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번째 시드 학생부터 시작해 1번부터 8번까지 차례로 한 명씩 뽑습니다. 이후 8번 학생부터 다시 거꾸로 8번에서 1번 순으로 진행하며, 각 학생은 총 3번씩 팀원을 선택하게 됩니다.” ​ 교관의 설명이 이어졌다. ​ “유하나 학생부터 자유롭게 선택해주세요. A반과 B반 모두 상관 없습니다.” ​ 교관의 말에, 유하나는 고개를 천천히 들어 학생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녀의 시선이 한 명 한 명을 지나갈 때마다, 학생들은 어깨를 살짝씩 움츠렸다. ​ 유하나는 기본적으로 차갑고 날카로운 인상이다. 웃으면 그나마 그 날카로움이 사라지곤 하지만, 지금처럼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이라면 보는 이로 하여금 묘한 압박감을 느끼게 했다. ​ 그녀는 무심히 손가락으로 누군가를 가리켰다. 적당한 중상위권 여학생이었다. 지목받은 학생은 얼어붙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유하나 쪽으로 다가섰다. ​ 다음은 요한의 차례였다. 그의 선택은 B반의 남학생, 장호연. 평소에도 같이 어울리는 인물이자 뛰어난 피지컬을 자랑하는 학생이었다. ​ ‘특별할 건 없나.’ ​ 나는 무심히 생각하며 다음 선택을 지켜봤다. 각 시드가 특별한 변수 없이 차례로 선택을 이어가는 동안, 학생들의 표정은 점점 더 긴장감으로 굳어갔다. ​ “하시온, 같이 할래?” ​ 그러던 중 누군가가 먼 산을 바라보며 하시온을 선택했다. 13위 한이리였다. ​ 그의 말에 지목받은 하시온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당황하는 듯했다. 그녀는 어쩔 줄 몰라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교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 “저… 교관님 혹시 선택을 거절할 수도 있나요?” ​ 교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 “물론입니다. 참관을 선택하는 것도 학생 본인의 자유니까요.” ​ 하시온은 미안한 듯 고개를 숙이며 한이리를 향해 작게 웃었다. ​ “미안해, 오늘은 그냥 한번 훑어보고 싶어서.” ​ 한이리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더니 쿨한 표정을 짓기 위해 애쓰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어, 어! 괜찮아!” ​ ‘제대로 까였네.’ ​ 보는 이들이 안쓰럽게 느낄 정도의 차임이었다. 시온이 인기가 많구나. ​ “그럼, 주한강 빨리 나와.” ​ 한이리는 급하게 다른 대상을 선택하며 상황을 마무리 지었다. 그가 뽑은 대상은 36위인 주한강. 주한강은 시드 호명이 끝났을 때부터 시종일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여덟 번째 시드의 주인이 자신이어야 생각하는 것 같은 느낌. ​ 슬슬 내 순서가 다가오고 있었다. 세 명 중 두 명의 구성은 끝났다. 누굴 뽑을지에 대한 생각은 마친 상태. ​ “다음, 정해인 학생.” ​ 교관의 호출에 나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는 것을 느끼며 앞으로 나섰다. ​ “성시우.” ​ 누굴 뽑을지에 대한 계획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입을 열었다. ​ 내 선택은 성시우였다. 행동하는 것 보면 잠잠한 게 요즘 성격이 좀 죽은 것 같았다. 검을 계속 들고 다니기는 하는데…. ​ 뭐 일단 팀으로써의 경험이 필요하니, 데려왔다. 게다가 오늘 있을 모의 던전 실습은, 그냥 던전 공략만 진행하는 것이 아닐 테니까. ​ 그러나 내가 지명한 성시우는 자리에서 일어나기는커녕 교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 “거절하겠습니다.” ​ 이 새끼가? ​ 남자한테 까이는 기분이 이런 기분이구나. 정말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이었다. ​ “정해인 학생, 다른 학생을 선택해주세요.” ​ 교관은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계획했던 두 번째 인물을 떠올렸다. ​ “김대현.” ​ -김대현? -누구야? ​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까지 선택된 학생들은 모두 100위권 내의 상위권 학생들이었으나, 김대현은 500위권의 학생이었다. ​ 그조차도 자신이 지명받았다는 사실에 놀란 눈치였다. ​ 김대현, 저번 유닛 수업 때 나쁘지 않았다. 단순히 랭크에 비해 잘한다는 정도가 아니었다. 당시 내가 팀의 헤드인 양 오더를 내렸었는데, 그는 내 지시에 신뢰를 보이며 완벽하게 움직였다. 랭킹에 비해 저평가된 학생이라는 것이 내 판단이었다. ​ 김대현은 내 옆에 서며 작게 중얼거렸다. ​ “고맙다, 해인아….” ​ 나는 말없이 그의 어깨를 두 번 가볍게 두드렸다. ​ 하지만 미리 생각했던 인원에게 거절당한 터라, 누구를 뽑아야 할지 고민이 길어졌다. 내 시선이 자연스레 실습장 이곳저곳을 훑던 중, 한 인물이 눈에 들어왔다. ​ ‘시온?’ ​ 그녀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 한이리의 지명을 거절했던 그녀가, 이번에는 대놓고 내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 ‘아, 모르겠다.’ ​ 나는 그냥 던지는 심정으로 그녀를 지목했다. ​ “하시온, 생각 있어?” ​ 한번 까였는데, 두 번은 못 까일까. ​ 교실의 분위기가 순간 얼어붙었다. 한이리는 설마 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 사실, 시온이라는 선택지는 처음부터 너무 사기적이라 배제했었다. 그녀와 나는 영감의 지도 아래에서 함께 훈련해온 시간이 꽤 길었으니까. ​ ‘5년? 6년?’ ​ 햇수로만 따져도 그 정도 시간이 흘렀을 것이다. ​ 모두의 시선 속에서 그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 “하시온이 아니고.” ​ 그리고는 내 쪽으로 걸어 나왔다. ​ “시온. 시온이라 불러야지.” ​ 다행히 두 번 연속으로 까이는 참사는 없었다. ​ 시온은 내 옆에 자리하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교실 안에는 다시 웅성거림이 퍼졌다. ​ “괜찮겠어?” ​ 나는 시온에게 물었다. 한이리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나와 시온을 바라보고 있었다. ​ “그냥 이 정도는 해야… 말을 좀 알아들을 것 같아서.” ​ 그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 “… 대충 알겠네.” ​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 이제 보니,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구애가 있었던 모양이다. 시온은 그런 분위기를 신경 쓰지 않는 듯, 평온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회차가 한 번 더 돌고, 마지막으로 한 명만 고르면 끝이었다. 나는 팀원들에게 추천을 구해봤지만, 별다른 의견은 없었다. ​ 큰 뜻이 없다면, 그냥 아는 얼굴 뽑는 게 낫긴 하다. ​ “윤상혁.” ​ 그러자 대기석에서 윤상혁이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 “나이스!!” ​ 나이스…? ​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튀어나왔다. ​ 예상외의 반응에 나는 순간 멍해졌다. 윤상혁은 내 앞으로 뛰어나오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 “열심히 할게!” ​ 원래 이런 캐릭터가 아니었는데. 어딘가 과장된 모습이었다. ​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러자 윤상혁은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 “아니… 저번 유닛 성적이 말이 안 되더라고….” “그때는 진짜 미안했어!” ​ 그제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내가 병원에 있는 동안 유닛 수업의 성적이 발표된 모양이었다. 옆에 있던 김대현에게도 물었다. ​ “너도?” ​ 그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머리를 긁적였다. ​ “어… 한명씩 호명하면서 차례대로 보여줬는데, 잘 나왔더라고.” ​ 그래서 이렇게 신난 거구만. 그런데 문득 궁금증이 떠올랐다. ​ 아까 주한강을 비롯한 여러 학생의 반응을 보니, 랭크가 없는 내가 시드로 선발된 것을 두고 의문을 품는 기색이 역력했다. ​ 학생들 사이에서 ‘랭크 없음' 이라는 것은 보통 고위 인사의 낙하산 입학이라는 뜻으로 통하곤 하니까. ​ 그러니 다시 말하자면 아직 나의 정체를 모른다는 소리다. ​ 김대현은 신중한 성격처럼 보여서 별생각 없었지만. 윤상혁과 이상봉은…. ​ ‘음….’ ​ 분명 소문을 낼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 “근데.” ​ “응?” ​ “은근 입이 무겁네?” ​ 윤상혁은 입가에 장난기 어린 미소를 띠며 어깨를 으쓱했다. ​ “뭘 그런 걸 소문내.” ​ 생각보다 입이 무거운 스타일이었나? 내가 겉만 보고 오해를 한 모양…. ​ “네가 유명해지면, 내 자리가 없잖아.” ​ “?” ​ “더 유명해지기 전에 숟가락 한 번이라도 더 얹어야지.” ​ ​그는 주먹을 불끈 쥐고는 나를 바라봤다. ​ “그러니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나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 “좋은 친구를 뒀네…?” ​ 옆에서 시온이 살짝 웃으며 씁쓸한 듯이 말했다. ​ “그러게.” ​ -쿠우웅-!! ​ 팀 구성이 완료되자, 실습장 정면에 위치한 거대한 장치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금속 패널들이 서로 맞물리며 회전을 시작하더니, 이내 푸른빛이 넘실대는 포탈이 모습을 드러냈다. ​ 일전에 봤던 ‘이아노의 무덤’과 비슷한 느낌의 포탈이었다. 상당히 정교한 모습. ​ “지금부터 8개의 팀은 던전에 진입해 공략을 시작합니다.” ​ 교관의 목소리가 실습장에 울려 퍼졌다. ​ “던전을 공략하고 보상을 획득하거나, 전투 불능 상태가 되거나, 혹은 정해진 시간을 소모하면 실습은 종료됩니다.” ​ 학생들은 하나둘씩 각자의 팀으로 모였다. 8개의 팀이 포탈 앞에 섰고, 발밑의 기계장치가 작동하며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긴장되는 순간인 듯했다. 학생들의 표정이 잔뜩 얼어 있었다. ​ 그런데 그 순간, 교관이 우리의 시선을 끌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 “시작하기 전에, 상황을 하나 가정해볼까요?” ​ ​교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묘하게 섬뜩한 울림이 느껴졌다. ​ “여러분이 정식으로 공략권을 얻거나 탐사 허가를 받은 뒤, 던전에 진입했습니다.” ​-10 -9​ -8 ​ 그녀는 천천히 우리 쪽으로 걸어오며 말을 이어갔다. ​ “그런데, 공략 중에 내부에서 다른 팀을 발견하게 된다면?” ​ -7 -6 -5 ​ “만약 그런 상황이 온다면, 단언컨대.” ​ -3 -2 -1 ​ 그녀의 목소리가 살짝 낮아졌다. ​ “그들은 반드시 당신들의 적입니다.” ​ -0 ​ “마인일 수도 있고, 도굴꾼일 수도 있겠죠. 혹은 수배를 피해 숨어든 수배자일 수도 있고요.” ​ 그녀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 ​ -재현 완료. ​ “그러니, 혹시 만약 오늘 모의 던전에서 다른 팀을 마주친다면.” ​ -입장을 시작합니다. ​ “적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시길 바라겠습니다.” ​ 말이 끝나기 무섭게, 푸른 포탈이 강렬히 빛나며 인원들을 이동시켰다. ​ ​ ​ ​ ​ ​ ​