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묵의 노히트 노런. 초명문 금강고 격파. ​ 예상도 못 한 이변이 두 개나 일어난 탓에 그야말로 난리가 난 성균관 구장. 그 속에서 가장 기쁜 사람 중 하나는 명신우 감독이다. ​ "애들아, 정말 수고 많았다!" ​ 다소 벅찬 표정의 명감독. 그는 빙 둘러싼 선수들을 보며 말했다. ​ “피드백은 차차 하겠지만, 오늘은 정말 잘 싸웠다고 말해 주고 싶다.” ​ “옙, 수고하셨습니다…!!” ​ 선수들에게 몇 마디 더 덕담을 건넨 명감독은 바통을 성묵에게 넘겼다. ​ “자, 오늘의 주인공인 우리 캡틴, 소감 한마디 하자." ​ “옙!” ​ 그렇게 모두의 앞에 나온 성묵. 동료들은 성묵이 무슨 말을 할지가 궁금했다. 그런데... ​ "애들아, 소감이 두 가지 버전이 있거든. 체면 차린 거랑 솔직한 거. 둘 중에 뭐부터 들을래?" ​ "……??" ​ 뜬금없는 양자택일! 동료들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떴다. 그 와중에 재밌겠다는 표정의 류지가 덥썩 하나를 골랐다. ​ "거, 체면 차린 것부터 함 말해보쇼~." ​ "너희가 뒤에서 든든히 받쳐준 덕분에 오늘의 결과가 있었다, 진심으로 고맙다." ​ "솔직한 소감은?" ​ 성묵의 표정이 확 돌변했다. 마치 할 말이 꽤 있다는 듯 말이다. ​ “얘들아, 너네 다음 경기에서 탈락하려는 거 아니지?” ​ “………!?” ​ “벌써 들떠서 어깨 뽕이 남산 마냥 올라간 친구들이 보여서 하는 말인데, 세종기 가는데 이겨야 할 6경기 중 고작 2경기 이긴 것뿐이다. 슬프지만 노히트 노런 기록에도 남는 건 내 이름뿐이고.” ​ “……….” ​ “너희도 너희대로 웅대한 야망이 있고, 그럴 실력도 있는 놈들이잖냐. 헛바람만 차서 광탈 당하고 싶진 않을 거 아냐. 더 높이 올라가서 마음껏 실력 뽐내봐야 하지 않겠냐?” ​ 성묵의 말에 고개를 주억이는 팀원들. 그는 꽤 오랜 야구 경험상 이런 다이나믹한 경기 뒤에 팀들이 무너지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그것이 경험이 부족한 팀이라면 더더욱. 그래서 한 번 기강을 잡고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 “아직 갈 길이 먼 만큼 훈련도 더 빡세질 거다. 다들 어느 정도 각오는 해둬, 많이 힘들 테니까.” ​ “……!” ​ 꿀꺽! ​ 안 그래도 빡센 편인 기존의 훈련보다 더욱 빡세진다니, 팀원들은 꽤 긴장한 표정이다. 잠깐의 연설로 소기의 성과를 달성한 성묵. 그는 피식 웃었다. ​ “뭐, 근데 그건 내일부터 이야기고….” ​ "오늘은 즐기자. 자식들아." ​ 손가락으로 덕아웃 바깥쪽을 가리킨 성묵. 경기를 보러와 준 문혁고 측 관객들이 아직도 퇴장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다. ​ “자, 선수단 전부 밖으로 집합!” ​ 성묵을 따라 일렬로 관중석 앞쪽에 도열하는 선수들. 관중석에서는 선수들의 반 친구 및 오늘 경기에 감명받은 학생들이 대거 대기 중이다. ​ "일동 차렷!" ​ "감사합니다…!!" ​ 성묵의 구령 아래 관중들에게 허리 숙여 인사한 부원들. 그들의 응원이 아니었으면 강팀인 금강고와의 기세 싸움에서 쉽지 않았으리라. 부디 다음 경기에도 보러 와달라는 의미 또한 담겨있었다. ​ 크나큰 박수 소리와 함성을 들으며 선수단은 퇴장했다. 그렇게 덕아웃에서 짐을 정리하는데, 성묵을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다. ​ "금성묵 씨?" ​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두 덩치의 남자. 보는 이들을 긴장케 하는 자들이 성묵을 콕 집어 찾아왔다. ​ "예. 무슨 일이시죠." ​ "잠시 저희랑 같이 가시죠." ​ “…아, 예.” ​ 성묵은 생각했다. 올 게 왔구나, 라고. ​ ​ ##### ​ ​ 이번 경기에서 스카우터들도 분주했지만, 가장 노난 건 기자 쪽이다. ​ 수훈 선수 인터뷰에 앞서 기자들은 분주했다. 원래 한두명 정도의 기자만 붙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번엔 봄 대회 초반 경기에도 불구하고 스무명 정도의 기자가 붙었다. ​ '금성묵, 저 선수는 무조건 돈이 된다…!' ​ '조회수는 따놓은 당상이야…!' ​ 어그로 끄는 능력과 이번에 보여준 실력을 종합해서 봤을 때, 금성묵이란 캐릭터가 가진 스타성은 상당하다. 자극적 기사로 밥 벌어 먹고사는 기자들에게 그의 등장은 너무나도 기쁜 일. ​ 그런데 꽤 오랫동안 성묵은 회견장에 들어오지 않았다. ​ "뭐야, 왜 이렇게 안 와?" ​ "뭔 일 난 거 아니야?" ​ 온갖 추측이 무성하던 시점. 대략 30분 정도가 지나서 성묵이 들어왔다. ​ 찰칵! 찰칵! ​ 터지는 셔터음 속에서 성묵은 의자를 꺼내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익숙한 듯 마이크를 끌어 얼굴 쪽에 가져다 댔다. ​ "죄송합니다, 조금 늦었습니다. 질문 주시면 성심성의껏 답하겠습니다." ​ 꾸벅 허리 숙이며 사과하고는 질문을 받겠다는 성묵. 야비한 인상의 한 기자가 손을 번쩍 들면서 질문했다. ​ “안정 일보의 장민수 기자입니다. 우선 이 질문을 안 드릴 수가 없는데요. 금성묵 선수의 이번 경기의 활약에서 약물의 도움을 받은 것이 아니냐 하는 의혹이 거셉니다.” ​ “…약물 말씀이십니까?” ​ “예, 경기의 특정 시점에서 성기가 과도하게 부풀어 오르는 것도 그렇고, 그 시점을 경계로 구속 차이가 10km 가까이 나는데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 “저는 하지 않았습니다.” ​ 기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단호하게 말하는 성묵. 그러나 기자는 비열하게 웃을 뿐이다. ​ “말로는 뭔들 못하겠습니까.” ​ 비열하게 웃는 장민수. 그는 이미 금강고 감독인 유종훈에게 사주를 받고 왔다. ​ ‘그 괘씸한 투수 놈. 약물 복용자가 분명해. 아주 혼쭐을 내주고 오게.’ ​ 화가 잔뜩 났는지 촌지까지 찔러주며 금성묵을 곤란하게 만들라는 부탁을 한 유종훈 감독. 기자 된 도리로서 그는 철저히 이 건을 물고 늘어지기로 했다. ​ 약물은 강력한 어그로가 끌리는 키워드니 만큼, 이 자리에서 제대로 된 증명을 못 하면 쉽사리 의혹을 떼어놓기 힘들 것이다. ​ “…….” ​ 하지만 성묵은 담담했다.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 ‘이놈의 약무새 새끼들, 어째 하나 같이 예상을 벗어나질 않아.’ ​ 청현고 전에서도 의혹받은 탓에 귀찮게 도핑 테스트를 한 전력이 있다. 그래서 이번에도 얼추 의혹 제기가 들어올 줄 알았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싹 뿌리 뽑고자 했다. ​ 조금 전 덕아웃에 들어온 양복남들은 도핑 테스트를 위해 성묵이 직접 기관 사람들을 불러둔 것이다. 오늘 이 자리에는 의외의 거물까지 행차했다. ​ “도핑 스나이퍼 노진승…!?” ​ “약물 적발 하나는 세계 탑급인 그가 왜 여기에…!” ​ 살다 살다 자기 자신을 검사해달라는 미친놈이 있다는 말에 재밌겠다 싶어 직접 성균관 구장에 행차한 노진승. 그는 성묵의 옆에 앉으며 발언을 시작했다. ​ “금성묵 선수의 도핑 의혹에 관해서는 제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 “……!” ​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금성묵 군이 약물 복용자일 가능성은 0%입니다." ​ "뭣…!" ​ “그럼 정말로 순수하게!?” ​ 업계에서 최고 권위를 가진 전문가의 입에서 가능성 0%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렇다면 정말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 노진승은 설득력을 더해주기 위함인지, 적절한 예시까지 꺼내왔다. ​ "과거 유명 격투기 선수였던 최홍민 선수에 대해 아십니까?" ​ “아, 최홍민. 단기 퍼포먼스 하나는 최고였는데….” ​ 2m 20cm에 달하는 키에, 핵꿀밤으로 유명했던 한국의 격투선수 최홍민. 그가 부족한 테크닉에도 어지간한 격투기 선수를 쌈싸먹을 수 있었던 이유는 뇌하수체에서 호르몬이 일반인의 몇 배로 분비되어 천연 도핑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 "금성묵 선수도 비슷합니다. 다만 호르몬이 위에서 나오냐, 아래에서 나오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발기는 일종의 남성 호르몬 분비 트리거가 되는 셈이지요. 극도로 분비되는 상태일 때는, 성인 남성 기준으로도 남성 호르몬 상위 0.01% 정도의 높은 수치가 나옵니다. " ​ “헉…!!” ​ 설명에 웅성이기 시작하는 기자들. 금성묵은 약물 복용자가 아니라, 순수하게 체질 자체가 이상한 놈이었던 것이다! ​ “최홍민 선수는 호르몬 과다 분비 탓에 선수 생활을 오래 하지 못했는데, 금성묵 선수의 몸에는 영향이 없는 겁니까?” ​ “없다고 생각합니다. 금성묵 선수는 최홍민 선수와 달리 무한정 과다분비 되는 게 아니라, 특정 상황에서만 그러한 몸 상태에 돌입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과정이 끝나면 일종의 반감기에 접어들어 균형이 맞춰지는 걸로 봐선, 적절한 영양 보충과 휴식만 이뤄진다면 몸에 이상은 없어 보입니다.” ​ 노진승의 깔끔한 설명에 납득한 기자들. 처음 질문을 던졌던 장민수는 덩달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고, 의혹도 해소됬겠다 기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 "유원 스포츠의 최성용 기자입니다. 우선 금성묵 선수의 오늘 대기록 달성을 축하드립니다. 오늘 금강고 타선을 완벽하게 제압하셨는데, 오늘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두셨는지가 궁금합니다." ​ "축하 감사합니다. 그냥 강호고 뭐고 힘으로 한번 붙어보자고 밀어붙인 게 좋은 결과가 따른 것 같습니다." ​ "아하, 그렇군요. 답변 감사합니다." ​ 사실 그가 얼마나 전략적으로 던졌는질 생각해보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지만, 성묵은 훗날을 위해 적당한 변명거리를 던졌다. ​ '엄청난 전력 분석가가 뒤에 있단 걸 티 내서 좋을 건 없지.' ​ 이미지 메이킹 목적도 있다. 뇌 빼고 기세롭게 팍팍 던지는 투수! 정도의 이미지를 심어둬서 차후 경기에 나쁠 건 없다. 뭐든 선입견이라는 것은 상대방을 방심하게 만드는 법이니까. ​ "기록을 찾아보니 부전고에 있던 1학년, 2학년에 비해 월등히 기량이 향상되셨는데, 따로 비결이 있습니까?" ​ "그 당시엔 제가 다소 미숙하다 보니, 자기 관리법을 잘 몰라서 큰 부상을 당했습니다. 문혁고에 전학 온 뒤엔 신생답지 않은 전폭적인 지원과 감독 코치님의 케어를 받은 덕분에 실력이 크게 향상 됐습니다." ​ 사실 기량이 오른 건 100% 내가 잘해서다! 라고 말하고픈 성묵이지만 그래봤자 믿어줄 사람도 없고, 건방진 놈으로나 낙인찍힐 게 뻔하다. 대답을 마치니 곧 다른 질문이 날아왔다. ​ "가고 싶은 구단은 있으십니까?" ​ "따로 팀을 가리진 않습니다. 어디든 지명받은 구단에서 최선을 다할 예정입니다." ​ 답변을 마치니 손을 드는 한 기자. 피부가 까무잡잡한 걸 보니, 외국인인 모양. ​ "하산 이크발 선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오호라.' ​ 성묵은 바로 견적이 나왔다. 상위 리그에서 뛰는 자국 선수에 대한 좋은 평가를 수집하는 일명 '국뽕 기자'다. 아마도 국적도 핫산이랑 같은 파키스탄이겠지. ​ '서비스 한 번 해볼까.' ​ 파키스탄 사람들 아랫도리가 축축해질 만한 언사를 버무린 성묵. 곧 그의 입에서 휘황찬란한 말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 "너무나 훌륭한 기량을 가진 동료입니다." "항상 노력하고 밝게 인사해서 모든 팀원이 좋아합니다." ​ “오오…?” ​ "그런 선수가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미래엔 엄청난 선수가 될 거라 확신합니다." ​ "오오…!!!" ​ 기대한 것 이상의 사료가 떨어지자 눈빛을 반짝이며 받아적는 파키스탄 기자. 동료에 대한 질문이 끝나자, 다시 성묵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왔다. ​ "삼진을 잡으실 때마다 세레모니를 하시는데, '우효'라는 단어에 따로 의미가 있습니까?" ​ "………." ​ 이 질문은 나오지 않길 바랐건만. 결국 나오고 말았다. ​ 사실 답은 간단하다. ​ '금태양이니까 하는 건데….' ​ 우효를 뺀 금발 태닝 양아치는 성립될 수가 없다. 그건 빙의 전에 최애캐로서 금성묵을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고, 빙의하여 금성묵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 ​ 그러나 그런 대답을 기자가 납득할 리는 없다. ​ ‘감성팔이 함 조져?’ ​ 남들이 보기에 성묵의 ‘우효 포효’는 굳이 호불호를 따지자면, 불호가 더 많을 확률이 크다. 그렇다면 적당한 사연을 만들어내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라는 걸 알려준다면 이런 캐릭터성도 설득할 수 있으리라. ​ “……후우.” ​ 성묵은 잠시 눈을 감더니, 다시 뜨면서 사뭇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 ​ “저는 부모님 두 분이 다 없습니다.” ​ “……!?!” ​ 다짜고짜 고아 선언! 질문을 던진 기자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 “어릴 때 두분 다 저를 버리고 집을 나가셨습니다. 그탓에 지독하게 방황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 조회수 냄새를 맡은 것일까. 성묵의 사연에 기자들의 타이핑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 ‘쓰읍, 억즙은 안 나오네.’ ​ 그래도 슬픈 척은 해야 하니 성묵은 왼손으로 눈가를 가렸다. ​ “우효는 제 태명입니다.” ​ “…태명!” ​ “굳이 태명을 외치는 이유는 가족과 함께해 짧게나마 행복했던 그 시절에게 작별을 고하는, 일종의 자기치유 행위입니다. 나 당신들 없이 이렇게 잘 컸고, 앞으로도 잘 살 거라고요." ​ 처음부터 끝까지 말도 안 되는 개소리지만, 감수성 풍부한 한 여기자의 눈가에는 그렁그렁 눈물까지 맺혀있다. 적어도 기자 중에 한 명은 확실히 편으로 만든 성묵이다. ​ 심지어 다른 분야지만, 나름 의사인 노진승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 치유 효과에 대해 긍정하는 반응을 보였다. 급조한 것 치고는 꽤 그럴듯하게 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 ‘부모 방패 아주 든든하구만.’ 성능 좋은 가불기가 생긴 성묵은 아주 든든한 기분이다. ​ “…이상입니다, 다음 질문받겠습니다.” ​ 한동안 정적이 흐른다. 다크한 가정사의 여파는 꽤 큰 모양. 이대로 마무리되나 싶었는데, 한 기자가 손을 번쩍 들어 질문했다. ​ “대선 일보의 김병일 기자입니다. 혹시 올 한해 목표가 있습니까?” ​ “아, 좋은 질문입니다.” ​ 이 역시 고민할 필요가 없다. 성묵은 고교 야구팬들이 단숨에 불탈 만큼 화끈한 장작을 던져줬다. ​ “세종기 우승입니다.” ​ “………!!” ​ 제 귀를 의심하는 기자들. 아무리 대기록을 세웠다지만 신생팀의 일개 선수가 입에 담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목표다. 질문을 던졌던 기자가 재차 확인했다. ​ “저기, 다시 한번 확인하겠습니다만. 세종기 진출을 잘 못 말한 게 아닌지….” ​ “아뇨, 세종기 우승이 맞습니다.” ​ “………!!” ​ 수백년 전통의 강호고가 즐비한 야구 최강국 한국에서, 갓 야구부를 창설한 고등학교가 우승한다? 전례가 없는 일이고, 그 누구도 그걸 가능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 그러나 성묵은 흔들림이 없다. 여기엔 사실 치밀한 설계가 있었다. ​ ‘이제 너희도 공범이다. 짜식들아.’ ​ 성묵이 ‘세종기 우승!’을 대놓고 인터뷰에서 말한 이상, 문혁고 야구부원들은 좋으나 싫으나 한 배에 올라타게 됐다. 그동안 성묵이 농담하는 줄 알고 하하호호 하던 녀석들은 아마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기분이리라. ​ “금성묵 선수, 지금 역대급 지옥의 조에 걸리시지 않았습니까.” ​ “네, 맞습니다.” ​ “멀리 갈 것도 없이, 봄 대회에서 차차 기린고, 대관령고, 한청고 같은 작년 세종기 진출팀을 상대로 이기셔야 할 텐데 이에 대한 대책은 따로 있습니까?” ​ 조 예선부터가 개 빡센데 세종기 진출부터 할 수는 있겠냐는 질문. 귓가에서 동료들의 ‘그만해 자식아...!’ 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지만, 성묵은 단호하게 말했다. ​ “일단 들이박고 보겠습니다.” ​ “드, 들이박는다고요.” ​ “강호라고 쫄 생각 없습니다. 전국에 가는 건 저희 문혁고입니다.” ​ “………!!” ​ 성묵의 강렬한 선언. 다시금 기자들의 타이핑 소리가 분주해졌다. ​ 성묵의 강도 높은 발언으로 인해, 문혁고는 ‘전국 우승을 선언한 기세로운 학교’로 야구팬들에게 큰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아마 한동안 고교야구 커뮤니티에는 그들의 이름이 한동안 계속 입방아에 오르리라. ​ “질문 없으면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그렇게 성묵이 퇴장하며 기자회견이 끝나고, 대부분의 기자들이 떠난 회견장. 여전히 한 기자가 자리에 앉아있다. ​ “흠, 어디 쌈빡한 제목 없나….” ​ 펜대를 돌리며 성묵에 관해 쓸 제목을 떠올리는 기자. 그는 왠지 성묵의 마지막 몇 마디가 뇌리에 남았다. ​ ‘일단 들이박고 보겠습니다.’ ​ “들이박는다…, 들이박아. 들고, 박아…?” ​ 방금 전 인터뷰의 워딩을 곱씹는데, 문득 기자의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성묵의 ‘태양신맥 폼’. ​ “오, 그래…! 바로 이거야!” ​ 기자가 씨익 미소 지었다. 성묵이 가진 묵직함과, 방금 전 워딩을 결합하니 아주 마음에 드는 제목이 탄생했다. ​ [문혁고 금성묵 曰 “강호고? 전부 ‘들박’하고 세종기 갈 것”] ​ AI가 많이 발전했다지만, 아직 인간의 광기를 따라잡기는 모자란 모양. ​ 그렇게 본인이 모르는 사이, 성묵에겐 대체불가 수준의 캐릭터성이 무럭무럭 자리 잡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