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에서 나가기 전, 열심히 구글링했다. ​ “이름은 올리비아 램지, 나이는 나랑 동갑인가.” ​ 어제 나와 부딪힌 그녀의 프로필을 말이다. 영국의 최고 스타 셰프, 고딘 램지의 딸인 그녀는 현재 홀홀단신으로 한국 유학을 온 모양이다. ​ “청백요리사 최연소 출연자, 탑 20까지 진출….” ​ 천재적인 재능으로 많은 요리사의 감탄을 자아냈으나, 1:1 대결의 요리 재료 뽑기에서 그만 청국장을 뽑아버린 덕분에 장렬하게 탈락했다고. ​ 분량 자체는 많지 않았으나 엄청난 미모, 탁월한 재능, 뛰어난 한국어 실력이 더해져 상당히 인기를 끌고 있다는 모양이다. ​ ‘근데 이 종이가 그런 천재 요리사의 약점이라 이거지.’ ​ 대충 쓱 훑어봤는데, 유학 허가에 관련된 서류로 보였다. 단순히 내용상으로 이상한 부분은 크게 못 느꼈다. 뭐가 약점일까 찾다 보니 뭔가 이상한 걸 깨달아 버렸다. ​ ‘…애초에 약점을 알아서 뭐 할 건데?’ ​ 나는 금성묵에 빙의했을 뿐 양아치는 아니다. 내가 뭐 남의 약점을 쥐고 흔들며 즐기고 다닐 만큼 여유롭지도 않고, 설령 있다 한들 괜히 책잡혀서 발목 잡힐 일은 만들 생각이 없었다. ​ 가타부타 그런 생각을 하며 계단을 내려가다 뭔가에 다리를 세게 박았다. ​ 쾅! ​ “아오 썅…!” ​ 길길이 날뛰며 쳐다보니, 좁은 계단 통로에 항상 같은 자리에 주차되어있는 오토바이였다. ​ “이놈의 좆같은 오토바이. 어떤 새끼야…?” ​ 화려한 색깔에 스트릿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은, 미적 감각이 아주 의심되는 오토바이가 세워져 있다. 꽤나 고가로 보이는데, 이 작은 자취방에 이런 걸 끌고 다니는 놈은 대체 언놈일까 싶다. ​ “…후, 중요한 거 아니니까.” ​ 지금 1순위는 투음절맥에서 얼마나 꿀을 빨 수 있는지다. 관건이었기에 그런 사사로운 건 좀 여유를 찾은 뒤에 해도 늦지 않다. ​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내가 찾은 곳은 아주 낡은 피칭 센터였다. ​ [덕수 투구장] ​ 다른 센터들처럼 영어 표현도 쓰지 않은 전통 그대로의 피칭센터. 기본 중의 기본이라는 스피드건 하나조차 없어서 사람도 거의 찾지 않는 이런 구닥다리 피칭센터에 굳이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냐? 그 이유는 바로, 훈련 시 변화구 숙련도를 평상시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높여줄 수 있는 이 센터만의 ‘무언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 끼익- ​ “계십니까.” ​ 안에 들어가 보니,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는 여러 가지 물건들을 배경으로 한 할아버지가 앉아있었다. ​ "홀홀,,, 할멈~" ​ 저 노인이 이 센터를 지키는 중인 중증 치매 환자인 '덕수 할배'였다. 나는 돈통에다가 지폐를 집어넣고는 할아버지 앞에 놓인 공들을 받아서 들었다. ​ "공 좀 던질게요." ​ "공? 이상하다. 공으로 시작하는 말이 뭐가 있었지,,,?" ​ 헛소리하는 할아버지에게 꾸벅 인사하고는 공 바구니를 들고는 칸 하나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가방에서 챙겨온 물건들을 꺼냈다. ​ ‘데워둔 핫팩 두어개를 어깨 쪽에 묶어서 고정하라 하셨지.’ ​ 투음절맥으로 데워지지 않는 어깨에 강제로 열을 내어 부상 확률을 떨어트리기 위함이다. 그리고 하나 더, 가방에서 수건과 그걸 묶을 끈 역시 꺼내들었다. ​ ‘재갈은 솔직히 개오바긴 했어.’ ​ 입을 단단히 막지 않으면 몸속에서 떠도는 양기가 입 밖으로 새서 훈련의 효과가 크게 반감된다는데, 사실 수건을 입 안에 꽉 넣어서 고정시키는 걸로 대체가 가능하다는 모양이다. ​ 진작에 좀 말해줬으면 오해도 안 받고 좋았지 않나 싶다마는. ​ ‘…시작해볼까.’ ​ 내가 투음절맥에 걸린 것을 확인한 뒤 기뻐한 것은 전적으로 지금부터 할 훈련의 효과에 있다. 어깨를 달구지 못한 열들은 어디에 맺히게 될까. ​ ‘손끝이지.’ ​ 이 손끝은 변화구의 퀄리티를 결정하는 부위인 만큼, 그 감각을 얼마나 잘 깨우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평소보다 더욱 기가 몰려있는 지금 시기는 경험치 2배 이벤트나 마찬가지. 변화구 스텟작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시기라는 것이다. ​ 현재 내 변화구 스텟은 C. 중하위권 수준의 변화구에 지나지 않는다. 살아남으려면 아득바득 올려야 했다. ​ '개같이 굴러서 B까지는 올려둔다.' ​ 누구는 6개월, 1년, 3년 해도 못 익힐 수도 있는 변화구 스탯 B의 감각을 이 3주 만에 익혀내겠다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미친 짓이다. ​ ‘하지만 해내야 돼.’ ​ 그런 짓이라도 해내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할 만큼 내가 이뤄내야 할 목표는 만만치 않았다. ​ 철렁-! ​ [피칭 연습 모드를 시작합니다.] ​ 시스템 창의 안내와 함께 훈련을 시작했다. 이곳 덕수 투구장의 룰은 간단하다. 그물에 공을 다 던지고, 그게 20구가 되면 본인이 직접 가서 주워오는 방식이었다. ​ [커브 숙련도가 3 올랐습니다.] ​ [슬라이더 숙련도가 4 올랐습니다.] ​ "홀홀홀~." ​ 처음 20구를 다 던지면 공을 줍지도 않았는데 덕수 할배가 직접 와서 다른 공들을 리필해준다. 다들 놓치기 쉽지만 이게 핵심이었다. ​ 덕수 할배가 가져온 공들의 상태는 하나같이 개판이었다. 낡고 까끌까끌한데다 실밥도 어떤 부분은 굵고, 어디는 얇은 요상한 공을 가져다준다. 여기서 불만을 표한다면 다시 평범한 공으로 바꿔준다. ​ "이 공들 너무 좋은데요. 감사합니다." ​ 하지만 내가 바라던 게 이거다. 나는 받아든 공으로 변화구 그립을 잡고는 다시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 슈우욱- ​ 철썩! ​ [슬라이더 숙련도가 10 올랐습니다!] ​ 작은 각도의 커브와 슬라이더가 차례대로 그물망에 쏙 들어갔다. 손에 걸리는 이 감각. 확실히 일반적인 공보다 더 채는 느낌이다. ​ "그래, 이거지......!" ​ 방금까진 그냥 그립을 우겨 잡고 투척하는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손에 확실히 감겨서 휘어가는 느낌이랄까. ​ 실제 체감의 차이는 능력치 성장에도 유의미한 차이로 이어진다. 아마도 최소 두배, 크게는 세배까지도 차이가 나겠지. ​ [커브 숙련도가 11 올랐습니다!] ​ 실전에서 쓰이지 않을 공이니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이 많지만, 일단 연습에서 손에 감각을 때려 박는 건 어찌 보면 빠른 습득으로 이어지는 지름길. ​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 대략 150구 정도를 던졌는데, 온몸의 근육에서 비명을 질러댔다. 하긴 본격적인 투구는 오랜만이니까. ​ 그 뒤로도 나의 일상 루틴은 단조로웠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매일같이 던졌다. ​ 철썩! ​ [커브 숙련도가 10 올랐습니다!] [슬라이더 숙련도가 11 올랐습니다!] ​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몸이 찌푸둥 해서 좀 쉬고 싶은 날조차도 꼬박꼬박 덕수 투구장을 찾아왔다. ​ “안녕하심까. 할아버지.” ​ “홀홀~” ​ 철썩-! ​ “아오, 썅 힘들어…!” ​ 호흡해야 할 입에다 수건을 꽉물고, 어깨엔 핫팩을 둘둘 감고 수백개의 공을 던지는 건 상상을 초월할 만큼 힘들었다. ​ 그래도 던졌다. 어깨를 달구느라 다 쓴 핫팩들이 쓰레기통을 가득 채울 만큼. ​ 그렇게 3주의 시간이 흐르고 대망의 시간이 다가왔다. 참 다행히도, 노력은 날 배신하지 않았다. ​ ㄴ커브: B ㄴ슬라이더: B ​ 커브와 슬라이더 모두 B등급을 찍었다. ​ 놀라운 것은 아직 내 변화구 스텟이 C라는 것. ​ 변화구 스텟은 본래 ‘이 사람은 이 정도 수준까지 다른 변화구를 익힐 수 있다~’라는 감각인지라 본래 가진 변화구 스텟을 넘어서는 건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 ​ ‘하지만 해냈죠.’ ​ 투음절맥 상태에 감각이 한층 민감해진 특수상황을 이용해 만든 꼼수였다. 아무튼 이제 투수로서 밥벌이 정도는 할 수 있게 됐다. ​ B등급 변화구라면 이 고교리그에서도 중상급 스터프는 된다. 구속을 서서히 올려가는 와중에도 난타당하지 않을 정도로는 먹고살 밥줄은 돼줄 거다. ​ “파하! 이제 이 엿같은 훈련도 끝이다.” ​ 입에 물고 있던 수건을 강하게 던져버린 나. 투음절맥으로 빨 수 있는 꿀은 다 빨았다. 이젠 홀가분한 마음으로 치료를 받을 차례다. ​ “감사했습니다. 할아버지! 또 올게요!” ​ “홀홀홀,,,,," ​ 인사하고 떠나는 날 덕수 할배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쳐다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기분 탓이겠지만. ​ ​ ######## ​ ​ 대망의 치료 날. 나는 목욕재계하고 선생을 기다렸다. 다소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기에 조용한 장소가 필요했고, 저번처럼 오해를 사는 것을 피하기 위해 우리 집으로 선생을 모시고 왔다. ​ “거기 앞에 턱 있습니다. 여기 앉으시면 돼요.” ​ 서혁준 선생을 부축하여 적당한 위치에 앉혀드렸다. 그리고 촤르륵 가져온 침술 도구들을 펼치는 선생. ​ “…미리 말씀드립니다만, 이번 치료에는 엄청난 통증이 수반됩니다. 그 와중에 입을 벌리시게 되면 기가 새어나가 어깨가 크게 파열될 수 있습니다.” ​ “걱정 마시죠. 저 아픈 거 진짜 잘 참습니다.” ​ 고작해야 치료 조건이 입 벌리지 말라는 거라니. 이 얼마나 쉽단 말인가? 게임 캐릭터 이놈들 치료 힘들다더니 그냥 엄살이었네. ​ “…다들 처음엔 그렇게 말하곤 하죠. 한 번 시험 삼아 어떤 정도인지 맛보기만 해보시는 건 어떠실지요?” ​ “하하, 굳이 안 해도 될 것 같지만 해보셔도 좋은-, 끄흐으으엉엇…” ​ 나도 모르게 가오 상하는 신음소리를 내버렸다. 개 쪽 팔렸지만 졸라게 아팠다. ​ “흠, 역시나. 아무래도 익숙해지실 때까지 찔리시는 게 좋겠군요.” ​ “아니 그런 무식한 방법이…, 끄, 끄악-----!!” ​ 그에게 무자비한 침술 세례를 받은 나는, 기진맥진해져서야 겨우 이 고통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 “하시죠……….” ​ 반쯤 넋이 나간 나는 힘 없이 대답했다. 차라리 이렇게 정신을 내던지는 편이 고통을 조금이라도 견디기 편했다. 하지만 본방은 그리 만만치가 않았다. ​ “시작하겠습니다!” ​ 팍 팍 팍! ​ “……………………!!” ​ 아까의 고통은 예사라는 듯 뇌가 파괴되는 수준의 고통이 몸 전체로 번진다. 온몸의 피가 어깨의 혈관을 쾅쾅 두드리는 이 생경한 느낌은 가히 겪어본 적도 없고, 상상도 하지 못해왔던 고통이었다. ​ “참으세요! 참으셔야 합니다!” ​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긴장의 끈을 놓으면 바로 기절해버리거나 입을 벌리게 될 것 같았다. ​ “끄으으으으으……………!!!” ​ 눈을 부릅뜨고 악으로 깡으로 버틴 지 얼마나 됐을까. 내 안을 꽉 막고 있던 무언가가 사르르 녹아내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서혁준 선생이 아무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치료가 무사히 끝났음을 알 수 있었다. ​ “축하합니다. 다시 그 재능을 마음껏 펼치실 수 있겠군요.” ​ “감사합니다, 선생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 감사를 표하고 힘이 들어 심호흡을 하고 있는데, 눈앞에 여러 가지 알림창이 떠올랐다. ​ [치명적인 상태 이상을 치료하였습니다!] ​ [변화구 스탯이 C-> C+로 상승했습니다.] [변화구 스탯이 C+->B로 상승했습니다.] [금성묵 님의 변화구 포텐셜이 S등급으로 상승했습니다.] [잠재 키워드 ‘천투지체’가 강화되었습니다. EX->EX+] ​ ‘……와, 대박 터졌네.’ ​ 무려 변화구 스탯이 두단계나 증가한 데다가, 포텐셜도 S를 찍은 덕에 S등급 포텐셜 개수로 결정되는 천투지체의 키워드가 EX+등급으로 떡상했다. ​ 아마 몸에 기운이 좀 남아있었다면 뛰어 다니며 기뻐했을지도 모르겠다.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에 없는 돈까지 다 털어서 치료비를 내려고 했건만, ​ “괜찮습니다. 날개 잃고 추락하던 청년이 다시 날아갈 수 있게 되었다면 그걸로 족합니다.” ​ 극구 사양하며 가려는 그. 어차피 상거지라 거진 외상으로 하려 하긴 했지만, 아예 안 받겠다는 건 다른 이야기. 난 치료 도구를 정리 중인 그의 손을 붙잡고는 말했다. ​ “선생님, 내년에 저는 꼭 프로에 갈 겁니다.” ​ “오호, 그렇습니까.” ​ “그건 전적으로 선생님의 치료술 덕분일 겁니다. 그때 약소한 보답이라도 할 테니 그건 꼭 받아주십쇼.” ​ “…알겠습니다.” ​ 내 말에 옅게 웃은 서혁준 선생은 고개를 주억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데려다 주겠다고 했으나 아무래도 혼자가 더 편한 모양. ​ “후.” ​ 대충 현관에 널브러져 있던 슬리퍼를 신고 문밖으로 나왔다. 봄이 오기 전의 라스트 댄스라도 되는지, 서늘한 날씨에 시큰하게 흘러내리는 콧물을 눌러 닦았다. ​ “이젠 진짜로 야구만 하면 되겠구만.” ​ 시간만 충분하다면, 내가 최고가 된다는 것에 그 어떤 의심도 없었다. 문제는 주어진 시간이 1년뿐이라는 게 문제지만. ​ “슬슬 만들러 가볼까. 야구부.” ​ 목표는 전국 제패. 드디어 함께 싸울 동료들을 끌어모을 시간이 왔다. ​ ​ ​ ##### ​ ​ ​ 진성고와 선유고의 경기가 한창 진행 중인 한 야구장. 7번 타자로 출전한 도도진의 배트가 맹렬하게 돌아갔다. ​ 따악! ​ 삼유간을 깔끔하게 가르는 역전 적시타. 안타를 치고 손을 번쩍 드는 그의 모습에 모두가 놀랐다. ​ “오늘만 벌써 4안타째인데요.” ​ “선 코치, 뭐 특훈이라도 시켜줬나?” ​ “커흠, 뭐 그렇죠. 녀석이 워낙에 타격에 고민이 많아 보여서 제가 따로 잠깐 봐줬습니다. 하하!” ​ 덕아웃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도도진은 신물이 날 지경이었다. ​ ‘…마음대로 떠들라지.’ ​ 그는 이미 이 학교에 마음이 떠 있었다. 누나때문에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선배 놈들, 무능하면서 입만 산 코치. ​ 금성묵에게 야구부 테스트를 보러 오라는 전화를 받는 대로 그는 전학 갈 생각뿐이었다. ​ 타자 능력치 (*포텐셜) / 우투 우타 파워: F 컨택: B+ (*A) 스피드: B 선구: B+ (*A+) 수비: B (*A+) 어깨: B 추천 포지션: 2루수 ​ 금성묵에게 잠깐의 지도를 받았을 뿐인 도진은 어느덧 컨택 능력치가 두단계나 훅 상승해있었다. ​ 그동안 쌓아 올린 노력과 야구에 대한 이해, 최근 잘 맞기 시작한 타격으로 생긴 자신감 등이 합쳐져 나온 결과였다. ​ 도진의 활약 덕분에 경기는 진성고의 승리로 끝. 정리를 마치고 나오는 도진에게 한 여자가 손을 흔들었다. ​ “도진아, 여기야!” ​ “아, 누나!” ​ 작은 경차를 끌고 마중을 나온 그의 누나, 도도연이었다. ​ “와, 도진이 누나 개 이쁜데.” ​ “진짜 부럽다….” ​ 수수하게 흰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있을 뿐인 그녀였으나 찰랑거리는 흑발의 생머리와 청순한 얼굴, 그리고 폭력적인 몸매가 더해지자 주변 남자들의 시선이 모두 그녀쪽으로 쏠렸다. ​ 그런 시선들을 뒤로 하고 차에 타서는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는 둘. 경기가 끝나면 늘 죽상이었던 도진은 오랜만에 표정이 매우 밝았다. ​ “도진이 오늘 진짜 잘 치더라? 컨디션이 좋았어?” ​ “아니, 방법을 조금 바꿨어. 새로운 멘토가 생겼거든.” ​ “멘토…?” ​ “응, 야구에 대해 엄청나게 잘 아는 형이야. 내 타격폼을 잠깐 보더니 좀 더 잘 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줬어.” ​ 그의 타격폼을 봐줬다는 말에 도연은 흠칫 놀랐다. 동생의 부탁에 폼을 교정해주긴 했지만, 자신의 이론에 자신감이 부족했던 그녀는 내심 떨리는 마음으로 물었다. ​ “…혹시 뭐가 문제래?” ​ 피식- ​ 누나의 마음을 대번 알아 챈 도진은 씩 웃고는 답했다. ​ “폼 자체는 엄청나게 칭찬했어. 누군진 모르겠지만 대단하신 분 같다고 하던데.” ​ “어머, 진짜…?!” ​ 금방 화색이 된 표정으로 기뻐하는 그녀. 자신의 전문 지식에 대해 칭찬받는 것이 그녀에겐 가장 큰 기쁨이었다. ​ “그래서 그 형이 말한 게, 테이크백을 간결하게 해서 좀 더 포인트를….” ​ “응, 응.” ​ 도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고교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상당한 지식을 가진 사람임을 그녀는 느꼈다. ​ “나도 반성해야겠네. 거기까진 생각 못 했어.” ​ “아니야, 누나가 잘 봐준 덕분에 그거 수정한 폼으로도 잘 되는 거지.” ​ 마음의 벽을 잘 열지 않는 동생이 이렇게까지 누군갈 칭찬하는 걸 도연은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 “그래서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그 형, 이름이 뭔데?” ​ “성묵이 형이야. 금성묵. 부산에서 왔다는데.” ​ “……뭐?” ​ 미소를 띄고 있던 그녀의 표정이 삽시간에 딱딱하게 굳었다. 마치, 못 들을 것을 듣기라도 한 듯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