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묵의 연타석 홈런으로 스코어는 4대 0. 무상고 투수 슌스케는 안경을 쓱 밀어 올리며 사태를 진단했다. ​ “……이런, 수를 읽힌 건가.” ​ 자기반성에 돌입한 슌스케. 그는 그 짧은 새, 패턴을 전부 수정했다. ​ 따악! ​ “아웃…!!” ​ 그 결과 금성묵의 뒤 타자들은 전부 범타 처리하는 슌스케. 그걸 보는 도연은 깜짝 놀랐다. ​ “간파당한 걸 역이용 했어…?!” ​ 중요한 카운트에서 통계상 거의 던지지 않았던 공들을 쏙쏙 던져대는 슌스케의 피칭. 분석 당해도 그걸 이용하면 그만이라는 담대함은 좀처럼 보기 힘든 것이다. ​ 이제 그녀가 제시한 자료는 오히려 경기에 방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도연은 일단 문혁고 덕아웃 측에 ‘상대 선발 투수의 분석 자료는 잊어달라’라고 전달했다. ​ “일단 4점을 벌어둔 건 커.” ​ 상대 투수가 아무리 이제부터 잘 던진다 한들, 이미 문혁고는 4점을 뽑아뒀다. ​ 핫산이 지금처럼만 버티다가 리동혁에게 바통을 넘겨준다면 문혁고는 쉽사리 4차전으로 올라갈 수 있다. ​ 어느덧 경기는 5회 말 2아웃. 여전히 핫산이 좋은 피칭을 이어 나가던 와중이었다. ​ “뜨허엇…!!” ​ 평범한 중견수 뜬공을 지수용이 뒤로 빠트렸다. 그 여파로 집중력이 살짝 깨진 건지, 핫산이 볼넷을 내주며 주자는 2사 1,3루. ​ 뻐엉!! ​ “스트라잌…!!” ​ 어찌저찌 2스트라이크를 잡아낸 핫산. 그 뒤엔 결정구로 스플리터를 던졌다. 그때 일이 벌어졌다. ​ 따악! ​ “………!!” ​ 핫산을 향해 날아오는 엄청난 속도의 직선타. 그는 도저히 반응할 겨를이 없었다. ​ 퍼억-!! ​ “끄헉…!!” ​ 오른쪽 어깨에 공을 맞고는 신음하는 핫산. 급하게 최아담이 달려와 공을 잡아내어 송구해봤지만, 주자는 올 세이프. ​ 명감독을 비롯해 선수들 전원이 우르르 마운드로 향했다. ​ “핫산…!! 괜찮냐?” ​ “허억, 윽…!” ​ “핫산, 핫산…!!” ​ “괜찮,아요…, 더 던질 수 있어요.” ​ 통증에 몸이 부르르 떨려오고, 안색이 좋지 않다. 누가 봐도 더 이상 피칭을 할 수 없는 상태. ​ 핫산을 병원에 보내기로 마음먹은 명감독은 눈을 질끈 감고는 이태정 투수코치에게 말했다. ​ “태정아, 비상사태다. 빨리 찬준이 몸 풀라고 해라.” ​ “넵…!!” ​ 웬만큼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결코 꺼내지 않았을 박찬준 카드까지 꺼내게 되었다. 예상치도 못한 돌발상황. ​ 성묵은 머리를 짚었다. 여기서 핫산이 내려가는 건 계획에도 없었고, 절대 그래서도 안 됐다. ​ ‘젠장, 찬준 형님으로는 무리일 것 같은데.’ ​ 체력 원툴 투수인 박찬준. 그는 뭐 하나 확실한 스터프가 없다. ​ 그렇다고 리동혁을 먼저 올릴 수도 없다. 그는 체력 이슈로 2이닝 이상 던지면 구위가 급격히 떨어지는 데다, 경기 후반의 중요성을 감안한다면 그는 뒤에 등판하는 게 맞았다. ​ ‘…결국 찬준 형님이 7회까지는 책임져야 한단 소리군.’ ​ 한숨이 절로 나오는 상황. 몸도 덜 풀린 땜빵 투수, 이 얼마나 파멸적인 단어인가. 실제로 박찬준은 등판하자마자 신명 나게 얻어터졌다. ​ 따악!! ​ [아, 이준현 선수의 2루타! 3루 주자, 2루 주자 모두 홈인!!] ​ “오케이, 이걸로 1점 차!!” ​ “나이스 무상고, 역전 가보잣…!!” ​ 스코어 4-3. 턱밑까지 추격한 무상고. 다행히 다음 타자는 우익수 플라이로 잡아내 이닝은 끝났지만, 위태위태한 분위기는 계속 이어졌다. ​ 점수를 얻어다 주자 힘을 얻은 건지, 이와사키 슌스케도 특유의 정밀한 피칭으로 타자들과의 승부에서 밀리지 않았다. ​ [아, 슌스케 선수. 지금 로케이션이 너무 좋은데요! 타자 입장에선 정말 치가 떨릴 만한 코너워크입니다!] ​ 그렇다고 문혁고 타자들도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니다. 그들은 이번 특훈으로 한층 업그레이드된 선구안을 장착했고, 그건 타자들에게 좀 더 끈질긴 승부를 가능케 만들었다. ​ 실제로 좋은 타구를 만들어낸 타자도 몇몇 있었지만…. ​ [아, 최아담 선수 쳤습니다! 아아!! 중견수가 다이빙 캐치로 잡아냅니다…!] ​ [지수용 선수의 타구가 좌중간을 가릅니까…! 아니 이걸 좌익수가 잡아냅니다!!] ​ “아오 씨, 저걸 잡냐!!” ​ “끄아악!! 억울합니다앗!” ​ 호수비에 막히며 이닝이 교대되는 등 운이 따르지 않았다. 경기 중반까지 빼앗긴 안타만 세어봐도 도합 5~6개는 될 정도로 운이 없는 타자들. ​ 안 그래도 핫산이 없어 추가점이 필요한 상황에, 바빕신 마저 따르지 않는 상황. 어찌저찌 박찬준이 꾸역투로 6회 말 하위타순을 무실점으로 막았지만, 7회 말에 다시금 위기가 찾아왔다. ​ “베이스 온 볼스!!” ​ [아, 밀어내기입니다!! 3루 주자 홈으로 들어오며 스코어는 4-4! 동점입니다!!] ​ [박찬준 선수, 이번 이닝에만 안타 2개, 볼넷 2개 내주며 결국 동점을 허용했습니다. 아직 아웃 카운트는 하나밖에 잡지 못했는데요!] ​ [자신감을 잃은 모습입니다. 문혁고는 더 이상 올릴 투수가 없는 걸까요?] ​ [에이스 금성묵 선수라면 최고의 해결책이 될 수 있겠습니다만, 대회 규정상 투구 수 제한에 걸려 이번 경기는 등판이 불가능합니다. 명신우 감독은 과연 어떤 선택을…, 아! 투수 바꿉니다!!] ​ 최대한 버텨보려 했지만, 동점을 허용한 이상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은 명 감독. 그는 결국 최대한 뒤에 내고 싶었던 리동혁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 우익수 쪽에서 마운드로 향하는 리동혁. 그의 자리는 1루에 있던 금성묵이 이동하며 채웠고, 1루수는 벤치에 있던 수비 전문 요원 이태경이 출전해 자리를 채웠다. ​ 마운드에 따라 올라온 명감독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 “동혁아, 괜찮겠냐. 몸 풀 시간도 충분치 않았을 텐데.” ​ “괜찮습니다. 몸은 틈틈이 풀어뒀습니다.” ​ “그래도….” ​ “감독님.” ​ “응?” ​ “믿어주십시오, 반드시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 “……!!” ​ 경기 상황상 등판을 하지 못해, 금성묵과 핫산의 활약을 쭉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리동혁. 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열의에 불타고 있었다. ​ “그래, 믿으마.” ​ 결국 픽 웃고는 마운드를 내려오는 명 감독. 이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문혁고는 리동혁으로 경기를 마무리 해야 한다. ​ [아, 3학년 이동혁 선수가 등판합니다. 몸을 푸는 것을 보니 언더핸드 투수인 것으로 보입니다!] ​ [데이터가 아예 없는 선수인데요. 초,중등 기록이 없는 것을 보니 전문적으로 야구를 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 사실 북한에서 그 누구보다 엘리트 야구 교육을 받아온 리동혁이지만, 찾을 수 있는 데이터가 없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 그것은 무상고 측도 마찬가지다. ​ “슌스케, 저 녀석은 어떻게 보냐?” ​ “…흥, 고3 때까지 기록 하나 없는 신생고 투수라니. 뻔하기 그지없군. 그다지 어려운 상대는 아닐 거다.” ​ “호오, 그렇단 말이지.” ​ 입맛을 다시며 타석으로 향하는 4번 타자 이해준. 그는 큰 거 한방 칠 심산으로 배트를 길게 잡았다. ​ “후우….” ​ 크게 와인드업하는 리동혁. 어차피 만루니 주자 따윈 신경 쓰지 않겠다는 심산이다. ​ 퍼엉!! ​ “스트라이크…!!” ​ “……!” ​ 148km의 직구가 스트라이크 존 상단에 꽂혔다. 꽤나 지저분한 공에 이해준은 내심 놀랐다. ​ ‘뭐야…! 공 좋은데?’ ​ 슬슬 긴장감이 드는 시점. 다시 한번 리동혁의 공이 땅에서 솟구쳐 올라왔다. ​ 퍼엉!! ​ “…스트라잌!!” ​ “……!” ​ 이번엔 스트라이크 존 낮게 걸치는 150km의 빠른 공. 직구의 고저 차이로 바로 카운트를 잡아 오는 공격적 피칭에 이해준은 인상을 찌푸렸다. ​ ‘젠장, 너무 지켜보려고 했나.’ ​ 심호흡하며 배트를 꽉 쥐는 이해준. 그는 이번에야말로 공을 맞히리라고 다짐했다. ​ ‘자, 와라…!!’ ​ 직구에 타이밍을 맞추되, 최대한 커트해내며 카운트를 재정비할 생각이다. 그렇게 맞이한 제 3구. ​ 휘리릭!! ​ “………!!” ​ 공이 춤을 춘다. 그러나 이미 이해준의 배트는 공을 향해 출발한 지 오래. 머릿속으로는 안된다고 외치고 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 뽀각!! ​ [배트 부러졌습니다! 힘없는 타구는 유격수 최아담의 앞으로! 잡고 2루로! 또 2루수는 1루로! 그림 같은 6-4-3 병살타!!] ​ [이해준 선수의 맥을 끊는 병살타가 나왔습니다! 무상고는 추가점 뽑지 못한 채 4-4 동점으로 7회 말 마무리합니다!] ​ “제기랄……!!” ​ 공 3개로 병살타를 유도한 리동혁은 동료들의 칭찬을 받으며 천천히 마운드를 내려왔다. ​ “동혁아, 나이스 피칭…!!” ​ “역시 동혁 선배, 믿고 있었습니다!!” ​ “…다들 고맙습니다.” ​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리동혁이 얕게 웃었다. ​ 이제 경기는 8회 초로 접어들고, 아직도 무상고 마운드 위에 오른 것은 이와사키 슌스케. 어느덧 투구 수는 110개에 달해 바꿀 시기가 됐지만, 그는 노리는 게 있었다. ​ ‘타카히나 류지, 네 놈만 잡고 내려간다!’ ​ 일본 청소년 대표라는 자부심. 자국에 있을 때 듣도보도 못한 타자 따윈 무조건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 두 가지가 결합하여 도출된 결론이 류지를 잡은 뒤에 다음 투수와 바통터치 하는 것이다. ​ ‘첫 타석에 장타를 맞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데이터 탓이지. 뒤에는 전부 내가 이겼어.’ ​ 안경을 밀어 올리며 씩 웃는 슌스케. 그는 이번에도 자신이 이길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게 던져진 초구. ​ 파앙!! ​ “스트라이크!!” ​ 직구가 바깥쪽 존 끝부분에 걸쳤다. 타자 입장에선 멀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공. 일단은 담담히 공 하나를 지켜본 류지. ​ ‘저건 쳐봤자 좋은 타구 만들긴 힘들어.’ 그 뒤에도 공 두 개를 더 지켜봤고, 그중 하나가 스트라이크 콜이 떨어지며 카운트는 1-2. ​ 배터리는 여기서 승부구를 던지기로 했다. 그들의 선택은 스트라이크 존 상단으로 뚝 떨어지는 포크볼. ​ 손에서 채이는 감각이 좋았기에 슌스케는 낙승을 장담했다. 그러나 이 순간 류지는, 공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 ‘……보인다.’ ​ 타자들이 공을 구분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선구안이 극도로 발달한 타자들은 ‘공의 색’으로 구종을 분간할 수 있다. ​ 직구는 공이 빠르게 많이 회전하기에 공이 하얗게 보이고, 포크 등의 변화구는 느리고 적게 회전해 공이 다소 빨갛게 보인다. ​ 선구 스텟이 A+에 다다르며, 류지의 눈에는 평소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게 됐다. 그렇다, 지금 그의 눈에는 공이 빨갛게 보였다. ​ “곤니치와.” ​ 따악!! ​ “……………!!” ​ 경기장 높이 솟구치는 공. 우측 담장을 훌쩍 넘어가는 홈런포가 터졌다. 이로써 클린업 트리오 전원 홈런을 때려내며, 경기 분위기는 다시 문혁고 측으로 넘어왔다. ​ “햐, 동향 인심이 아주 좋구만.” ​ “류지 형님…!! 나이스 배팅입니닷!” ​ “오냐, 수드래곤. 너도 한방 치고 오도록…!” ​ “옙…!!” ​ 홈에서 기다리던 지수용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관중들의 환호를 만끽하는 류지. 스코어는 5-4. 같은 일본인에게 홈런을 맞으며 고개를 떨군 슌스케. 결국 한계 투구 수에 다다른 그는 마운드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 원래부터 슌스케 원맨팀인 무상고다. 그가 빠진 뒤에는 더 이상 볼 것도 없었다. ​ “우오옷…!!” ​ 따악!! ​ 펜스를 때리는 장타로 2루에 진출한 지수용. 그 뒤의 타자들 역시 연이어 안타를 터트렸고, 2점을 더 뽑아낸 문혁고는 석점 차까지 리드를 벌렸다. ​ “얘들아, 아직 할 수 있다.” ​ “그래, 석점 차 따위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어!” ​ “이동혁인지 하는 저 녀석, 생각보다 좀 하긴 하지만 결국에는 무명 투수 아니겠냐!” ​ 휘리릭!! ​ “스트라잌 아우웃…!!” ​ 그러나 무상고 타자들은 조용히 날을 갈고 있던 리동혁의 싱커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 그렇게 무득점으로 맞이한 9회 초, 문혁고 타자들의 배트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 ​ 따악! ​ “아자앗…!!” ​ 최아담, 도도진이 안타를 뿜어내며 출루하는 데 성공했고, 타석에 들어선 것은 오늘만 2홈런을 뽑아낸 금성묵. ​ 그는 벌벌 떨고 있는 상대팀 투수를 보며 견적을 내렸다. ​ ‘너무 약해서 약발(弱勃)조차 안 되네….’ ​ 바꾸어 말하자면, 굳이 스킬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쉽게 정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양민 학살 하나는 기가 막힌 성묵답게, 그의 배트가 다시 한번 불을 뿜어냈다. ​ 따악!! ​ [아, 금성묵 선수! 큽니다! 큽니다!! 좌측 담장 넘어가는 쓰리런 홈런!!] ​ [오늘만 무상고 상대로 3홈런을 뽑아냅니다!! 2차전 노히트 노런, 3차전은 3홈런! 투수와 타자 양쪽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는 금성묵 선수입니다…!] ​ ‘아주 그냥 맛집이 따로 없구만.’ ​ 스텟을 야무지게 세탁하며 점수 차를 훌쩍 벌린 금성묵. 뒤이은 석운강의 백투백 홈런을 필두로 다른 타자들 역시 배트에서 불을 뿜으며 추가점을 만들어냈다. ​ 어느덧 스코어는 16대 4. 12점차까지 벌어지며 무상고는 전의를 상실했다. 10점 차가 벌어지면 콜드게임이 가능하지만, 규칙상 9회 말은 스킵이 불가능하기에 리동혁이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 그는 사실상 승리가 확정된 상황에서도 담담히 공을 던졌다. ​ “빨리 끝내드리겠소.” ​ 휘리릭!! ​ 존 안에 정직하게 집어넣는 싱커를 던진 리동혁. 그는 단지 공 3개로 클린업 타자 세 명에게 전부 땅볼을 유도해냈고, 결국 경기를 마무리하는 데 성공했다. ​ [경기 끝! 문혁고가 큰 점수 차로 무상고를 이기며 4차전에 진출합니다!] ​ [승리 투수는 이동혁 선수입니다. 하산 선수는 아쉽게 됐군요.] [예, 아쉽지만 하산 이크발 선수는 4.2이닝만 소화하여 승리 투수 요건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 강습 타구를 어깨에 맞은 하산 선수, 문혁고의 전력에서 큰 축을 차지하는 투수인 만큼 부상 여부가 굉장히 중요하겠습니다…!] ​ “얘들아, 수고 많았다…!” ​ 승리를 만끽하는 문혁고 선수들. 위기의 순간도 있었지만, 어찌저찌 수습한 덕분에 승리할 수 있었다. ​ “이제 남은 경기 전부 다 세종기 진출 경험 팀이네요….‘ ​ “나참, 다시 봐도 정신 나간 대진이라니까.” ​ 투덜대는 서경수와 최아담. 확실히 신생팀이 받아들기엔 너무한 대진이기는 했다. 그 와중에 리동혁은 실려간 핫산이 걱정되는지, 성묵에게 다가가 물었다. ​ “성묵 동무, 핫산에 대한 소식은 따로 없습니까?” ​ “큰 부상은 아니라는 것 같은데, 정밀 검사 결과가 나오려면 며칠 걸리나 봐. 좀 기다려보자고.” ​ “후우, 천만다행입니다.” ​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리동혁. 성묵은 선수들을 이끌고 관중석을 돌며 관객에게 인사를 하는 와중에, 뭔가 이상함을 눈치챘다. ​ ‘…올리비아 자리가 비어있어?’ ​ 분명 올리비아를 위해 따로 티켓을 구해줬던 자리가 비어있다. 그러고 보니, 오늘 보낸 문자에 답장도 오지 않았다. ​ ‘뭔 일이 있는 건가.’ ​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좀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하는 성묵이다. ​ ​ ​ ##### ​ ​ 경기 막바지쯤, 성균관 구장을 찾은 얼굴이 있었다. 워낙에 눈에 띄는 외모 탓에 알아보는 관중이 적지 않았다. ​ “저, 저거 설마…!” ​ “기린고의 라스푸틴…!?” ​ 세르게이 라스푸틴. 숲처럼 우거진 거친 수염이 인상적인 러시아 출신의 투수로서, 과거 러시아 황실을 몰락시킨 요승(妖僧) 그리고리 라스푸틴의 숨겨진 핏줄이라고 한다. ​ “……….” ​ 경기를 지켜보는 라스푸틴. 누가 봐도 서른 이상은 되어 보이는 외모지만, 아직 고등학생이라는 게 가장 놀라운 사실이다. 그는 다음 경기에 맞붙게 될 문혁고를 눈에 담으며, 짧게 한마디를 내뱉고는 경기장을 떠났다. ​ “Интересно(흥미롭군).” ​ 현 고교 최고의 너클볼러라 불리는 세르게이 라스푸틴과, 떠오르는 초신성 금성묵의 선발 대결. 고교야구 팬들을 설레게 할 대형 매치업이 다가오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