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용은 문혁고의 기숙사로 들어왔다. 본가가 아산인지라 통학이 불가능하기 때문. ​ 참고로 핫산, 리동혁, 석운강은 이미 기숙사에 들어와 있다. 그의 전학으로 꽉 차게 된 4인실. 본인들끼리 조촐한 파티를 했다나 뭐라나. ​ "도진아, 너는 기숙사 안 오냐?" ​ "최대한 집에서 다녀보려고요. 누나한테 배우는 것도 많고요." ​ 진성고 전학생인 도도진은 학교까지 딱 1시간 거리인지라 기숙사를 올 수도 있었지만 거절. 본인이 불편한 점은 없다니 딱히 할 말은 없었다. ​ "아자앗! 잘 부탁드립니다…!!" ​ 처음으로 훈련에 합류한 지수용. 외야 펑고를 받기에 앞서 녀석이 기합을 넣었다. 지금 외야수 수비조에는 의외의 얼굴들이 대기 중이다. ​ "오케이, 다음은 금성묵, 이동혁, 핫산. 셋 앞으로!" ​ "옙!" ​ 투수조의 세 명이 모두 외야 훈련에 합류한 것. 여기에는 아주 슬픈 이유가 숨겨져 있었다. ​ ​ ​ #### ​ ​ '진짜 인재가 없다. 인재가.' ​ 청현고 전에서 수비 때문에 몇 번이나 뒷목을 잡은 나와 명감독은 수비 강화를 최우선 모토로 삼고 있는데, 싹수가 있는 놈이 도무지 보이질 않는다. ​ 급하게 선수를 모은 탓에 어쩔 수 없이 습자지 같은 뎁스를 갖게 된 것이 문혁고 야구부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 나와 명감독은 선수 운용에 관해 여러 차례 대해 논의했다. ​ "일단 외야, 중견수는 지수용 고정으로 박으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 "그래, 수용이 그 녀석 좌익, 우익 둘 다 힘들어하더라고." ​ 흔히 많은 사람이 '중견이 수비 범위 넓으니까 더 힘든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좌익수나 우익수 쪽으로는 공에 회전이 걸려서 오기 때문에, 범위가 넓더라도 비교적 정직하게 날아오는 편인 중견을 선호하는 야수도 분명히 존재한다. ​ 안 그래도 귀가 좋지 않아 시각 의존도가 큰 지수용이다. 청현고에선 확고한 주전이 있어 가지 못한 중견수를 주는 것만으로도 수비가 훨씬 나아질 것은 불 보듯 뻔한 문제다. ​ "서경수 이 자식, 드디어 중견에서 치울 수 있겠네요." ​ "그래, 나도 센터 경수는 보고 있기 힘들더라." ​ 반대로 서경수는 중견에서 더 헤매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줬다. 이렇게 외야 두 자리는 채우는 데 성공. ​ 이제 비는 자리는 우익수, 3루수, 1루수 세 자리다. 이 자리들이 아직 그럴듯한 주인이 없었다. ​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 없는 것 같은데…. 3루는 외부 수혈하시죠." ​ "후우, 성묵이 네 말대로 3루수는 수용이처럼 타 고교에서 빼 오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 둘이서 아무리 짱구를 굴려봐도 답이 없다. GG! 좋은 3루수의 요건인 강습 타구를 받아낼 반사신경, 강력한 빠따. 뭐 하나 충족하는 놈이 지금 문혁고엔 없다. ​ "일단은 우익이랑 1루인데, 제가 둘 다 할 줄 아니까 편한 대로 기용하셔도 됩니다." ​ "오....!" ​ 내 말에 급 화색이 돈 명신우 감독.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당장 수비 스텟이 D라는 점 정도인데. ​ ‘그 정도야 뭐, 금방 올리니까.’ ​ 애초에 우익이 수비 부담이 큰 위치가 아니기도 하다. 물론 내가 거기 들어가는 게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다. ​ "근데 제가 등판할 땐 누가 메꾸죠?" ​ "커흠....." ​ 내가 1선발이라는 게 문제다. 가장 많은 경기, 많은 이닝을 내가 선발로 뛸 텐데 그동안은 누가 메꾼단 말인가. ​ 똑똑! ​ 그때 감독실을 두들기는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 "감독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 "어, 그래 들어와라." ​ 방에 들어온 것은 잔여 체력 훈련을 마친 리동혁과 핫산. 땀에 쩔어 있는 걸 보니 오늘도 열심히 타이어를 끌다가 온 모양이다. ​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오늘도 훈련 수고 많으셨습니다." ​ "아 성무크 형도 있었네요! 감독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 "그래 동혁이, 핫산. 둘 다 수고 많았다. 들어가 봐라." ​ 명 감독에게 인사하러 온 투수조의 일원들. 나는 스텟의 변화라도 있나 싶어 별생각 없이 둘의 스텟을 켜봤다. ​ 그때, 한 문구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 [타자 스텟으로 전환하시겠습니까? Yes / no] ​ "얼레?" ​ 잊고 있었던 기능. 굳이 나 같은 투타 겸업러가 아니라도, 어느 선수든 투수와 타자 양쪽의 스텟을 볼 수는 있다. 다만 웬만하면 주력이 아닌 쪽은 비활성화되어있어 잘 안 보일 뿐이다. ​ "…Yes." ​ 띠링! ​ 그렇게 떠오른 둘의 타자 스텟.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 "오…!?" ​ ​ ​ ​ ##### ​ ​ 핫산과 리동혁의 스텟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명 감독에게 최선의 방안을 제시했다. ​ 그것은 바로 투수진의 외야 겸업화 계획! 재능 넘치는 투수들이 2인분씩 해서 빵꾸를 메꾸는 전략이다. ​ 내 방안을 들은 명 감독은 처음엔 반신반의했으나, 우선은 둘의 외야수로서의 기량을 테스트부터 해보기로 했다. ​ "자, 다음은 이동혁!" ​ 따악! ​ 빠른 타구 판단으로 공을 쫓은 녀석이 안정적인 자세로 공을 잡는다. 명 감독의 표정이 연신 행복한 표정으로 물든다. ​ 이름: 리동혁 국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나이:19 키: 178cm 스킬/ 핵잠수함 (S) : 타자가 타격 시 땅볼 확률이 상승합니다. 잠재 키워드: 백두혈통(A+), 레이저 송구(S) ​ 타자 능력치 (*포텐셜) / 우투 우타 파워: C+ 컨택: B 스피드: B+ (*A) 선구: B 수비: B+ (*A+) 어깨: S (*S) 추천포지션: 외야수 ​ '역시 영재 교육받은 왕자님이라 이건가.' ​ 서경수 상위호환 격인 스텟을 자랑하는 녀석. 이 정도면 그냥 마무리 등판 전까지는 붙박이 우익수를 시켜도 될 것 같다. 실제로 방금 프리 배팅을 시켰을 때 질 좋은 타구를 계속해서 쳐내기도 했다. ​ 물론 리동혁이 순순히 우익수를 맡겠다 한 것은 아니다. 녀석의 능력을 직접 본뒤, 내가 설득하자 녀석은 이렇게 말했다. ​ "동무, 왜 굳이 내가 외야까지 맡아야 하는 것이오? 다른 동료들도 많지 않소." ​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리동혁. 굳이 내가 왜 해야 하냐는 느낌은 아니다. 단지, 외야로 뽑힌 동료들이 많은데 그 자리까지 자신이 빼앗는 건 아닌 것 같다는 뉘앙스다. 사실 이럴 때 녀석을 설득하는 건 쉽다. ​ “너만큼 잘하는 사람이 없어. 너도 우리 사정은 알잖아.” ​ “그건 그렇소만….” ​ “외야조 선수들도 동의했어. 경기 출전 기회가 줄어도, 더 실력이 좋은 네가 출전해서 승리를 가져다준다면 그걸로 만족한다고.” ​ “그게 정말이오…?” ​ “물론이지.” ​ 당연히 구라다. 내가 귀찮게 그런 걸 왜 물어봐? ​ “네 어깨에 팀의 미래가 달려있어. 부탁한다." ​ "...크흠.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 쉽게 설득에 성공했다. 이런 감정적인 측면으로 접근하면 생각보다 설득이 쉬운 게 리동혁이다. ​ 이다음은, 핫산의 차례. 녀석은 이야기를 꺼냈을 때부터 ‘재밌겠다!’라며 한다고 해서 어렵고 자시고 말할 것도 없다. ​ "자, 핫산!" ​ 따악! ​ 핫산에게서 꽤 멀리 떨어진 코스로 공이 날아가는 공. 그러나. ​ 타다닥! ​ 엄청난 스피드로 달려가 슬라이딩하는 녀석. 아쉽게도 공 자체는 글러브를 맞고 퉁겨나갔지만, 핫산의 엄청난 주력을 엿볼 수 있었다. ​ 이름: 하산 이크발 국적: 파키스탄 나이: 17 키: 186 cm 스킬 / 알라의 요술봉 (A) : 위기 상황에서 구위가 한 랭크 상승합니다. 잠재 키워드: 질풍(S), 레이저 송구(S+) ​ 타자 능력치 (*포텐셜) / 우투 우타 파워: D 컨택: D 스피드: A+ (*S) 선구: C 수비: C+ 어깨: S+ (*S+) 추천포지션: 외야수 ​ ‘어쩐지 공 던질 때 탄력이 남다르다 했어.’ ​ 빠따 재능은 처참해서 스타팅 외야수로 쓰긴 힘들겠지만, 후반에 대주자로 쓰거나 내가 1루를 가야 할 상황이 생겼을 때 등, 충분히 쓸모가 많았다. ​ ‘주력 포텐 S에 어깨 S+, 이건 확실한 강점이야.’ ​ 녀석이 외야에 있을 때는 보살 위험 때문에 주자가 섣불리 태그업하기도 힘들 거다. 타격은 딱 번트 정도만 가르쳐서 어떻게든 1인분은 할 수 있게 만들면 될 것 같고. ​ 강속구 원툴 투수에서 수비수로서의 가능성까지 보여준 핫산. 나는 웃음 지으며 문득 떠오른 걸 물었다. ​ "핫산, 너 왜 이렇게 빠르냐? 웬만한 타자보다 훨씬 빠른데?" ​ "하하, 성무크 형. 파키스탄에선 살아남으려면 빠른 다리는 필수인걸요." ​ "……!?" ​ 파키스탄은 대체 어떤 곳일까. 어째 투수조 외부 영입생 놈들 조국이 왜 다 이 모양일까. 그래도 어찌저찌 둘의 재조명 덕에 외야는 숨통이 트이는 상황이 됐다. ​ “수고 많았습니다!” ​ 그렇게 외야 훈련을 마치고, 우린 본업인 투수 코칭에도 들어갔다. 원래는 순서가 반대여야 하지만 오늘 코치의 사정상 다소 늦게 시작하게 되었다. ​ 파앙-!! ​ “오케이, 나이스 볼!” ​ 리동혁의 싱커가 현란한 무브먼트와 함께 미트에 꽂혔다. 녀석은 자기만의 틀이 딱 잡힌 녀석이라 크게 손댈 곳도 없다. 그냥 멘탈만 둥가둥가 해주면 알아서 클 놈이다. ​ 문제는 저 녀석이다. ​ 뻐엉--!! ​ 불펜에 울려 퍼지는 살벌한 소리. 150km 후반대를 넘나드는 핫산의 직구가 미트에 꽂혔다. ​ ‘핫산 같은 스타일이 성장 방향을 확실히 잡을 필요가 있어.’ ​ 랜덤 제구에 특출난 변화구가 없는 파이어볼러. 이 유형만큼 결과가 복불복으로 갈리는 선수도 없다. ​ 저기서 제구 잡고 변화구 몇 개 탑재하면 리그 씹어먹는 에이스가 되는 거고, 뭐 하나 삐꾸 나면 그대로 마이너 전전하다 은퇴 후 유소년 코치 루트 밟는 거다. ​ 그래서 투수 코치도 지금 핫산을 최우선으로 보고 있다. 이것저것 변화구를 시험 중인데 당장은 크게 성과가 없는 모양. ​ ‘핫산에게 맞는 변화구라면, 역시 그거지.’ ​ 스플리터. 강속구 투수에게 빼놓을 수 없는 무기 중 하나다. ​ 핫산은 포크를 주 무기로 삼을 만큼 악력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스플리터를 던질 정도는 된다. 실제로 게임에서 핫산의 스플리터는 그 강속구와 결합했을 때 엄청난 시너지를 내곤 했다. ​ ‘스플리터라면 나도 알 만큼은 아니까 가르쳐 줄 수야 있다만….’ ​ 아주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 게임 시스템상 내가 현재 익히지 않은 변화구를 전수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 ​ 억지로 가르친다 해도 능력 좋은 코치에게 교습받을 때 생기는 보정 효과를 못 받기 때문에, 가만히 있는 게 팀 동료를 도와주는 셈이다. ​ ‘뭐, 보아하니 내가 말 안 해도 가르쳐주실 분위기네.’ ​ 다행히 새로 부임한 이태정 투수 코치는 능력이 있기에 알아서 잘 가르쳐줄 거로 보인다. 조만간 나도 좀 봐달라고 할 예정이다. ​ 따악--! ​ “오오, 나이스 배팅……!!” ​ 그때 야구장에 울려 퍼진 청명한 타격음. 지수용이 배팅볼 피처를 자처한 최아담에게 홈런을 뽑아낸 모양이다. 쾌조의 타격감을 뽐내고선 배팅 케이지에서 나오는 녀석. ​ “하핫, 아담 행님! 보셨나요. 제 어퍼 스윙!” ​ “우오오, 너 인마. 좀 하잖아…!!” ​ 벌써 최아담과는 죽이 맞았는지 시시덕대는 지수용. 워낙에 활달한 녀석인지라 주변이 조용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 “저렇게 성격 좋은 녀석이 겉도는 팀이라니.” ​ 청현고는 대체 어떤 곳일까…? 나는 진심으로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한창 뜨거운 분위기로 연습이 진행되는 상황에, 나는 이다음을 보고 있었다. ​ ‘이제 슬슬 또, 연습 경기를 해야겠지.’ ​ 정말 코앞까지 다가온 봄 대회. 선수를 보충할 기회를 이대로 날릴 수는 없다. ​ 자, 어디 한 번 찾아볼까. 같이 전국을 노릴 선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