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나 새끼, 당에서 보냈나?” ​ 멱살을 잡은 리동혁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위협적인 태도로 나오고는 있지만, 무력을 사용하는 단계까지 가는 걸 원치 않는다는 게 느껴졌다. ​ 여기서 경계심을 더 올릴 필요는 없다. 오해는 빠르게 끝내야겠지. 방법은 간단하다. ​ “김정운 개새끼.” ​ “…!?” ​ 그건 바로 패드립으로 나의 순수를 증명하는 것. 녀석의 눈이 대번에 휘둥그레졌으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 “튀겨 죽여도 모자랄 육시럴 놈의 돼지 새끼. 그 새끼 뱃살을 송송 썰어서 불판에 지글지글 익히고 한 쌈 한 다음 소주까지 곁들여 먹으면 캬~” ​ 이 정도의 강한 워딩을 들어본 적이 없었는지 한동안 말을 잃은 리동혁. 원래 북한 사람에게 수령님에 대한 모욕은 그 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일. ​ 심지어 그 돼지의 핏줄인 이 녀석이라면 그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정상일 테지만-. ​ “속이 다 시원하군 기래.” ​ 오히려 흡족한 표정으로 박수를 친다. 그는 곧 나와 천천히 걸으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 “믿겠소, 확실히 당에서 보낸 쁘락치는 아니군.” ​ 아직 완전히 의심이 풀린 것은 아니나, 적어도 내가 자신을 위협하러 온 건 아님을 알았는지 곧 말을 시작했다. ​ “동무가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맞소. 나는 북조선 출신이고, 그 돼지 놈의 핏줄이지.” ​ “순혈은 아니지?” ​ “당연히 아니오. 나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성씨인 리 씨를 썼소.” ​ 애초에 순혈이었다면 여기에 있을 리가 없다. 극진한 대접을 받느라 튈 생각도 안 들었을 거고, 경계 태세 자체가 차원이 달라 이렇게 도망칠 수도 없었겠지. ​ “지금은 상당한 차이가 나지만, 북조선 역시 엄청난 야구 실력을 자랑했던 것을 알고 있소?” ​ “물론이지, 조상이 같은데 뭐.” ​ 원래는 하나였던 한반도다. 조선이라는 야구 강국의 유산을 이어받은 것은 북한도 마찬가지. 그 덕에 남한 다음갈 정도로 강한 야구력을 보유하고 있던 나라였다. ​ “그쪽도 있었지 않나? 야구 명가들.” ​ “물론, 내 어머니가 덕수 리 씨 충무공파의 17대손이었지.” ​ 현실 조선에서 장군을 여럿 배출한 무신 집안이 있듯이, 이 세계관에서는 야구 명가가 존재했다. ​ 남한 땅에는 타자는 홈런, 투수는 강속구 등 힘을 위주로 한 명가가 많았지만 북한 땅 쪽에는 컨택, 제구력 등을 위주로 한 정교한 기술을 갈고닦는 명가가 많았다. ​ “북조선에서 야구는 빈곤한 일상에 하나의 등불이자, 유일한 희망이었소. 세계 최고의 빈곤국이지만 야구만큼은 정상급이라는 자부심이 있었으니 말이오.” ​ “그런데 ‘그 사건’이 일어났다 이건가.” ​ “잘 아시는군. 맞소.” ​ 이 게임을 바닥까지 싹싹 핥아먹은 나다. 웬만한 스토리는 전부 다 꿰고 있다. 북한의 야구력이 남한과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확 떨어지게 된 계기. 지도층에 의한 ‘피의 숙청’ 때문이다. ​ “수령이라는 태양만 봐야 할 인민들이 야구 선수들에 열광하며 응원 상품과 선수 의상을 잔뜩 모아대니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 그 숙청으로 북한의 야구 명가의 9할 이상이 쓸려나갔다. 사유는 ‘남조선의 승냥이 놈들과 결탁하여 신성한 야구에 자본주의를 들여와 인민을 농락한 죄!’였다. ​ 나머지 1할은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수령의 권위 아래 납작 엎드린 덕분에 살아남았다. 안타깝게도 리동혁의 가문은 그의 어머니를 제외하곤 깡그리 숙청당했다고 한다. ​ 그 뒤에 북한의 야구는 새로운 변곡점을 맞이한다. 김씨 가문의, 김씨 가문에 의한, 김씨 가문을 위한 야구라는 변화를 말이다. ​ 9할이나 되는 야구 명가를 숙청했으니 수백 년간 쌓아온 야구력이 개박살 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 수백 년 간 그 실력을 다지고 이어온 야구 명가들의 경기를 보다가 질 떨어진 접대 경기를 보게 된 인민들. 티는 내지 않았지만 점점 불만이 쌓여갔다. ​ “내래 이딴 경기에 내 피 같은 돈을 써야갔어?” ​ “김 동무, 참으라우. 듣는 귀가 많다우.” ​ 수준 낮은 경기에 인민들이 티켓을 구매하지 않게 되자 점점 내수 시장은 쪼그라들어 갔고, 안 그래도 처참한 경기력은 점점 더 떨어졌다. ​ 그래서 고위층은 결단을 내렸다. 바로 남한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 그래서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었을 때, 북한의 수령은 단도직입적으로 한국 측의 대통령에게 물었다. ​ “남한의 야구 경기가 아주 흥미롭더랍니다. 우리 북조선도 야구를 좀 하는데, 우리 측의 구단도 그곳에서 함께 하는 것이 어떻갔소?” ​ “하하, 흥미로운 발상이군요.” ​ 예로부터 북한과의 평화 무브먼트는 대통령의 공약으로 인정되는 게 국룰이다. 교과서에 실릴 업적 한출에 욕심이 난 대통령은 북한 구단의 한국 리그 참가를 직권으로 허락했다. ​ 그래서 현재 한국의 야구 리그는 19개의 남한 구단, 그리고 1개의 북한 구단으로 운영된다. ​ 체재의 안정과 자주성을 굳건하게 지키겠다는 뜻을 담은 부루재이(武壘在依)라는 이름의 구단이 탄생했는데, 흔히 타국에선 평양 블루 제이스로 불리게 된다. ​ 북한 유일의 프로 구단인 만큼 이곳 주전 선수가 곧 북한 국가대표 선수라고 할 수 있었다. ​ “고위층의 노림수는 성공적이었소. 세계의 관심을 받는 리그에 구단을 참여시키고, 백두혈통을 구단의 간판선수로 만드는 것에 성공했으니 말이오.” ​ “그 백두혈통, 네 이복형들 말하는 거지?” ​ “그렇소….” ​ 반쪽자리인 리동혁의 백두혈통은 A+ 등급 키워드인 데 반해 원래 정통 백두혈통 키워드는 S등급의 키워드다. 다만 정말 김씨 일가의 핏줄이 훌륭해서 S등급인 건 절대 아니다. ​ ‘그 뱃살이나 뒤룩뒤룩 쳐 나온 일가한테 뭔 운동 재능이 있겠어.’ ​ 이곳은 게임 세계관이다. 아무리 범재라도 몸에 좋다는 재료에 돈을 있는 대로 박아 쳐넣으면 없는 재능도 꾸역꾸역 키울 수는 있다. 다만 그게 너무 극악의 효율을 자랑하는지라 두 명을 S등급 포텐으로 키우는 데 드는 돈만 200억에 달한다고 한다. ​ 그 과정에 필요한 재료를 구하는 데에도 엄청난 시간과 인건비가 든다. 타국에선 재벌급이 아니면 쉬이 시도조차 할 수 없지만, 북한은 원래 다른 막장 호소인들과 궤를 달리하는 국가 아닌가. ​ 체제 유지와 선전을 위해 쓰일 수 있다면 얼마든 인민들을 쥐어짜 꼬라박는 게 가능한 나라다. ​ 그렇게 수령님의 소중한 두 직계 아들은 S급 포텐셜의 야구선수가 될 수 있었다. 그 작업 후 남은 찌꺼기만으로도 A+ 포텐셜이 된 리동혁의 재능이 훨씬 대단하다고 할 수도 있다. ​ 아무튼 이 두 아들은 추후 국내 리그에서든, 국가대표 경기에서든 만날 일이 꽤 있어서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 ‘둘째 아들, 평양 블루제이스의 부동의 1번 타자 김정철.’ ​ 엄청나게 빠른 발과 정교한 컨택 능력을 갖춘 쌕쌕이 스타일의 타자다. ​ 그가 출루해 도루에 성공하면 ‘수령님 쓰시던 축지법~’으로 잘 알려진 응원가가 북한 측에서 터져 나온다고 한다. ​ ‘그리고 차기 북한의 수령이자, 평양 블루제이스 4번 타자. 장남 김정홍.’ ​ 겉으로만 봤을 때는 살이 뒤룩뒤룩 찐 돼지 놈이 따로 없지만, 그 살에서 오는 똥 파워 하나는 대포동 미사일처럼 강력하다고 한다. ​ 국가 유일의 프로팀에서 1번, 4번으로 활약 중인 수령님의 핏줄들의 인기가 높지 않으려야 높지 않을 수가 없다. ​ 물론 북한 팀에게 질 수 없다는 한국 팀들의 개빡겜 덕분에 아직 우승 경력은 없었지만, 선전효과를 톡톡히 본 고위층은 둘을 보필할 따까리들 육성에도 신경을 썼다. ​ 사생아인 리동혁은 그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그 역시도 성인이 되면 평양 블루제이스의 마무리 투수로서 형들을 보필할 목적으로 열심히 노력했다. ​ 그의 어머니가 수령의 두 아들에게서 엄청난 사실을 엿듣기 전까지 말이다. ​ ##### ​ 차기 수령으로 꼽히는 장남 김정홍이 금수산 태양궁전을 노닐고 있다. 그러던 와중에 익숙한 둘째 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정홍 형님 아니십니까.” ​ “아, 정철이 아니간.” ​ 우애 좋은 형제답게 이야기 꽃을 피운 둘. 그러다 최근 인민들 사이에서 시끌한 한 주제에 이야기가 닿았다. ​ “동혁이, 그 애미나이가 최근에 열심히 던지던데 말입니다. 꽤 잘 던지는 모양입니다.” ​ “웃기는 일 아니간? 결국 기량이 떨어지는 순간 코 푼 휴지처럼 버려질 녀석인데 말이지.” ​ “오호, 그게 정말입니까?” ​ “그럼, 아바이께서 내 편한 대로 쓰다 처리하라고 직접 말씀까지 하셨디.” ​ “푸하하, 동혁이 그놈. 제 미래도 모르고 아주 웃기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 “………!!” ​ 동혁의 어머니는 까무러칠 뻔했다. 가문이 숙청당해 쓸려나가는 와중에도 그녀는 빼어난 외모 때문에 살아남아 강제로 수령의 첩실이 되었다. 목숨을 끊으려 할 때 품게된 동혁이 덕분에 뼈에 사무치는 감정은 묻어두고 살아갈 수 있었다. ​ 그런데 그 소중한 아들을 선전의 도구로만 쓰다가 토사구팽할 계획이었다니. 두 형제의 밀담에 경악한 동혁의 어머니는 바로 결심했다. 북한에서 도망쳐 남한으로 갈 계획을 말이다. ​ “어머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 “동혁아, 당장 도망치자. 너는 여기 있다간 언젠가는 죽는다!” ​ “그게 무슨…!” ​ 어머니가 한 말을 처음엔 믿을 수 없었지만, 유일한 버팀목인 그녀의 말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 바로 짐을 싼 두 모자는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대타를 세우고 도망쳤다. ​ 하지만 수령의 첩과 그 사생아라는 신분은 그만큼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이 있기 마련. 둘이 도망친 게 들통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콰앙! ​ “당장 이 연놈들을 내 앞에 잡아오라!” ​ 국가의 유일한 지존이신 수령님이 전화기를 잡아 던질 정도로 분노했단 말에 인민군들은 탈북 루트를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두만강 이역에서 발각되고 만다. 그것도 배를 타고 한창 강을 건너던 상태에서. ​ “리동혁, 네 어미와 함께 죽고 싶지 않다면 당장 멈추라!” ​ “항복하겠...” ​ “안 된다! 동혁아. 절대 안 돼!” ​ 어머니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투항하려던 리동혁을 어머니가 멈춰 세웠다. 이대로 간다는 선택지 외에 아들이 살아남을 길이 없음을 그녀는 본능적으로 눈치챈 것이다. ​ “림 병장, 수령께서 어떻게 데려오든 상관없다고 하지 않았간?” ​ “오,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 판단을 마친 군인들은 귀찮게 설득하느니 죽여서 데려가는 걸 택했다. 총알이 두만강 위를 빗발치기 시작했다. ​ 타앙! 탕! ​ 총알 대부분이 허공을 갈랐으나, 불행하게도 두어발 정도가 리동혁의 어머니에게 박혀 들어갔다. ​ “허윽….” ​ “…어머니!!” ​ 총알에 맞은 어머니의 몸 상태는 지극히 위독했다. 장기간의 탈북에 몸 상태가 심히 약해져있었던 것이다. ​ 그녀는 자신이 오래 살 수 없음을 직감했다. 그리고는 리동혁에게 마지막 소망 두 가지를 남겼다. ​ “아들아, 허억. 광화문 광장에 시조이신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있다더라. 가면 인사드리거라.” ​ “어머니, 어머니! 더 이상 말씀하시지 마십시오!” ​ 피가 울컥울컥 쏟아져 나오는 그녀의 몸을 최대한 지혈해보려 했지만, 어머니의 생명의 불이 꺼져감은 리동혁 그 자신도 느끼고 있었다. ​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품속에 있던 야구공을 꺼내고는, 리동혁의 손에 쥐여줬다. ​ “동혁아, 기억하느냐. 흐윽, 우리 가문의 가호 말이다.” ​ “크흑, 인민의 싱커로, 전 세계를 호령하라….” ​ “맞아, 동혁아. 너는 할 수 있단다. 자신을 믿거라. 그게 이 어미의 마지막 부탁….” ​ 스르륵- ​ 마지막 남은 힘으로 동혁의 손에 싱커 그립의 야구공을 쥐여준 어머니의 손은 그대로 힘없이 축 늘어졌다. ​ “어머니, 어머니이...!!!” ​ 그렇게 두만강에는 리동혁의 울부짖음만이 울려 퍼졌다. ​ ​ ##### ​ ​ “이런 일이 있었소.” ​ 손에 쥔 야구공을 바라보며 담담히 말하는 리동혁. 분명 괴로운 기억을 되새기며 여러 감정을 느꼈으리라. 이 상황에서 내가 우선으로 건든 그의 감정은 복수심이었다. ​ “복수하고 싶지 않아? 한국 리그의 팀들에 간다면 언젠가 평양 블루제이스를 만날 수 있어.” ​ “분명 그럴지도 모르오만.” ​ 잠시 또 생각에 잠기는 리동혁. ​ “내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 적대국 수령의 아들과 같은 팀으로 뛰어야 하는 팀원들은 무슨 잘못이란 말이오.” ​ “……….” ​ “그들이 아무런 색안경 없이 나를 받아들여 주리란 보장이 있소?” ​ “그건 없지.” ​ “그건 고교 야구라고 다르지 않소. 나는 이렇게 얽매이지 않고 용병으로 떠도는 인생이 편하오.” ​ “그렇다 이거지. 네 생각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긴 한데.” ​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이 많을 녀석에게 나는 한마디를 툭 던졌다. ​ “태어난 건 죄가 아니야. 리동혁.” ​ “………!” ​ “우리 팀은 네 걱정과는 다를 거다.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하지. 생각 있으면 이번 주 토요일에 여기로 나와.” ​ 장소를 쓱쓱 써내고 리동혁에게 턱 넘긴 나는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 “……….” ​ 리동혁은 제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생각에 잠긴 듯 그 종이를 쳐다봤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 ​ ##### ​ ​ “아휴, 피곤하다.” ​ 금요일 개학식에는 파란의 창단식. 토요일에는 핫산 영입하러 강원도 장거리. 일요일에는 리동혁 영입을 위해 천안까지 다녀왔다. ​ ‘오려나 리동혁….’ ​ 영입 설득을 하기도 엄청나게 어렵지만, 영입해도 문제인 개복치 녀석이긴 하다. 좀 팀에 섞인다 싶어질 때면 국적 이슈 때문에 탈주 닌자가 되어선 방구석에 틀어박히는 녀석이니까. ​ ‘우리 팀에선 어림도 없지. 내가 미리 단도리할 거니까.’ ​ 우리 팀은 후발주자의 특성상 실력만을 우선해서 뽑을 수밖에 없다 보니, 다양한 국적과 정신 나간 컨셉을 가진 선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걸 못 받아들이는 놈들은 내 직접 단죄하리라. 그렇게 팀의 미래를 그려나가며 복도를 걷던 순간이었다. ​ “금성묵 씨.” ​ 베이지색의 포니테일 헤어의 소녀가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분명 이 소녀의 이름을 알고 있다. ​ “올리비아 램지?” ​ 나와 길거리에서 부딪혔던, 청백요리사에 출전했다던 요리사 소녀다. 나와 같은 교복을 입고 있다는 것은…. ​ “너 우리 학교였냐?” ​ “그건 제가 할 말이에요.” ​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는 그녀. 사실 내 쪽에서 유명인인 그녀가 문혁고 소속인 걸 먼저 알아채는 게 정상이긴 하다. ​ 야구부 창단 발표회가 아니었다면 이 만남도 한참 지체됐겠지. 학교 최고의 유명 인사가 최근에 요주의 인물인 양아치를 찾아왔다. 이 자체만으로도 지금 우리 둘은 복도의 모든 시선을 집중받고 있다. ​ “…할 말이 있어요. 따라와요.” ​ “어디로?” ​ “사람이 없을 만한 곳이요.” ​ “괜찮겠어? 나 같은 놈이랑 그런 으슥한 곳으로 가도.” ​ “…………….” ​ 내 말에 잠깐 침묵에 잠긴 올리비아. 곧 내게 서늘하게 질문을 던진다. ​ “그거 아세요?” ​ “뭘?” ​ “요리사는 칼을 잘 다뤄요.” ​ “하 참.” ​ 허튼짓하지 말라는 걸 이런 식으로 말할 줄이야. 참 당돌한 처녀일세. ​ “뭐, 좋아. 가보자고.” ​ 한 번 들어나 볼까. 우리 요리사 소녀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