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눈을 떠보니 광장이다. 낯선 와중에도 어딘가 익숙한 그런 광장. ​ 여긴 어딘가. 내가 왜 여기 있는가. 꿈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생생하다. 그 와중에 하나의 가설이 머리를 번뜩 스쳐 갔다. ​ “에이, 아니겠지….” ​ 내 어이없는 발상에 피식 웃는 와중에, 뒤쪽에서 중학생 무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이따 피칭 센터 고?” ​ “콜, 커피빵 가자. 스트라이크 제일 적게 꽂는 놈이 사는 거다.” ​ “…………!” ​ 어딘가 익숙한 대화. 현실엔 피칭 센터 따위의 시설도 없고, 있다고 한들 거길 중고등학생들이 방과 후에 제집 드나들듯이 가지도 않는다. ​ 혼란스러워하는 와중에, 광장의 대형 전광판에서 여자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마태주 선수가 광주 레드삭스와 15년 1조 500억 계약에 서명했습니다. 이로써 리그 5번째 1조 클럽에 가입하게 된…] ​ [할리우드의 탑스타 조안나 양과 천안 카디널스의 스타 강호준 선수의 열애설이 화제입니다. 둘은 경기 후 뒤풀이에서 만나 사랑을 싹텄다고…] ​ 한국에서 야구 좀 한다고 하면 FA 때 1조원어치의 계약도 맺을 수 있고, 할리우드 배우도 쉽게 만나는 세계. 굳이 야구 잘하는 놈들은 해외로 멀리 나갈 필요 없이 한국에서 호의호식하면 되는, 일명 ‘야구력 역전 세계’. ​ 나는 혼란에 빠진 채 계속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문득 한가지 생각이 번뜩인다. ​ “잠깐, 여기 광화문이잖아.” ​ 광화문 하면 떠오르는 랜드마크가 있지 않은가. 그것도 조선 최고의 제독인 이순신의 동상이 말이다. ​ “그래, 순신이 형만 찾으면…!” ​ 유일한 동아줄인 조선시대의 장군에게 급속도로 내적 친밀감이 생긴 나는 미친 듯이 이순신 동상이 있는 곳으로 달렸다. ​ “헉, 허억…!” ​ 만약 이순신 동상이 없다면, 그때는 진짜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속으로 ‘제발, 제발!’이라고 외치며 달렸다. ​ “……오!” ​ 멀찍이 광화문의 랜드마크인 이순신 동상의 실루엣이 보인다. ‘그럴 줄 알았지.’ 하며 싱글벙글 다가가는데 뭔가가 이상하다. ​ “잠깐, 형. 거짓말이지…?” ​ 뭔가가 다르다. 내가 알고 있던 이순신은 검 한 자루를 들고 해군을 지휘해 일본 놈들의 침략을 막아낸 무적의 해군 제독일 터인데. ​ 삼도수군통제사번타자 이순신 (三道水軍統制四番打者 李舜臣) 왜 형이 검 대신 묵직한 야구 방망이를 짚고 있는 건데? 조선의 무패제독이 왜 조선의 4번 타자가 되어있는 거냐고…! ​ “아 X발, 순신이 형…………!!!” ​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빼도 박도 못하게, ‘두근두근 베이스볼’의 세계 안에 빙의했다. ​ ​ ​ ###### ​ "…여기구나.“ ​ 2월달이라 날씨가 꽤 쌀쌀하다. 지도 앱에 ‘집’으로 표시된 곳을 향해 걸어서 살고 있던 원룸으로 겨우 찾아갔다. ​ 그리고 들어온 허름한 집. 화장실에 들어간 나는 거울을 보고서 머리를 탁 짚었다. ​ "금성묵, 역시 이 녀석인가. ​ 샛노랗게 염색한 금발 머리, 꽤 정성들여 태운 듯한 구릿빛의 탄탄한 태닝 피부에 잘 빠진 근육질 몸매, 양아치 끼가 흘러넘치는 이 외모까지. ​ ‘두근두근 베이스볼’의 신스틸러 금태양 캐릭터인 금성묵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문득 솟구친 궁금증이 있다. ​ “워후.” ​ 바지춤을 끌러 하반신에 달린 ‘그것’을 살펴본 나는 감탄사를 참지 못했다. ​ 믿겠다. 확실히 나는 금성묵이 맞군. 화면 너머로 남다른 묵직함을 은근히 과시했던 녀석이다. 나와 시청자들 모두 놀라 했었지. 이 외모에 이런 미친 구렁이를 달고 있는 녀석은 따로 존재할 수가 없다. ​ 휘적휘적- ​ 왼쪽 어깨를 붕붕 돌려봤다. 이 녀석은 부상으로 야구를 접은 걸로 추정되는 선수. 그렇기에 뭔가 남은 부상이 있다면 몸 어딘가에 걸리는 느낌이 있어야 정상인데…. ​ “아무렇지도 않은데?” ​ 나름 선수 시절 부상을 많이 당해본 편에 속하는 나다. 뭔가 남은 부상이 있으면 얼추 감이라도 올 텐데 그런 게 일절 없었다. ​ 그렇게 현재 상황을 자각하고 있던 때였다. ​ 띠링! ​ 내 눈앞에 무언가 창이 떠올랐다. ​ [‘두근두근 베이스볼’의 세상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유저님의 요청대로 ‘금성묵’의 사전 플레이 권한을 부여해드렸습니다.] [플레이하실 난이도를 선택해주십시오.] ​ 1. 아마추어 2. 프로 3. 익스트림 ​ 대뜸 이 게임 속에 쳐넣더니 이제는 난이도를 고르란다. 어처구니가 없는 나는 퉁명스럽게 시스템에 물었다. ​ “뭐 고르던 무슨 차이인데?” ​ [보상이 다릅니다. 아마추어의 경우에는 현실로 돌아갈 권리를, 프로는 거기에 더해 상당한 수준의 금전적 보상을. 그리고 익스트림 모드 클리어의 경우엔…] ​ “……?” ​ [사용님이 원하는 그 어떤 소원이든 한 가지를 들어드릴 예정입니다.] ​ “……………!!” ​ 내 눈이 번쩍 띄어졌다. 말도 안 된다. ​ “…미친 소리. 그걸 내가 어떻게 믿어?” ​ 하지만 왜일까. 내 가슴이 미친 듯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 [믿음이 가지 않으신다면, 낮은 단계로 게임을 진행하시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 “…….” ​ 쫄리면 아마추어나 프로로 깨고 꺼지라는 소리다. ​ ‘만약 진짜라면?’ ​ 모니터 너머에 있던 사람을 이런 세계로 끌고 올 수 있다는 건 분명 현대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 만약 시스템 말대로 정말로 내 소원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다소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난 이걸 해야 한다. ​ “익스트림의 난이도는 어느 정도지?” ​ [프로 단계의 바로 윗단계로 기획 중인 난이도입니다. 어지간한 숙련자가 아닌 이상 추천하지 않습니다.] ​ “흠….” ​ 나름대로 최고 수준의 고인물이란 자부심을 가진 나다. 일반 유저들에게는 통곡의 벽 수준으로 어렵다는 프로 난도조차, 이제는 코 후비면서도 클리어가 가능할 정도의 고인물이 나다. 한 단계 정도 위의 난이도라면 어렵지 않게 클리어할 수 있지 않을까? ​ 꿀꺽! ​ 침이 목울대를 타고 내려갔다. ​ “익스트림으로 플레이하겠어.” ​ 남들 앞에선 괜찮은 척하지만, 그라운드를 떠난 이후부터 항상 공허 속에 살았다. 이게 오답으로 점철된 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 [확인했습니다.] ​ 촤르륵! ​ 그리고 내 앞에 펼쳐지는 퀘스트북. 이 게임의 고유한 시스템으로서, 갓 시작한 초보자에겐 첫 페이지의 퀘스트를 부여해주며 게임의 적응을 돕는다. ​ 내 앞에 띄어진 페이지에는 내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퀘스트가 쓰여 있었다. ​ 띠링! ​ [# 당신은 문혁고 소속 3학년 금성묵입니다.] ​ [현재 고교생활의 마지막 페이지인 3학년을 앞둔 당신은 졸업하기 전까지 둘 중 하나의 목표를 달성시켜야 합니다!] ​ 1. 전국대회 우승 2.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지명. ​ “……시발?” ​ 말도 안 되는 목표치다. 저걸 고작 1년 안에 이루라고? ​ 이건 절대 프로 난이도의 바로 윗단계라 할 수 없다. 최소한 두 세 단계는 위의 난이도다. ​ 게다가 그 밑에 조그맣게 쓰여 있는 한 문장이 나를 미치고 팔짝 뛰게 했다. ​ [주의!! 미션 달성 실패 시, 사용자는 현실에서 사망합니다.] ​ “미친, 장난하냐……!?” ​ 이건 진짜 선 넘는 거 아니냐고 소리쳐봐도 시스템은 묵묵부답. 나는 진한 현기증을 느꼈다. ​ “하, 돌겠네 진짜.” ​ 소원이라는 미끼로 살살 낚아서는, 실패 시 사망이라는 엄청난 리스크를 턱하니 던져놓다니. 이래서 약관 동의는 신중히 하란 건가. ​ 내가 진지하게 저걸 성공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 ‘…우승권 학교로 튀어서 버스나 타?’ ​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했다. 고교 야구엔 인원수 25명 이상인 타 고교로 전학 시, 6개월간 공식 경기에 뛰지 못한다는 조건이 있다. ​ 다른 학교가 대회에 제대로 써먹지도 못할 나를 엔트리를 낭비해가며 야구부에 받아줄 확률은 없다고 봐도 된다. ​ 그 말인즉슨, 전학은 꿈도 꾸지 말고 현재 속한 문혁고를 우승시켜야 한다는 것인데…. ​ ‘애초에 여기 야구부는 있나?’ ​ 아무리 약소 학교라도 정식 대회에 출전한 적이 있는 학교라면 내가 이렇게 낯설어 할 리가 없다. 간절한 마음으로 구글링하던 나의 손이 툭 떨궈졌다. ​ “…문혁고, 정식 야구부 없음. 달랑 야구 동아리만 하나 있다고? 장난해 진짜?” ​ 취미로 야구 좀 끄적이는 동아리 하나 있는 학교를 그 해에 바로 전국대회에서 우승시키라고? 전국대회 참여 고등학교만 5천개가 넘는데? ​ 두 번째 조건,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사실 이게 더 문제다. 공은 둥글다는 말도 있듯이 단기 접전 팀 게임에서는 충분히 약팀이 강팀을 거꾸러뜨리는 자이언트 킬링이 충분히 가능하다. ​ 그래서 스노우볼을 잘만 굴리면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도 있겠지만, 신인 드래프트는 그딴 거 없다. 그냥 더 잘하고 포텐 좋은 놈이 장땡이다. ​ 혹자는 ‘아니, 한국 야구 1라 가지고 왜 유난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이 게임은 궁극의 국뽕 게임. 여기서 한국은 세계 야구의 중심지이자 질서 그 자체다. ​ 현실의 메이저 리그 1라운더로 뽑혀야 한다는 소리와 진배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1라운드 지명은 이 게임의 고인물인 나조차도 두어번밖에 받아보지 못했을 정도로 엄청난 노력과 운이 필요했다. ​ ‘그런데 남은 시간이 딱 1년?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 1학년이면 해볼 만했고, 2학년까지도 비벼는 볼 수 있었다. ​ 하지만 3학년? 야구 1년가량 쉬었을 거로 예측되는 놈 몸뚱아리 가지고 이 짧은 시간 안에 수백만에 이르는 유망주 중에서 20등 안에 든다? ​ 야구를 좀 아는 사람이라면 대가리에 총 맞아도 불가능하다는 걸 알 것이다. 아무리 내가 이 게임에 대해서 아는 게 많고 잘하는 편이지만, 이건 진짜 선 넘었다. ​ 그 순간이었다. ​ 띠링! ​ [사용자는 자유롭게 인물의 ‘스탯’과 ‘키워드’를 열람할 수 있습니다.] ​ “…………!” ​ 눈이 번쩍 뜨였다. 많은 유저가 이 게임에 대해 지적했던 부분이, 다른 선수들의 스탯과 키워드를 볼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 그래서 알음알음 키워보니 이 선수 좋더라, 사기더라 하는 등의 이야기를 접할 수밖에 없었는데… ​ ‘이게 있으면, 저평가 우량주들을 팀에 끌어올 수 있어.’ ​ 내 기량이 좀 딸려도 사기급 팀원들을 모아서 버스를 탄다면 생존할 수 있을지 모른다. ​ 어차피 마냥 손 놓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팀원이고 자시고 일단은 나에 대한 분석이 우선.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한 뒤 허공에 대고 외쳤다. ​ “상태창.” ​ 이름: 금성묵 국적: 대한민국 나이: 만 18세 (고3) 키: 192cm 소속: 문혁 고등학교 ​ “………꿀꺽.” ​ 여기까지는 얼추 다 아는 정보다. 이 녀석은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아니었기에 상세 스텟이 공개된 적은 없었다. 캐릭터의 성능을 가늠할 첫 번째 지표는 다름 아닌 ‘스킬’. ​ 이 게임 속 모든 선수에게는 스킬이 하나씩은 다 있다. 물론 현실성의 바운더리를 벗어나지는 않는다. 빠따에서 불을 뿜는다든지, 수둔을 휘감은 공을 던지지는 못한다. ​ 다만 충분히 캐릭터의 성능을 가를 만큼, 유의미한 차이를 만드는 게 스킬 시스템이다. ​ 높게는 S등급 스킬부터 F등급까지 빈부격차가 심한 만큼 뽑기가 중요했다. ​ ‘제발 능력치 상승형 스킬…! 기왕이면 S급으로…!’ ​ 이 게임은 그냥 ‘~한 상황에서 능력치 상승’ 등의 스킬이 제일 직관적이고 쓰기도 좋다. 위기 상황에서 투쟁심이 높아진다든지 하는 류의 스킬은 대부분 쓰레기에 가까웠으니까. ​ “제발!” ​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고 스킬 설명을 읽은 나는 제 눈을 의심했다. 개쓰레기를 뽑았기 때문이다. ​ 스킬: 저릿저릿 센서 (F) 선천적으로 타고난 물건을 가진 당신, 아랫도리의 감각을 통해 상대방의 약점을 파악합니다. 경기 중에는 사용이 불가능합니다. ​ “이게 뭐여 시벌.” ​ 제일 바라지 않았던 류의 스킬이 떠버렸다. 그것도 제일 구린 F급으로. ​ “좆됐네….” ​ 약점 파악 자체는 희귀한 능력이고, A등급 정도만 된다면 상당히 밸류가 있겠지만 이건 무려 F등급. 그냥 실용 가치 없는 쓰레기라 봐도 무방했다. ​ ‘뭐지, 게임 속 금성묵이 보여준 그건 스킬이 아니었던 건가…?’ ​ 게임 중에 금성묵이 각성 비스무리한 걸 할 때가 있는데, 그때 많은 유저가 혼이 쏙 빠지게 매운맛을 봤다. ​ 그런데 그 퍼포먼스가 이 F급 스킬의 영향이라기엔 경기 중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제약까지 있다. 젠장할, 경기 중에 써먹으라고 만든 게 스킬 시스템인데 정작 그때 못 쓰다니. 내가 본 스킬 중 최악이다. ​ “정신 차려, 정신…!” 아직 끝난 건 아니다. 제일 중요한 능력치가 남아있다. ​ 능력치가 케이크라면, 스킬은 그 위에 올리는 딸기 토핑 같은 느낌이랄까. 물론 있으면 좋고 보기에도 예쁘겠지만, 결국에 다른 그 무엇보다도 능력치가 중요했다. ​ “자, 가자…!” ​ 나는 투수 스탯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엄청난 결과에 입이 쩍 벌어졌다. ​ # 금성묵 / 좌투 좌타 포텐셜 키워드: 천투지체(EX), 천타지체(EX) ​ “………………!!!” ​ 대박이다. 그야말로 초대박. ​ 포텐셜 키워드란 그 선수 개인이 가진 스텟이 어느 정도까지 클 수 있을지 직간접적으로 알려주는 시스템이다. ​ B등급 스텟의 포텐셜이 있으면 준재. A등급 스텟의 포텐셜이 있으면 영재. S등급 스텟의 포텐셜이 있으면 천재라는 키워드가 뜬다. ​ 천재라는 단어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그만큼 흔하게 볼 수가 없다. S등급 스탯 하나만 끝까지 개화해도 프로에서 국밥처럼 주전 자리 꿰차는 건 일도 아니니까. ​ 하지만 그러한 스텟이 3개가 넘는다면? 하늘이 내린 천재라는 의미로, EX 등급의 키워드가 따라붙는다. ​ 투수의 경우엔 천투지체(天投肢體), 타자의 경우엔 천타지체(天打肢體) 가 이러한 경우다. ​ 하나 가지고 있기도 힘든 걸 투타 양쪽에 다 가지고 있는 건 이 게임을 통틀어서도 세 손가락에 꼽을 만큼 희귀하다. ​ “설마 금성묵 포텐이 이 정도일 줄이야...” ​ 금성묵 / 좌투 스리쿼터 * 투수 능력치 (*포텐셜) 체력: A+ (*S) 제구: C+ 직구: - (*S+) 구위: B (*S+) 변화구: C ​ “체력 포텐 S에다가, 직구랑 구위 포텐이 무려 S+…!” ​ 현재 능력치는 매우 아쉽지만, 의심할 여지 없는 특상급 원석이다. 거기에 피지컬까지 갖춰진 좌완? 이건 진짜 못 참는다. ​ 나는 황급히 타자 스탯 쪽으로 눈을 돌렸다. ​ 금성묵 / 좌타 # 타자 능력치 (*포텐셜) 파워: B+ (*S+) 컨택: C+ (*S) 스피드: B (*S) 선구: C 수비: D 어깨: - (*S+) ​ 타자 쪽은 무려 S급 이상의 재능이 4개. 심지어 파워-컨택-스피드로 꼽히는 주요 타자 스탯 3개 전부 S등급의 포텐셜이다. ​ 이런 엄청난 재능과 어이가 없을 정도로 개화가 덜 되어있는 건 투수 쪽과 마찬가지다. ​ 이 정도 스탯으로도 1학년 치고는 투수 타자 두쪽 다 재능있다는 소리를 들었을 테니 자만에 빠졌겠지. 나도 야구를 해본 사람이니 충분히 예상이 간다. ​ 이쯤 되면 슬슬 고평가받던 1학년 때의 퍼포먼스도 재평가가 필요했다. ​ “…이 새끼, 이 정도 개사기 재능으로 그것밖에 못 했어?” ​ 원작 게임에서 부산권역의 다섯 손가락 정도에 드는 투수긴 했지만, 전국으로 따지면 100위권 말석 정도나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정도. ​ 심지어 타자로서는 ‘그냥저냥 한방 있는 선풍기’ 정도의 평가였다. 전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야 정상인 재능으로 정도밖에 못 하다니. ​ “얼마나 재능 믿고 쳐 놀러 다닌 거냐….” ​ 매일같이 여자를 바꿔다니는 활동력이면 야구에 집중하긴 아무래도 힘들었겠지. ​ 아무튼 지금의 내게는 좋은 일이다. 기왕 목숨 걸고 하는 게임이라면, 이런 개쩌는 축캐에 빙의하는 게 나로서도 유리하니까. ​ 그런데 이상한 게 하나 있었다. S등급 포텐셜에 시선이 팔려서 놓치고 있었던 게 있었다. ​ 직구: X (*S+) 어깨: X (*S+) ​ “…왜 직구랑 어깨 능력치가 왜 안 뜨지?” ​ 아까 몸 상태를 체크해봤을 때 별문제가 없을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나 보다. 웬만한 부상의 경우에도 원래 스탯보다 마이너스가 되어서 뜨지, 이렇게 아예 안 뜨는 경우는 거의 없다. ​ 생각 이상으로 심각한 상황이다. 스텟의 포텐셜이 안 뜬다는 것은 단 한 가지의 경우다. ​ ‘선수 생활을 지속하기 불가능한 수준의 치명적인 결함이 존재할 경우.’ ​ 그리고 이 게임 속에서 어깨와 관련된 치명적인 결함에는 세 가지 가능성이 있었다. ​ “입스, 데드암….” ​ 두 가지 다 치료하는 데 상당한 기간이 걸리는 문제다. 이 게임이 아직 익숙지 않은 유저라면 새로 키우는 걸 고려해야 할 정도로 골치 아픈 문제였지만, 그래도 치료법 자체는 명확했다. ​ 하지만 나름 고였다는 유저들조차도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만드는 최악의 경우의 수 역시 남아있었다. 사기적인 포텐셜을 가진 선수조차 재기불능 폐품으로 만들어버린다는 ‘그것’의 가능성 역시 남아있었다. ​ “아, 안 돼……!” ​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글러브를 주워든 나는 바람막이를 대충 껴입고 황급히 집 밖을 나섰다. ​ 이 몸이 어떤 상태인지 알아봐야 했으니까. 그것도 지금 당장! ​ “아오, 씹—!! 이 빌어 처먹을 몸뚱이…!!” ​ 나는 개처럼 뛰었다. 좆망캐와 갓캐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 금태양의 몸뚱이를 저주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