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올리비아 네가 불법체류자라는 소리잖아?” ​ “……!?!” ​ 갑자기 휘청이는 그녀. 꽤 충격이 큰 모양이다. ​ “내가 불법…, 아니 아무리 그래도….” ​ “괜찮아?" ​ “앗, 네…, 갑자기 현기증이 나서요.” ​ ‘그게 그렇게 충격이었나?’ ​ 남의 입을 통해 본인의 신분을 재차 확인받고는 충격받은 듯했다. 하긴, 불법 체류자라는 어감이 꽤 강하긴 하지. 각설하고, 월드클래스 셰프의 딸이나 되는 사람이 불법체류자가 된 계기를 들어보지 않을 수가 없다. ​ "무슨 사정이 있던 건지 자세히 이야기 해줬으면 좋겠는데, 괜찮을까?" ​ "네, 좋아요." ​ 내가 궁금한 건 그녀가 왜 집을 떠났는지, 왜 많고 많은 나라 중에 하필 한국에 왜 왔는지다. 올리비아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 "유럽권에서 제 아버지는 너무 유명해요. 자연스레 딸인 저 역시 어릴 때부터 미디어에 많이 노출되다 보니 요리 신동으로 유명세를 치렀어요. 그러다 보니 평범한 사교 관계를 쌓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어요." ​ 유명인 2세의 삶이란 좋은 점만 있을 것 같지만, 모든 것에는 명과 암이 있는 법. 올리비아의 인생 역시 그랬다. ​ “어릴 때부터 저한테 무언가를 바라고 다가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어요. 그래서 딱히 친구라 할 만한 존재를 사귀어본 기억이 없어요.” ​ 그녀의 뒷배경이 됐든, 외모가 됐든 여러모로 똥파리가 꼬일 수밖에 없는 상황. 나는 그 상황이 얼추 이해됐다. ​ "그래서 저희 아버지는 걱정이 많았어요. 요리 실력은 동나이대에서 적수가 없지만, 지금 이대로는 제대로 된 요리사가 될 수 없다면서…." ​ "그건 또 뭔 소리래. 요리사가 요리만 잘하면 된 거 아니야?" ​ 직접 맛본 바로는 그녀의 요리 스킬은 확실히 탁월하다. 괜히 최연소 미슐랭 3스타의 재목이라는 게 아니다. ​ 그동안 해온 억까 역시 한식이 그녀의 주전공과 상당한 거리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 그마저도 이제는 한식 실력이 너무 높아져 억까 바리에이션도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 이만큼 빨리 익숙해진 것 역시 그녀가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 "저희 아버지께서 늘 입에 담던 말이 있어요. 요리사란 기계처럼 레시피대로 요리하는 존재가 아니다. 요리를 먹는 사람을 위한 감정이 담겼을 때 그 요리는 진정 의미를 가진다, 라고요." ​ "오, 좋은 말인데?" ​ 요리물의 클리셰 아닌가. 감정이 담겼을 때 더욱 맛있어지는 요리! ​ "맞아요, 거기까지는 납득했어요. 그런데 그다음이 문제에요.​" ​ "응?" ​ "아버지는 제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면 더 좋은 요리사가 될 거라 생각하셨나 봐요." ​ "어, 설마." ​ "예, 제 동의 없이 다른 명문가 집안의 남자랑 약혼을 시켰어요. 저는 당장 누군가와 교제할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도요." ​ “…쉽지 않네.” ​ 빠꾸 없는 전개에 성묵이 이마를 탁 짚었다. 아무리 요리 실력이 뭐니 해도 미성년자인 딸을 다짜고짜 턱 하니 시집 보내려 하다니. 딸의 인생보다는 요리 실력이 우선이라는 것인가. 램지 가문도 은은하게 돌아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 "도망칠 만 했네. 그래서 바로 집에서 나온 거야?" ​ "처음엔 체념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한국에서 만든 영화가 눈에 들어왔어요." ​ "…한국 영화?" ​ 태극기가 펄럭이는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지는 기분이 든다. 설마 남자 배우에 반해서 한국에 덕질이라도 하러 온 건가…? ​ "거기서 원치 않는 결혼에 반대하며 도망친 여자의 이야기가 나왔어요." ​ “음, 평범한 한국 영화 맞구만.” ​ "재벌가의 며느리로서 누릴 지위를 포기하고, 자유롭게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가는 여자의 이야기였어요." "거기서 살면서 처음으로 감정이 요동치는 걸 느꼈어요. 그때 한국에 대해 처음으로 관심을 가졌어요." ​ 올리비아는 ‘나 이 결혼 못해!’ 하고 도망치는 K-영화를 보고는 큰 울림을 받았던 모양. 김구 선생님, 보고 계십니까…? ​ “그럼 단순히 그 영화 때문에?” ​ "큰 계기가 되기는 했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온 건 아니에요. 유럽에서 먼 한국이라면 아버지의 영향력이 닿지 않으니, 더 자유로울 거란 생각도 있었어요." ​ 일리가 있긴 하다. 아무리 스타 셰프가 유명해도 본토만큼은 인기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때 머릿속에 한 의문이 떠올라 올리비아에게 물었다. ​ "말이 앞뒤가 조금 안 맞는 것 같은데. 자유로워지고 싶다면서 방송에는 굳이 왜 나온 거야?" ​ 자유를 찾아 도망친 사람이 굳이 전 세계에 송출되는 넷플렉스 방송에 나온 이유를 성묵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 하지만 의외로 그 이유는 아주 현실적이었다. ​ "…가지고 나온 돈이 다 떨어져서요." ​ "아." ​ "아직 미성년자라 요리 관련해서 할 수 있는 일자리가 거의 없어요. 단순 알바로는 금액이 너무 부족하고요." ​ 아무리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에 다니고 있어도, 타국에서 숙박과 식비 등을 모두 충당해야 하는 상황. ​ 그 상황에 고딘 램지의 딸이라는 타이틀이 필요한 넷플렉스 측과, 돈이 필요한 그녀의 니즈가 맞은 모양이었다. 그 결과 한국에서도 나름 유명세를 얻은 덕분에 간간이 이벤트 팝업을 열게 되어 돈 문제는 해결됐다는 모양이다. ​ “그거 너희 아버지도 보셨어?” ​ “글쎄요, 워낙에 바쁘신 분이라 아시아의 예능까지 보셨을지는 모르겠네요.” ​ 아마 안 봤을 거라 확신하는 표정이다. 나로선 짐작할 수 없는 묘한 관계가 있는 걸로 보인다. ​ “……….” ​ 뭔가 할 말이라도 있는 것처럼, 갑자기 꼼지락대는 올리비아. 예상대로 그녀가 곧 입을 열었다. ​ “성묵 씨,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 “갑자기 웬 부탁?” ​ “안 되나요?” ​ 금빛 보석이 박힌 것 같은 눈으로 날 올려다보는 그녀. 갑자기 뭔가를 부탁 할 줄은 예상 못 했다. 너무 예뻐서 마음이 약해질 뻔했지만 공수표를 발행할 수는 없는 법. ​ “일단 들어보고.” ​ “......” ​ 잠시 머뭇거리는 그녀. 그리곤 의외의 말을 내뱉었다. ​ “앞으로도 제 요리를 평가해주시면 안 될까요?” ​ “……!?” ​ 솔직히 깜짝 놀랐다. 설마 그녀가 이런 부탁을 하리라곤 상상도 못 했으니까. ​ ‘맨날 악담만 퍼붓던 놈한테 계속 요리를 해주고 싶다고…?’ ​ 아무리 생각해도 짚히는 점이 없었다. 설마 나 같은 양아치한테 반한 건 절대 아닐 테고. 혹시 M이 아닐까 싶었지만, 그건 아무래도 너무 간 것 같다.짐작이 안 갈 때는 직접 물을 수밖에. ​ “왜?” ​ “성묵 씨가 먹을 요리들을 만들면서 무언가 실마리를 잡은 것 같아서요. 아버지가 말한, 요리에 감정을 담는 것 말이에요.” ​ “으음….” ​ 대체 무슨 감정을 담았길래 실마리를 잡은 걸까. 숱하게 디스해댔으니 분노가 담겨있을 확률이 제일 높겠지만서도. 나도 맛있는 음식을 굉장히 좋아하고, 원래라면 고민의 여지도 없이 받아들였을 거다. ​ ‘이건 거절하는 게 맞을 거 같은데.’ ​ 나와 올리비아 둘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올리비아에게 한식을 요구하긴 했지만, 그녀의 전공은 어디까지나 프랑스 요리. ​ 나는 양식을 좋아하기야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끔 즐길 때의 이야기. 이 기묘한 관계가 이어지려면 어느 한쪽이 다른 쪽에게 맞춰줘야 한다. ​ 올리비아는 굳이 커리어에 도움도 안 되는 한식을 만들며 시간을 낭비할 필요도 없고, 나도 굳이 멀쩡한 전담 영양사 놔두고 그녀가 만든 양식을 먹을 필요도 없다. ​ 그 요리가 영양학적으로 그렇게까지 좋은 음식도 아닐 거다. 그렇다고 맛을 최우선시하는 셰프에게 영양식을 매번 내놓으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 요리를 먹어줄 사람도 굳이 내가 아니라도 많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의 부탁을 거절하려 했다. ​ “역시 안 될 것 같….” ​ “다시 한번 도시락을 만들어봤어요. 이걸 먹어보고 결정해주세요.” ​ 그 순간, 타이밍 좋게 도시락을 꺼내든 올리비아. 따뜻한 걸 보니 금방 막 차려서 가져온 것 같다. ​ “……으음.” ​ 일단은 도시락을 받아들고는 용기를 열었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큼지막한 장어 덮밥. 나름 양식 스타일을 곁들인 것으로 보이는데, 기껏 차려왔는데 안 먹을 수야 없지. ​ “알겠어, 일단 먹어볼게.” ​ 수저를 받아들고 크게 한 젓가락 떴다. 그리곤 한 입 먹자마자 눈이 번쩍 뜨였다. ​ "흐음...!?" ​ 맛있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다. ​ 띠링! ​ [축하합니다! 훌륭한 요리를 맛봤습니다!] ​ 요리명: 장어 스테이크 도시락 요리사: 올리비아 램지 등급: 1 star★ 효과: 일시적으로 체력이 한 등급 상승합니다. 일시적으로 부상 확률이 30% 감소합니다. 일시적으로 훈련 효과가 10% 상승합니다. ​ ‘이런 미친.’ ​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요리계 히로인의 유일한 존재의의. ‘요리 버프’의 효과가 터져버렸다. 내가 놀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 ‘올리비아는 공략 가능한 히로인도 아니었잖아...?’ ​ 그래서 당연히 안 될 줄 알고 버프 관련해서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런데도 효과가 발동된 것을 보면, 정규 히로인이 아니더라도 특정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 시스템의 버프를 받을 수 있는 모양이다. ​ ‘...이러면 판도가 많이 달라지는데.’ ​ 분석계, 요리계, 응원계, 치유계, 운동계, 재벌계 등등. 히로인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플레이어에게 도움 되는 특기를 가지고 있게 설계됐다. ​ 그중에서 요리계 히로인은 특히 그 효용이 낮았다. 버프가 터지기 위해선 호감도 + 요리 스킬의 합산치가 커트라인을 넘겨야 하는데, 그 조건이 굉장히 높았다. ​ ‘요리 버프 터지는 조건 개 빡셈 ㅅㅂ’ ‘어렵게 달성한 거 치고는 가성비도 영...’ ‘그냥 진짜로 얘 아니면 안 되겠다 싶은 거 아니면 요리계는 거르세요’ ​ ‘요리 스킬 랭크도 뛰어나야 하는데, 그 요리를 먹어주는 사람에 대한 호감도가 엄청나게 높아야 발동했지.’ ​ 히로인의 요리 실력이 물이 올라서 훌륭해지기까지 수 년. 주인공 캐릭터가 히로인한테 호감도를 쌓는데도 수년. ​ 초반부터 팍팍 주인공의 도움이 되는 타 히로인들과 비교하면, 그 효용가치가 한없이 땅바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 물론 최고 등급인 3 Star급 요리, 최고등급 판정을 받는 요리까지 가게 되면 엄청난 버프를 받을 수 있기에 티어가 몇단계는 떡상한다. 하지만 3성을 찍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 수준. ​ 나름대로 요리를 잘 한다는 설정이 붙은 히로인들임에도 요리 스킬의 랭크는 B등급 언저리로 게임이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3성 달성에 성공한 사람들은 손가락에 꼽았다. ​ 하지만 종자부터가 다른 우월한 치타, 올리비아는 이야기가 다르다. 나는 요리의 세부 항목에 뜬 호감도와 요리 스킬의 등급을 보고는 경악했다. ​ 상대에 대한 호감도: 약간의 호기심 (30%) 요리 스킬: S ​ ‘실화냐...?’ ​ 호감도 수치가 모자란다는 상황 따위는 압도적인 실력으로 뚫어버린 올리비아. 난생처음 보는 기괴한 수치에 나는 이마를 턱 짚었다. ​ ‘아니, 뭐지 진짜. 요리 히로인은 효율이 씹망이어야 하는데….’ ​ 게임 초반부터 다른 요리계들의 천장을 개박살내버릴 기세다. 올리비아의 요리 스킬을 생각하면 2성을 찍는 것도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무조건 그녀를 옆에 두어야 했다. ​ “…감상이 어때요?” ​ 긴장한 채로 요리의 평가를 기다리며 자신을 올려다보는 그녀의 금빛 눈망울. 난 솔직한 감상을 들려주었다. ​ “맛있어, 그것도 엄청.” ​ “휴…, 다행이에요. 그러면 계속 먹어주시는 건가요?” ​ “일단 그 전에 하나만 짚고 넘어가야겠는데.” ​ “어떤 거 말인가요?” ​ “우리의 관계에 대해서.” ​ “…………!” ​ 내 말에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짓는 올리비아. 경계심이 꽤 높아진 것 같은데, 내가 고백 공격이라도 할 줄 아는 모양이다. ​ “그런 쪽 아니니까 긴장 좀 풀지?” ​ “…저는 아무 말도 안 했어요.” ​ 표정에 다 보인다고, 이 아가씨야. 나도 굳이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요리 히로인을 상대로 이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 ‘2성 이상의 요리를 뚫으려면 어떤 방식으로든 호감도를 쌓아야 하니까.’ ​ 이성으로서의 호감도가 아니라 친구로서의 호감도가 충분히 쌓이기만 해도 이론상 2성 요리까지 도달할 수 있다. 물론 사랑 쪽이 훨씬 더 값을 많이 쳐주니까 2성을 찍기도 쉽지만 그건 힘들테고, 그녀의 요리 스킬이 워낙 대단하니까 우정으로도 충분히 가능할 터. ​ 그래서 지금 그녀와 어느 정도 관계를 확인하고 가는 절차가 필요했다. ​ “올리비아, 우리는 무슨 관계라고 생각하냐.” ​ “…동급생 아닐까요?” ​ “거리감이 멀어도 너무 멀잖아.” ​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느 정도는 거리감을 좁힐 필요가 있겠다. ​ “아까 말했지. 너한테 뭘 바라고 오는 사람들 천지여서 친구가 없었다고.” ​ “네, 맞아요.” ​ “그런 생각 안 해봤어? 네가 나한테 뭔가를 부탁하려고 다가오는 것도, 네가 싫어하던 그 사람들과 비슷한 행동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 “…………!” ​ “뭐라 하는 게 아니야. 나는 솔직히 그런 사람들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주의거든.” ​ “네…?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요?” ​ “간단해, 나도 똑같이 그놈을 뜯어먹으면 되는 거지.” ​ “아.” ​ 전혀 그런 쪽으로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듯 놀라는 올리비아. ​ “물론 필요에 의해 형성된 관계니까 순수한 관계는 아니겠지. 그런데 난 그것도 엄연히 친구의 일종이라 생각해. 순수한 관계만 좇기에는 인간관계의 유형이 너무도 다양하거든.” ​ “그럴 수도…, 있군요.” ​ 내 말에 신선한 충격을 받은 듯한 올리비아. 그녀는 잠시 무언가 생각하더니 내게 물어왔다. ​ “성묵 씨는 저랑 친구가 되고 싶으신 건가요?” ​ “그래, 되고 싶지.” ​ 나는 일말의 고민 없이 답했다. 뒤에 아주 약간의 사족을 덧붙여서. ​ “1년 기간제이긴 하지만.” ​ “…뭐에요, 그게.” ​ “프로 지명을 못 받으면 아주 먼 곳으로 떠날 예정이거든. 아마 다시는 못 볼지도 몰라.” ​ “........?” ​ 내 말에 갸우뚱하는 올리비아. 물론 그 아주 먼 곳은 하늘나라다. 나도 가고 싶지는 않지만, 개발자 이 시팔놈 때문에. ​ 아무튼 그녀와 괜히 필요 이상으로 정을 붙일 생각은 없다. 나는 아직 고민 하는 듯한 그녀를 향해 손가락을 들어 가리켰다. ​ “간단히 생각해. 너는 나를 통해 감정을 담은 요리의 실마리를 깨우치고.” “나는 네 요리를 통해 맛있는 요리도 먹고, 운동할 때 쓸 기력도 얻고.” “그냥 이번 3학년 동안 딱 그 정도만 하고 갈 길 가자고. 우정이니, 사랑이니 쓸데없는 감정은 빼고 서로 필요한 것만 얻어가는 관계.” ​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얼추 납득했다는 표정을 짓는 올리비아. ​ “그게 성묵씨가 말하는 ‘친구’인 거죠?” ​ “그래, 맞아.” ​ 나는 그녀를 향해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내 손을 맞잡고 악수하는 올리비아. ​ “좋아요, 당신이랑 친구가 될게요.” ​ 쾌청한 하늘 아래, 우린 손을 마주 잡고 친구가 되기로 했다. 그것도 1년짜리 기간제 친구 말이다. ​ ‘…오늘 날씨 좋네.’ ​ 나는 선선히 불어오는 봄바람을 맞으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 1년 뒤에 이 관계가 어떻게 바뀔지, 그때 내가 어떤 모습일지는 아마도 하늘만이 알고 있을 거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