬이 조금 애매하긴 하지만, 뭐.’ ​ 파워와 컨택이 한 랭크씩 상승하는 효과는 정말 엄청나지만, 불심으로 다져진 스님을 분노하게 만들 일이 얼마나 있겠나. 거의 무용지물이라 보는 게 맞다. ​ 나는 그가 하고 있던 생소한 훈련이 궁금하여 질문을 던졌다. ​ "이 수련은 대체…?" ​ "아, 궁금해하실 수 있겠군요. 최근 제 부족함을 채우기 위하여, 여래신장如來神掌 캐치를 단련 중이었습니다. 아미타불." ​ "………??" ​ 그 무협지에 나오는 여래신장?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괴상한 작명에 어디부터 태클을 걸어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지만, 나는 애써 쓴 미소를 지었다. ​ "금성묵 시주가 절 찾은 이유는 역시 저를 데려가기 위함입니까?" ​ "뭐, 그런 셈이죠." ​ "지금 바로 도전하시겠습니까?" ​ "지체할 거 뭐 있습니까. 바로 가시죠." ​ "따라오시지요." ​ 끄덕이고 뒤를 돌아선 석운강. 그의 뒤를 따라 걷는데 무언가가 이상했다. ​ '여기는 사찰 안인데?' ​ 운강을 따라 들어온 곳은 소림사 내의 사찰 건물 안. 그곳은 마치 거대한 동굴 안에라도 들어온 듯, 엄청나게 넓은 공간을 자랑했다. ​ “…………와.” ​ 건물 안의 중앙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한 거대한 부처상. 인자한 미소의 부처 동상은 쳐다보는 것만으로 그 존재감을 은은히 뿜어내고 있었다. 동상을 등지고 내 쪽으로 돌아선 석운강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시험 장소는 여기입니다. 시주는 지금부터 저에게 공을 던지시면 됩니다." ​ "여기서요?" ​ 도무지 야구를 할만한 장소로는 안 보인다. 그러자 운강이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땅으로 향했다. 그에 맞춰 땅을 본 나는 깜짝 놀랐다. ​ '…마운드?' ​ 놀랍게도 석운강이 지정한 자리에는 일반 규격의 마운드가 있었다. 마치 외딴섬처럼 말이다. ​ ‘게임이랑 자잘한 부분들이 많이 다르네.’ ​ 애초에 저예산 게임이니 캐릭터 하나하나의 개성을 보여주기 어려운 부분은 어쩔 수 없다. ​ 나는 흙을 팍팍 파내며 마운드를 내 스타일에 맞게 조정했다. ​그 와중에 포수장비를 전부 착용한 석운강. ​ "준비가 된다면 말해주시길." ​ 룰은 간단하다. 지금부터 투수는 사전 고지 없이 그때그때 던지고 싶은 공을 30구 던지고, 석운강은 그걸 잡는다. ​ 전부 다 받아내면 석운강의 승리, 하나라도 놓치게 만들면 투수의 승리다. 얼토당토않은 공은 잡지 못해도 인정하지 않는다. ​ 참으로 간단한 룰. 심지어 투수에게 어마어마하게 유리한 규칙이나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 본래 포구라는 게 무슨 구종이 올지 모르면 그 난이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는 법. 지금까지 상대가 어떤 투수건 완벽하게 잡아 왔다는 건 대단하다는 말 이외에는 할 말이 없었다. ​ ‘심지어 여기, 묘하게 압박감이 든단 말이지.’ ​ 석운강의 뒤에 앉아있는 초거대 불상도 불상이지만, 투수와 타자 양쪽에 도열하듯 무릎 꿇고 앉아 이 대결을 지켜보는 수십 명의 승려들의 시선도 영 부담스러웠다. ​ “…시작하죠.” ​ “아미타불.” ​ 석운강은 고개를 주억이고는 그대로 자리에 쪼그려 앉아 포수 미트를 치켜들었다. ​ “후우.” ​ 그에 맞춰 나 역시 몸에 긴장을 풀고는, 와인드업 자세를 취했다. ​ “흡…!” ​ ​ ​ #### ​ ​ 운강은 그를 처음 보자마자 묘한 감각을 느꼈다. 금성묵이라고 자신을 칭한 이 남자의 오성, 재능은 그야말로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 ​ 그야말로 엄청난 그릇. 그는 드디어 기대감을 품었다. 자신을 데려갈 만큼 흥미로운 투수를 찾았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를. ​ "흡…!" ​ 금성묵이 강하게 키킹하며 투구 자세를 취했다. ​ 파앙-! ​ 그가 쏘아낸 직구가 운강의 미트에 들어왔다. 첫 구의 위력은 운강이 상상과는 전혀 다른, 평범하기 그지없는 공이었다. ​ '얼추 130km 중후반 정도. 몸이 풀리지 않은 것인가?' ​ 뒤에 던지는 공들을 연거푸 받아보니 그런 건 아니었다. 그는 진지하게 의구심이 들었다. ​ '이 정도로는 공으론 안 된다는 걸 알고있을텐데, 어째서지?' ​ 그렇다고 운에 맡기고 온 쭉정이 취급을 하기엔, 금성묵에게서 느껴지는 감각이 범상치 않았다. ​ 잘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은 아니지만, 이렇게 쪼그려 앉아 상대 투수의 공들을 받다 보면 운강은 상대가 대략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가 대략 보였다. ​ 금성묵이란 인간은 복잡했다. 어마어마한 그릇인 것은 분명하나 그 속에 담긴 내용물들이 탁했다. 그것도 어지간한 악인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말이다. ​ '허나, 그 탁함이 계속 씻겨져 내려가고 있군. 이런 사람이 존재할 수가 있었단 말인가.' ​ 인생이 궁하여 절에 찾아오는 사람 중에서도 꽤 만만치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만, 이렇게 기묘한 인간상을 보는 것은 운강으로서도 처음이었다. ​ 눈앞의 청년은 자신의 과오를 뒤엎을 정도로 엄청난 노력을 행하고 있음이 운강의 눈에 보였다. 그러한 모습은 그가 늘 추구하던 불도의 정의와도 맞닿아 있었으나, 그것이 지금 당장 투수로서의 가치에 직결됐냐 하느냐면 그것은 아니었다. ​ "15구!" ​ 파앙-! ​ 투구 수를 크게 외치며 투구 동작을 취하는 금성묵. 그의 슬라이더가 운강의 미트로 빨려 들어갔다. ​ “킁….” ​ 미동도 없자 코를 팽 풀고는 팔을 휘적이는 금성묵. ​ ‘이대로는 안 되겠는데.’ ​ 더 이상 정공법으로는 안 된다. 그 누구보다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슬슬 시동 한 번 걸어봐?’ ​ “………흠?” ​ 소림사의 야구를 총괄하고, 가장 높은 실력을 가지고 있는 주지 스님이 금성묵의 묘한 변화를 눈치챘다. ​ ‘저 청년, 뭔가 하려고 하는군.’ ​ “후우, 16구….” ​ 공기가 고요해졌다. 성묵이 오른발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무릎이 복부 중간쯤까지 오르자, 마치 시계추처럼 균형을 유지했다. ​ “흐읍…!!” ​ 곧 그의 팔이 세차게 휘둘러졌다. ​ “오……!?” ​ “……!” ​ 그리고는 장내에 탄성이 터져 나왔다. 마치, 무언가 일어나기라도 한 듯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