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자는!! 윤채하! ​ 교류전의 마지막, 개인전 결승이 끝났다. 결국 최종 승자는 윤채하로 확정. ​ 원래 그녀가 뛰어난 인재였는지, 아니면 가온의 시스템이 뛰어난 건지, 정확한 건 알 수 없지만. ​ 어쨌든 이번 교류전도 가온의 승리였다. ​ 개인전과 단체전 모두, 가온이 이겼으니 당연한 결과랄까. ​ 시상식이 시작된다. 1등 윤채하, 2등 주서준, 3등 가일. ​ 가일은 비록 윤채하에게 작살이 났지만, 3·4위전에서 나름 인상적인 모습을 보인 듯했다. 나는 관중석에서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봤다. 윤채하가 단상 위로 올라선다. 천천히 고개를 들고, 어딘가를 바라본다. ​ 또 마주쳤다. ​ ‘계속 보네.’ ​ 그녀의 시선이, 또 내 쪽을 향한다. 몇 초쯤 시선이 머물더니, 입 모양이 살짝 움직인다. ​ ‘나가지 마.’ ​ 딱히 할 것도 없기에 나는 시상식을 지켜봤다. ​ 단상 위에서 수상받는 윤채하를 보며, 이번 교류전을 통해 얻은 윤채하의 성장에 대해 곱씹었다. ​ ‘잘한다.’ ​ 이젠 잘한다라는 말도 조금 부족해졌다. 흡수가 빠르다. ​ 가르쳐준 걸 단순히 따라 하는 게 아니라, 그걸 토대로 자기 것으로 재구성해 낸다. 내가 보여준 기술을 해석하고, 바꿔 쓰고, 때로는 그 위에 자기 감각을 얹어, 아예 다른 무언가로 만든다. ​ 원래는 윤채하를 궤도에 올려놓기까지 시간이 좀 걸릴 줄 알았다. 원체 고집이 센 성격이기도 하고, 다른 애들처럼 탄탄한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었으니까. ​ 그러나, 그 생각은 틀렸다. ​ 그녀에게 ‘설정’되어있는 타고난 재능과 감각은 생각을 뛰어넘게 우수했다. ​ 현재 윤채하의 상태를 표현하자면. 그녀 완전히 자기 스스로의 흐름을 타기 시작했다. ​ ‘좋아.’ ​ 이제는, 더 건드릴 필요도, 가르칠 필요도 없어졌다. 오히려 내가 무언가를 더 알려주려 한다면, 지금의 성장 흐름에 괜한 노이즈가 낄지도 모른다. ​ 그만큼 윤채하는 지금. 여러 추진체를 달고, 원하는 방향을 향해 아주 정확히 달려가고 있었다. ​ 볼 건 다 봤다. ​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말없이 뒤를 돌아 나섰다. ​ ​ ​ *** ​ ​ ​ “우 씽… 뭐야… 어디 갔어….” ​ 윤채하는 시상식이 끝나자마자 관중석 쪽으로 향했다.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졌고, 머릿속은 한 사람의 얼굴만 떠올랐다. ​ 하지만. ​ 그 자리는 비어 있었다. 정해인은, 어디에도 없었다. ​ “…….” ​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 있었는데…. 분명히 미소 짓고 있었는데…. ​ 그런데 왜. ​ 가슴이 텅 비는 듯한 기분이다. ​ “채하야.” ​ 그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그녀를 불렀다. ​ 뒤를 돌아보자, 그녀의 부모님이 다가오고 있었다. 단정한 차림의 연구자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아버지, 그리고 입가에 웃음을 띤 어머니. ​ 그녀의 아버지는 학계에서 유명한 연구자고, 어머니는 마법 대학 교수다. 두 사람 모두 세계 마법 대회의 심사위원으로 초빙될 정도인 업계의 권위자들이었다. ​ 윤채하의 재능이 그냥 나온 게 아니었다. ​ 두 사람의 부드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 “잘했어. 정말 멋졌어, 우리 딸.” ​ “고생 많았다.” ​ 어머니는 다정하고, 아버지의 말은 짧았지만 묵직했다. 윤채하는 잠시 당황한 표정으로 멈췄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 “응… 고마워.” ​ 칭찬이 낯설다. 어머니의 경우야 그렇다 쳐도. 아버지의 칭찬은 언제나 그렇듯, 어딘가 어색하고 낯설었다. ​ 그건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사실이었다. ​ 그때, 뒤편에서 하이힐이 바닥을 두드리는 또렷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 “안녕하세요~ 채하양, 그리고 어머님 아버님~ 오랜만에 뵈어요~” ​ 친근한 여성의 목소리. 윤채하가 고개를 돌리자, 현대적으로 개량된 푸른 로브를 걸친 여성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로브 어깨에는 세 개의 원형 마법진이 교차된 듯한 문양이 새겨져 있다. ​ 그 문양이 뜻하는 것은 하나. ​ ‘마탑 소속.’ ​ 마탑은, 마법사 사회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곳이다. 그중에서도 그녀는 마탑 고위 간부 중 한 명. 실험과 정세 조율 모두에 참여하는 중간 결정권자였다. ​ 마탑은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마법사들만 들어설 수 있는 곳. 수많은 국가와 기관이 보낸 천재들조차, 1차 심사에서 절반이 걸러지고, 2차 실기와 면담을 통과하는 이는 그중 일부에 불과했다. ​ 그러나 윤채하는, 이미 마탑 내에서 ‘예비 마탑인’으로 내부적으로 분류된 상태였다. 아직 소속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최근 보인 기술들에 대한 내용이 내부 문서에서 오르내렸으니까. ​ “오늘 결승전, 정말 인상 깊게 봤어요.” ​ 그녀는 윤채하의 부모에게 익숙하게 말을 건넸다. 이미 그녀는 윤채하의 부모와는 오래전부터 인연이 있었다. 윤채하의 어머니가 마법대학 교수로 있을 당시 학술교류도 있었고, 아버지는 연구 프로젝트에서 간접적으로 협업한 이력이 있었다. ​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간단하게 식사라도 함께하시는 건 어떠세요?” ​ 그녀는 손사래 치며 덧붙였다. ​ “별건 아니고요~ 채하 학생의 앞으로 진로나, 그런 부분에서 선배 마법사로서 방향을 좀 잡아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요즘 아이들은 진짜 감각도 빠르고, 섬세해서 저도 전해줄 수 있는 게 많아서~” ​ 말투는 가벼웠으나, 그 안에 담긴 뜻은 그리 가볍지 않았다. ‘우리, 너희 딸한테 관심 있어.’ 라는 소리란 건, 그녀의 부모들도 인지하고 있었다. ​ 윤채하의 어머니는 살짝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도 내색은 하지 않았으나 만족스러웠다. ​ 마탑은, 그런 곳이었다. ​ 정작 그 당사자인 윤채하는, 고개를 살짝 든 채 관중석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 ‘쟨 또 왜 저래?’ ​ 마탑의 간부, 루이나는 윤채하의 성격을 잘 알고 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변덕꾸러기. 천재들이 가지고 있는 그 특유의 변칙성. ​ 윤채하는 마치 이 자리에 관심조차 없다는 듯, 시선만 바쁘게 움직였다. 고개를 천천히 한 바퀴 돌리고, 또 한 바퀴. ​ 결국 그녀는 작게 입을 삐죽 내밀며 중얼거렸다. ​ “진짜 갔네…. 같이 밥 먹으려 했는데….” ​ 혼잣말처럼 작게, 삐친 아이 같은 말투로. 뺨에 맺힌 미세한 홍조와 발끝을 톡톡 구르는 동작이 그녀의 감정을 말해주고 있었다. ​ 그러곤 고개를 돌려, 루이나와 눈을 마주쳤다. “저 마탑 안 가요.” ​ 단호한 한 마디. ​ 루이나의 미소가 살짝 경직됐다. 이윽고 그녀는 고개를 살짝 돌려, 자신의 부모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 “저, 뱅퀴셔 입단할 거예요.” ​ 예상치 못한 선언에, 윤채하의 부모는 짧게 숨을 들이켰다. 둘 사이에 잠시 눈빛이 오갔고, 이내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그 순간, 윤채하는 다시 관중석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비어 있는 자리. 그가 앉아 있었던 자리. ​ ‘도망쳐도 상관없어.’ ​ 그녀는 아주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 ‘내가 따라가면 돼.’ ​ 작열하며 타오르는 태양이, 스스로. ​ 시린 별을 따라가기로 결심한 순간이었다. ​ ​ ​ ​ *** ​ ​ ​ ​ 가온 아카데미의 부지를 걷고 있었다. 유하나가 전해주길, 단체전의 부상은 조만간 전달이 된다고 한다. ​ 아마, 상금이지 않을까. ​ 나는 벤치에 앉았다. ​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 윤채하가 악신의 잔재를 흡수한 이후, 마치 완전히 궤도에 올라섰다. ​ 기쁘다. 걱정 없이 놓아도 될 만큼 성장했다는 건, 좋은 일이다. ​ 큰 건을 처리했다. 이제 남은 건 곧 있을 기말고사 정도. ​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사이에 껴있는 교류전 특성상. 사실상 기말고사는 이미 시험 기간에 돌입한 상태였다. ​ 그때까지 나도 성장 하는 게 좋아보였다, 편린의 확장 권능에 대해 더 연구를…. ​ 그때. ​ - 띠링 ​ 스마트 워치가 울렸다. 눈길을 내리니, 발신자는 아르카디아 교단. ​ 아무래도, 저번 티아라 건에 관한 보상인듯했다. ​ ‘받을 것도 없는데.’ ​ 별거 없이 억지로 짜낸 보상이라면, 거절할 생각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메시지를 열었다. ​ “어?” ​ [루크]: 안녕하세요 해인 형제님. 저번 보상 건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직접 찾아뵙고 말씀드리는 게 예의겠습니다만, 우선 간단한 안내를 드립니다. ​ 이어서 이어진 내용은, 날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 [성지(聖地) 입장 허가] [입장 조건: 성녀(聖女)와의 동반 입장.] ​ “미친….” ​ 잠깐 눈을 의심했다. 딱히 받을 게 없을 거라 생각했다. ​ 그런데, 아니었다. ​ ‘성지.’ ​ 성지(聖地)란, 아르카디아 교단이 수백 년 동안 감춰온 신성의 심장부. 용사와 성녀, 오직 그 둘만이 허락된 공간. ​ 밤에는 성녀, 낮에는 용사가. 그 외엔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완전 밀봉의 밀실이다. ​ 신성력이 숨 쉬는 그 공간에서의 단 한 시간. 그것은 인간에게 있어 며칠, 혹은 몇 주에 준하는 성장의 가속을 부여한다. ​ 교단의 설명은 간단했다. ​ [루크]: 성녀님께서 티아라를 통해 성장을 앞당기고, 정식 성녀의 자격을 갖추었습니다. 이에 따라, 그 성장의 원인을 제공하신 형제님께 성지를 한정적으로 개방함으로써, 합당한 보상을 드리고자 합니다. 성지의 신성력은 한정되어 있다. 그렇기에, 그 공간은 오직 용사와 성녀에게만 허락되는 특권과도 같았다. 그런데, 나한테 이런 기회가 올 줄이야. ​ 이건, 거절 못 한다. 둘도 없는 기회다. ​ 나는 워치를 내려다봤다. 표시된 입장 시간은 늦은 밤. ​ 성지는 신전의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밀실이다. ​ 입장자는 나. 그리고, 성녀. 천여울. ​ 나는 조용히 숨을 들이쉬었다. ​ ‘가야지.’ ​ 이건 고민할 필요가 없는 제안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