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잉~ 가자~” ​ “아니, 내가 거길 왜 가냐고.” ​ 카페 내부는 세 개의 분위기로 나누어져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선으로 명확히 갈라진 것처럼. ​ 2학년 구역. 우선 그들은 맹주의 명물인 사내 카페에 온 것만으로도 기뻐서, 디저트를 찍고, 기념샷을 남기며 SNS에 올리기 바쁘다. 2학년으로써 선택받았다는 것 자체에 여유가 있다. ​ 설령 이번에 눈에 들지 못하더라도, 다시 3학년 때 도전하면 되니까. ​ 그에 비해 3학년 구역. ​ 이쪽은 그보다 한층 무거운 분위기였다. 커피잔을 앞에 두고 조용히 대화를 나누거나, 무거운 눈빛으로 다른 학생들을 바라본다. ​ 그리고 그 시선은 강아린과 정해인에게 향했다. ​ “야… 저거 맞냐?” ​ 한 학생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낮게 중얼거렸다. 충분히 그럴 만했다. ​ 강아린. 그녀의 대외적 이미지는 냉랭함. 그 자체였다. ​ 그러나 지금 그들이 보고 있는 강아린은 전혀 달랐다. 정해인이라는 학생 옆에 딱하고 달라붙어, 끈질기게 애교를 부린다. ​ 꼬리만 안 달렸지 강아지가 주인을 보고 달려드는 느낌과 다를 바가 없다. 정해인이 미친 척하고 살짝만 머리를 쓰다듬어도, 눈을 반짝이며 기뻐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 “… 하.” ​ 올해 3학년인 장현수는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 3학년은 이제 맹주에 눈에 들 수 있는 사실상의 마지막 기회다. 대부분의 걸출한 학생들은 2학년 때 이미 선발 완료. ​ 남은 3학년들은 마지막 기회 앞에 서 있는 셈이었다. ​ ‘강아린.’ ​ 그래서 그는 강아린이 1학년에 선발됐을 때 기회라 여겼다. ​ 그녀에게만 잘 보인다면… 사실상 입단은 따놓은 당상이니까. ​ 그래서 결심했다. 어떻게든 잘 보이자고. ​ 그렇게 생각했는데. ​ 정작 강아린의 시선은 전혀 다른 곳에 쏠려 있었다. ​ 온전히, 정해인. ​ 게다가 조금 전, 정해인은 연구실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 성격이 안 좋기로 유명한 천재 연구자. 강수진마저 직접 나서서 명함을 건넸다. ​ 사실상 지금 이 카페도 그 덕에 얻어먹고 있다 봐도 무방했다 ​ 장비도, 아티펙트는 커녕 셔츠 한 장 입고 있어서 무시했는데…. ​ "……." ​ 장현수는 눈을 가늘게 떴다. 가슴 한쪽에서 느껴지는 묘한 조급함. ​ ‘만회해야 한다.’ ​ 이번 체험의 마지막 코스. 출동이 없는 이상, 마지막은 시뮬레이션이라 들었다. ​ 그곳에서— 어떻게든 존재감을 보여야 했다. ​ ​ 다행히도, 자신에게는 아직 믿을만한 배가 하나 남아 있었다. ​ ​ ​ ​ *** ​ ​ ​ ​ 김하은이 돌아왔다. 표정은 확실히 아까보다 어두워져 있었다. ​ “빨리 오셨네요?” ​ 강아린이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 “… 네.” ​ 김하은은 눈을 피하며 볼을 부풀렸다. 입을 삐죽 내민 채로 포크를 허공에 헛짚는 모습이 왠지…. ​ ‘짠하네.’ ​ 그렇게 우리는, 맹주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체험을 이어갔다. 전망대, 휴게 구역, 장비 보관소 등등…. ​ 결국 아쉽게도 출동 호출은 없었다. ​ 김하은이 중간중간 워치를 확인했지만… 끝내 워치는 묵묵부답이었다. ​ 괴수의 침입도, 긴급 상황도 일어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 평화로운 건 좋은 일이지만, 적어도 학생 체험 입장에서는 조금 김이 빠지는 결과였다. ​ 결국 마지막 체험은, 훈련 시뮬레이션으로 결정됐다. 우리는 복도 끝에 마련된 훈련 구역으로 향했다. ​ "아쉽지만, 그래도 이쪽이 더 안전하니까요!" ​ 김하은이 다시 씩씩한 목소리로 안내했다. ​ 맹주 사옥에 설치된 훈련 시뮬레이터. 길드 내 최상위 영웅들조차 훈련용으로 사용하는 초정밀 시스템이다. ​ 정밀한 환영 기술과 물리 엔진이 적용되어, 거의 실전과 동등한 환경을 구현해낸다. ​ 가상의 마수, 가상의 전장, 가상의 상대까지. ​ 우리는 조용히 시뮬레이션 구역 안으로 들어섰다. ​ 내부는 이미 시뮬레이션이 한창이었다. ​ - 슈우우우웅. ​ 시뮬레이터 내부의 전장이 투명한 강화 유리를 통해 보였다. ​ 광활한 폐허 위로 두 팀이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 ​ “자랑스러운 맹주의 2팀, 맹호. 그리고 6팀, 서펜트입니다~” ​ 김하은은 눈을 반짝이며 설명을 이어갔다. ​ “맹호는 지난 사도 격퇴에서 크게 기여한 팀 중 하나예요! 그 이후로도 활약을 거듭해서, 지금은 명실상부한 맹주의 선봉 전력으로 평가받고 있죠.” ​ 말하는 그녀의 표정에는 살짝 자부심이 묻어 있었다. ​ “거의 끝나가는 듯하니, 조금만 기다리도록 하죠!” ​ 나는 유리벽 너머를 응시했다. ​ 반가운 얼굴들이 보였다. 사도와의 결전 때, 생사를 함께 넘었던 이들. ​ 그때의 짧은 기억이, 전율처럼 등을 타고 스쳤다. ​ 다시 생각해도, 살벌했던 기억이다. ​ “저기, 우리 과외 쌤 있다. 6팀, 서펜트.” ​ “와, 진짜?” ​ 그때, 뒤쪽에서 누군가 자랑스럽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고개를 돌리진 않았다. 대충 감은 왔다. ​ 우수한 영웅들은 가끔 고위층 자제들을 모아 비공식적으로 지도하기도 한다. '과외'라는 이름으로. ​ 원칙적으로 금지된 행위는 아니나, 다소 쪽팔린 행위에 가까웠다. 특히 길드 소속 영웅이, 탐험이나 의뢰 같은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아닌 뽀송한 곳에서 돈을 벌었다는 뜻이니까. ​ 게다가 전술이나 기밀이 새어 나가는 문제로 직결될 수 있다 보니, 영웅 입장에서는 숨기는 분위기다. ​ 나는 피식 웃으며, 창 너머 전장을 바라보며 옆에 있던 강아린에게 물었다. ​ “못 들은 걸로 해줄 거야?” ​ “그럴리가.” ​ 듣고 있었던 김하은도 옆에서 ‘흐음.’ 하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 마침 전투의 승패도 갈린 듯했다. ​ 2팀 맹호의 인원들은 대부분 멀쩡하다. 그러나 6팀 서펜트의 인원들은 운석이라도 맞은 듯 몰골이 휑했다. ​ 실제로 서펜트 쪽에 운석이 몇 번 떨어지긴 했다. ​ - 푸쉬이이익 ​ 문이 열리며 그들이 나온다. 먼저 나온 것은 6팀, 서펜트였다. ​ 패색이 완연한 몰골. 옷은 찢겼고, 온몸엔 상처가 가득했다. ​ “수고하셨습니다!” ​ 김하은이 환하게 인사했지만, 서펜트 팀원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지나쳤다. ​ 그때였다. ​ 한 학생이 벌컥 앞으로 뛰어나갔다. 장현수였다. ​ “형, 고생했어요! 나중에 밥 한 끼 해요!” ​ 그가 서펜트 팀의 막내로 보이는 영웅에게 들이댄다. ​ 억지로라도 친분을 과시하려는 눈치였다. 그 영웅은 난처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 그리고 뒤에서 걸어오던 서펜트의 팀장이, 싸늘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 “뭐지?” ​ 낮고 차가운 한마디. ​ “그게 아니고… 제가 아는 동생인데….” ​ 막내는 작게 변명했지만, 팀장은 코웃음조차 없이 지나쳤다. ​ “쯧.” ​ 혀를 살짝 차기까지. 영웅은 한숨을 삼키듯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장현수를 돌아봤다. ​ “야… 넌… 병신이냐?” ​ 짧은 한마디. 장현수의 얼굴이 굳어버렸다. ​ 아마 여유로운 상황에서 만났으면 반응이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타이밍이 안 좋아 보였다. 그것도, 꽤 많이. ​ 멍하니 서 있는 장현수를 뒤로하고. 뒤이어 2팀, 맹호가 나왔다. ​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육중한 체구와 단단한 기세를 내뿜는 한 남자였다. ​ 맹호의 팀장, 정태곤. 그가 천천히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 “얘네는 누구야?” ​ 정태곤이 묻자 김하은이 잽싸게 고개를 끄덕였다. ​ “아! 정태곤 영웅님! 오늘은 학생들 체험이 진행 중이라…." ​ 학생들은 숨을 죽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쳐다봤다. 맹호의 주력인 영웅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되니, 감회가 다르다. ​ 서 있는 것만으로도, 목을 조이는 듯한 압박감. ​ 정태곤은 학생 무리를 훑어보다가, 내 쪽에서 시선을 멈췄다. ​ “… 어?” ​ 정태곤의 눈이 번쩍 뜨인다. 그리고 다음 순간. ​ "하하하하! 이게 누구야!" ​ - 턱 턱 턱. ​ 그가 다가와 솥뚜껑만 한 손바닥이 내 어깨를 세 번 두드렸다. 묵직한 진동이 몸을 울렸다. ​ 어우, 씨. ​ 정태곤은 마치 전장에서 잃어버린 전우라도 찾은 것처럼, 감격한 얼굴로 내 앞에 섰다. ​ "어이, 하은 씨!" ​ 그가 김하은을 돌아보며 호기롭게 외쳤다. ​ “이 친구가 누구인지 알아? 그냥 볼 것도 없이 바로 꽂아 넣으면 돼. 대체 어디 가나 했더니만, 결국 여기로 왔구만!” ​ 그러고는 다시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김하은에게 물었다. ​ “뭐 내가 도와줄 건 없나? 말만 해!” ​ 거대한 목소리가 룸 안을 울렸다. 학생들의 눈이 이쪽으로 몰린다. 술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당황하기도 잠시, 김하은은 눈을 반짝이며 재빨리 말했다. ​ “그럼… 시뮬레이션 좀 도와주시겠어요?” ​ 약간 흥분한 표정이었다. 정태곤은 하하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 “좋지! 내가 직접 해주지!” ​ 그는 곧장 담당 관리자 쪽으로 걸어갔다. 허공에 뜬 터치패널을 거칠게 툭툭 건드리며 명령을 입력한다. ​ “적당히 세팅하지 마. 요즘 애들 근성 좀 봐야지.” ​ 관리자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대답했다. 그 광경을 보던 학생들의 얼굴이 점점 굳어갔다. ​ “뭐야…? 직접 붙는다고?” ​ “설마 우리 상대로는 아니지?” ​ 서로 조용히 수군거린다. ​ 그때, 맹호의 다른 팀원들이 툭툭 우리 어깨를 치며 지나갔다. ​ “얘들아 고생해라잉~” ​ 가까이 지나간 몇몇은 나를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눈인사를 했다. ​ “여러분! 이건 좋은 기회에요!” ​ 김하은이 씩씩하게 외쳤다. ​ “일류 영웅과의 비무, 이런 기회는 정말 다시는…!” ​ 하지만, 정작 학생들은 웃지 못하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