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 확률 1%…? 실화냐?” ​ 99대 1. 그야말로 하늘과 땅 수준의 전력 차. 그냥 못 이긴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 나는 두 눈을 비비며 상세 분석 파트로 넘어갔다. ​ 문혁고 투수 분석 ​ #금성묵: 노련미가 돋보이는 피칭. 그러나 체인지업 외에 확실한 스터프가 X. 하위 타자들에게는 극강일 것이나, 수위 타자들 상대로는 쉽지 않아 보임. 구속 회복이 아주 시급. ​ “커헉….” ​ 팩트로 얻어맞았다. 말로 이렇게 사람을 사정없이 패버리다니. 그런데 나만 얻어맞은 것은 아니다. ​ #이동혁: 2이닝까지는 확실히 막을 능력이 있음. 그러나 딱 거기까지. #하산 이크발: 제구가 불안정. 강속구를 제외한 무기가 전무. #박찬준: 내구성 말고는 장점이 전무. ​ 나를 제외한 투수진 역시 사정없이 얻어맞았다. 그나마 리동혁이 선방한 정도. 타자진도 얻어맞기는 매한가지다. ​ #최아담: 선구안이 최악. 출루해야 존재 가치가 있는 타자인데 출루하기 쉽지 않아 보임. #서경수: 작은 육각형 스타일의 타자. 이도 저도 아님. #도도진: 적극적 스윙을 해야 할 때에도 공을 너무 많이 지켜봄. 노림수에 어긋났을 때 루킹 삼진을 당하는 경우가 다수. 아주 답답. ​ 많이 지켜봐서인지 유독 동생에게 더욱 각박한 평가를 한 것 같은 그녀. 그나마 석운강이 ‘타선의 유일한 희망’이란 평가로 살아남았다. ​ ‘뭐, 다들 아직 포텐이 터진 게 아니니까 어쩔 수 없지.’ ​ 내가 미리 찜해둔 툴가이 들도 이 정도라면, 그 외의 깍두기 타자들은 안 봐도 뻔하다. 실제로 언급 가치도 없다는 듯 생략 당한 녀석들도 많다. ​ 이와 반대로 청현고 쪽은 달랐다. 유명한 선수도 꽤 있는 편이고, 전체적으로 쟁쟁한 녀석들이 많았다. ​ 그중에서 눈에 밟히는 이름이 하나 있다. ​ #지수용: 5툴 플레이어의 자질이 있음. 컨택, 파워, 주루 모두 상급. 그러나 최악의 외야 수비로 경기에 잘 나오지 못함. ​ ‘내가 아는 지수용 맞구만.’ ​ 이번 친선전의 타겟이 바로 지수용, 이 녀석이다. 슈퍼스타는 까와 빠를 미치게 한다고 했던가. ​ 바로 이 녀석이 그런 타입이다. 빠따로 2점을 따오면, 눈 뜨고 봐주기 힘든 수비로 2점을 도로 내주는 타입. ​ 청현고를 한 번 이기고 찾아가면 영입 자체는 쉬운 녀석이라 이 녀석의 툴에 홀린 많은 유저가 이 녀석을 영입했지만, 금세 뒷목을 잡곤 했다. ​ 그 덕에 우리나라와의 국가대표 경기에서 공을 놓쳐서 유명해진 일본의 모 선수의 이름을 따서, GG수용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까지 생겼다. ​ 그래서 내가 게임을 플레이할 때 그 녀석이 수비하다 공을 놓치면, 늘 채팅창에 ‘고마워요 GG수용!’이 도배되곤 했다. ​ ‘그래서 이걸 뒤집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 선수 소개를 전부 읽은 뒤에 마지막 장으로 페이지를 넘기니, 기다리던 내용이 날 반겨주었다. ​ -청현고가 풀 주전으로 출전, 진심을 다할시 : 승률 1% -절반이 주전, 절반이 후보: 승률 13% -전부 후보 출전: 승률 28% ​ 각 시나리오에 따라 점점 올라가는 승률. 거기에는 ~한 단점을 보충할시, 상대의 쿠세를 숙지할 시 등의 자세한 시뮬레이션 또한 감안한 승률이 쓰여있었다. ​ 그리고 승리하는 데 이용 가능한 모든 것을 활용한 항목을 봤을 때 나는 씩 미소 지었다. -가능한 수단 모두 동원 및 상대 팀 데이터 숙지, 약점 긴급 보충 시 승률: 51% ​ “이길 수 있겠구먼.” ​ 이거면 됐다. 나머지 확률은 내가 직접 채워주마. ​ ​ ​ ##### ​ ​ “이게 우리 팀 유니폼…!” ​ ‘문혁고’ 석자가 받은 유니폼을 받아서 든 부원들이 감격에 젖은 표정을 지었다. ​ “……흠.” ​ 기분이 묘한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 금성묵이라는 이름과 숫자 1이 마킹된 내 유니폼을 보며 새삼 느꼈다. 이제부터가 정말 시작이구나, 하는 기분을. ​ 각자 환복을 마친 뒤, 명신우 감독의 부름에 따라 야구장에 집합했다. 긴장한 채 열중쉬어 자세로 대기하는 부원들. ​ 곧 명감독이 나무 배트를 들고 등장했다. ​ “다들 잘 쉬었나?” ​ ““옙……!!”” ​ “오, 기합 딱 잡혀있네. 성묵이가 잘 단도리 쳤나 보구만.” ​ 명 감독 말대로 ‘목소리 낮게 내다 걸리면 뒈진다.’고 미리 말해두긴 했다. 운동부는 자고로 운동장을 쩌렁쩌렁 울리는 맛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나. ​ “자, 첫 번째 훈련은 3km 달리기다. 기록에 따라 조를 나눠 눈높이에 맞게 훈련할 예정이다. 모두 최선을 다해 뛰어보도록.” ​ ““예엡……!!”” ​ 명 감독의 박수 소리와 함께 모두가 운동장을 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빠른 페이스로 달리던 사람들도 점점 쳐지기 시작하고, 점점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 속속들이 도착지점에 골인하는 인원들. 내 예상대로의 결과가 나왔다. ​ “어디 보자. 기준 통과자부터 순서대로 부른다. 금성묵, 도도진, 석운강, 서경수, 박찬준 이상 5명.” ​ 체력 스탯으로 치면 A등급 이상 되는 사람만 통과했다. 기존에 운동부에서 꾸준히 훈련하며 체력을 단련했던 도도진과 서경수가 가볍게 통과했고, 소림사에서 강훈련을 버텨왔던 석운강 역시 통과. 장점이라곤 체력뿐인 찬준 햄도 통통한 체형에 비해 아주 잘 뛰며 여유롭게 살아남았다. ​ 다리가 빨라 혹시나 했던 최아담은 장거리에는 약한지 땅바닥에 드러누워 헥헥대고, 핫산은 아직 체력이 완성되지 않았으며, 리동혁의 체력은 조루에 가깝다. ​ 그렇게 일차적인 분류에서 걸러진 13명. 이들을 위한 특별 훈련이 있다. ​ “자, 모두 주목.” ​ 탈락자들의 시선이 명 감독에게 쏠렸다. 그는 곧 악마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자, 저기 외야 쪽에 있는 타이어 보이지?” ​ “……엇, 언제 저기에 타이어가?” ​ 외야 쪽에 놓여있는 십여개의 타이어. 모두들 설마설마했다. ​ “자, 탈락자들은 지금부터 폐타이어를 짊어지고 달리기를 실시한다. 오늘은 가볍게 5바퀴 정도만 뛰도록.” ​ ““…………!?”” ​ 모두가 제 귀를 의심했다. 폐타이어를 매고 뛰라니. 이런 구세대적인 훈련을 21세기에 와서 하라고? ​ “뺑이 쳐라, 애들아.” ​ 이 역시, 내가 명신우 감독에게 지시한 훈련법이다. 사실 타이어 끌기 같은 야구 만화에나 나올 법한 구식 훈련법은 최신 훈련법으로 얼마든 대체가 가능하다. 슬레드 훈련이나, 공기 저항 낙하산을 매고 달리기 등, 좋은 훈련은 널려있다. ​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곳이 게임 속이라는 것. 여기서도 물론 현실 야구의 메커니즘은 먹힌다. 그것도 치밀할 정도로 잘 구현되어 있어 아주 효과적이다. ​ 하지만 이 게임의 신기한 점이 무엇이냐. 고수 단계에서 초고수로 나아갈 때는 위에 언급한 과학적이고, 트렌디한 훈련법이 아주 효과적이다. 하지만 좆밥에서 고수까지 갈 때는 그 무엇보다 빠른 지름길이 존재했다. ​ ‘그게 바로 지금부터 할 훈련들이지.’ ​ 얼핏 봤을 때는 저걸 왜 하나 싶은 정도로 구닥다리스럽고, 만화에나 나올 것 같이 비현실적인 그런 훈련들. ​ 내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찾아낸, 그런 괴상망측한 훈련들이 문혁고의 팀원들을 이른 시일 안에 높은 경지로 올려줄 것이다. ​ “형, 저희도 나중에 폐타이어 끌어요?” ​ 팀원들이 폐타이어를 끌고 달리며 악쓰는 광경에 불안해진 듯한 도도진.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씨익 웃었다. ​ “아니, 좋은 도구 놔두고 뭣 하러?” ​ 나는 덕아웃에 구비된 신형 공기 저항 낙하산을 주섬주섬 주워들었다. 그제야 표정이 풀리는 도도진. 녀석은 타이어 조를 보고 잠시 안타까운 표정을 짓더니, 곧 환하게 웃으며 낙하산을 받아서 들었다. ​ ​ ​ ###### “꺼억, 맛있구만.” ​ 나는 팀 버스에서 올리비아가 싸준 도시락을 먹고는 대차게 트림을 뱉었다. 벌써 일주일째 그녀의 요리를 시식하며 끼니를 때우는 중이다. ​ ‘저번에 난 채소의 익힘 정도를 중요하게 본다고 분명히 말했을 텐데.’ ‘이 닭고기는 너무 덜 익어서 경험 많은 수의사가 되살릴 수 있겠는데?’ ​ 물론 사소한 결점을 크게 트집 잡아 음식을 더 먹을 껀덕지를 만드는 건 물론이었다. 그러면 잠시 분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다시 차릴게요.’라고 말하는 올리비아. ​ 이번엔 스테미너를 보충할 수 있는 요리를 만들어달라고 했는데, 한식 실력이 꽤 늘어서 상당히 맛있다. ​ ‘그건 그렇고, 스텟이 슬슬 오를 때가 됐는데….’ ​ 요 몇일 하드 트레이닝을 했음에도 딱히 오른 스텟이 없다. S급 포텐이 넘쳐나는 금성묵이라면 아랫 등급에선 팍팍 치고 올라가야 정상이다. 대회가 얼마 안 남은 시점이라 아쉬움이 크다. 내가 더 열심히 하는 수밖에. ​ “자, 도착이다!” 버스로 2시간 여를 달려 도착한 아산. 이곳에 오늘 대전 상대인 청현고가 있었다. ​ 따악! ​ 퍼엉---! ​ 이미 한창 훈련을 진행 중인 소리가 들려온다. 어딜 봐도 ‘야구 명문’이라는 포스가 절절하게 흘러나오는, 그런 고등학교다. ​ 일사불란하게 이어지는 훈련. 굴러다니는 최신식 장비까지. ​ 갓 태어난 신생아 같은 우리들 입장에선, 압도될 수밖에 없는 그런 풍경이다. ​ “아, 오셨습니까.” ​ 맞이하러 온 청현고의 감독, 김대섭. 10여년 전 청현고를 이끌고 전국 8강에 간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 야구가 세계 최강인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자랑스러워해도 될 엄청난 성적이다. ​ “반갑습니다. 명신우입니다.” ​ “어이구, 세종 파드리스의 명신우를 모르는 사람은 없죠. 잘 부탁드립니다.” ​ 서로 악수하며 미소 짓는 두 감독. ​ ‘저 양반, 역시나 구만.’ ​ 김대섭 감독이 이제 와선 흑역사로 남은 명신우의 그 시절을 굳이 언급하는 데에는 좋은 의도가 있을 리 없다. 그걸 마찬가지로 느꼈는지 표정이 썩 좋지는 않은 명 감독. ​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쉬엄쉬엄 하자구요. 쉬엄쉬엄.” ​ 비릿한 웃음과 함께 자리로 돌아간 김대섭 감독. 우리는 약간의 워밍업 타임을 가지고는 바로 경기를 시작할 준비를 마쳤다. ​ 그 순간, 유독 튀는 목소리 하나가 멀리서 귀에 박혀왔다. ​ “하핫, 나이스 송구…!!” ​ 머리에 모자 대신 흰색 머리띠를 질근 메고는, 하이텐션으로 캐치볼을 하고있는 갈색 머리의 남자. ​ [지수용 님의 스테이터스를 열람할 수 있습니다. 열람하시겠습니까?] [Yes / No ] ​ “Yes.” ​ 이름: 지수용 국적: 대한민국 나이: 18세 키: 183 cm 스킬/ 핀치 히터(A) : 2스트라이크 이후 컨택이 1랭크 상승합니다. 잠재 키워드: 타격 천재 (S), 스피드 러너(A), 강견(A) ​ 타자 능력치 (*포텐셜) / 좌투 좌타 파워: B+ (*A) 컨택: B (*A) 스피드: A (*A) 선구: B (*A) 수비: D 어깨: B+ (*A) 추천 포지션: 외야수 ​ 저 녀석이다. 이번 연습 경기를 성사시킨 이유. 타격 관련 포텐셜이 전부 A이상이어야 뜬다는, 천타지체 다음 가는 잠재 키워드인 ‘타격 천재’의 보유자. 문혁고의 휑한 외야를 채워줄 핵심 키. ​ ‘데리러 왔다. 지수용.’ ​ 나는 씨익 웃으며 녀석을 쳐다봤다. 어디 한 번, 대차게 붙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